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12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122
“소협!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글쎄, 무슨 날이오? 난 고아라서 부모님과 내 생일을 모르고, 아직 낭자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으니까 마찬가진데. 아! 그걸 몰랐네. 아마 북경시장에서 불꽃 축제가 열리게 오늘이죠?”
“호호호! 그런 게 있었군요. 차라리 그걸로 할 걸 그랬나?”
“그럼 다른 거라도 있소? 아무리 생각해도 낭자를 만난 거 외엔 특별한 게 없는 날인데...”
“그거예요. 전 소협을 만난 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나도 마찬가지요.”
“이렇게 좋은 날에 제 눈앞에서 사람들이 피 흘리는 건 싫어요. 저를 봐서라도 저분들을 돌려보내면 안 될까요?”
“.....?”
명수는 멍한 얼굴로 소화를 쳐다본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아니오. 앞으론 자주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쳐다봤소.”
“그거야 자주 오시면 되잖아요?”
“사실 사정이 좀 있다오. 일단 일을 마무리한 다음에 얘기를 합시다.”
명수는 장수들을 쳐다보더니 그들 사이로 움직인다.
퍽! 퍽! 퍽! ....
그는 장수들의 단전을 모두 파괴해버린다.
“조용히 사라져라. 한 번만 더 내 눈에 보이면 그땐 절대 봐주지 않는다.”
후다다다다닥!
명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수들은 고통을 참으면서 자리를 피한다.
“제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아니오. 나도 피는 좋아하지 않소. 근데 낭자를 보려면 여길 와야 하오?”
“아니에요. 낮에는 여기에 있지만, 이후엔 집에 있어요.”
“집?”
“예. 골목으로 돌아가시면 애육원(愛育園)이란 곳이 있어요. 거기에 오시면 절 만날 수가 있어요. 호호호! 제가 가볍게 보이죠?”
“아니오. 내가 아무 여자에게나 말을 거는 게 아니듯이 낭자도 아무 남자에게나 집을 가르쳐 주진 않을 거라 생각하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마워요.”
“근데 애육원이라면 고아원이 아니오?”
“맞아요. 전 거기서 동생들이랑 함께 살아요.”
“그럼 화랑은 고아원 운영에 필요한 경비 때문에 운영하는 거군요.”
“맞아요. 동생들이 많아서 일손이 많이 필요해요.”
“그건 걱정 마시오. 저기 놀고먹는 일꾼들이 많으니까.”
명수가 가리키는 곳엔 일초를 비롯한 사숙들과 대장과 꼬맹이의 모습도 보인다. 그녀가 가볍게 목례를 하자 일초와 형제들도 답례를 한다.
“사숙님들이 다들 멋진 분들이시군요. 저분들도 소협처럼 무술고순가 봐요.”
“나보다 조금 못하지만, 고수들인 건 분명하오.”
‘낭자! 그놈의 이빨은 우리보다 몇 수 위요. 하지만 무공은 우리가 조금 더 낫다오.’
일초가 전음을 보낸 것이다.
“어멋! 사숙께선 정말 고수인가 봐요. 저 먼 곳에서도 귀에 쏙 들어오게 말씀하시고.”
소화는 전음을 모를 정도로 무공에는 문외한이다.
“후후후!”
명수는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
“바쁜신가 봐요.”
“원래는 어딜 가는 중이었소.”
“아! 그럼 가보세요. 제가 소협의 발걸음을 막았군요. 죄송해요.”
“아니오. 그보다 이 얘긴 해야 할 것 같소.”
“아까 하시려던 말씀인가요?”
“그렇소. 솔직히 말하면 난 낭자를 계속 만나고 싶소. 낭자의 생각은 어떻소?”
“..... 저도 소협이 제 가까이 계셨으면 해요.”
여인으로선 하기 어려운 말이다. 사실 그녀가 집을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고관대작들의 청혼을 받았다. 황족들에게도 같은 제안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거절했고, 또 조부와 다툼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만큼 명수를 마음에 두고 있단 뜻이다.
“고맙소. 근데 한 가지 걸림돌이 있소.”
“예에? 그게 뭔데요?”
명수의 말에 소화는 상당히 놀란 눈치다.
“실은 우린 중원대장군부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소. 정확히 말하면 그대의 조부는 우리의 적이오.”
“으음!”
소화의 얼굴이 살짝 찌푸러진다. 하지만 금방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괜찮아요. 조금 전에도 보셨듯이 저야 말로 중원대장군부의 적이에요.”
“그런 게 아니오. 어쩌면 우리 손으로 조부를 해쳐야할 지도 모르오.”
“소협께선 제가 왜 집을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조부란 사람이 손녀를 죽이려드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소화는 슬픈 눈으로 명수를 쳐다본다.
“.....”
두 사람은 말없이 한 동안 서로를 쳐다본다.
‘수야! 아무래도 소화도 조부를 의심하는 모양이다.’
조충의 전음이다. 명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그 점은 우리도 확인하는 중이오. 만약 낭자가 의심하는 게 사실이라면 내 손으로 복수를 하고 싶소.”
