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7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72
“승패를 떠나 청성파는 당분간 재기가 쉽지 않겠군.”
“전 청성이 구룡단을 지지하는 것까진 좋다고 봐요. 하지만 일룡이 무림제패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때 막았어야죠.”
“쉽진 않았을 거요.”
“물론 일룡의 뜻을 거스르는 건 쉽지 않았겠죠. 희생자가 생길 수도 있고요. 하지만 멸문당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결국은 청성의 장문인을 비롯한 핵심 인물들의 문제라고 봐야겠지. 일룡의 능력이 워낙 뛰어난 데다 구룡이 다 나선다면 무림제패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을 테고.”
“어딜 가나 인간의 욕심이 문제군요.”
“우리도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하오.”
“정랑만 변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 믿어요.”
“하하하! 변하고 싶어도 당신 때문에 어려울 것 같소.”
“호호호! 제 뒤에는 또 막강한 언니들이 있잖아요?”
“아이고, 무서워라. 난 아예 시작도 안 할 생각이오.”
무진은 엄살을 떨며 청성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이동한다.
“여긴 완전히 복마전이군요.”
“그렇소. 무림에 존재하는 세력들은 다 모였구려.”
“대련회와 태양장, 통일문은 물론이고, 영웅맹과 무림맹도도 와 있네요.”
호란의 말대로 수많은 무림 고수들이 청성파의 구석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미 개방을 통해서 이 정보를 무림맹에도 알리라고 했소.”
“교훈을 주기 위해선가요?”
“그렇소. 사실 배신자의 말로를 보여주고 싶지만 그건 욕심이고, 무림의 잔인하고 승자 독식, 약육강식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소.”
“무림에서 약육강식은 변할 수 없는 원칙인가요?”
“무림인들이 강함을 추구하는 이상 그건 어쩔 수가 없을 거요. 다만 동물의 세계에서도 규칙이 있듯이 무림에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어떤 원칙인가요?”
“가장 중요한 건 신뢰의 문제요. 문파 간이든 개인 간이든 서로가 한 약속에 대해선 철저히 지켜야 하오. 그리고 두 번째는 배신에 대한 철저한 배척 정신이 필요하오. 그래야만 무림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소. 그리고 마지막으론 정.사를 막론하고 패거리 문화를 없애야 하오.”
“그럼 무림맹이나 사파연합과 같은 조직을 없애야 한다는 건가요?”
“난 그런 것이 무림을 병들게 한다고 생각하오. 정,사의 한쪽에서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반대편을 배척하면 그것이 무림을 황폐하게 만들고 끝임 없는 분쟁을 만들어 내는 거요. 완전한 평화는 어렵겠지만, 정,사간의 공존의 원칙은 지켜져야 하오. 안 그러면 인간과 동물의 세계를 구분하기 어려워질 거요.”
“으음!”
호란은 신음소리로 동의를 표한다.
“저 사람이 일룡인가요?”
“그렇소. 말이 일룡이지 나머지 팔룡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요.”
호란이 가리키는 곳은 청성파의 대연무장으로 소림사 대웅전을 열 채 이상 지을 수 있을 만큼의 큰 마당이다. 거기서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한 명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그 한 명이 바로 구룡의 최고 지도자인 일룡이다.
복면인들은 수십 명이 쓰러지는 동안 일룡의 옷자락도 건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복면인들의 무공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 대문파의 장로급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그런데도 일룡은 여유를 부리며 한 명씩 제거하고 있다.
삼룡과 사룡, 즉 임화와 왕개 역시 실력이 대단하다. 두 사람은 같이 복면인들을 상대하는 중인데, 그들에 의해 쓰러진 복면인들이 백 명이 넘어 보인다. 특히 임화의 암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일단의 복면인들과 싸우면서도 암기를 날려서 왕개를 공격하는 복면인들을 쓰러뜨리고 있다.
문제는 복면인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거의 천 명의 육박하는 인원이 청성파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이다. 다만 이런 와중에도 청성파의 제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일부 건물들은 벌써 불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임이 없는 거로 봐선 일룡이 피신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구룡단에서도 통일문의 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여러 문파에 전달되고, 소문이 파다했으니 모른다면 그게 이상하겠지.”
“청성파 사람들은 어딜 갔을까요?”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거요. 정말 다른 곳으로 피신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거나.”
“당신은 후자라고 생각하는 군요.”
“그렇소. 청성은 소림과 무당에 비해서는 세가 약하지만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문파요. 최근 구룡단의 힘을 등에 업고 세력을 많이 키웠을 거요. 그런데도 외부에는 그 힘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소. 그리고 구룡단은 아홉 명의 용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오. 내가 알기론 소속 무사들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르오. 그런데 한 명도 보이지 않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오.”
“하긴 일룡은 잘 모르지만 저 두 사람은 보통 능구렁이가 아니지요.”
호란은 처음부터 임화와 왕개를 지켜보고 있다.
“문제는 이번 일을 통일문이 계획했지만, 정작 그들은 극히 일부만 참여했고, 대부분이 영웅맹의 무사들이오.”
“으음! 결국은 구룡단과 영웅맹이 통일문의 무림말살작전에 희생양이 되는 셈이군요.”
“그러게 말이오. 우리도 그 정도는 쉽게 판단하는데 정작 무림을 일통하겠다는 자들이 그걸 모른다는 거요.”
무진은 일룡과 삼, 사룡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냥 두실 건가요?”
“나도 말리고 싶지만 지금 청성산엔 저들 말고도 엄청난 인원들이 몰려 있소.”
