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12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123
‘네가 우리를 막 대하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해라.’
‘열 명의 우군보다 한 명의 적이 더 무섭다는 말 알지? 우리가 꼬장을 부리는 순간 니들 관계는 박살난다. 그것만 명심해라.’
‘으음! 아..알았소. 내가 졌소.’
명수는 바로 백기를 든다. 그도 연인이 생기자 어쩔 수 없이 사숙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여차하면 방해꾼들 때문에 골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사례금이오.”
명수는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소화에게 건넨다. 주머니엔 금화가 가득 들어 있다.
“이..이건 너무 많아요.”
“부담스러우면 저놈들 것도 하나씩 그려주시오. 그대에겐 그냥 그림이지만 내겐 저 아이들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오. 세월이 지나 저놈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림을 보며 지난날의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을 거요. 그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가 없는 거라오. 만약 부담이 된다면 우리 사숙들의 초상화도 그려주시오. .....”
명수는 말을 하다 말고는 잠시 머뭇거린다.
“이거 정말 미안하오. 아직 이름도 모르는 구려. 인사가 늦었소. 난 명수라고 하오.”
“아! 예. 전 등소화라고 해요.”
“소화라 얼굴만큼이나 예쁜 이름이오.”
“고..고마워요.”
소화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그 사이 명수는 품속에서 또 다른 주머니를 꺼낸다.
“이건 사숙들의 사례금이오. 제가 자금 담당이라 대신해서 주는 거요.”
“아니에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니, 너무 차고 넘쳐요. 이 돈이면 집을 몇 채나 사고도 남아요. 아이, 대장원을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이렇게 생각합시다. 우리 사숙들이 질투는 심하지만,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오. 그래서 애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거라 생각하시오. 제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죠?”
명수는 고개를 돌려 사숙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당연하지. 낭자.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말하시오. 우리가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도와드리리다.”
“이젠 조카며느리나 마찬가진데, 사숙들이 그 정도는 해야지. 민아! 안 그러냐?”
“물론이죠. 근데 그 조카며느리란 말은 정말 듣기 좋네요.”
“하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소화낭자의 외모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명수, 너 정말 잘해야겠다.”
태운까지 거들고 나선다.
“명심할게요. 보시오. 우리 사숙들이 원래 저런 분들이오. 자, 받으시오.”
“그럼 감사히 받을 게요.”
소화는 두 손으로 공손히 주머니를 받는다. 사실 그녀는 최근 애육원의 운영비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다. 초상화 그리기나 그림을 팔아선 운영비의 반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은 집을 나올 때 가져온 돈과 패물로 간신히 버텼으나 이젠 한계에 왔다. 근데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 두 개를 받았으니 한 동안 돈 걱정 없이 꾸릴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한 잠자리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건물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이 또 올 수 있으니까 대장과 꼬맹이는 두고 가겠소.”
“그러다 다치면요?”
소화는 대장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무공을 익힌 중원대장군부의 장수들을 상대하긴 어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하하하! 걱정 마시오. 아까 그런 놈들은 천 명이 와도 대장 혼자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
“설마요?”
“꼬맹이도 그런 놈들은 여럿 상대할 수 있소. 설사 중원대장군부의 핵심인물들이 온다고 해도 괜찮을 거요. 대장이 이기기 어려운 고수들이 온다고 해도 소화낭자 한 명 정도는 충분히 피신시킬 수 있소.”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소협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믿을 게요.”
“고맙소. 그럼 이젠 정말 가봐야겠소.”
“또 오실 거죠?”
“사실 내 마음은 여기 계속 있고 싶소. 장담은 못하지만 꼭 다시 돌아오겠소. 초상화도 보고 싶고, 당신이 애육원에서 동생들과 지내는 모습은 꼭 보고 싶소. 노력하리다.”
명수는 소화의 손을 꼭 잡아주곤 몸을 돌린다.
“기다릴 게요.”
소화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첫 만남을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채 헤어진다.
중원대장군부.
자금성을 제외하곤 북경에서 제일 큰 건물이다. 승상부도 상당히 크지만 여기엔 군대가 주둔하기 때문에 규모가 일반 장원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건물 숫자만 해도 이백 채가 넘고 거주 인원은 만 명에 가깝다. 그러니 약간의 사병을 두고 있는 왕부들보다도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중원대장군부엔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붐빈다. 한밤중인 데도 경비인력들이 많아서 장원 주변은 환하다. 당연히 밤손님들은 아예 접근할 생각조차 못한다. 오죽하면 자금성의 성벽을 넘는 것보다 중원대장군부의 담벼락을 넘는 게 몇 배는 더 힘들단 말이 나올까?
그런데도 그 담벼락을 유유히 뛰어넘는 이들이 있다. 태민사형제이다. 두 사람은 사전 조사를 했는지 마치 자기 집을 드나들 듯이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들은 먼저 가장 크고 높은 건물에 올라가 주위를 살핀다.
“말이 장군부지 황실만큼이나 대단하군요.”
“그래서 중원대장군이 변심하면 황제도 바뀐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군인들이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네요.”
태운의 말대로 자정이 다 된 시간에도 건물마다 불이 밝혀져 있다.
“아닌 곳도 있네.”
태민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장군부의 북쪽 끝에 있는 건물로 유일하게 불이 꺼져 있다.
“창고가 아닐까요?”
“가보면 알겠지.”