“꼭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건 사실이에요. 제 눈으로 확인을 했으니까요.”
“확인이라면 뭘 말하는 거요? 낭자!”
명수는 소화의 얼굴을 확인하곤 화들짝 놀란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얼굴 전체가 눈물로 가득하다.
“죄..죄송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말을 하곤 소화는 화방 안으로 들어간다.
“쯧쯧, 어린 나이에 그걸 알고도 북경을 떠나지 못하다니...”
“복수할 기회를 찾으려는 거겠지.”
“근데 가짜 중원대장군은 왜 그녀를 살려뒀을까요?”
“주위 시선 때문이겠지.”
“하긴 위험한 것도 아닌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일초 형제들이 얘기를 나누는 중에 소화가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서찰을 명수에게 내민다.
“이게 뭐요?”
“읽어보세요. 아버님이 제게 남긴 유언이에요.”
“유언?”
“예. 집을 나오기 전에 발견했어요.”
“아! 그랬구려.”
그는 서찰을 펴 읽기 시작한다. 서찰에는 눈물 자국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아마 소화가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모양이다.
< 내 딸 소화는 보아라!
네가 이 글을 언제쯤 읽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영원히 읽지 못할 수도 있겠지. 분명한 건 네가 이 글을 읽을 땐 이 애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란 사실이다.
사랑하는 내딸 소화야!
너와 네 엄마가 없는 세상으로 나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렵고, 슬프구나. 하지만 이 아비는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 >
서찰의 내용은 상당히 길다. 소화의 부친은 구구절절 얘기를 적어놓았다. 중략하고 중요부분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 ....... 그때 아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직접 물어볼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상대는 절대 날 그냥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니 엄마랑 너까지 말이다. 해서 난 무려 다섯 번이나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확인 작업을 했다. 근데 다섯 번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중원대장군은 가짜였고, 네 할아버진 이미 오래 전에 놈들 손에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자를 살해할 계획도 여러 차례 세웠다. 하지만 실패는커녕 실행조차도 하지 못했다. 가짜는 인의 장막에 가려서 아들인 나도 개인적으론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황제폐하께 고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간단하지가 않았다. 동창과 금의위의 분위기도 예전과는 달랐고, 황족들도 날 만나기를 꺼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네 엄마와 너의 안전 문제였다. 난 만약을 대비해서 네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감정 조절 못해 실수라도 하면 놈들은 우리 가족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네 엄마와 너에겐 무책임한 행동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나로선 달리 방법이 없단다. ......
사랑하는 딸아!
절대 복수는 생각하면 안 된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면 그 즉시 북경을 떠나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피하거라. 다시 말하지만 복수는 절대로 꿈꾸면 안 된다. 그들은 황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서운 자들이다. 혹시 세월이 많이 흐른 뒤 기회가 된다면 이 못난 아비를 위해 한 가지만 해다오. 그건 네 조부의 시신을 찾는 일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아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그것도 잊기 바란다. 부디 아끼는 사내를 만나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못난 아비가. >
명수가 서찰을 읽는 동안 소화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린다. 구경꾼들은 영문도 모른 체 같이 슬퍼하며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명수는 다가가 그녀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길에서 결혼도 안 한 젊은 남녀가 끌어안는다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소화조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당신이 그 동안 혼자 흘렸을 눈물이 모두 내 잘못인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프오.”
“아니에요. 고마워요. 소협이 제 곁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걸요.”
“앞으로도 쭉 그랬으면 좋겠소.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 거요.”
“흑!”
그 말에 소화는 감동을 받았는지 명수의 품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든다.
‘수야!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아쉽더라도 오늘은 이 정도로 해야겠다.’
일초의 전음에 명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화를 품에서 떼어낸다. 그러자 소화도 금방 알아차린다.
“가시려고요?”
“미안하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소. 내일이라도 시간이 되면 오리다.”
“아..아니에요. 괜히 저 때문에 무리하진 마세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리다. 대신 부탁이 하나 있소.”
“제게 부탁을 요?”
“그렇소.”
“뭐든 말씀하세요. 기쁜 마음으로 들어드릴 게요.”
“다른 게 아니라 나도 다른 사람처럼 초상화를 하나 그려주시오.”
“호호호! 그거였어요? 안 그래도 감사의 인사로 그려드리려고 했어요.”
“고맙소. 오늘은 안 되겠고, 다음에 오면 부탁하오.”
“예. 대신 저도 부탁이 있어요?”
“말씀해 보시오.”
“그 그림을 제가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이유라도 있소?”
“제 그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 되겠지만, 그보단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소협이 제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요.”
“하하하! 그건 어려울 것 같소.”
“왜요?”
순간 소화의 표정이 굳어진다.
“나야 좋은데, 사숙들의 질투심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 것 같아서 말이오.”
“호호호호! 전 또 뭐라고. 괜히 걱정했잖아요?”
‘엉큼한 놈! 우릴 약 올리기로 작심했구나.’
‘너 조금 전에 한 약속을 잊었냐? 니가 자꾸 그렇게 나오면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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