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4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43
“예, 어르신. 그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그래. 역시 막내는 인사성이 밝아. 그건 그렇고. 한 가지만 물어보자.”
“예. 말씀하시지요.”
“소림 땡땡이들은 형님이란 말을 사용 안 하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도 무림 선배들 중에 형님이라 부르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네 대사형이라는 어떤 놈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날 형님이라 부른 적이 없단다. 이게 뭘 의미할까? 너무 너무 궁금하다. 알면 말 좀 해줄래?”
“그거야 간단하죠.”
“간단해? 역시 막내는 똑 부러지고, 정확해.”
“후후,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난 지금까지 널 단 한 번도 음해하거나 나쁘게 얘기해본 적이 없다. 그것만 믿어다오.”
“난 많이 들었는데.”
옆에 있던 제자가 사부의 말을 부정한다.
“이놈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어제도 했잖아요? 소림에 십팔나한이란 멍청한 놈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막내란 놈이 가장 말이 많고, 시끄러우며, 띨띨하다고.”
“야! 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니? 마..막내야. 그건 오해다. 이놈이 말이다. 참! 인사해라. 내가 오년 전에 그러니까 이놈이 다섯 살 때 하도 불쌍하게 돌아다니기에 제자로 받아들였다. 사실 내 인생의 가장 큰 실패작이자 졸작이야. 도대체가 말을 안 들어 먹어요. 참! 얘기가 어디서 샛길로 빠졌지?”
“대사형이 어르신을 형님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데까지 했습니다.”
“그래. 그래. 이유가 간단하다고 했지?”
“예. 우선 대사형이 어르신을 별로 가깝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옳거니! 경허 너 오늘 제대로 걸렸다. 그리고?”
“두 번째가 있는 건 어찌 아셨습니까?”
“세 번째도 있다는 거 아는데?”
“아미타불! 역시 어르신은 무림의 마당발이자 최고의 정보통이십니다.”
“껄껄껄! 역시 내 가치를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은 막내야. 막내!”
“그럼 시간 관계상 두 번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나도 궁금해 죽겠다.”
“대사형은 항상 어르신과 약간 거리를 두고 싶어 하십니다.”
“왜?”
“어르신이 두려운 거죠.”
“오라! 땡땡이중놈이 약점이 많다는 뜻이렷다?”
“그건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평소 대사형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어르신과 자주 어울리는 사람치고 평판이 좋은 사람이 없다.’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네.”
옆에 앉은 소년이 맞장구를 친다.
“허 참! 사실이니 부정 할 수도 없고. 또?”
“예, 마지막 세 번째는 대사형은 누구보다 어르신을 걱정하신다는 겁니다.”
“에잉?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작금의 소림은 과거의 영화를 잃은 지가 오래됐습니다. 혹시라도 어르신이 소림의 핵심인물인 대사형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란 게 알려지면 어르신의 명성에 누가 될까봐 그런 겁니다.”
“으음!”
갑자기 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진 노인을 중심으로 농을 했는데, 막내의 마지막 말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이다.
“너무 자책마라. 소림의 천년 역사에 오늘과 같은 치욕의 시기는 수도 없이 많았다. 너희들을 보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르신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막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한다.
“껄껄껄! 모처럼 뻥을 쳤더니 목이 칼칼하네. 제자야, 내가 말했지?”
“뭘요?”
“땡중들이랑은 음식을 같이 먹는 게 아니라고.”
“그랬죠. 술도 못 먹는 놈들이랑은 절대로 겸상을 하지 말라 하셨죠.”
“낄낄, 내가 제대로 가르쳤군. 근데 넌 형님들한테 인사는 했니?”
“안 그래도 막 하려고 했어요. 소훈이가 형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소년은 일어서서 두 손을 꼭 쥐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그래. 우리 소훈이가 그 동안 사부를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너도 알겠지만 우린 소림의 십팔나한으로 나부터 순서대로 모두 열여덟 명이다.”
“훈이는 사부를 처음 만났을 때 다음으로 오늘이 기뻐요.”
“그래?”
“예. 이렇게 많은 형님들을 가졌는데 어떻게 안 기쁘겠어요?”
“아미타불! 우리 형제도 널 동생으로 맞이한 걸 부처님의 은덕이라 생각한다. 비록 나이 차이도 많고,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세상의 누구보다 더 우의 깊고, 죽는 날 까지 형제의 의리를 지키자. 그 맹세로 모두 찻잔의 차를 단숨에 비워라. 소훈이와 십팔나한이 한 형제가 됐음을 석가세존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라!”
“맹세하노라!”
노인을 제외한 열아홉 명이 모두 맹세의 잔을 들어 올린 다음 차를 단숨에 마신다.
“훈이는 이 사부가 없더라도 형님들을 사부와 부모처럼 생각해야 한다. 알았느냐?”
“예, 사부!”
이렇게 해서 형제의 예는 순식간에 끝난다.
“뜻을 이룬 기분이 어떻소?”
“넌 니들이 짐을 떠안았다고 생각하니?”
“무슨 뜻이오?”
“소림에게 달마선사 시대의 영광을 안겨줄 아이다.”
“예에? 그 정도입니까?”
“아미타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근데 출가를 시킬 생각이오?”
제일나한은 합장을 하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아마 그는 노인의 말을 믿는 모양이다.
