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8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82
“그게 무슨 사업이냐?”
“그러니까 미치겠다니까요.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진청왕부에서 보낸 거라 무시할 수도 없고, 요즘은 아예 본단에는 가지도 않는 답니다. 당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있어야죠?”
“방법은 하나뿐이다.”
조충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충이 형님, 제발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너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지금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여자들의 등쌀이 장난이 아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단다.”
“야! 그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혜련이는 이렇게 살 바엔 아예 헤어지잔다. 헤어져!”
“그래서 하는 말인데 초일의 문제를 빨리 끝내자.”
“끝내면?”
“대형부터 막내까지 한꺼번에 합동결혼식을 하는 거지.”
“한 날, 한 시에?”
“바로 그거다. 한 형제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합동결혼식을 한다! 이거 그럴싸하지 않니?”
“야! 그 돌 머리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아얏!”
“친구면 다 같은 돌대가리냐? 이 몸은 개방, 동창과 함께 중원삼대정보조직인 묵사회의 회주님이시다. 이놈아! 알고나 씨불여라.”
“아이고, 그러셔? 그래서 허구한 날 개방한테 발리냐?”
“발리다니? 우리가 개방보다 규모가 작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세세한 정보는 잘 모른다. 하지만 굵직굵직한 정보는 오히려 우리가 한 수 위야. 막내야, 내 말이 틀렸냐?”
“개방의 소방주로서 저희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할 순 없고, 최소한 고급정보가 필요할 땐 저희도 묵사회의 도움을 받곤 합니다.”
“자, 들었지? 니들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우리 묵사회를 깔보는 놈은 알아서 해라.”
“지랄을 하십시오. 장가가는 얘길 하다가 웬 자랑질이야?”
“일초 형님, 그래도 이번엔 충이 형님이 좋은 안을 낸 겁니다. 저도 그 방안에 동의합니다.”
“그렇지. 그래. 역시 일이는 사리분별이 뚜렷하단 말씀이야.”
“근데 말입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니?”
“예, 여기에 있는 우리는 짝이 있어서 큰 문제가 없는데, 짝이 없는 형제들은 어떡합니까?”
“아이고, 그런 문제가 있네. 어떡하지?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어떡하긴? 그 전에 해결해야지.”
“어떻게? 좋은 방안이라도 있냐?”
“그거야...”
조충의 물음에 일초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때 다시 소개가 나선다.
“이러면 어떨까요?”
“그래. 우리 막내는 꾀돌이니까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여자들에게 역제안을 하는 겁니다.”
“역제안?”
“예.”
“자세히 말해봐라.”
“간단합니다. ‘우린 이번 사건이 끝나면 대형께 부탁해서 합동결혼식을 하겠다. 대신 그 전에 짝이 없는 형제들 문제는 여자들이 해결하시오.’ 라고 말입니다.”
짝짝짝짝...!
순간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가 흘러나온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박수를 친다. 그것도 아주 길게.
“야, 십년 묵은 체증이 한 순간에 다 내려가는 것 같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몇 달 만에 만나서 밤새도록 들들 볶여 봐라. 어떤 땐 아예 다른 방으로 가버린다. 니미! 혼자 자라고. 이야! 그 동안 쌓였던 화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 같다. 막내야, 정말 고맙다.”
이구동성으로 소개를 칭찬한다.
“저도 제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은 해답입니다.”
“잘했다. 근데 막내야.”
“예. 일초 형님.”
“풍운장엔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냐?”
“구경거리가 생겼습니다.”
“결혼식이냐? 아님 환갑잔치?”
“풍운장주 큰 손자의 결혼식입니다.”
“보통 결혼식은 여자 집에서 하지 않니?”
“여자 집에서 하고 부족한지 여기서도 한답니다.”
“후후, 역시 냄새가 나네.”
“풍운장주 정도면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겠다.”
“너도 그 때문에 온 거냐?”
“겸사겸사 해서 왔습니다. 원래는 분타주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형님들이 이쪽으로 이동했단 소릴 듣고 부랴부랴 왔습니다.”
“잘 왔다. 그럼 니 덕분에 모처럼 포식을 할 수 있겠구나.”
“그 복장으로 어떻게 저와 같이 들어가겠습니까?”
“하긴 이 차림으로 거지 행세를 할 순 없지. 그럼 어떡하지?”
“걱정 마십시오. 이걸 하나씩 받으세요.”
“이게 뭐냐?”
“개방의 속가제자?”
“그렇습니다. 다른 문파에도 다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습니까?”
“그렇지. 근데 이전에도 개방 속가제자란 게 있었냐?”
“알려지진 않았지만 의외로 많습니다. 지금도 돈을 싸들고 와서 부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지금 저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중에도 저희 속가제자들이 꽤 많습니다.”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개방의 속가제자들은 주로 어떤 인간들이니?”
“대부분 돈은 많고, 뒷배가 없는 자들이죠. 관료들 중에서 은퇴한 사람들도 많고요. 형님들은 모두 그런 분들을 대표해서 참석하신 겁니다.”
“부자들이 거지들의 속가제자가 된다? 하여튼 세상은 요지경이야.”
