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6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62
‘총관과 아는 사이였나?’
‘총관의 이름이 무엇이냐?’
‘금진입니다.’
‘그랬군.’
무진과 조충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태허는 곧바로 총관의 앞자리에 앉는다. 태허는 이름이 여러 가지다. 태허, 방극지, 금문, 무불통지 등등이다. 여기서 본명은 금문이다.
“진이가 증조부님을 뵙습니다.”
예상대로 금진이 태허의 증손자였다.
“그래. 그 동안 잘 지냈느냐?”
“예. 소훈이는 어쩌시고 혼자 다니십니까?”
“앞으론 자주 보기 힘들게다.”
“왜요?”
“진정한 사부를 만났으니 당분간은 수련에 전념할 거야.”
“진정한 사부라뇨? 조부님이 사부가 아니었습니까?”
“그놈은 내가 가르치기엔 그릇이 너무 크다.”
“그럼 조부님보다 더 뛰어난 고수에게 훈이를 맡겼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그 분에 비하면 말 그대로 조족지혈이지.”
“예에? 무림에 그런 분이 있단 말은 금시초문입니다.”
“너도 곧 뵙게 될 게다. 그보다 서찰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저도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선택이라면 태양장과 통일문, 그리고 대련회 중 한 쪽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거겠지?”
“안 그러면 제 꿈을 포기해야 할 상황입니다.”
“네 꿈이라면 승상을 말하는 거냐?”
“예.”
“승상이 돼서 뭐하게?”
태허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손자의 꿈이 탐탐치 않은 모양이다.
‘전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으음!’
고개를 끄덕이는 태허의 표정이 어둡다. 아무래도 손주가 말하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먼저 전 황실을 장악할 겁니다.’
‘어떻게?’
‘조부님도 잘 아시겠지만 황실에는 크게 세 개의 축이 있습니다. 승상부와 중원대장군부, 그리고 동창과 금의위입니다. 황족들도 있지만 그들은 평상시에는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진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승상이 된다면 나머지 두 세력도 장악할 자신이 있습니다.’
‘네 무공 실력을 믿고 하는 말이냐?’
‘뿐만 아니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총관들의 모임을 말하는 거니?’
총관들의 모임은 중원 각 성(省)의 총관들의 모임을 말한다.
‘알고 계셨습니까?’
‘나만 알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포장을 잘 할 자신은 있습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계속 들어보자.’
‘예. 제가 황실을 장악하면 딱 한 가지만 하고 싶습니다.’
‘그게 뭐냐?’
‘신분제를 철폐할 것입니다.’
“뭐라고!!”
태허는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른다. 순간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껄껄껄! 너 지금 이 할애비를 놀리는 거냐?”
태허는 웃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게 바로 제 꿈입니다.’
‘허허허! 네놈이 언젠가 사고를 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조언이라면... 놈들과 손잡지 않고선 네 꿈을 이룰 길이 없느냐?’
‘꼭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전 호호백발이 돼서야 승상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또 만끽하고 싶습니다.’
‘넌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조부님은 알고 계십니까?’
‘200여 년 전 고금제일인자를 암살하고 지금까지 천하를 지배해온 인물이다.’
‘예에? 조부님이야 말로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내가 농을 하는 것 같니?’
‘그건 아니지만 고금제일인자를 암살했다는 건 그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보다 어떻게 사람이 200년 이상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보다 더 황당한 얘기를 해줄까?’
‘그런 것도 있나요?’
‘고금제일인께서 살아계신다.’
“예에?”
이번에는 금진이 소리를 지른다.
“하하하! 그건 저더러 올해 안으로 장가가란 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거야 나중에 그 분을 뵙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그럼 혹시 훈이 사부가 바로 그분입니까?’
‘그래. 그 분이라면 네 문제도 충분히 해답을 제시하실 수 있을 텐데....’
‘영감탱이! 제자에 이어서 손자까지 나한테 떠넘기려는 거냐?’
‘허억!’
‘허걱!’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차마 말을 못해 소리를 지르진 않는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쳐다보진 않는다.
“이..이런!”
그제야 태허는 무진을 확인한다.
‘오지 마라. 그보다 오랜만에 절강성부를 구경하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후, 태허와 증손자가 먼저 나가고, 무진 일행도 뒤따라 주루를 나선다.
그 날 저녁.
절강성부의 총관 집무실엔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놈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개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선택은 니가 해라.”
“그들을 제거한다고요?”
“자신이 없나 보구나.”
“이건 자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
“그럴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럼 넌 승상이 된 뒤에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냐?”
“그..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증조부님!”
무진의 말에 금진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난 입도 벙긋 안 했다.”
“그런데 어떻게..... 설마 남의 전음을 들을 수 있단 말입니까?”
“글쎄? 그건 니가 알아서 판단하고, 자신은 할 수 있다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뭐냐?”
“으음!”
금진은 무진의 질문에 답을 못한다.
“넌 황실을 장악한 뒤 계급을 철폐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이냐?”
