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50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50
“주둥이를 놀리는 놈은 즉결처분이다. 왕야! 우리가 원하는 건 진실입니다. 사실대로만 말하시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기회는 한 번뿐이란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헐헐헐! 네놈이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황실 어른인 나를 죽일 순 없다.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을 해치면 백만 황군을 상대해야 할 테니까.”
경친왕의 말은 사실이다. 아무리 역모를 꾸며도 황실 어른은 황제의 명이 없인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후후후, 결국 장고 끝에 악수를 두시는구먼. 경친왕! 네놈은 마지막 살 길을 스스로 버렸다. 정주 현령 최극은 들어라!”
“예, 황룡왕야!”
“당장 경친왕야를 체포하고, 그 옆에 있는 놈들의 목을 쳐라!”
“자..잠깐!”
무진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경친왕이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는 두 손을 들어서 태민 사형제의 움직임을 막는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다. 태민은 즉시 그의 혈도를 제압해버린다. 동시에 태운은 경친왕의 부하들을 향해 몸을 날린다.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소. 저..정말이오!”
오른쪽에 앉아 있던 네 명의 부하들이 속수무책으로 목이 달아나자 경친왕이 입을 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무진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다. 이번에는 태민이 움직인다.
“마..말하겠소. 모두 다!”
그제야 무진이 손을 들어 막는다.
파파파팟!
태민은 목을 자르는 대신 도망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나머지 네 명의 혈도를 제압해버린다.
“만약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그땐 네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알았느냐?”
부르르르르!
“알겠습니다.”
경친왕은 가족이란 말에 전신을 떨며 입술을 깨문다.
“총관은 어찌됐느냐?”
“대령해 있습니다.”
“들여보내라.”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현령은 부하들을 시켜서 총관을 데려온다.
“허억!”
안으로 들어서던 총관은 집무실의 분위기를 보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더구나 자신이 하늘처럼 생각하는 경친왕과 부하들을 제압한 것이 무진 일행이라는 데 크게 놀란다. 태민 사형제에게 누명을 씌우려 한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길게 얘기할 것 없다. 배후세력이 누구냐?”
무진은 오래 시간 끌 생각이 없다. 초일과 관련이 있는지만 알면 된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도 그 자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다만 무림은 물론이고, 황실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명색이 황족이라는 놈이 누군지도 모르는 자의 똥개 노릇을 했단 거냐?”
“전혀 모르는 건 아닙니다.”
“왕야!”
경친왕이 뭔가 얘기하려 하자 총관이 황급히 가로막는다.
“후후후, 재밌네. 중원 천하에 초일에 대해서 아는 놈이 없는데, 일개 문파의 총관이 알고 있단 말이지? 운아!”
“예, 대형! 일다 경 내에 모든 걸 알아내겠습니다.”
파팟!
태운은 총관의 혈도를 제압해서 끌고 나간다.
“만약 확인해서 거짓말을 하는 놈은 가주의 살해범으로 팽가에 넘길 것이다.”
“으음!”
이 말에 경친왕과 총관이 절망한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이 제일 무서운 건 바로 팽가이다. 자신들이 가주의 살해범으로 그들에게 넘겨지면 팽가는 두 사람은 물론이고, 그 사돈에 팔촌까지 찾아내서 보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얘기를 시작해볼까?”
이렇게 시작된 배후세력에 대한 경친왕의 얘기는 무려 두 시진이나 계속된다. 그건 총관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친왕으로부터 좀 더 고급 정보가 나왔다.
무진 일행이 경친왕부를 나온 뒤 정주에선 두 가지 큰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경친왕이 스스로 황족으로서의 신분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팽가는 향후 10년 간 봉문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봉문을 한다고 놈들이 가만있을까요?”
일행은 곧바로 정주를 떠나 북경으로 향한다. 현령은 남아서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먹을 게 없는데 구더기가 모이겠냐?”
“더 이상 팽가가 쓸모가 없다는 건가요?”
“그렇지. 지금은 쓸데없이 전력을 허비하지 않을 게다.”
“그곳엔 가보실 겁니까?”
그곳이란 경친왕과 총관이 말한 곳이다.
“아니다. 아무래도 너무 쉬운 것 같다.”
“함정이라는 말씀인가요?”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지금은 무리할 필요가 없다.”
“당분간은 지켜보실 거군요.”
“그래서 현령 형님을 남겨둔 거고요.”
“현령은 그곳을 합법적으로 점검할 수 있으니 조만간 결론이 날 거다.”
“그럼 우린 바로 북경으로 가면 되겠군요.”
“당분간은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호호호! 우리 운이가 그 동안 힘들었던 모양이구나.”
“아..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비밀 한 가지만 말해줄까?”
“비밀이라고요?”
“그래. 아마 알면 금방 피로가 가실 걸?”
“쯧쯧, 어째 애들보다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 같소.”
“얼마나 설레고 기쁠까요?”
“그래도 돌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내일까지만 비밀로 합시다.”
“대형!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 것도 아니다. 내일 얘기해주마.”
“알겠습니다.”
“대체 뭐지? 사형은 생각나는 거 없소?”
“낸들 두 분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니?”
“쯧쯧, 오늘 잠은 다 잤다.”
“수련이나 열심히 하자.”
“그럽시다. 그래도 궁금하다.”
“나도.....”
태민 사형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진 부부를 뒤따른다.
다음 날 오후.