“아니다. 소림의 속가로 남되 저놈을 가르칠 분은 따로 계시다.”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하시오. 속가는 뭐고, 그분은 또 누구요?”
“너희도 곧 그 분을 뵙게 될 게다.”
“소림과 인연이 있는 분이오?”
“인연이라면 무당과 깊지. 하지만 소림을 비롯한 무림의 모든 세력이 그분과 인연이 있다고 봐야지.”
“선배는 요즘 수수께끼 문제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오.”
“세상살이가 다 수수께끼 아니더냐? 헐헐헐!”
주유전사(周遊戰士), 무불통지(無不通知), 두주불사(斗酒不辭), 고금제일지(古今第一知). 무림 역사상 한 사람의 이름 앞에 이렇게 많은 별호가 붙은 인물은 없었다.
무불통지 방극지. 태허도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곤륜파의 전전대 장문인이란 걸 제외하곤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중원제일의 기인으로 불리며 무림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되었다.
“훈이 문제는 그 정도로 하고, 이제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어딜 가긴?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니들을 찾아왔겠니?”
“후후, 잘 생각하셨소. 안 그래도 이번 북경행이 불안했소. 막내야!”
“예, 대사형!”
“앞으론 따로 곡차를 좀 준비해야겠다.”
“알겠습니다. 넉넉히 준비하겠습니다.”
“낄낄낄, 어차피 준비할 거 지금부터 하면 안 되겠냐?”
“안 그래도 방금 어르신과 훈이의 식사를 주문하면서 시켰습니다.”
“그새 우리 식사까지 시켰어? 우리 막내의 은덕(恩德)은 죽어서도 오백 년, 아니 천 년 이상 그 이름이 온 천하에 퍼져나갈 것이다. 훈아, 막내 형님께 인사를 해야지.”
“예. 막내 형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훈아, 형제간에는 은혜나 신세란 말은 하지 않는 거란다. 우리가 진짜 형제라면 말이다. 알았니?”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헐헐헐! 좋구나. 좋아.”
“선배도 보셨소?”
“봤지.”
“어떤 거 같소?”
“그 정도면 탐색전이라고 봐야겠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우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
“왜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두 사람의 대화에 제이나한이 끼어든다.
“놈들이 우릴 따라다니면서 시비를 걸면 어떻게 피하겠니?”
“문제는 상대가 누구냐 하는 거죠.”
“그렇지. 나타난 놈들은 피라미에 불과할 테니까.”
세 사람의 얘기는 북경의 대호장이 이곳 대원장의 두 모녀를 납치한 것에 대한 것이다.
“일단 서두르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쉬고, 출발은 내일 아침이다.”
제일나한 경허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 날 아침.
객잔을 나선 십팔나한 일행은 마을을 벗어나 들판을 지나가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곡식은 익어가고, 군데군데 벼 베기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일행은 노숙을 면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사부!”
“응?”
“이렇게 곡식들이 많은데 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궁금하구나.”
“대사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훈은 제일나한 경허를 대사형이라고 부른다. 원래 소림은 장로회의를 통과해야만 정식 제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속가제자는 제일나한과 같은 소림에 일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소훈은 이제 소림의 속가제자가 됐고, 제일나한을 대사형이라 부르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무능해서 생긴 일이란다. 우리 훈이가 어른이 되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겠니?”
“예.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못된 놈들을 혼내주는 무인이 되고 싶어요. 사형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소훈은 어린 나이에도 다부지게 말한다.
“하하하! 당연하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걸 가르쳐 주마.”
“암! 그래야지.”
“그럼 우린 늘그막에 훈이 뒤만 따라다니면 되겠네?”
“그러게요. 앞으론 우리 형제 중의 갑은 훈입니다. 훈이!”
“하하하!”
“헐헐헐!”
이렇게 일행은 들판의 중간까지는 무탈하게 이동한다. 근데 멀리 길 옆 오두막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덟째가 옵니다.”
제이나한의 말대로 선발대로 앞서가던 제팔나한이 달려온다.
“대사형, 어르신!”
“무슨 일이냐?”
“어제 봤던 그 자들입니다.”
“그 자들이라니?”
“두 모녀를 납치해간 자들 말입니다.”
“그런데?”
“점창의 제자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왜?”
“아마 두 모녀를 겁간하려 했나 봅니다.”
“으음, 선배님!”
제일나한은 태허에게 시선을 돌린다.
“오랜만에 자네들 솜씨를 보고 싶군.”
“사제 생각은?”
이번에는 제이나한의 뜻을 묻는다.
“어쩔 수가 없군요.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빨리 처리하고 가시죠.”
“그러세. 가시죠.”
제일나한의 명령에 따라 십팔나한은 전력을 다해 달린다.
이곳은 들판의 중간에 있는 오두막이다. 오두막 위에선 다섯 명의 사내들이 두 여인을 희롱하고 있고, 그 주위에서 점창파의 복장을 한 사내들과 북경 대호장의 무사들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바닥에는 양측의 무사들이 여러 명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아악! 제발, 이러지 마세요!”
사십대 초반의 여인은 대호장의 무사들에 의해 짓눌린 상태에서 소릴 지른다.
“시끄럽다! 네년이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네 딸년이 더 힘들어진다.”
“아..안 돼! 그 아인 건드리지 마세요. 제발!”
여인은 옆에서 기절해 있는 딸을 보며 애원한다. 세 명의 중년인은 소녀의 옷을 벗기며 주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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