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7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79
“그럼 나중에라도 양자로 삼았으면 됐을 거 아니요.”
“거기에 태사의 장난이 있었다는 거지. 갑자기 집안 어른들이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양자를 셋이나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거야. 그땐 이미 훈이가 양자가 된 뒤였거든.”
“으음! 그럼 태사가 왜 동생을 승상부로 보냈을까요?”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금백이가 승상부를 떠나기 직전에 나와 아버님께 한 통의 서찰이 전해졌어. 내용은 간단했다. 금백이가 내 친동생이란 거야. 서찰엔 그 증거들이 몇 가지 나열돼 있었고, 확인 결과 모두 사실이었다.”
“뭔가 냄새가 나네. 내가 태사였다면 그걸 증거로 승상도 역모죄로 엮었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러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 사건은 이미 음모였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에 써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럼 태사의 의도가 뭐였을까요?”
“그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진호에게 승상부에 대한 원한을 가지게 해서 그의 손으로 승상부를 무너뜨릴 계획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잘됐네요. 우리가 그걸 역이용하는 겁니다.”
“어떻게?”
“동생에게 태사의 음모를 밝혀 이번 일에 참여시키는 겁니다.”
“.....”
진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동생에게도 집안의 비밀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다. 민이 생각대로 하자.”
“그럼 계획을 약간 바꿔서 월향이와 총관, 두 사람을 통해서 태사원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태민이 계획을 수정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주루의 지붕에선 두 명의 복면인이 이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다. 이곳 황학루는 주루와 객잔의 건물이 따로 있다. 주루는 2층 건물로 객잔과 붙어 있다.
“대체 뭐라는 거야?”
“글쎄요? 한 마디도 안 들립니다. 주루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 게 아닐까요?”
“니 눈엔 저게 사람들이 꽉 찬 거로 보이냐?”
주루엔 방금 금백이 다녀가면서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그보단 진수 일행이 모두 전음을 사용했기에 들리지 않은 것이다.
“그럼 총관께는 뭐라고 보고 드리지?”
“그냥 술을 진탕 마셨다고 말씀드리죠 뭐.”
“그게 좋겠다. 가자!”
이렇게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그날 밤, 태사원.
태사의 집무실은 침묵에 잠겨 있다. 그는 오늘 월향이와 영웅루에서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그런데 그의 집무실은 불이 밝혀져 있다. 지금 상황에서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후후! 재밌군. 재밌어.”
책상 위에는 수십 개의 서찰 꾸러미가 펼쳐져 있다. 금백은 마지막 꾸러미를 확인 중이다. 꾸러미는 오래 전에 태사가 승상부에 침투시킨 간세들이 보내온 것들이다.
< 금백이 무사히 승상부로 들어갔음. 승상은 물론 진수조차 금백을 못 알아봄. >
< 승상은 금백을 두 번째 양아들로 삼을 생각임. 진수와 훈이도 동의를 했음. >
< 일주일 뒤 집안 잔치를 벌여 거기서 금백을 양아들로 받아들인다고 발표할 예정임. >
< 변수가 발생했음. 황제의 칙령으로 진수, 금백의 조부와 관련된 역모사건이 음모였다고 발표함. 대책이 시급함. >
< 지시하신 대로 집안 어른들을 이용해서 양자 선언을 무산시켰음. 향후 계획을 지시바람. >
< 최근 금백이 진수와 훈이, 그리고 승상과 계속해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음. >
< 금백이 승상부를 떠날 결심을 했음. 지시하신 대로 태사원의 조건을 제시했음. >
< 금백이 조건을 받아들임. 내일 승상부를 떠날 예정임. >
< 오늘 새벽 승상부를 떠났음. 지금 상태라면 당장이라도 승상과 두 아들을 살해할 기세임. 금백을 이용한 승상부의 몰락은 성공 가능성이 높음. >
“크크크크, 그랬단 말이지. 날 철저히 이용할 계획이었군.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서찰을 모두 읽은 금백의 눈이 붉게 물든다. 회한과 미안함, 그리고 후회와 분노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그는 자리에 일어나 서찰 꾸러미들을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는다.
“원래 배신은 새로운 배신을 낳는다고 했다.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지 보여주마.”
그는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며 밖으로 나선다. 근데 그가 사라지자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
“역시 태사님의 예상대로다. 한 번 배신한 놈은 또 배신하는 법이지.”
그는 서찰을 한 장 쓰더니 전서구의 다리에 매달아 날려 보낸다. 전서구가 영웅루 방향으로 날아가자 그는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그냥 두실 겁니까?”
태민의 목소리다.
“민아.”
“예. 형님!”
“이런 일일수록 확실하게 해야 한다. 감정에 휩싸이면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태사가 어떤 수를 가지고 있는지 우린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가 나타난 것도 의심하고 있을 거야. 끝까지 기다려 보자.”
“알겠습니다. 근데 형님은 갈수록 대형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예, 제가 봐도 그래요. 어떤 땐 착각할 때도 있어요.”
곤일이 거들고 나선다. 근데 태운의 생각은 다르다.
“전 생각이 조금 달라요. 대형은 초일이란 절친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어요. 근데 진수 형은 처음부터 그렇게 타고 난 거예요. 흠! 얘길 하는 데 왜 이렇게 슬프지? 흐음!”
태운은 얘기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운아!”
“운이 형! 왜 그래?”
태민과 곤일은 황급히 다가가 그의 손을 잡는다. 근데 태운은 두 사람의 품에서 빠져나와 진수를 안아준다. 진수의 눈에서도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형님!”