“저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호란이 가리키는 곳은 청성파의 뒤쪽에 있는 청성산의 정상이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렇소. 저들은 통일문이요. 그 외에도 우리 뒤편으로 저들보다 더 많은 숫자가 은폐해 있소.”
“대련회인가요?”
“그렇소.”
“통일문과 대련회가 참여했으니 태양장도 어딘가에 숨어 있겠군요.”
“수적으론 그들이 가장 많소.”
“그들은 여기서 승부를 걸 생각인가 봐요?”
“그건 두고 봐야겠지만, 태양장은 그 동안 꽁꽁 숨겨뒀던 핵심세력이 등장한 것 같소.”
“통일문이나 대련회는 어떤가요? 그들도 태양장처럼 핵심세력이 나타날까요?”
“태양장주가 나선다면 통일문의 문주와 대련회의 회주도 그냥 지켜보지만은 않을 거요.”
“으음! 완전히 산 너머 산이군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초일이란 자는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소. 그도 더 이상은 기다리기가 쉽진 않을 거요.”
“나이가 많아선 가요?”
“나이도 나이지만, 기다린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 그는 이미 이백 년을 더 기다렸소. 그가 사람인 이상 지금쯤은 승부를 걸고 싶을 거요. 거기에 희망을 걸어봅시다.”
“그래도 숨어버린다 면요.”
“찾아 나서야지. 그래서 수 년 동안 정보를 수집해 왔잖소?”
“성과가 있나 봐요.”
“현이와 민이가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중요한 정보를 얻어냈소. 그것만 확인되면 될 것 같소.”
“천년회와 ‘중원의 빛’을 비롯해서 그 동안 당신이 준비한 세력들이 모두 그 일을 준비하고 있군요.”
“그렇소. 그리고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잖소?”
“아! 그렇지요. 당신 말을 들으니까 길고 긴 지하 동굴도 벗어날 날이 멀지 않았군요.”
“아마 오늘이 중요한 변곡점이 될 거요.”
“그럼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가요?”
“공멸이요.”
“으음! 그게 가능할까요?”
“청성파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달려 있소.”
“저들도 청성파와 구룡단의 세력이 숨어 있단 걸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저들의 정보력이 뛰어나질 못하오. 그 동안 저들의 행동으로 봐선 청성파와 구룡단의 힘을 무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소.”
“그렇다면 해볼 만 하겠군요. 참! 구룡단으로 흡수된 ‘중원의 빛’은 어떻게 됐나요?”
“아마 지금쯤 모두 철수했을 거요.”
“아! 다행이네요.”
중원의 빛은 구룡단을 견제하기 위해 세력의 일부를 구룡단에 넘겼다. 당연히 구룡단은 중원의 빛 전체를 흡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원의 빛’은 그 동안 구룡단의 하부조직으로서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해왔다. 근데 그들이 조직을 떠났으니 이젠 정말로 구룡단은 일룡과 삼, 사룡만 남은 셈이다.
“드디어 시작됐소.”
무진의 말처럼 일룡과 삼, 사룡은 싸움을 중지하고 뒤로 물러난다.
“으하하하하! 구룡단이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손님이 오긴 처음이오. 비록 반가운 손님들은 아니지만 즐거운 시간이 되길 기원하겠소. 그럼 잔치를 시작하라!”
일룡이다. 그는 마치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즐거워한다. 그러자 삼룡과 사룡이 동시에 손을 품속에 집어넣더니 제법 커다란 주머니를 두 개씩 꺼내 공중으로 던진다.
파파파팟!
두 사람이 지법(指法)으로 주머니에 구멍을 내자 그 속에서 하얀 가루가 흘러나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밝은 대낮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얀가루는 급속도로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거대한 연무장에 구룡을 비롯한 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대부분 영웅맹과 그 지지세력이다.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하나, 둘씩 쓰러진다.
“독이군요. 아시는 건가요?”
“나도 처음 보는 거요. 구룡단이 오랜 전부터 준비한 모양이오.”
“대단하군요. 순식간에 천여 명 사람들이 중독됐어요.”
“독성보다는 전파력이 강한 놈을 선택했군.”
그랬다. 복면인들이 피는 토하지만, 운신을 못하는 건 아니다. 아마 죽이기보단 무력화시키는 게 주목적인 모양이다.
“누가 먼저 치고 나올까요?”
“우리 입장에선 청성파와 구룡단만 먼저 나오지 않으면 성공이오.”
“태양장은 마지막에 나올 테고, 통일문과 대련회가 나올 가능성이 높겠군요.”
“복면인들이 모두 통일문의 제자라면 그들을 살리기 위해 통일문에서 나서겠지만, 대부분이 적마교를 비롯한 영웅맹 소속이기 때문에 서두르진 않을 거요.”
“역시 정랑의 예상대로 진행되는 군요.”
무진부부가 있는 건물 뒤쪽에 숨어 있던 자들이 일제히 달려 나온다. 대련회의 무사들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단 칼에 베어버려라!”
오백 명이 넘는 백의인들이 복면인들 속으로 파고든다. 이런 걸 파죽지세라 할 것이다. 중독된 무사들은 어린 아이들보다 못하다. 백의인들은 달리는 속도 그대로 검을 휘두르며 지나간다.
순식간에 연무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천여 명의 복면인들 중에서 도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결국 천명 이상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대련회의 무사들은 대혼란에 빠진다.
“하늘이다!”
그들은 하늘을 보며 소리친다. 하늘에서 수천 발의 화살이 떨어진다.
쉬쉬쉬쉬쉿쉿....!
“크아악!”
“커어억!”
“내..내다리! 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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