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8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87
“그럼?”
“그럼은 무슨? 그냥 바보란 거지. 후후후!”
조충이 다시 곽정을 놀린다.
“그렇게 되면 초일은 전력을 분산시킬 거야. 그때 한꺼번에 놈을 치는 거지.”
“좋네. 좋아.”
“형들에게 설명하고, 그렇게 하자.”
“그럼 우린 이대로 북경으로 간다. 마무리 하고 따라 와라.”
이렇게 해서 무진의 동생들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긴다. 세 사람이 마을로 내려오다 일초와 조충은 곧바로 북경으로 달려간다. 낭인촌이 공격받자 태민 사형제가 걱정된 모양이다.
대로변을 막고 있던 북경수비대는 낭인촌 공격이 본격화되자 모두 철수했다. 낭인촌에 주둔한 본대에 합류한 것이다. 태민 사형제도 처음엔 낭인촌으로 갈까 생각했으나 서찰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기에 계속 표국행렬을 따르고 있다.
“아직 그대로야.”
태민은 마차에 들어가서 서찰을 확인하고 나온다.
“우리 존재를 알고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낭인촌 문제를 연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럴 만 한 이유라도 있소?”
“낭인촌은 놈들이 정보를 확보한 것이고, 이건 우리가 준비한 거야. 전혀 다른 상황이지.”
“음!”
사형의 말에 태운도 고개를 끄덕인다.
“낭인촌은 어떻게 됐을까요?”
“북경수비대가 낭인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치열한 싸움이 될 거야. 반대로 모른다면....”
“모른다면?”
“참패했겠지.”
“그래도 북경수비대는 백만 정병 중에서도 최강의 부대이고, 인원도 어마어마할 텐데 참패까지야 당했겠어요?”
“너 지금 낭인촌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지?”
“사형은 들은 게 있소?”
“이번에 소개한테 들었다.”
“정이 형님이랑 청사 형 말고는.... 참! 이번에 물불통지 형님도 가셨다죠?”
“그 양반 말고도 일룡과 삼, 사룡 형님들도 가셨다.”
“그분들도요?”
“그뿐만이 아니다. 대소쌍불 형님과 적마대군 형, 그리고 금종 형도 같이 있대.”
“야! 쟁쟁한 분들이 다 모였네. 그 정도면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근데 너무 개성들이 강해서 융화가 잘 될까?”
“우리 촌장 형님이 그걸 잘한다는 거야.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융화를 잘 시키나봐.”
“야, 정이 형님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구나. 참, 청사 형은 요즘 말썽 안 부린데?”
“야,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지금은 누구보다 원칙적이래. 그래서 노(老)형님들이 청사 형 때문에 죽을 맛이라는 거야. 한 마디로 군기반장이지.”
“완전히 딴 사람이 된 모양이네.”
“딴 사람이 아니라, 그게 형의 본 모습이야. 그 동안 과거의 짐을 벗어던지지 못해 방황한 거지.”
“흠! 그런 거보면 대형은 정말 대단해. 그렇게 방황하던 사람을 단숨에 바꿔버리니 말이야.”
“세상에 인품이 높거나 무공이 뛰어난 사람들은 꽤 많아. 하지만 대형처럼 무공도 뛰어나고 인품이 고매한 양반은 찾기가 어렵지.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야, 그렇게 존경받는 사람이 동생들을 이렇게 고생시키니?”
일초다. 그 뒤로 조충의 모습도 보인다.
“형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후후, 우리 동생님들이 못난 형들을 걱정 많이 한 모양이네.”
“형들을 왜 걱정합니까?”
“그럼?”
“북경수비대를 걱정했죠.”
“하하하! 그렇게 되는 건가? 근데 어떡하니? 니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한 놈도 살아가지 못했는데.”
“설마요? 만 명은 돼 보이던데....”
“난 소름이 끼치면서 한 동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더라.”
“왜요?”