“진수 형!”
태민과 곤일도 같이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난 말이야. 진수 형을 보면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애. 그래서 눈물이 나나 봐.”
태운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한다.
“그래선지 진호라는 그 분의 마음도 이해가 돼. 그분에게서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 같이 느껴져. 그래서 슬픈가 봐.”
이렇게 진수와 형제들은 주인 없는 집무실에서 한 동안 같이 눈물을 흘리며 형제애와 동료애를 동시에 느낀다.
한편 이곳은 영웅루.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방이다. 지금 이곳엔 일반 가정집의 방보다 더 큰 침대 위에서 두 남녀가 뒤엉켜 있다.
“헉! 헉! 헉! 너..너무해요. 벌써 여섯 번째예요. 오늘 따라 왜 이러세요?”
“뭐가?”
“절 이렇게 괴롭히면 며칠 동안 꼼짝을 못한단 말이에요.”
“후후후, 너야 말로 왜 이래? 난 아직 반도 안 끝났어. 이제 겨우 기분이 나기 시작했단 말이야.”
이들은 바로 태사와 월향이다. 두 사람은 초저녁에 시작해서 새벽이 되도록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다.
“마..말도 안 돼. 남들은 관 속에 들어갈 나인데, 뭘 잡수셨기에 이렇게 팔팔한 거예요?”
“그래서 싫다는 거냐?”
“호호호! 그럴 리가 있나요? 저야 복 받은 거죠.”
“모두 니 덕분이다.”
“제가 뭘 했다고요?”
“니가 날 질투의 화신으로 만들었잖아?”
“제가 요? 호호호! 그럼 나리가 기운이 떨어질 때면 가끔 사고를 쳐야겠네요.”
“그것도 괜찮겠다. 근데 그러다 세상의 모든 사내놈이 다 죽어버리면 어쩌누?”
“그야 나리께서 책임지시면 되죠.”
“하긴 넌 내가 싫다고 할 때까진 오직 나만 보고 살아야 할 테지.”
“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그럴싸한 놈이었는데. 아깝네요.”
“어떡하지?”
“왜요, 뭐가 잘못됐어요?”
“보고에 의하면 그놈이 아직 살아 있다네.”
“예에?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총관이 그런 실수도 다 하고.”
“아무리 그렇기로 형을 죽일 순 없잖아?”
“그 자가 총관의 형이에요?”
“그 놈이 아니라 그놈의 의형이 금백이의 형이래. 말이 좀 이상한가?”
“결국은 같은 말이죠.”
“아무튼 그래서 좀 더 재미난 걸 준비했다.”
“어떤 거죠? 나리가 준비한 거면 특이하겠죠?”
“궁금하니?”
“예. 저도 보고 싶어요. 꼭!”
“니가 하는 걸 봐서.... 허억!”
갑자기 태사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월향의 허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거라면 자신 있죠. 어멋!”
태사도 만만찮다. 그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몸을 날리더니 창가로 간다. 거기에서 월향이 머리를 바깥으로 내민 채로 두 사람의 행위는 계속된다.
이렇게 영웅루에선 아침이 되도록 이상야릇한 소리가 울러 퍼졌다. 그런데도 단 한 사람도 불평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정오.
태사원의 대전 앞에는 네 사람이 쓰러져 있다. 진수와 형제들은 초겨울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눈을 뜬다.
“으잉? 햇살이 왜 이렇게 강하지? 일아!”
진수는 햇살이 눈부셔 눈을 감은 채 곤일을 부른다. 둘이 한 방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이고 머리야. 술도 안 먹었는데 머리가 왜 아프지? 허억! 혀..형님! 여기가 어딥니까?”
곤일은 뒤늦게 눈을 뜨곤 기겁한다. 분명히 객실의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아무리 살펴도 방은 아니다. 이들은 새벽에 미혼약 가루를 마신 뒤 여기로 끌려 왔다.
“민이, 운이 형님!”
태민 사형제는 아직 잠을 깨지도 않았다.
“금백아!”
진수는 햇살 사이로 금백의 모습을 확인한다.
“후후후, 잘 주무셨소? 침대가 형님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소만.”
“그러냐? 아버지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지? 사람은 맨땅에서 잠을 자 봐야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다고. 나도 이제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됐구나.”
“축하한다. 니 애비도 곧 널 뒤따르게 될 게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그 유명한 천진의 오입쟁이님이 아니십니까? 낮거리를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진수는 놀라기는커녕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비아냥거린다.
“저 인간이 바로 여기서 제왕놀이 한다는 그 자야?”
“그런가 봐요. 생긴 것부터가 영락없이 기생오라비네.”
“야, 그건 기생오라비들을 모욕하는 거야. 저렇게 늙은 기생오라비가 어딨어? 권력과 돈을 한 손에 쥐고 있으니까 계집들이 따를 뿐이지. 저러다가 졸지에 거지 돼 봐라. 육십 넘은 할망구들도 거들떠보나.”
태운의 말에. 장내는 긴장감이 돈다. 이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 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수 형제의 악담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꼴에 영웅호색한이란 말은 들어본 모양이지? 저기 봐. 집무시간에 진천 제일의 걸레라고 소문난 년까지 대동하고 말이야.”
“저 년은 어제 일이에게 꼬리치던 그 요물이잖아요?”
“그래. 요조숙녀처럼 수줍은 척하며 일이에게 달라붙던 그 년이지.”
태민 사형제는 월향이까지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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