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54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54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
“니들도 같이 함정에 빠졌으니 배신자로 의심받는 건 억울하다고.”
“그건 사실이잖소?”
“사실은 사실인데, 불공평한 사실이지.”
“......?”
두 사람은 무진의 말을 이해 못 하는 눈치다.
“후후후, 증거도 없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눈빛이군.”
“그렇소.”
“그럼 이건 어때?”
무진이 벽면의 한 곳을 주먹으로 친다. 그러자 벽면이 열리며 커다란 밀실이 나타난다.
“어떻게 알았어?”
드디어 본색이 드러낸다. 왕개는 사악한 표정으로 무진을 노려본다.
“밀실은 니들이 계속해서 거길 쳐다봤기 때문에 알았고, 니들이 장난친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지.”
“처음부터라면 그게 언제야?”
“객잔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다고?”
“알면 안 돼?”
“그럼 왜 지금까지 놔뒀어?”
“나한테 해를 끼치지 않았으니 그냥 뒀지.”
“그럼 지금은?”
“글쎄? 죽일까? 아님, 병신을 만들까 고민 중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고민이야. 아무래도 두 명의 구룡과 싸워 이기기엔 내가 좀 부족하거든.”
“뭐..뭐라고?”
“그것도 알고 있었어?”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무진의 말대로 임화는 구룡 중 삼룡이고, 왕개는 사룡이다.
“그건 어떻게 알았니?”
“니들이 가르쳐 줬잖아?”
“우리가? 야, 거지왕 니가 말했냐?”
“내가 미쳤어?”
“나도 아닌데.... 너 지금 우릴 놀리는 거지?”
“놀리는 건 맞는데, 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거지도, 나도 아닌데 누가 가르쳐줬단 거야?”
“후후후, 그건 영업상 비밀이고, 대신 한 가지는 알려줄게. 과거는 현재를 남긴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니들의 행동이 과거 삼룡과 사룡의 그것과 똑같거든. 요즘 놈들은 개성이 없어요. 창의성도 부족하고.”
“니가 과거의 구룡을 어떻게 안다고 그런 말을 해?”
“그건 알 거 없고. 아무리 숨기려 해도 세상에는 보는 눈이 많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너냐?”
왕개는 소개를 추궁한다.
“물론 저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 대형은 그 전에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흐흐흐, 그래. 우리 잘못을 인정한다. 우리가 네놈을 너무 쉽게 봤어.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지만.”
임화와 왕개는 여전히 여유를 부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무진 일행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장난은 그만치고, 잘 가거라.”
임화는 그 말만 남기고 석문을 주먹으로 치며 밀실 속으로 사라진다. 왕개도 같이 들어간다. 그들은 이미 혈도를 풀었다.
크르르르릉!
석문이 닫히면서 지하통로의 천정이 흔들린다.
우르르르르...!
퍽! 퍽!
조충이 황급히 밀실의 벽면을 두드리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이런! 이 개자식들이 기관을 파괴한 모양입니다.
콰콰콰콰쾅쾅!
기관이 작동했는지 비밀통로 전체가 흔들리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때 무진이 움직인다.
퍽! 크르르르르...!
그가 다른 벽면을 두드리자 석문이 열린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저절로 닫힌다.
“그냥 두실 건가요?”
호란이 나선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 걸 보면 왕개와 임화, 그 중에서도 임화의 배신에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그래서 방관하는 무진에게 따지듯 말한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오.”
“통일문과 대련회 때문인가요?”
“태양장도 아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소.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선 구룡단이 필요하오.”
“정랑도 잘 아시겠지만 구룡은 이제 일룡과 저들밖에 안 남았어요.”
호란의 말은 구룡단은 세력이 약해져 별다른 힘이 없다는 뜻이다.
“싸움에선 덩치가 크고 둔한 곰보다는 덩치는 작아도 빠른 늑대가 더 쓸모가 있는 법이라오. 잘만 다스리면 우리에겐 든든한 원군이 될 거요.”
“정랑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따를 게요.”
그제야 호란은 무진의 계획을 이해한다.
“니들도 불만이냐?”
“아닙니다.”
“흥! 논리적으로 깨질 건데 뻔한데, 말하면 뭐해? 이야! 이번에는 피했다. 아얏!”
일초는 예상한 듯이 무진의 주먹은 피한다. 하지만 발이 날아와 그의 정강이뼈를 가격한다.
“까불지 말고 따라와.”
“하필이면 민감한 곳을 때리고 지랄....”
“안 따라올 거야?”
“가..갑니다. 가요. 이놈의 인기는 언제쯤 식으려나?”
일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움직인다. 이렇게 무진을 선두로 한 일행은 왕개와 임화가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무진은 왕개와 임화를 추적할 생각이 없다. 그냥 지하통로를 따라 이동할 뿐이다.
“소개야.”
보다 못한 일초가 나선다.
“예, 형님.”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냐?”
“아마 승상부와 가까운 곳이 나올 겁니다.”
“그럼 우린 이대로 승상부로 가겠구나.”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대형께 물어보세요.”
“됐다.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동생들이랑 의논하는 법이라곤 없어요. 대형이면 혼자서 다 해도 되는 모양이지?”
일초가 다시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그때 앞쪽에 삼거리가 나온다. 그걸 보고 호란이 나선다.
“막내야.”
“예, 누님.”
“승상부는 어느 쪽이니?”
“오른쪽입니다.”
“그럼 왼쪽은?”
“저희 개봉분타와 연결됐습니다.”
“그래? 정랑!”
호란이 이번에는 무진을 찾는다.
“왜 그러시오?”
“저흰 이쯤에서 빠지는 게 좋겠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요? 나랑 항상 같이 있겠다더니....”