“왜긴? 그 대형이란 양반 때문이지.”
“대형이 오셨어요?”
“와서 직접 처리했다면 놀라지도 않았겠지.”
“일초 형! 정말 이럴 거야? 우리가 얼마나 궁금해 하는 줄 알면서 지금 약 올리는 거지? 그치!”
일초가 미적거리자 태운은 약이 올라 소릴 지른다.
“이야! 우리 운이가 화를 내는 걸 오랜만에 본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귀엽네.”
“정말 못됐어! 충이 형, 형이 대신 설명해줘. 빨리. 나 정말 궁금해 죽겠단 말이야.”
“운아, 너 형님들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보다 못한 태민이 화를 낸다.
“민아, 괜찮다. 그냥 둬라. 형들을 보니까 좋아서 그런 거잖아?”
“봐. 형들이 괜찮다고 하잖아?”
“어쭈! 난 괜찮다는 말을 안 했는데?”
“그거야..... 흠! 흠! 알았소. 그럼 충이 형님 얘길 들어봅시다.”
태민이 눈에 힘을 주자 태운이 꼬리를 내린다.
“후후후, 태운이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민이한텐 꼼짝 못 할 거야.”
“흥! 사형이니까 제가 봐 주는 거죠. 나이만 들어봐요. 매일 구박할 테니까.”
“어째 니가 민이 마누라 같다.”
“충이 형,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 이래봬도 정혼녀가 있는 몸이에요.”
태운은 대원장의 공령과 정혼한 사이다.
“운이 너, 말은 궁금하다고 하면서 정작 애인 소식이 필요했구나.”
“히히히! 들켰네. 공령낭자는 잘 지내던가요?”
공령은 서희랑 같이 한 동안 낭인촌에 머물러 있었다.
“못 만났다. 촌장 얘기론 얼마 전에 여인들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하더라. 서희도 마찬가지고.”
“아, 예.”
“으음!”
갑자기 태민 사형제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충아!”
그걸 보곤 일초가 조충에게 눈짓을 한다.
“니들 지난번에 대형이 준 진법책 기억하지?”
“물론이죠. 아마 책 제목이 ‘생활진법’이었죠. 형님들이 제목을 보고 한참을 웃었잖아요?”
“그랬지. 근데 그것 때문에 우리가 깜짝 놀랐다는 거잖아?”
“왜요?”
“그게 반 시진 만에 정예군인 만 명을 죽였으니까.”
“예에! 그 정도로 무서운 거였어요?
“그래. 가보니까 막 공격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어. 해서 책에 있던 다섯 가지의 진법 중에 하나가 설치했지. 이름이 걸작이었지. 아마‘비오는 밤에도 별빛은 흐른다.’였을 거야. 이전 것보다 더 강하고, 간편해진 거라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설치는 간편했어. 근데 말이야. 휴우!”
조충은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쉰다.
“왜요? 진번에 문제가 있었나요?”
“문제라기보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뭐가요?”
“형님이 무서워할 정도로 말입니까?”
조충이 엄살을 떨자 태민 사형제는 눈이 커진다.
“그래. 이전 것도 무서웠지만 이번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예를 들어 말씀해 보세요.”
“그래요.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이전 것은 진식에 빠지면 나타나는 장면이 허상이었다면 이번 것은 실제 상황과 같은 효과를 보인다는 거야. 예를 들면 비가 내리면 실제로 비를 맞듯이 옷이 젖고, 불이 나면 옷에 불이 붙는다. 만약 검이 날아온다고 치자. 그땐 즉각 피해야 해. 안 그러면 자기 몸을 관통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그게 말이 되나요?”