무진 일행은 마야(馬野)란 곳에 도착한다. 이름대로 해석하면 ‘말들의 들판’, 즉 말이 뛰어놀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평야란 뜻이다. 일행의 눈앞에 수억 평의 대평원이 펼쳐져 있다. 한 마디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야! 가슴이 다 뚫리는 것 같다. 사형은 어떻소? 난 무당이 생각납니다.”
“그래 무당산 아래엔 이렇게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지.”
태민 사형제는 무당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이곳은 남쪽에서 북경으로 가는 중에 마지막 고장이라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간다. 그러다 보니 도시의 규모에 비해 숙박업이나 시장이 발달해 있다.
“대형! 식사도 할 겸 주루에서 잠시 쉬었다 가시죠?”
“호호호! 우리 운이가 출출한 모양이구나. 나도 그런데.”
호란이 태운의 말에 동조한다. 갑자기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다. 그녀는 머리를 다쳐서 정신이 없을 때 만두 타령을 한 거 외에는 배고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뭘 먹고 싶소?”
“먹고 싶은 게 많은데, 괜찮을까요?”
“누님,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사드릴게요.”
“정말? 오리고기도 먹고 싶고, 며칠 전에 먹은 새우 맛도 생각나고, 새콤한 것도 먹고 싶네.”
“그 정도면 되겠어요?”
“아니, 요즘 수박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포도 맛도 그립네.”
“딸기도 좋아하시잖아요?”
“그래. 내가 원한 게 바로 그거야. 딸기!”
“큰일 났네. 대형! 아무래도 여기에 며칠 머물면서 누님의 식욕을 채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까? 나도 술이 당기는데.”
“자, 자! 이러지 말고 일단 주루로 들어가시죠?”
태민이 가까운 주루로 일행을 안내한다. 근데 막상 주루로 들어가자 호란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누님, 속이 안 좋으세요?”
“응. 며칠 전부터 계속 이러네. 난 차나 마실래. 니들이 대신 많이 먹어라.”
“근데 대형은 왜 안 드세요?”
“그거야 부부는 일심동체라서 그런 거지. 대형!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당신 혹시 아기를 가졌소?”
무진은 태민의 물음엔 답을 안 하고 엉뚱한 소릴 한다.
“.....”
갑자기 네 사람 모두 긴장한다. 질문을 한 무진이나 대답을 못하는 호란, 그리고 제 3자인 태민 사형제까지 모두 입을 다문다.
“미안해요.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가려와 월미도 알고 있었소?”
“죄송해요.”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란이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며 너무 긴장해서.”
“으하하하하! 그런 걸 왜 걱정해? 민아! 운아! 이 형이 아빠가 된단다. 아빠! 하하하하하하!”
“대형, 축하. 또 축하드립니다.”
“누님도 축하드려요. 두 분 누님들도요.”
“그래. 고맙구나. 가려야.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잔치라도 벌여야 되는 거 아니니?”
“당연히 그래야죠. 란아! 내가 말했지? 정랑이 오히려 좋아할 거라고.”
“고마워요. 전 당신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흐흐흐흑!”
드디어 호란은 울음을 터뜨린다.
“나 참! 세상에 자식이 생기는 걸 싫어하는 부모가 어딨소? 사실 난 혼자서 얼마나 노심초사 했다고?”
“왜요?”
호란이 고개를 들어 무진을 쳐다본다.
“밤낮으로 노력하는 데도 아이가 안 들어서서 말이오. 내가 문제가 있는 줄 알았지.”
“호호호! 전 제가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요.”
오히려 호란이 무진을 포근하게 안아준다.
“하하하! 그러니까 두 분은 서로 상대방을 걱정하느라 마음을 졸였군요.”
“근데 사형? 대형이 밤낮으로 노력했다는 게 무슨 말이오?”
태운이 두 사람을 놀리려고 건수를 만든다.
“글쎄? 그 덕분에 조카가 생긴 것 같은데. 공주누님께 여쭤볼까?”
“그것도 궁금해요. 대형과 란이 누님이 밤낮으로 노력하면 두 분 누님은 뭘 하시죠?”
“그러게. 가려 누님이 요즘 피곤하신지 계속 말씀이 없으시던데, 그 때문인가?”
“호호호! 우리 민이와 운이가 요즘 굉장히 힘든 모양이구나.”
“하긴 젊은 나이에 여자 생각이 많이 나겠지.”
“그래서 요즘 잠도 안 자고 수련에 몰두하는구나.”
“아니에요. 사형은 어떤지 모르지만, 전 오로지 무공에 대한 열정으로 수련에 임하고 있답니다.”
“그래. 넌 좋겠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조만간 이 사형을 짓밟고 천하제일고수가 되겠네.”
“내가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어제는 있잖아요? 잠꼬대를 하는데 서희 누님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 때문에 잠을 깨서 또 밤을 샜지 뭡니까?”
“그럼 정랑은 무슨 꿈을 꾸세요?”
이건 분명 호란의 목소리는 아니다.
“나야, 그냥 부자가 된다는 돼지나 잉어 꿈을 꾸지요.”
“내 꿈은 안 꾸고요?”
“제가 왜 누님들 꿈을 왜 꿉니까? 전 사형처럼 여자 꿈은 절대 안 꿉니다. 잠시만... 누님들 목소린 아닌데... 허걱!”
태운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는 순간 몸이 뒤로 기울어져 꽈당 넘어진다.
“아이쿠!”
“흥! 꼬시다. 그러니까 정랑은 생전 내 꿈은 안 꾼다는 거죠?”
공령이다. 그녀는 양 손을 허리에 올린 채 태운을 노려보고 있다. 그 뒤에 서희가 웃으면서 태민을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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