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11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112
“우리의 존재를 모르니 그런 생각은 안 하겠지.”
“근데 궁금한 건 과연 여기서 살아남는 놈을 초일이 후계자로 삼을까요?”
“그렇다면 무림말살정책이라고 할 필요가 없겠지. 그건 오직 자기만 살아남는 걸 말한다.”
“그걸 제자란 놈들이 모르니. 한심한 놈들이군요.”
“대형, 태양장주가 물러날 태세입니다.”
무진과 태허가 얘기하는 사이 상황 변화가 있다. 태양장의 무사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태양장주는 대련회주가 왔다는 걸 모를까요?”
“알기 때문에 뒤로 물리려는 거지.”
“그런다고 대련회주가 가만있을까요?”
“네 생각은 어떠냐?”
진수의 질문에 무진이 되묻는다.
“저라면 승부를 걸겠습니다. 하지만 워낙 영악한 자들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영악한 건 사실이지만, 멍청하진 않을 거야. 이런 기회가 다신 오진 않을 테니까.”
“대형 말씀대로입니다. 대련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분위기로 봐선 통일문과 협공을 펼칠 모양입니다.”
소개의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대련회가 움직이자 통일문도 태양장을 향해 이동한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순간이다. 이때 갑자기 마차 한 대가 이들 사이로 들어온다.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마차는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 만큼 잘 꾸며져 있다.
“변수가 생겼습니다.”
“이런 일에는 항상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지. 잠시 더 지켜보자.”
이렇게 무진 일행은 다시 뒤로 물러난다.
“전령사자다!”
“공주님이시다!”
마차를 보자 세 세력의 무사들은 모두 소리친다.
“초일의 명령을 전달하는 여인입니다. 소문에는 초일의 후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소개가 최근에 입수한 정보를 근거로 설명한다.
“상당히 미인이군요.”
“마차 안이 보이세요?”
호란의 말에 태허가 놀란 눈으로 되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아직 사물을 투시할 능력이 없다. 아마 그는 호란이 자신보다 월등히 높은 경지에 있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형님, 누님은 오래 전에 내력을 모두 버리셨습니다.”
“뭐..뭐라고? 그게 가능해?”
“일초 형님과 충이 형님도 누님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 나이에 사물을 투시할 순 없을 테니까. 자..잠깐! 그 말은 그 친구들도 내력을 버렸다는 뜻이냐?”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막내도 마찬가집니다.”
“막내까지?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야. 사기!”
곤일의 설명에 태허는 극도로 흥분한다. 아니, 당황한 것이다.
“대형! 대형이 설명을 해보시오. 그게 가능하오. 난 정신무예를 무려 사십 년을 익혔소. 근데 최근에야 간신히 버렸소. 그것도 정신무예를 자연무예로 바꿔서야 간신히 해낸 거요. 내가 알기론 대형이 동생들을 만난 건 아직 5년도 안 됐소. 근데 벌써 내력을 버리다뇨? 이게 사기가 아니면 뭐요?”
“뭐, 사기라고? 이 자식이 이젠 아예 대놓고 형을 욕하네.”
“내가 지금 욕을 안 하게 생겼소? 처음 봤을 때 나도 자연무예를 가르쳐 줬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거 아니오?”
“그 때 가르쳐 줬으면 네 자존심에 잘도 배웠겠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불공평하오.”
“가만!”
“왜요?”
“생각해보니까 이상하네. 재작년에 만났을 때 내가 분명히 말했지? 빨리 자연무예로 바꾸라고? 그때 니가 뭐랬어?”
“그거야...”
“멍청한 놈! 그때만 자연무예를 익혔어도 애들이랑은 비슷하게 내력을 버렸을 거 아니냐?”
“지난 일을 지금 와서 얘기하면 뭘 하오?”
태허는 얘기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살짝 발을 뺀다.
“나 참! 이놈은 일초보다 더 하네. 최소한 그놈은 오리발은 사용하지 않는데 말이야.”
“험! 험! 대체 어떤 인간이 자연무예를 만든 거요.”
태허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당연히 후유증은 그의 몫이다.
“내가 만들었다. 왜?”
“대..대형이 만들었소?”
“자연무예는 이름일 뿐 능력만 되면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다. 초일이 만든 것도 일종의 자연무예다. 하지만 저놈들은 내력을 버리는 걸 모른다. 초일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거지.”
“그러니까 조금 늦어도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단 거죠?”
“그래. 이놈아! 너 같이 성질 더러운 놈이 어떻게 도사가 됐을까? 쯧쯧쯧!”
무진은 다소 거친 말을 하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태허가 괜히 투정을 부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흥! 언제는 신선이 될 놈이라고 칭찬하더니.... 아..알았소. 내 문젠 나중에 얘기하고 얼마나 예쁜 계집인지 구경이나 합시다.”
태허은 상황이 불리하자 황급히 말머리를 돌린다. 동시에 일행의 모든 시선은 마차로 집중된다. 마차의 문이 열리자 먼저 두 여인이 내린다. 뒤이어 덩치가 남산만 한 여인이 뒤뚱거리며 계단을 내려온다.
우지끈!
얼마나 무거웠으면 계단이 주저앉는다. 만약 두 여인이 잡지 않았으면 전령사자는 떨어져 바닥을 굴렀을 거다.
“이런 씨발! 어떤 개자식이 이런 부실한 마차를 만든 거야? 돌아가면 모조리 불러서 모가지를 따버린다. 내 말 들었지? 한 놈도 예외 없이 모조리 쳐 죽여라!”