“우리도 아직 믿기지가 않는다. 게다가 보완한 곳은 겨우 다섯 군데뿐이었어. 니들도 알겠지만 원래 대형이 만든 진법은 복잡하지 않잖아? 이번 것도 마찬가지였어. 그냥 돌멩이 두 개와 나뭇가지 세 개를 더 추가했을 뿐이야. 근데 우리가 진식을 해체했을 때 마을 주변에는 만여 명이 모두 쓰러져 있었어. 조금만 더 늦었어도 모두 죽었을 거야.”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단 말입니까?”
“말도 마라. 난 그걸 보는 순간 대형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온몸을 떨었다니까. 무섭다. 무서워.”
“그럼 일초 형님은 지금까진 대형이 안 무서웠어요?”
“야! 그것 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야. 지금까진 단순히 무섭기만 했지만, 그걸 보는 순간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어.”
“으음! 언제 한 번 시험해봐야겠네요.”
“나머지 네 가지도 확인을 해보고 싶네요.”
태민 사형제는 겁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호기심을 드러낸다.
“야! 니들 그러다 골로 가는 수가 있다. 하더라도 절대 니들끼리만 하지 말고 우리랑 같이 해야 한다. 알았지?”
“알았어요. 근데 또 행렬이 멈추네요.”
“이제 하루 정도만 가면 북경에 도착할 텐데.....”
조충은 행렬이 멈추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근데 금방 표정이 달라진다.
“후후후! 단단히 준비해야겠다.”
“왜요?”
“향기가 좋다.”
“뭔 소립니까?”
“그냥 향기가 좋다니까.”
“예에?”
조충이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말하자 모든 시선이 앞쪽으로 집중된다.
“어라? 웬 여자들이지?”
앞쪽에 일단의 여인들이 서 있고, 그 중 한 명이 표두와 얘기를 하고 있다.
“중원에서 저렇게 여자들끼리 다니는 건 딱 정해져 있다.”
“어떻게요?”
“먼저 비구니들만 있는 아미파와 북해빙궁과 같은 곳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황실의 궁녀들이고, 세 번째는 사창가의 여인들이지.”
“옷차림으로 봐선 아미파와 빙궁은 아니고, 궁녀들이 여기에 있을 리도 없으니, 그럼 사창가의 여인들뿐이네.”
“사창가의 여인이라면 매화회인데, 회주인 월향을 찾아왔나? 여기엔 없는데.”
“그럼 그것도 아니란 소린데... 누굴까요?”
“혹시 형님들이 우리 몰래 씨를 뿌렸소?”
태운은 다시 형들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야, 그랬다가 대형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어떻게 되는 데요?”
“어떻게 되긴? 아가씨를 통해 혜련이 귀에 들어가면 그 날로 죽는 거지.”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네.”
조충이 엉뚱한 소릴 한다.
“왜요?”
“너 또 쟤들 마음을 읽었어?”
“세 명이나 읽었는데 모두 똑 같아.”
“그럼 사실이란 건데, 뭔 사연인가요?”
“‘궁중악단 양성소’라고 들어봤어?”
“그런 곳도 있나요?”
“황실이나 왕부에 전문 악단이 있으니 당연히 양성소도 있겠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수련생만 하더라도 양성소마다 천 명이 넘으니까. 선생들까지 합치면 웬만한 대문파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봐야지. 이 근처에 있는 줄은 몰랐네. 그런데?”
“밤새 남자들이 모두 사라졌다는군.”
“남자들만?”
“그런가봐.”
“그럼 관부로 가봐야죠.”
“이미 신고는 했는데, 처리 될 때까지 기다릴 형편이 못 된다는 거야.”
“급한 일이라도 있나 보죠?”
“낼이 황실에서 궁중악단 단원을 뽑는 시험이 있나 봐.”
“그러니까 북경까지 태워달라는 거군요.”
“그렇지.”
“데리고 가면 되죠 뭐.”
“표두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왜요?”
“표국이나 상단엔 저마다 규칙이란 게 있다. 일종의 미신 같은 건데. 맹룡표국은 전통적으로 목적지에 임박해선 새로운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은 여자를 동행시키지 않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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