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12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128
“네..네놈들은 누구냐?”
“후후후, 우리가 누구냐고? 그거야 곧 알게 되겠지. 운아!”
“예. 형님!”
“이 새끼 이거 바지 좀 입혀라. 번데기만한 걸 가지고 뭐냐 이게?”
“크크크! 알겠습니다.”
태운이 직접 약수의 바지를 입힌다.
“워..원하는 게 뭐냐?”
“말하기에 앞서 말버릇부터 좀 고쳐야겠다. 충아!”
이번에는 조충을 부른다.
“그런 거라면 내 전공이지. 앞으론 걸어 다닐 일도 없을 텐데, 다리 한 쪽은 없어도 되겠지?”
“아..아! 왜 이러세요? 아...안돼요. 제발! 끄아아아악...!”
조충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왼쪽다리를 무릎에서부터 뽑아버린다.
파팟!
피가 흐르기도 전에 혈도가 제압된다.
“내..내 다리! 으아아악!”
약수의 비명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자, 그럼 이제 대화가 되려나? 준비 됐어?”
일초는 전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한다. 그게 더 간담을 써늘하게 만든다.
“예. 예! 무엇이든 다 대답하겠습니다. 크으으윽!”
약수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는다.
“좋아. 그 정도면 시작은 할 수 있겠네. 자, 그럼 기억을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볼까? 5년은 조금 넘었을 것 같은데. 진짜 중원대장군 말이야. 그분도 니가 묻었지?”
일초는 우회하지 않고 직진한다.
“예에? 그..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약수는 놀란 나머지 남은 눈이 찢어질 듯 커진다.
“후후후, 니들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 줄 알았어?”
“그..그걸 어떻게....?”
“자..잠시만 요?”
일미가 놀란 나머지 끼어든다.
“중원대장군이 가짜란 말씀인가요?”
“그렇소.”
“어..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그러게 말이오. 이분은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시는 분이오. 정말 대단하지 않소?”
“이런 개자식을 그냥?”
차앙!
일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연검을 꺼내더니 약수를 죽이려 한다.
따앙!
일초는 가볍게 손등으로 검을 쳐낸 뒤 웃는다.
“그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일단 내 일부터 좀 끝냅시다.”
“어머! 죄..죄송해요. 제가 흥분해서 그만.”
“아니오. 사실 그게 정상적인 거요. 그럼 다시 실례를 좀 하겠소.”
“예. 죄송해요.”
일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협상은 없다. 만약 그 분을 버린 곳을 말하면 우린 그냥 물러난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오리발을 내밀면 그땐.... 흠! 각오해라.”
사실 일초는 이미 약수의 마음을 읽은 상태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취조하는 것이다.
“죄..죄송합니다.”
약수도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에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뜻이냐? 모른다는 거냐? 아니면 아예 시신을 남기지도 않았다는 거냐? 서...설마 그 분도 저 아이들이 빠졌던 곳에 던졌니?”
태민 사형제가 빠졌던 곳은 며칠 전 중원대장군부를 물에 잠기게 했던 그 지하 동굴을 말한다.
“그..그건 아닙니다.”
“그럼?”
“수..수장을 시켰습니다.”
“수장! 이 미친 새끼를 봤나? 혹시 산 채로 물에 던진 건 아니고?”
“.....”
일초가 알고 묻는 말이라 부인을 못한다.
“좋다.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그게 어디냐?”
“처..청수라는 마..마을입니다.”
약수는 이젠 오한이 든 것처럼 전신을 떤다.
“청수(淸水)라면 녹림지(綠林池)가 있는 곳이 아니냐?”
녹림지는 북경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제법 큰 호수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약 만 명의 어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그렇습니다. 으으으으...! 노..녹림지 한..가운데에 더..던졌..습니..다.”
홱! 일초는 밀실 내에 찬바람을 일으키며 냉정하게 몸을 돌린다. 분위기만 봐도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알 수 있다.
“앞장서라!”
그는 대게에게 한 마디를 하곤 발걸음을 옮긴다. 그때 약수의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잠시만 요.”
그런데도 일초는 대꾸도 하지 않고 나가버린다.
“제..제발 한 가지만... 한 가지만 대..대답해주..십시오.”
이번에는 조충을 향해서 간절하게 말한다.
“한심한 놈. 중원제일의 장수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 짓거리를 한단 말이냐?”
“저...전 죽어도 좋습니다. 제..제발 하..한 가지만....”
“그래. 궁금한 게 뭐냐?”
“제..제 아들이 저..정말... 가..가짜 이..입니까?”
“쯧쯧쯧, 불쌍한 놈. 그렇게 자신이 없냐? 우린 니 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머저리 같은 놈! 가자!”
“예. 형님!”
“으하하하하! 그럼 됐습니다. 됐어! 아들들아, 저..정말 미안하구나. 이 아비를 용서하지 마라. 크으윽!”
약수는 결국 혀를 깨문다. 밀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저희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엔 정신없이 헤어져 누님들을 다시는 못 뵙는 줄 알았습니다.”
태민 사형제도 인사를 한다.
“우리야 여기로 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데, 동생들은 어디로 연락하면 되죠?”
“매화회의 회주님을 찾아서 저희 말씀을 하시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이렇게 헤어지지만, 다음엔 누님으로 깍듯이 모시겠습니다.”
일미의 물음에 태민사형제는 정중하게 인사한다.
“월향이를 아세요?”
