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95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95
“고..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흐흑!”
교희는 일초의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흘린다. 아마 그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부친의 정을 느낀 모양이다. 근데 마지막 열두 번째 명단을 보곤 화들짝 놀란다.
< 금의위 부통령 맹준 >
분명히 아는 이름이다. 그것도 아주 잘 아는 사내의 이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가 이런 장난을 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맹준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여인으로 봐주지 않았다.
해서 충격요법을 사용한 건데, 그걸 일초가 눈치를 채고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사실 맹준 역시 오랫동안 그녀를 봐왔기에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일초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것이다.
두 사람에겐 치명적인 고충이 있다. 바로 금희가 궁녀라는 것이다. 황후의 허락 없인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오라버니!”
교희는 일초와 맹준을 번갈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오라버니가 동의를 했나요?”
질문은 일초에게 하고 시선은 맹준에게 가 있다. 직접 대답을 하란 뜻이다.
“실은 내가 먼저 고백하고 싶었다. 그 동안 네 마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하구나.”
“아..아니에요. 제가 눈치가 없어서..... 전 오라버니가 절 생각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자! 자! 청춘사업들은 각자 알아서 하시고, 우린 이만 물러갑니다요.”
이 말을 끝으로 일초 일행은 모두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준아, 교희 문제는 황후께 허락을 받았으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다. 외로운 아이니까 잘 해줘야 한다.”
원래 황실의 궁녀는 모두 황제의 소유다. 그래서 단 한 번도 황제를 모시지 못한 교희도 엄밀한 의미에선 황제의 여인이다. 그래서 일초가 황후에게 부탁해서 결혼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가..감사합니다. 형님들의 뜻을 받들어 서로 의지하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수련도 열심히 하고요.”
“당연히 그래야지.”
“운이 형! 그냥 가면 어떡해? 일 년 만인데, 나랑 놀아줘야지. 소개 형!”
황세손은 그들이 문을 나서는 걸 보고 달려가려 한다. 하지만 움직이질 못한다. 가녀린 손가락이 그의 허리춤을 잡고 있어서다.
“어딜 가? 넌 나랑 놀아야지.”
“허억!”
미화의 손길에 황세손은 오히려 끌려간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보름 후, 개방의 북경 분타.
일초 형제들은 무진에게서 연락이 올 때까지 오직 수련에 열중하고 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무공 대결이 있는 날이다. 소개를 제외한 일초와 조충, 그리고 태민 사형제가 참가자이다.
이들의 대결 방법은 독특하다. 연무장에 각자 집을 한 채씩 짓는 걸로 승부를 낸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손을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 둘째, 도구도 사용할 수 없다. 셋째, 시간은 한 시진이다. 넷째, 심사는 모두 참여한다. 이렇게 해서 점수에 따라서 등수를 정하는 것이다.
꼴찌는 당연히 밥을 사야 한다. 술은 일등의 몫이다. 그런데도 기를 쓰며 일등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쓴다. 반 시진이 지나자 건물의 뼈대는 모두 만들어진다. 그것까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네 사람 모두 자연무예가 꽤 높은 수준이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후부턴 조금씩 차이가 난다. 건물의 세밀한 부분까지 만들려면 자연무예를 아주 정밀하게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 부분에선 아무래도 무림 선배인 일초와 조충이 앞선다. 물론 단순히 자연무예에 대한 조예만 깊은 게 아니다. 두 사람은 오랜 무림 경험으로 건물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동생들보다 높다. 그게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모든 부분에서 앞서는 건 아니다. 세련미나 건물 전체의 조화는 태민과 태운 사형제가 더 앞선다. 이건 아마 두 사람이 무당에서 체계적으로 교육 받은 덕분인 것 같다. 이렇게 한 시진 만에 네 사람은 모두 네 채의 통나무집을 완성한다.
겨울의 북풍한설을 견뎌야 하는 북경의 거지들에게 딱 어울리는 집이다. 그 때문일까? 완성된 집을 구경하기 위해 거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걸 보며 태운이 일초와 조충을 부른다.
“형님!”
“왜? 포기하려고?”
“하하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요즘은 결과가 형님들보다 우리가 우세하단 건 아시죠?”
“설마?”
“하하하! 잊어버리셨다면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난달엔 제가 1등을 했고요. 그 전달엔 사형이 1등을 먹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일초는 약간 짜증을 낸다. 그건 조충도 마찬가지다.
“야, 집짓기는 오늘로 끝이다. 다음 달엔 다른 걸 하자. 니들은 무당에서부터 이런 일을 많이 해봤겠지만, 우린 완전 생짜배기란 말이야.”
조충의 말대로 무당에선 모든 건물을 제자들이 직접 만든다. 그래서 태민 사형제도 여러 차례 이런 경험이 있다.
“후후, 목수가 연장을 나무라면 안 된다는 말 정도는 알고 계시죠? 그건 고수가 패배의 원인을 실력이 아닌 병기 탓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랍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 대결의 심판은 저 분들에게 맡기는 건 어떻습니까?”
“거지들에게?”
“예. 세상에서 저 분들보다 더 집에 대한 열망이 강한 분들이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쟤들이 들어가는 숫자로 승부를 가리자는 거냐?”
“그렇습니다.”
“난 좋다.”
“재밌을 것 같네.”
일초와 조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한다.
“대신 쟤들한테 설명은 내가 한다.”
