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서서히 걷히고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어둠은 서서히 걷히고
“예의가 없으시네. 당신은 나와 싸우는 중이에요.”
어느새 호란이 그의 앞을 막고 있다.
“으음!”
‘뭔가 잘못되고 있다. 사부는 물론이고, 이놈들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지 않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일단 빠져나가야 한다.’
초일은 벌써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오히려 호란이 먼저 나선다.
“200년을 숨어 지내고도 아직도 부족한가요? 죽이진 않을 게요. 아마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받으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할 거예요.”
“뭔 개소리냐? 이야압!”
초일은 다시 선공을 펼친다. 그는 전력을 다해서 호란의 배를 노리고 들어간다. 야비하게 호란의 가장 큰 약점을 놀린 것이다.
“비겁한 놈! 그럴 바엔 차라리 죽어라!”
가짜 황제가 초일을 보며 악담을 한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초일은 호란의 배를 노리는 척하다가 그녀가 옆으로 피하자 그대로 달려서 도주한다.
“크아아악!”
다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분명히 초일은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근데 오십 장 정도 달려가던 그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것이다.
“갈 때 가더라도 싸움은 끝내야죠.”
어느새 호란은 그의 옆에 서 있다. 그런데도 초일은 꼼짝을 못한다. 사지의 혈도란 혈도는 모두 끊겼으며, 순식간에 전신의 주요 근육들이 대부분 녹아내리듯이 사라진다. 졸지에 큰 덩치가 홀쭉하게 변한다.
“진정 내년의 능력이냐?”
“그럼 누구의 능력일까요?”
“그럴 순 없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발전할 순 없다. 더구나 넌 머리를 다치지 않았느냐?”
“호호호! 당신의 발전 속도가 늦다고 남도 그럴 거라 생각하면 안 되죠.”
“주...죽일 거냐?”
“말하지 않았나요? 당신은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쉽게 죽을 수도 없다고. 그대로 저승사자를 만나면 바로 쫓겨날 거예요. 문전박대를 안 당하려면 그나마 죄의 일부라도 갚아야 할 거예요.”
“어떻게 할 작정이냐?”
“호호호! 당신은 아직 주제 파악을 못하는 군요. 소미야!”
호란이 부르자 품속에서 소미가 뛰쳐나와 초일의 품속으로 쏙 들어간다. 순간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으윽! 이..이게 뭐야? 우욱! 콜록! 콜록!”
소미는 화가 나면 몸에서 악취가 흘러나온다. 근데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으로선 도저히 견디기 힘든 그런 냄새다. 초일은 전신 혈도가 끊어지고, 근육이 사라져서 팔을 움직여 코를 막지 못한다. 냄새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울컥! 울컥! ....”
기침은 물론이고, 토하기까지 한다.
“그..그만 하시오. 제발! 차라리 죽이시오. 죽여!”
삶에 집착이 강한 그의 입에서 죽여 달라고 할 정도로 견디기 힘든 악취다.
“호호호! 당신은 그런 고통을 이백 년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했어요. 원한다면 혀를 깨물고 자결을 해도 좋아요. 그럴만한 용기라도 있다면 말이에요. 소미야, 수고해라!”
“야아아옹!”
소미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호란은 몸을 돌린다. 한편 무진은 가짜 황제를 향해서 시선을 옮긴다.
“이제 우리 차례인 것 같은데. 시간을 끌지 않았으면 하오.”
“미친 놈! 내가 왜 네놈이랑 싸워 힘을 빼?”
가짜 황제는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그러자 초일의 부하를 제압한 부하들이 일제히 달려와 무진과 호란을 둘러싼다.
“으하하하하! 난 그래도 제자보단 사부가 나은 가 했더니 그 나물이 그 밥이군. 약속은 밥 먹듯이 어기지. 겁은 많죠. 대체 당신이 무슨 능력과 자격으로 중원을 지배한단 말인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쳐라!”
가짜 황제는 바로 공격 명령을 내린다. 무진과 말을 해봤자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히 어떤 놈이 대형의 앞길을 막는단 말이냐?”
“네놈들이냐? 감히 우리 아가씨를 막아서는 게?”
두 명이 앞으로 나서자 그 뒤에 수많은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무인들은 가짜 황제의 패거리들을 포위하듯이 둘러싼다.
“크으으윽! 네..네놈들은 죽지 않았느냐?”
초일이다. 그는 선두의 두 사람을 알아본다. 그들은 바로 죽었다고 알려진 무당의 극양자와 청운장주 왕명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니들은 누구냐?”
가짜 황제는 영문을 몰라서 극양자와 왕명을 보며 소리친다.
“쯧쯧쯧, 니 눈에는 우리가 입은 옷들이 안 보이니? 이건 구파일방의 복장이고, 저건 사대세가의 옷이다. 좋다. 그건 모를 수 있다 치자. 그럼 저기 동창과 금의위, 그리고 동로군과 서로군의 옷도 모르니? 하긴 자기가 가짜니 다른 사람들도 사기꾼으로 보이겠지.”
“그리고 말이야. 상대 신분을 알려면 자기부터 밝히는 게 정상이 아닌가? 대체 네놈은 누구냐? 아! 참. 사기꾼이라고 했지? 어째 200년이 지나도 그 놈의 사기꾼 기질은 변하질 않냐?”
극양자와 왕명은 말발로 가짜를 농락한다. 두 사람은 죽음을 위장해서 천년회와 중원의 빛을 정비하는 한 편, 구파일방과 사대세가의 정예들을 모아서 지난 1 년 동안 극비리에 수련을 시켰다. 무진과 소개, 그리고 수련의 공동 작품이다.