“예에? 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니? 혁명이다. 혁명!”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기득권 세력들을 처단하고, 평등 세상을 만들려는 거지.”
“예.”
“좋은 생각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지. 근데 말이다. 그런 다음엔 누가 권력을 가져야 할까?”
“그거야....”
금진은 다시 말문이 막힌다.
“니가 권력을 잡았고, 계속 그런 세상을 지키기 위해선 니가 오랫동안 권력을 차지해야겠지?”
“으음!”
“그럼 넌 기존의 권력자와 다르단 걸 어떻게 증명할래?”
“.....?”
“그걸 해결하지 못하는 한 그런 세상은 꿈도 꾸지 마라. 너 또한 새로운 기득권 세력에 불과할 테니까.”
“.....”
한 순간에 금진의 꿈은 산산조각 난다. 하지만 그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반드시 대안을 만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대하마. 그 전에 손님들부터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충아!”
“또 나요?”
“그럼 내가 하리?”
“제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태허가 나선다.
“영감은 빠져. 니들이 할래?”
무진은 이번에는 필구와 구리를 찾는다.
“아..알았소. 똥, 오줌도 못 가리는 애들한테 맡겼다가 누구 고생시키려고. 내가 한다. 내가!”
조충이 투덜대며 밖으로 나간다.
“증조부님, 무슨 일입니까?”
“쯧쯧, 그런 무공 실력으로 중원대장군부와 동창을 장악하겠다고?”
“죄송합니다.”
조부의 질책에 금진은 고개를 숙인다.
“영감은 저 나이에 얼마나 강했어? 애들보다 경지가 더 높았나?”
“그건 아니지만....”
“그럼 입 다물고 있어. 괜히 크는 애들 기죽이지 말고.”
“흡!”
태허는 무진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을 멈춘다.
‘정말 이 자가 고금제일인자란 건가? 안 그러고선 천하의 증조부님이 저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어딜 봐서 저 얼굴이 이백 살이 넘고 삼백이 다 된 사람의 것이란 말인가? 반로환동인가? 그건 신선처럼 전설에나 나오는 얘긴데....’
금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지우려 애쓴다.
‘이제 결정해야 한다. 놈들은 너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 왔다. 네가 저들과 타협을 하겠다면 우린 그냥 물러 갈 것이고, 우리와 함께 하겠다면 저들을 깨끗하게 정리할 것이다.’
“.....?”
금진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그 사이 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겠다는 뜻이다.
“영감, 난 우리가 서로에 대한 신의는 지킬 거라 믿는다.”
서로에 대한 비밀을 지키자는 말이다. 이 말을 끝으로 무진은 몸을 돌린다.
“자..잠시만요!”
금진이 황급히 그의 앞을 막는다.
“대협의 뜻에 다르겠습니다.”
“휴우!”
금진의 대답이 끝나자 태허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흘러나온다. 손자보다 그가 더 많이 긴장했다. 마음 같아선 손자의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무진을 따르게 하고 싶었지만, 무진이 그런 걸 극도로 싫어하기에 나서지도 못하고 애만 태운 것이다.
“크윽! 케엑!”
방문진의 대답과 함께 바깥에선 계속해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조충이 침입자들을 처리하는 소리다.
“영감, 즉시 움직인다. 황금상단과 묵사회의 제자들도 모두 집결시켜라. 단 절대 싸움에 끼어들면 안 된다. 일은 나와 영감, 그리고 충이 셋이 하고, 너희는 뒤처리를 해라. 흔적도 없이 최대한 신속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진이는 연쇄살인범을 일망타진해라. 그걸 발판삼아 중앙으로 진출한다.”
“아! 알겠습니다. 아얏! 왜..왜요?”
“이놈아! 이제야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겠니?”
태허는 평소 증손자의 강한 기운을 누르지 못해 걱정이 많았다. 혹시라도 자만심 때문에 장래를 망칠까 해서다. 근데 오늘 무진과의 첫 만남에서 자만심은 깨지고, 오히려 주눅이 들까봐 걱정할 지경이다. 그래도 그는 마냥 기쁘기만 하다. 이제야 손자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영감, 제자에 이어 손자까지 죽음의 세계에 끌어들인 걸 축하한다.”
“죽음을 잘 극복하면 신선의 경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음을 오늘에게 깨달았습니다.”
“능구렁이 같은 놈!”
“히히히! 하하하!”
무진과 태허는 호탕하게 웃는다.
“정말 너무하네. 대형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감!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거야?”
일을 끝낸 조충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투덜댄다.
“야, 이놈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부지런히 움직여야 나처럼 늙어서 고생을 안 한단다.”
“고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대체 손자놈에겐 뭘 가르친 거야? 개뿔도 없으면서 건방지게 꿈만 커가지고.”
“잘 됐네. 문진이는 당분간 충이가 가르쳐라.”
“예에? 제가 왜요?”
“영감이 잘못 가르쳤다며? 그럼 넌 잘 가르칠 수 있단 말이잖아?”
“낄낄낄! 그러니까 평소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되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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