일초가 말을 하면서 앞으로 나선다.
“좋습니다.”
태민이 동의하자 그는 거지들을 향해 말을 한다. 힘찬 목소리로.
“잘 들어라. 여기에 방금 완성한 네 채의 집이 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집에 들어가라. 그럼 분타주와 의논해서 지낼 수 있도록 해주마.”
“대협! 그게 정말입니까?”
“넌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본 적 있니?”
“아닙니다.”
“그럼 내가 지금 니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얻을 이익이라도 있니?”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내 말을 믿고 선택해라. 알겠지만 지금 우리 넷은 집을 지으면서 내기를 했다. 니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집을 지은 사람이 오늘의 승자다. 내 장담하건데 잘만 하면 목도 축일 수 있을 거다.”
“이야! 집도 생기고 술도 한 잔 걸치고. 대박이다. 대박!”
“좋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 일각을 주마. 그 동안 네 채를 모두 구경하고 결정하면 된다.”
이렇게 거지들은 통나무집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네 사람도 자신이 만든 집에 들어가서 거지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야! 정말 어렵다.”
“그래. 집들이 모두 너무 좋아서 결정을 못 내리겠어.”
“잔개야, 넌 정했니?”
“아니. 마누라를 정하라고 해도 이것보단 더 쉽겠다. 넌 어때?”
“난 처음엔 일초 대협의 집으로 정했는데, 막상 다 둘러보니깐 모르겠어. 모두 너무 잘 지었어. 목수들보다 더 정교한 것 같다.”
“당연하지. 지난 1년 동안 매달 집을 한 채씩 지었으니까.”
소개다.
“소방주님! 어서 오세요.”
“잘 오셨어요. 소방주님도 한 번 골라보세요.”
“싫어!”
“왜요?”
“난 골치 아픈 건 질색이야. 안 그래도 머리 아픈 게 한, 두 가지가 아닌데, 또 머리를 싸매야겠니?”
“하긴?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밥과 술이 생기는데.”
“하하하! 또 내기를 하셨소?”
“그래. 고생했다. 오늘은 니가 심판을 봐줘야겠다.”
조충이 소개를 반갑게 맞이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각자 선택한 집 앞에 한 줄로 서세요. 고민은 빨리 끝내시고, 다섯을 세겠습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소개가 다섯을 외치자 백 명이 넘는 거지들이 각자 선택한 집 앞으로 달려간다.
“자, 지금부턴 이동하시면 안 됩니다. 이동하는 사람은 무효가 됩니다. 자, 그럼 일초 형님의 집을 선택한 분들부터 세겠습니다. 다섯에, 열이고, 열다섯을 지나 스물하고도 다섯 명입니다. 다음은 충이 형님을 선택하신 분들입니다. ........ 마지막 운이 형의 집을 선택한 숫자는 스물하고도 여섯 명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의 승자는 스물여덟 명이 선택한 민이 형님이 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야! 한 표 차이야, 한 표.”
네 채의 집을 선택한 사람들을 순서대로 보면 태민은 스물여덟 명, 조충은 스물일곱 명, 태운은 스물여섯 명, 일초가 스물다섯 명이다. 모두 한 명씩 차이가 난다. 아슬아슬하게 결정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모두 너무 잘 지었어.”
“그래. 난 일초 대협의 집을 선택했는데도 아쉽진 않다.”
“사실 나도 태운 대협의 집을 선택했지만, 태민 대협의 집에 섰다가 옮겼거든.”
거지들은 모두 만족하는 눈치다.
“기분입니다. 오늘은 제가 거하게 한 잔 사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태민은 기분이 좋은지 중대발표를 한다. 백 명이 넘는 거지들을 배불리 먹이려면 꽤 많은 돈이 들 것이다. 구두쇠로 소문난 태민이 웬만해선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근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있다.
“민이 형님, 오늘은 힘들 것 같습니다.”
소개다.
“왜?”
“일이 터졌습니다.”
“기다리던 일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자세히 말해봐라.”
기다리던 일이란 말에 모두 긴장한다.
“방금 대양왕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대양왕부?”
“예, 미화가 실종됐다고 합니다.”
“미화라면 그 꼬마 아가씨 말이냐?”
“예.”
“이거 시끄럽게 생겼네.”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쯤 황세손의 등살에 여러 사람이 고생하고 있을 겁니다.”
태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마리의 전서구가 내려와 소개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황세손이 보낸 겁니다.”
“뭔 내용이냐?”
“미화를 못 찾으면 자기도 집을 나갈 거래요.”
“완전히 협박이군. 협박이야!”
“혼꾸멍을 내야겠다.”
“그 나이엔 다들 그렇지. 지 여자가 전부인 줄 알 때니까.”
“그럼 넌 지금은 미령이가 전부가 아니냐?”
“이 자식이 또 무슨 책을 잡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야?”
“방금 니가 그랬잖아? 어릴 땐....”
“아..알았다. 취소다. 취소!”
조충은 혹시라도 자기가 한 말이 미령의 귀에 들어갈까 봐 노심초사한다. 다행히 이번에는 소개가 그를 살려준다.
“대양왕부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막 개방의 제자가 달려와 서찰을 소개에게 건넨다.
“상황 설명이 있느냐?”
“어제 황세손을 만나고 와서 일찍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사라졌답니다.”
“황세손을 만나고 왔으니 가출은 아니고, 가지고 나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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