두 사람은 3 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태민이 말한 건물로 달려간다. 상당히 넓은 곳인데도 지붕 위로 달리자 금방 도착한다.
“불빛을 막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맞은 편 건물의 지붕에 앉아서 주위를 살핀다.
“적어도 백 명은 되겠다.”
경비 무사들이 건물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단 말이다. 건물 안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 고수들입니다.”
“회의가 있나?”
“고작 회의 때문에 이렇게 경계를 할까요?”
“으음!”
“저긴 어디냐?”
“마방인 것 같습니다. 엄청나군요.”
“마방(馬房)?”
“예. 대장군부의 장수들이 타고 다니는 말들이 모두 저기에 있습니다.”
“엄청나네. 수천 마리는 되겠다.”
“그 정도는 돼야죠. 말을 탈 장수들만 해도 천 명이 훨씬 넘으니까요.”
“으음!”
“이게 무슨 소리지?”
두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는 지붕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으아앙! 아아악!”
분명히 신음소린데 고통스럽게 들리진 않는다. 오히려 목소리엔 희열이 담겨 있다.
“말이 돼?”
“글쎄요? 예전부터 군부에선 장수들의 욕구를 달래기 위해서 사창가의 여인들을 불러들인다는 말이 있긴 했습니다. 그런 걸 회정(回情)이라고 했습니다.”
“그건 전방에서나 있는 일이고, 여긴 북경 한 복판이고, 중원대장군부야. 어떻게 여기에 사창가의 여인들이 들어온단 말이냐?”
“일단 확인부터 하시죠?”
태운이 먼저 기와를 뜯어내고 밑으로 내려간다.
‘이..이런!’
두 사람은 내려가자마자 고개를 돌린다. 건물에는 모두 다섯 개의 방이 있고, 방 마다 남녀 한 쌍씩 들어가 있다. 당연히 모두 침대에서 뒹굴며 즐기는 중이다.
‘사창가에 저렇게 예쁜 여인들이 있단 말이야?’
‘전 그것보다 저렇게 예쁜 여인들이 이런 짓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두 사람의 말대로 침대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상당히 미인이다. 뿐만 아니라 제법 품위도 있어 보인다. 다만 나이는 들어 보인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거였군요.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하는 겁니다. 장수들은 노련한 여인들이라 만족할 테고요.”
‘자..잠시만!’
갑자기 태민의 전음소리가 커진다.
‘왜요?’
‘저길 봐.’
‘민망하게 뭘 봐요?’
‘잘 봐라. 이상하지 않니?’
‘뭐가요? 아니... 장수들이 왜 저러지?’
여인들은 소리만 낼 뿐,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요? 허엇!’
태운이 말하는 사이 다시 변화가 생긴다. 장수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더니 그대로 쓰러진다.
‘후후후! 재밌군요. 재밌어.’
‘무림에 저런 세력이 있단 소릴 들어봤니?’
‘매화회일까요?’
‘대형께서 당분간 모든 활동을 중지시켰다.’
매화회는 사창가의 전국 조직으로 월향이 회주이다.
‘으음! 다섯 명씩 세 번째라면 벌써 열다섯 명의 장수들이 저들에게 당했어요.’
여인들은 쓰러진 사내를 옷장 안에 넣는다. 근데 그 안에는 두 구의 시신이 더 들어 있다. 그래서 모두 열다섯 명이라고 하는 거다.
‘말도 안 돼. 중원대장군부에서 열다섯 명의 장수들이 죽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지금 주위엔 천라지망에 버금가는 경비망이 구축돼 있다. 근데 이런 일이....’
‘그 정도로 여인들이 치밀하고, 상당한 고수들이란 거죠.’
‘열다섯이나 사라졌으니 경비망도 상당히 약해졌을 거야.’
‘결국 여인들도 옆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른 거군요.’
‘우리로선 잘 된 일이지. 가자!’
태운의 말대로 여인들은 거침없이 옆 건물로 들어간다. 그들이 제거한 장수들이 바로 건물을 지키는 장수들인 모양이다.
‘우린 지붕으로 들어가자.’
여인들이 문을 통해 건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은 옆 건물로 이동해 지붕을 뚫고 밑으로 내려간다. 태민은 내려가기 직전 품속에서 주머니를 두 개 꺼내더니 마방을 향해서 하얀 가루를 뿌린다. 자연무예를 이용해서 바람까지 만들어 가루를 온전히 마방으로 날아가게 만든다. 태운은 태민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갔지?’
두 사람이 들어갔는데도 여인들이 보이질 않는다.
‘불빛을 모두 차단한 걸 보면 행사는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저깁니다.’
태운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리키며 직접 몸을 날린다.
‘자..잠깐!’
태민이 황급히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벌써 밑으로 내려가 계단에 도착해 있다.
‘우웃!’
그제야 태운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이렇게 강한 기운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다. 으음! 초일이 분명하다.’
‘운아!’
태운이 낌새를 차리자 태민이 소리친다. 근데 그의 말은 피하라는 게 아니다.
‘이미 늦었다. 절대 자연무예의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
‘그럼 그냥 체포당하란 말이오?’
‘초일이 있는 한 아무리 발악해도 피할 순 없다.’
‘으음! 알았소.’
그들은 그대로 계단을 내려간다.
‘지금부턴 전음도 사용하면 안 된다. 우린 무림에서 고수란 소릴 듣는 정도이고, 복수를 위해 중원대장군을 찾아온 거다. 이번이야 말로 우리의 연기 실력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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