“크크크크크! 건방진 새끼들! 저런 오합지졸들은 수만 명이 몰려 와도 상관없다. 철궁을 준비하고, 모조리 쓸어버려라!”
사기꾼 황제는 말로 해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는 바로 명령을 내린다. 근데 그들보다 극양자와 왕명이 먼저 움직인다.
“무림합벽진!”
왕명이 소리치자 오천 명에 가까운 무림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자연무예를 펼친다. 무인들의 중간 중간에 무진의 형제들이 보인다. 태허와 양극지, 그리고 일초와 조충은 물론이고, 대소쌍불과 적마대군, 그리고 진천왕부의 총관인 운고와 수련의 모습도 보인다. 심지어 관병들 앞에는 진천왕과 대양왕, 그리고 미홍과 만호도 있다. 뿐만 아니다. 천년회와 중원의 빛, 그리고 천마경극단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은 무림인과 관부, 그리고 관병들 사이에서 자연무예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천 명이 동시에 펼치는 자연무예!
무림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 무공도 그 정도 숫자가 합벽진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무림사상 단 한 번도 없는 일이다.
무림절대고수들도 배우기 어렵다는 자연무예를 무려 오천 명이 한꺼번에 펼치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때 가짜 황제 쪽에서 수천 발의 철궁이 날아온다.
슈아아아아앙! 쉬쉬쉬쉬쉿....!
엄청난 파공성과 함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철궁들이 무림인들을 파고든다. 근데 철궁들이 무인들의 몸속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날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구파일방과 사대세가가 중심이 된 무림인들의 힘은 엄청나다. 아직 자연무예에 대한 조예는 깊지 않지만, 무진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서 합벽진을 만들자 그 힘이 한 사람이 만든 자연무예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가진 자연의 기운을 만들어낸다. 제 아무리 강한 철궁이라고 해도 접근조차 할 수 없다.
특히 무서운 건 지금 이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황실과 무림을 포함한 중원지배라는 전무후무한 일을 획책하고 있는 세력과 자신들이 당당하게 맞서고 있단 생각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무림과 중원을 구한다는 생각에 실력을 십 할 이상 발휘하고 있다.
모든 것이 무진과 형제들의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일이 몇 몇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림인과 관부의 단합된 힘으로 이뤄지길 원한다. 그래야만 차후에도 이들은 중원인으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무림과 황실을 지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어떻게 된 거야? 철궁들이 어디로 갔지?”
“저..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 정도 양이면 십만 대군도 막아낼 수 있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말도 안 돼! 부러지거나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짜 황제 진영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일부는 벌써 눈치를 보며 꽁무니를 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전세가 기울어졌단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짜 황제는 무진도 신경 쓰는 초일을 간단히 제압한 인물이다.
“물러서지 마라. 놈들은 오합지졸이다. 개인의 능력은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 모두 나를 따라서 놈들을 제압하자!”
가짜 황제는 직접 나서서 부하들을 설득한다. 그게 먹혔는지 부하들은 다시 전열을 정비한다.
우우우우우웅웅....!
사기꾼이 나서자 부하들은 모두 그에게 기운을 몰아준다. 기운만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의 힘이 더 강한 것 같다. 그 힘을 바탕으로 가짜 황제는 무림인들을 공격한다. 그는 한 곳을 집중 공략한다. 선두의 극양자와 왕명을 처치하면 이긴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이미 두 사람도 예상한 일이다.
“지금이다. 기운을 받아들여라!”
“서로를 믿으면 승리할 수 있다!”
“중원의 무인들이여! 나를 버리면 중원의 정신을 되찾을 수 있다!”
“황제는 가짜다. 가짜를 몰아내고, 우리 힘으로 황실을 지키자.”
극양자와 왕명에 이어 진천왕까지 나서서 부하들을 독려한다. 그 소릴 듣고 무인들은 서로 손을 잡고 사기꾼이 날려 보낸 기운을 받아들인다. 보통은 이렇게 하면 무림인의 몸은 터져버린다. 하지만 지금 무인들의 몸은 텅텅 비어 있다. 자신들의 기운을 무진 형제들을 통해서 모두 내보냈기 때문이다.
충돌음도 들리지 않는다. 두 개의 기운이 부딪히는 데도 소리는커녕 오히려 조용하다.
“뭐..뭐야? 왜 이래?”
“자..자꾸 기운이 빠져나간다.”
“이...이게 무슨 현상이지? 나갔던 기운이 돌아오지 않는다!”
“폐..폐하 어떻게 좀 해보세요.”
“기..기운을 내보내지 마라. 막아라!”
사기꾼의 부하들은 기운을 회수하기 위해 발악을 한다. 하지만 한 번 기세가 꺾이자 막을 길이 없다. 계속해서 기운이 빠져나간다. 오히려 힘이 빠지면서 더 쉽게 빼앗기고 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저 많은 놈들이 모두 자연무예를 펼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가짜의 말대로 이들의 차이는 자연무예와 격체전공이다. 무인들은 모두 자연무예를 사용하지만, 사기꾼의 부하들은 그냥 격체전공으로 내력을 그에게 밀어준 것에 불과하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이렇게 기운을 받아들인 무인들은 무진 형제들의 가르침대로 몸속에서 십 회전을 시킨다. 이 과정에서 가짜 황제와 그 부하들의 기운 중에서 사기들은 모두 걸러내고 모두 일정하게 나눠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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