전령사자는 여인이라곤 믿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낸다.
“야! 니들 정말로 내가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했는데, 한 놈도 와서 인사를 안 할 거야? 그래. 마음에 안 들면 생까라. 나도 니들 완전히 생까 버릴 테니까. 물론 그런 놈은 목을 내놔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전령사자란 여인은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많아 봐야 호란이 또래다. 근데도 태양장주를 비롯한 자기보다 몇 배 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막말을 해댄다.
“사매가 여긴 어쩐 일이냐?”
가장 먼저 대련회주가 나선다. 그는 전령사자를 사매라고 부른다.
“흥! 말로는 사매라고 하면서 오라버닌 내가 뚱뚱하다고 항상 업신여기잖아요?”
“야, 내가 언제 널 업신여겼다는 거냐?”
“지금도 그러잖아요? 분명히 내가 와 있는 걸 알면서 찾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요?”
“내가 너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무시하겠니? 그건 오해다. 오해. 정말 널 무시했다면 가장 먼저 나왔겠니?”
“좋아요. 오늘은 사부의 명을 받고 왔으니 그 정도로 하겠어요. 하지만 다른 인간들은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아이고, 우리 공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골이 났을까?”
“대형은 또 우리 눈꽃 공주님을 화나게 했소?”
통일문주와 태양장주가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흥! 내가 그런 달콤한 말에 속을 줄 알고? 하여튼 오늘은 사부의 말씀만 전하고 갈 테니까 니들끼리 박 터지게 싸워라. 부탁인데, 가능하면 모두 죽어라. 그래야 내가 후계자가 될 테니까.”
전령사자는 막말과 악담을 계속한다. 그런데도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것만 봐도 그녀와 초일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부의 전언이 뭐냐?”
대련회주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호호호! 기분이 나쁘시단 말씀이군. 그래. 나도 니들 꼬라지 보기가 역겹다. 사형제란 것들이 기회만 되면 서로 죽이겠다고 으르릉 거리기만 하고, 그렇게 해서 무림을 정복했다 치자. 그럼 니들 쫄다구들이 진심으로 따를 것 같니? 기회만 되면 니들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올라서려 하겠지. 상상만 해도 기분이 개떡 같네. 사실 사부는 더 골 때리지. 제자들이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걸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야. 사부의 전언은 이렇다. 셋 중에서 살아남는 자가 나와 경쟁해서 이기면 후계자로 인정하겠다는 거다. 이상이다.”
전령사자는 그 말만 하고 몸을 돌린다. 하지만 통일문주가 그녀의 앞을 막아선다.
“이게 무슨 뜻이야?”
순간 전령사자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똑똑하신 우리 눈꽃 공주님! 존경하는 우리 사부님께서 그댈 여기에 왜 보냈을까?”
“그거야 내 역할이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거니까. .... 무슨 뜻이야?”
“후후후! 이미 아는 것 같은데? 너도 아까 말했잖아? 사부는 우리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 죽는 걸 원한다고. 근데 거기에 너는 빠질 것 같니?”
“듣고 보니 그러네. 내가 사부라면 너처럼 하루 종일 찡얼대고 시끄럽게 하는 것들부터 제거하고 싶을 거야.”
“일초살수란 놈의 연락처를 알면 저년을 죽이라고 청부하고 싶어.”
대련회주와 태양장주가 거들고 나선다.
“뭐..뭐라고? 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니가 사부의 말씀을 전한다면, 우린 사부의 뜻을 따를 뿐이다. 안 그래?”
“물론이지. 이렇게 말이야.”
태양장주는 검을 뽑아든다. 뽑는가 싶더니 어느새 검이 전령사자의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세로로 지나간다.
쩌어어엉!
“크아아악!”
전령사자의 몸은 머리를 중심으로 좌우 둘로 갈라진다. 근데 몸은 두 겹으로 돼 있다. 한 겹은 인조로 만든 뚱뚱한 몸이고, 그 안에는 제법 아리따운 중년의 여인이 들어 있다.
“미안하다. 사실 사부는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널 안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개..개자식들. 내가 먼저 지옥에서 기다리마. 크크크크크....”
전령사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세 사람을 저주한다. 그들은 한 동안 말이 없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온 사매의 죽음에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어떡할 거야?”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태양장주다.
“우린 선택의 기로에 섰다. 사부에게 반기를 들든가. 아니면 그의 뜻대로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반기를 들긴 어렵고, 그럼 한 가지 밖에 없네.”
“그래. 우리 방식대로 하자. 만약 니들이 무림에서 은퇴한다면 그것까진 문제 삼지 않겠다. 아니면 목을 내놔야 한다.”
“그건 사형의 희망사항이요. 대련회가 아무리 강해도 이백 년을 준비한 태양장을 뛰어넘을 순 없소.”
“후후후! 나이가 많다고 싸움을 잘하는 건 아니지.”
세 사람은 어느 누구 하나 양보할 기미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피를 보는 수밖에. 피할 수 없다면 싸워야지. 방법을 정해라. 우리 셋의 싸움으로 끝내는 것, 아까처럼 전면전, 그도 아니면 대표자를 뽑아서 싸우는 것. 어느 것이든 난 좋다.”
대련회주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대표자들을 뽑아서 싸우는 건 패배자가 불복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안 되고, 우리가 싸우든지 아니면 전면전으로 갑시다.”
통일문주의 주장이다. 그에 태양장주도 동의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그 중에서도 난 전면전이 좋소.”
태양장주는 준비한 게 제법 많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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