반격은 시작되고 – 4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47
“괜찮소. 아무리 바빠도 당신 물음에 답할 시간은 있소.”
“그래. 할 말이 있으면 해.”
“그럼. 부부간에는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해.”
가려와 월미까지 나서서 호란에게 말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그에 힘입어 호란이 입을 연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하하하! 가능하면 쉬운 놈으로 해주시오.”
“어려운 건 아니지만 답하기가 편하진 않을 거예요.”
“어째 무서운 질문을 할 것 같은데?”
“그럼 다음에 할까요?”
“아..아니오. 무슨 말이든 편하게 하시오.”
“다른 게 아니고.... 언니들의 말에 따르면 당신은 과거 아이를 잃은 후 오랫동안 괴로워했다고 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월미가 한 말이다.
“그랬었지. 근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갑자기가 아니에요. 전 이전부터 그게 궁금했어요. 당신은 아이를 가질 뜻이 있었는지. 아니, 지금은 있는지. 물론 항상 가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궁금해요.”
“나라고 왜 그런 생각이 없겠소? 그리고 당신에게도 여러 차례 말했소. 갖고 싶다고.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과거엔 그럴 기회도 없었고, 이 나이에 아이를 갖는다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서 당신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소.”
“그래서 가지고 싶단 건가요?”
“물론이오. 솔직히 말하면 꼭 가지고 싶소. 하지만....”
“조건이 있나요?”
“그런 건 전혀 없소. 다만 시국이 워낙 엄중해서 아기를 가졌다가 당신이 잘못될까 봐 그게 걱정이오.”
“으음!”
호란은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 생각은 어떻소?”
“저도 마찬가지예요. 전 아이를 많이 가지고 싶어요. 하지만 저도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말을 하면서 호란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진다. 그때 창 너머 길가에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보인다.
“아얏!”
여자 아이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소리를 지른다.
휘리리리링!
호란은 그걸 보자마자 몸을 날려서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발가벗은 상태에서 공중에서 옷을 걸친다.
“어멋! 얘가, 그렇다고 이층에서 뛰어내리면 어째?”
“그러게. 그러다 잘못되기라고 하면... 난 옷도 안 입고 뛰어내린 줄 알았네.”
월미는 무진을 의식해선지 말을 얼버무린다.
“괜찮니?”
호란은 넘어진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예. 근데 언닌 어디서 왔어요?”
일곱, 여덟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는 호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호호호, 하늘에서 온 건 아니니까 걱정 말고. 어머! 무릎이 까졌네. 언니가 치료해줄 테니 앞으론 조심해. 알았지?”
“예. 예쁜 언니. 어멋! 상처가 다 나았네. 분명히 피가 났었는데. 신기하다.”
여자 아인 무릎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릎에 제법 큰 상처가 있었다. 근데 호란이 손으로 만지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래 언니 손이 약속이란다. 자, 그럼 이건 엄마 갖다 드리고 맛난 거 싸먹어라.”
호란은 품속에서 작은 은 덩어리를 하나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간단히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리하곤 1층 주루로 들어간다.
“이게 뭐지?”
은덩이를 본 적이 없는 여자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야, 그거 돈이야. 돈!”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소리친다.
“돈이라고? 그럼 만두도 사 먹을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그건 엽전보다 훨씬 더 큰돈이야.”
“엄마아아!”
은덩이를 쥔 여자아이는 곧장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지희야, 우리도 끼워져야지.”
“같이 가자!”
다른 아이들도 뒤따라 달린다. 2층 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무진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저러지? 아이를 좋아하지만, 오늘따라 분위기가 이상하네. 마음을 읽어야 하나? 아니. 약속을 했으니까 그건 안 되지.’
무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는다.
호란은 주루로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찌푸린다. 일단의 사람들이 주루의 주인을 가운데 두고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실랑이지 협박이다. 호란도 처음엔 뒷골목의 자릿세를 뜯어내는 주먹패거리인줄 알았다. 근데 옷차림이 낯이 익다. 가슴에 모두 팽(彭)이라는 글자가 적힌 옷을 입고 있다. 하북팽가의 무사들인 것이다.
이곳은 바로 하북팽가(河北彭家)가 있는 하북성이다. 팽가는 도법과 권법이 유명하며, 특히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는 오늘의 팽가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은 정주(頂珠)로 무진 부부는 북경으로 가는 길에 들렀다.
“나리, 말씀하신 백 냥을 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이러십니까?”
“흐흐흐, 그럼 우린 어떻게 먹고 살라고?”
“그래. 우리도 생기는 게 있어야 밥도 먹고, 술도 한 잔씩 할 거 아냐?”
“아이고, 나리! 그 돈도 부족해서 표국에서 50냥을 빌려 채운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줄 돈이 없다는 거지? 흐흐흐!”
“나리! 이번 달만 봐주십시오. 잘 아시겠지만 가주께서도 일주일이면 한, 두 번씩 가게에 오십니다.”
주인은 위기를 넘어갈 생각으로 가주를 거론한다. 하지만 그게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 새끼가 미쳤나? 지금 가주를 내세워 우릴 협박하는 거야?”
“이 새낀 우리가 가주의 허락도 없이 이러는 줄 아는 모양이네.”
“그래! 안 받아도 된다. 대신 다신 여기서 장사할 생각은 마라.”