“예, 약간의 인연이 있습니다. 매화회와는 경쟁관계라고 하던데 그렇지 않은가요?”
“그 아이가 우릴 언니라고 부르죠.”
“아! 그렇군요.”
“호호호! 아쉽지만 다시 만날 방법이 있으니 어서 가보세요. 다음엔 꼭 누나라고 불러야 해요. 알았죠?”
“예. 당연히 그래야죠. 그럼 또 뵙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동생으로서 드리는 겁니다. 가까운 곳에 작은 장원이라도 마련하세요.”
태운은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곤 나가버린다.
“이걸로 장원을 구하라고? 어멋! 큰 언니, 금덩이에요.”
“금덩이?”
“예. 이 돈이면 커다란 장원도 살 수 있어요.”
금덩이가 하나가 아니라 열 개 정도가 들어 있다.
“이렇게 큰돈을 왜?”
“우리가 이런 곳에서 지내는 게 부담이 됐겠죠.”
“고맙긴 한데, 과연 저들은 누굴까?”
“월향이를 만나서 물어볼까요?”
“걔는 지금 어딨니?”
“최근까지 개봉에 있다가 어제 북경으로 들어왔단 얘길 들었어요.”
“자리를 마련해봐라.”
“예.”
“우리도 이제 이 생활을 청산할 때가 된 것 같다.”
“아! 하긴 복수도 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윤 없죠.”
“언니도 남동생들이 생기니까 마음이 약해지는 모양이에요.”
“너희도 그러니?”
“예. 이젠 여한이 없어요.”
“앞으론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잘 됐다. 그럼 우리도 동생들 하는 일이나 도우면서 살자구나.”
“전 좋아요.”
“저도요.”
“난 대찬성이에요.”
“호호호호!”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복수의 길을 걷던 여인들의 입에서 행복에 겨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녹림지(綠林池).
호수 주위로 숲이 울창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수도 동정호만큼은 아니지만 1/3 정도이니 상당히 크다고 봐야 한다. 호수에는 고기들이 많아서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고기잡이가 잘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어부들이 많아서 인구 만 명이 넘는 큰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마을이 바로 청수(淸水)이다.
여기서 일초 형제와 명수, 그리고 중원대장군 등력군의 손녀인 등소화는 벌써 일주일째 호수를 뒤지고 있다. 중원대장군부의 총관인 약수의 말에 의하면 대장군을 산채로 호수의 중앙에 빠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일초 일행은 오늘도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수색 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일초 사숙, 호수가 워낙 넓어서 채 1할도 수색을 못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할 작업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거야 그렇지만 소화 낭자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어디 계신지 알고 나니까 마음이 더 급해지네요. 괜히 죄 짓는 것 같기도 하고....”
소화는 삼, 사 일 정도까지는 굉장히 표정이 밝았다. 근데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얼굴색도 어둡게 변해가고 있다.
“소화야!”
갑자기 태민이 소화를 부른다.
“예, 사숙!”
이들은 그 동안 많이 가까워졌다. 그래서 호칭도 명수와 같이 쓰고 있다.
“혹시 조부님의 초상화나, 과거 쓰시던 물품을 구할 수 있니?”
“초상화는 제가 가지고 있고, 물품은 특별히 가진 게 없는데.... 아! 하나 있어요. 이거예요.”
소화는 품속에서 길쭉한 상자를 하나 꺼낸다.
“으음! 곰방대로구나.”
“예. 조부님은 평소 담배를 즐겨 피우셨어요. 그래서 이번에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제가 가져왔어요.”
“오랫동안 사용하셨구나.”
태민은 곰방대를 직접 확인해본다.
“평생을 그것만 사용하셨다고 들었어요. 근데 유품은 왜요?”
“별거 아니다. 혹시나 해서 한 번 확인해보려고. 수야!”
“예, 민이 사숙!”
“이걸 대장과 꼬맹이에게 숙지시키면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거지?”
“당근이죠. 수백 리 밖의 사람도 찾을 수 있어요.”
“그럼 시험 삼아 한 번 해보자.”
“민이 사숙! 설마 조부님이 살아 계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런다.”
“사숙! 뭐가 그렇게 걸린단 말입니까?”
“우선 약수가 산채로 빠뜨렸다는 게 마음에 걸리고...”
“하지만 조부님은 중독을 당했고, 또 기절한 상태였다고도 했습니다.”
“그랬지. 하지만 대장군은 한때 수로대장군도 역임하실 정도로 수공이 뛰어나셨던 분이다. 게다가.....”
“그것 말고도 또 있나요?”
“그래. 사실 그것 때문에 마음에 걸려서 그런다.”
“사숙! 뭐예요? 빨리 말씀해 주세요.”
소화는 마음이 급한지 태민을 채근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녹림지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수영초(水英草)!”
조충이 대신 말한다.
“그렇습니다. 녹림지에는 수영초가 광범위하게 서식하고 있습니다.”
“사숙! 수영초가 뭐예요?”
“간단히 설명하면 일종의 해독약이다.”
“강력하진 않다. 하지만 만약 대장군께서 수공에 강해 물속에서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다면 충분히 해독이 가능하다.”
태민에 이어 조충이 보충 설명을 한다.
“수야! 어서 해봐. 어서!”
갑자기 소화의 마음이 급해진다.
“어! 알았어. 대장! 꼬맹아! 이리 와봐. 니들도 들었겠지만, 지금 우린 상당히 급하다. 이 곰방대의 주인을 찾아야 된다. 일단 이곳 청수부터 시작하자.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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