“우린 방해가 될 것 같아서요. 미안해요.”
“으음! 잘 생각했소. 막내를 따라서 개방에 가 있으시오. 조심하고.”
그렇다. 호란은 뱃속의 아기 때문에 빠지려는 것이다. 이제 우선순위가 무진에게서 아기로 바뀐 것이다.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원래 임신은 초기에 조심해야 하는 법이라오. 막내야 잘 부탁한다.”
“당연히 제가 모셔야죠. 걱정 마세요.”
“고맙다.”
“자,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형수님들도 가셔야죠.”
소개는 서희와 공령에게 눈짓을 한다.
“예. 가야죠.”
“정랑도 조심하세요.”
두 여인은 정인들의 곁을 떠나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둘 다 거의 울기 직전이다.
“보기 좋다. 나도 저러고 싶은데.... 진수 넌 지금까지 왜 혼자야?”
“몰랐어? 얘는 결혼할 여자까지 있었어.”
“그런데?”
“야,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니?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
“그런가? 하여튼 막내야. 아가씨를 잘 모셔라.”
“예. 형님!”
“사실 애기는 내가 먼저 낳고 싶었다.”
“왜요?”
일초의 말에 태운이 추임새를 넣는다.
“내가 저 양반하고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 그거라도 이겨야지.”
“미친 놈!”
“그걸 이제 아셨수? 내가 제정신이었다면 지금까지 대형을 따라다니지도 않았소.”
“그건 인정한다. 그리고 고맙게 생각한다. 너희들도 마찬가지고. 마음 같아선 나 혼자 하고 싶은데, 형제란 게 함께 태어나진 못했어도 죽음은 같이 하는 거라고 하더구나. 최선을 다해 뜻을 이루고 행복하게 오랫동안 살았으면 좋겠다.”
“저희야 말로 대형께 감사드려야죠. 세상에서 고금제일인자를 의형으로 모시는 행복을 몇이나 누릴 수 있겠습니까?”
“고금제일인자? 그게 뭔 소리야?”
진수는 화들짝 놀란다. 이백년 전에 세상을 떠난 고금제일인자가 거론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분위기로 봐선 이제 겨우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무진이 그 주인공이란 것이다. 그러니 놀라는 건 당연하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여기서 헤어지자.”
그 사이 일행은 삼거리에 도착하고, 결국 서희와 공령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다. 태민 사형제는 수건을 꺼내서 정인들의 눈물을 훔치느라 잠시 시간을 지체한다.
“하긴 우리도 어릴 적엔 저렇게 감성적이었지.”
“넌 어릴 적에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난 요즘도 그래.”
“지랄한다. 지금도 틈만 나면 혜련이 몰래 엉뚱한 짓을 하는 놈이 감성적이란다.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야! 너 무슨 근거로 그런 막말을 하냐?”
“흐흐흐, 좋다. 여기서 다 까발릴까?”
“그래. 같이 죽자는 거지? 그럼 나도 할 수 없다. 니가 지난번 개봉에 갔을 때 대흥주루에서 있었던 일을 제수씨한테....”
“야! 그건 실수라니까. 정말이야.”
“실수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놈아, 실수도 반복하면 실력이란 말도 모르냐?”
“히히히, 일초야. 이쯤에서 그만하자. 아무래도 내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
“오늘따라 어쩐 일이냐? 이렇게 빨리 꼬리를 내리고.”
“내가 한 살을 더 먹더니 철이 들었나 보다. 내일 저녁에 다 같이 저녁이나 먹자. 내가 쏠게.”
“이게 뭔 조화래? 천하의 구두쇠 조충이 저녁을 산단다.”
“대신 계산은 니가 해라.”
“미친놈, 그래. 계산은 내가 할 테니까 돈은 니가 내라.”
“아이쿠! 오늘따라 혀가 자꾸 말리네? 알았다. 내가 내지 뭐. 대신 공금으로 쏜다. 알았지?”
“에라이! 야비한 구두쇠 놈아!”
“야, 내 처지를 생각해봐라. 내가 구두쇠가 안 될 수가 있나?”
“변명은?”
“변명이라니? 생각을 해봐라. 나도 이제 결혼을 해야지. 뿐이냐? 노후는 하나도 준비가 안 됐지. 그렇게 안 살면 나중에 어떡할 거야? 사실 여기에 있는 사람치고 안 그런 놈이 있냐?”
“놈?”
놈이란 말에 무진이 눈을 부라린다.
“아..아니, 년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다시 무진이 주먹을 들고 나선다.
“아..아닙니다. 대형과 아가씨는 분입니다. 분!”
“근데 우리가 결혼하는 거 하고 니가 구두쇠인 게 무슨 상관이냐?”
“이놈이 또 세상물정을 모르네. 우리 다 같이 결혼하면 돈 관리를 누가하냐? 여기서 믿고 돈을 맡을 사람이 어딨어? 나 말고.”
“여기 있네. 태운이.”
“헤헤헤! 충이 형님, 지금도 제가 공금을 관리하고 있습니다요.”
“언제부터 그렇게 됐니?”
“처음부터인데요?”
“그럼 낼 저녁은 공금으로 어떻게 안 되겠니?”
“안 되겠는데요? 형님이 저지른 일이니까 형님이 책임지세요.”
“지독한 놈. 형이 농을 한 번 한 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매정하게 해야겠니?”
“전 항상 대형께 그렇게 배웠습니다. 형제간의 우의도 중요하지만 형제간의 신의도 중요하다고요. 전 형님이 형제간의 신의를 절대 저버리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그죠?”
“다..당연하지. 내일은 내가 쏜다.”
“믿어도 되는 거죠?”
서희까지 나서서 확인을 한다. 하지만 조충이 말을 하자 지하통로 전체가 웃음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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