와장창창!
팽가 무사들은 주방 안으로 들어가서 기물을 부수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손님들은 하나, 둘씩 빠져나간다.
“아이고, 나리. 잘못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제..제발!”
주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바깥으로 달려 나간다. 그걸 보며 무사들은 음흉하게 웃는다.
“흐흐흐흐! 진작 그럴 것이지. 우리말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조리 알거지로 만들어야 해.”
팽가의 무사들은 승자처럼 행동하며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개자식들. 저런 것들이 무인이라고 설쳐대니 정파가 이꼴이 됐지.”
“대체 하북팽가가 어쩌다 저 꼴이 된 거야?”
“그러게 말이야. 20년 전만 해도 하북에서 팽가라고 하면 모두 칭송을 하고 자리를 양보했는데. 쯧쯧!”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무사들을 비난한다. 물론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근데 왜 관청에 고변하지 않나요?”
호란은 궁금했던지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묻는다.
“팽가를 고변한다고?”
“예쁜 아가씨가 이 동네엔 처음인 모양이네.”
“예!”
“여기서는 말이야. 황제보다 저들의 힘이 더 세다오. 근데 관부에 신고를 해요?”
“으음!”
그제야 호란은 마을 분위기를 이해한다.
“그렇다고 저대로 계속 둘 순 없잖아요?”
“맞는 말이오. 하지만 누가 팽가에 맞서 싸우겠소? 죽고 싶다면 모르지만.”
“이곳에선 팽가가 주인이오. 심지어 현령도 수백 년 동안 팽가가 추천한 사람이 임명됐다오.”
이렇게 되자 호란은 더 이상 반박을 못한다. 이때 무진이 2층에서 내려와 앞자리에 앉는다. 주위의 사람들은 부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본다. 심지어 팽가의 무사들조차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
“저들의 행패를 보셨어요?”
무진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그냥 둘 거예요?”
“저들을 벌해서 달라진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그럼 어떻게.... 혹시...?”
“그렇소. 팽가의 가주를 만나서 직접 따질 생각이오.”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요?”
“후후후, 우린 저들을 벌하러 왔소.”
“아! 죄송해요. 제가 깜빡했어요.”
두 사람은 북경으로 가는 길에 하북팽가에 대한 평판이 워낙 좋지 않아서 이곳을 찾았다.
“갑시다!”
무진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근데 그때 입구 쪽이 시끄럽다. 누군가가 팽가의 무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민이와 운이에요.”
“후후, 저 아이들 성격에 용서가 안 되겠지.”
두 사람이 주루를 벗어나자 팽가 무사들이 차례대로 밖으로 튕겨 나온다.
“우릴 알아봤을까요?”
“글쎄? 나중에 물어봅시다.”
태민 사형제는 무진 부부가 들어왔을 때부터 주루에 있었다. 다만 무진 부부의 얼굴이 많이 변해서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날 오후, 팽가의 정문에 도착한 무진부부는 약간 당황한다. 팽가가 상가(喪家)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어느 분이 돌아가셨소?”
무진은 주위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통제하는 위사에게 다가가 묻는다.
“가주께서 살해당하셨습니다.”
위사는 생김새와는 달리 부드럽게 설명한다. 그는 무진에게 정신을 제압당해 순순히 털어놓은 것이다.
“예에? 어쩌다가....?”
“이십 대의 젊은 놈들이 가주를 면담하다가 그랬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체포당해 감옥에 있다고 합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잡혔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체포된 건 분명합니다.”
“사건 조사는 어떻게 하고 있소?”
“현령이 직접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장원 내엔 누가 책임자요?”
“부가주와 핵심 간부들이 대부분 북경으로 떠난 상태라 총관님의 명을 받고 있습니다.”
“알았소.”
그렇게 말하곤 두 사람은 정문으로 이동한다.
“씨발! 이 기분은 뭐지? 조금 전에 것도 기억에 없고 말이야. 서서 졸진 않았을 텐데...”
위사는 정신을 차리곤 어리둥절해한다. 마치 자다가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한편 무진은 정문에서 신분을 밝힌다.
“예에? 호북성의 즙포사신이라고요?”
위사는 즙포사신이란 말에 상당히 놀란 눈치다. 그들에겐 성주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이 바로 즙포사신이기 때문이다. 보통 즙포사신은 무림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고, 또 호북성의 즙포사신이란 말은 호북성 관병들 중에서 제일고수란 뜻이기도 하다.
“왜, 거짓말 같소?”
“그게 아니라....”
“궁금하면 당장 현령을 나오라고 하시오.”
“여기서 현령을 왜 찾으십니까?”
“지금 팽가에선 살인사건이 났고, 그걸 현령이 직접 수사하고 있다던데, 아니요?”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제야 위사는 무진이 즙포사신이란 걸 인정하고,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쯧쯧, 팽가도 이젠 다 됐구나. 다 됐어.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팽가가 뭘 잘못했나요?”
“어디 한, 두 가지라야 설명을 하지. 우선 무가(武家)를 깡패조직처럼 운영했으니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할 테고, 제자들은 제대로 훈련을 시키지 않았으니 맨날 터지고 다니고, 이러다 보니 태양장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통일문이나 대련회에게도 휘둘리는 거요. 그러니 누가 과거처럼 팽가를 존중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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