“월향은 잘 지켜보고 있지?”
“예, 묵사회와 개방이 합동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뭘 하고 있더냐?”
“풍운장의 식객 중에 유명한 의원이 한 명 있습니다. 다들 들어본 적은 있을 겁니다. 사의라고... 그 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사의(死醫)? 그 자가 아직도 살아 있었어?”
“예. 한 때는 무림공적으로 찍혀서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근데 오늘 내일 하던 풍운장주의 목숨을 구해주곤 그대로 눌러앉은 모양입니다. 무림공적도 풍운장주가 황금 만 냥을 무림맹에 납부하면서 해제됐고요.”
사의(死醫).
별호대로 죽음의 의원이다. 그의 손에 죽은 무인만 해도 천여 명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그렇다고 환자를 죽이는 것도 아니다.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가 실험을 한다며 죽이고, 또 난도질을 했다.
“그 자는 통일문이 만든 괴물들과 관련이 있을 거라 의심받지 않았나?”
“그랬죠. 저희도 최근에서야 풍운장에 숨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자가 월향이를 치료하고 있다? 이거 정말 구린내가 많이 나네.”
조충의 설명에 모두 표정이 어두워진다.
“정보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혹시 월향에 대한 것이냐?”
태민이다.
“형님도 이상한 걸 느끼셨나 봅니다.”
“그래. 창녀들의 조직인 매화단이 있다. 소문에 의하면 몇 년 전부터 조직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난 월향이 그 조직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며칠 전에 이런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동창의 전서를 중간에 낚아챈 겁니다.”
“그런데?”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 매화단의 단주가 석가장으로 이동 중. >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거의 확실하군.”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초일은 태사를 통해서 황실과 관부를 관리해왔고, 동시에 태사에게 월향이란 감시자를 붙여놓은 겁니다.”
“그런데 월향이 왜 태사를 배신했을까요?”
곤일의 질문이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월향은 태사가 아니라 초일을 배신한 것입니다.”
“조직의 보안을 지키기 위해서 태사를 해친 게 아니고?”
“그녀는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수많은 전서구를 날렸습니다.”
“어디로?”
“모두 한 군데로 보내졌습니다.”
“매화단?”
“예. 그렇습니다.”
“그럼 둘 중에 하나뿐이군. 원래 초일과 직접적인 끈이 없거나. 아니면 진짜로 배신을 했던가.”
“이걸 한 번 보시죠.”
소개는 또 다른 서찰을 일초에게 보여준다.
“이건 누가 보낸 거냐?”
“월향이 매화단에 보낸 것 중의 하나입니다.”
< 장로님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 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북경 사창가를 철저히 뒤져라. >
“으음! 내 생각이 다 틀렸군.”
“틀렸다기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 거죠.”
서찰에 따르면 매화단의 장로들이 초일에 의해서 인질로 잡혔고, 월향이 어쩔 수 없이 태사를 감시했다. 그래서 일초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월향이와 손을 잡아야 하는 건가?”
서찰을 본 뒤 조충이 한 말이다.
“그건 월향을 만나본 뒤에 결정하시죠?”
“그래. 자, 일단 들어가자. 뱃속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초의 뜻에 따라 일행은 모두 풍운장으로 들어간다.
소개 덕분에 정문은 아무 탈 없이 통과한다. 일행은 제법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입구에서부터 집사의 안내로 숙소까지 이동할 정도이다. 풍운장 입장에선 개방의 소방주가 직접 온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당연한 일이다.
‘저기가 사의가 있는 곳입니다.’
‘천리향이 저기서 흘러나온 걸 보면 분명합니다.’
태민은 집사가 곁에 있어서 전음으로 말한다. 그는 태사원에서 이미 월향의 몸에 천리향을 뿌려놓았다. 그걸 따라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기가 숙소입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근데 집사님께 부탁드릴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예,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집사는 최대한 자세를 낮춘다.
“풍운장에 사의란 분이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에?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집사는 깜짝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의가 풍운장에 있는 걸 아는 사람은 장주를 비롯해서 몇 명뿐이다. 사의는 여기서 마의(麻醫)란 이름으로 불린다.
“하하하! 집사께선 제가 개방의 소방주란 걸 잊으신 모양입니다.”
“아! 제가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집사도 소개의 신분을 깨닫고는 순순히 받아들인다. 개방의 소방주는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 분을 좀 뵙고 싶습니다. 나쁜 뜻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쉽지는 않겠죠. 그리고 이건 제 마음입니다.”
소개는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집사의 손에 쥐어준다.
“이..이게 뭡니까?”
“부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그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사의가 집사님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약이면 적어도 이십 년 이상은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집사의 부인이 몸이 안 좋은데 사의가 치료를 거부한 모양이다.
“저..정말입니까?”
“그렇다고 이십 년밖에 못 사신다는 건 아닙니다. 그 뒤부턴 하늘의 뜻이지요. 어쩌면 집사님보다 더 오래 사실 수도 있고요.”
“이게 무슨 약이기에 모든 의원들이 한 달을 넘기 어렵다는 사람을 이십 년이나 살게 한단 말입니까?”
집사는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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