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9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92
“모..모두 건물 안으로 피하라! 어서!”
“지하 광장으로 들어가라!”
무사들이 소리를 지르지만 천둥과 번개 소리 때문에 제대로 전파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소릴 들은 사람이 피하려 몸을 움직이자 서로 부딪치면서 더 혼란에 빠진다.
의외로 초이는 담담하다. 그는 부하들의 반 이상이 죽음을 당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정말 부하들을 개, 돼지로 생각하나 봐요.”
그걸 보고 멍개가 한 마디 거든다.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이곳 금정을 마약의 소굴로 만들진 않았겠지.”
“이해가 안 되네요. 설사 자신이 지배자라 해도 그렇죠. 어떻게 백성이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숨어 지냈고, 앞으로도 영원히 두더지처럼 땅속에서만 지내게 될 게다.”
“근데 번개는 어떻게 된 걸까요? 마치 누가 조종하는 것처럼 저들을 정확하게 공격하고 있어요. .... 서...설마 그건 아니죠?”
“그럼 뭐라고 생각하니?”
“전후 사정이 그것 말곤 설명할 길이 없잖아요? 대형!”
멍개는 말하다 말곤 무진을 부른다.
“니가 멀쩡한 게 이상하냐?”
“이걸 예상하고 ‘영혼단’을 주신 거예요?”
멍개는 자신이 아직 기절하지 않은 게 ‘영혼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하하! 앞으론 이런 일이 허다하게 벌어질 텐데, 그때마다 널 깨울 순 없잖니?”
무진도 부인하진 않는다.
쿠아아앙!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번개는 그곳을 집중 공략한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데도 건물은 계속된 번개의 공격에 불에 탄다. 이렇게 중원장의 무사들이 들어간 다섯 개의 건물 모두가 무너지고, 또 불에 탄다. 다시 수백 명의 무사들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건물 밖으로 달려 나온다.
“이만 해야겠어요.”
호란이 손을 내리고 무진을 향해 걸어온다.
“수고했소. 태교라기에는 너무 강하지 않소?”
“그렇긴 하죠. 하지만 전 우유부단한 것보단 맺고 끊는 게 명확한 사람이 좋아요. 우리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럼 한 번 더 수고해줘야겠소.”
무진이 말하는 사이 백여 명의 중년인들이 무진 일행을 포위한다. 중앙에 초이의 모습도 보인다.
“이번에는 저들이 선공을 펼칠 모양입니다.”
멍개의 눈에는 초이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중년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게 보인다. 그들은 일제히 무진 일행을 향해 달려든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크아악! 으아악!”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돌린다. 그곳엔 진수와 곤일, 그리고 무당수호대의 모습이 보인다. 진수과 곤일이 무당수호대와 함께 멍개가 남긴 흔적을 따라 온 것이다. 무당수호대의 숫자는 다섯에 불과하다. 최정예를 뽑아서 온 것이다.
“진영을 갖추고, 합벽진을 만들어라!”
초이는 황급히 소리치며 제일 앞쪽에 선다.
콰아아앙!
진수와 초이가 펼친 자연무예의 기운이 공중에서 부딪친 것이다.
“우욱!”
두 사람이 동시에 밀려나지만 진수가 조금 더 밀린다.
씨익!
초이는 마치 승기를 잡은 사람마냥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는 곤일보다 진수의 무공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근데 곤일보다 무당수호대가 먼저 나선다.
“무당 나부랭이들이 감히 중원장을 넘봐?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그는 무진이 무당 출신이란 걸 알고는 일부로 자극적인 말을 한다. 하지만 그는 금방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빠아악!
“크아악!”
우두둑!
“으아아악! 다..다리가..!”
무당수호대가 생사무를 자연무예로 펼치자 중원장의 무사들이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마..막아라!”
“뭐하느냐? 놈들은 다섯 명에 불과하다. 한꺼번에 덤벼라!”
무당수호대가 파죽지세로 파고들자 중원장 무사들의 대열이 와르르 무너진다. 일부는 무당수호대가 다가서기도 전에 도망친다. 할 수 없이 초이는 부하들을 향해 몸을 날린다. 아니, 날리려 움직인다. 이때 진수가 그의 앞을 막는다.
“어딜 가시오?”
“비켜라!”
초이는 진수가 자기보다 하수라고 생각하는지 그대로 밀고 나간다.
꽈아아앙!
“크으윽!”
이번에는 한 사람이 뒤로 밀린다.
“네..네놈이 어떻게.... 콜록! 콜록! 울컥!”
초이의 목소리다. 그는 한 사발의 피를 토한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쯧쯧, 그쪽 집안에선 무공 선생이 부실한 모양이오.”
“무..무슨 개소리냐?”
“무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자만인데, 그걸 아무도 안 가르친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그러니까 네놈이 날 속였단 말이냐?”
“그렇지 않고서야 갓 자연무예를 익힌 내가 어떻게 당신을 이길 수 있겠소?”
“자연무예를 막 익혔다고?”
“그렇소. 하지만 당신은 내가 밀려나는 걸 보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소. 만약 당신 실력의 칠 할만 사용했어도 지금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구르는 건 바로 나였을 거요.”
“크크크! 그랬단 말이지? 하지만 아직 좋아하긴 이르다.”
“안 그래도 많이 준비했다고 들었소. 이번엔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소.”
“후후후! 그래. 맛보기는 잘 봤다. 지금부터 제대로 한 번 놀아보자.”
초이는 옷자락으로 입을 닦더니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 그도 실력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실망하는 눈치다.
“그게 준비한 거요? 일아!”
그는 옆에서 지금껏 구경만 하던 곤일을 부른다.
“예. 형님은 이제 좀 쉬세요.”
두 사람은 자리바꿈을 한다. 곤일이 앞으로 나서며 초이의 앞에 선다.
“곤일이라고 합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흐흐흐흐! 어린놈들이 심리전이 제법이구나. 하지만 날 자극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실망이오. 우린 대형으로부터 무공을 배웠소. 대형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거요. 이것만 봐도 당신들은 처음부터 지는 시합을 한 거요.”
곤일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뼈에 사무치는 말을 한다.
“호호호! 정랑. 우리 일이는 무공보다 말솜씨가 더 뛰어난 것 같아요.”
“하하하! 나한테 배웠으니 당연한 거 아니오?”
“전 당신이 무공과 말솜씨보다 얼굴이 제일 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보시오. 일이 저놈이 순진해서 그렇지, 저 얼굴에 옷차림만 조금만 더 신경 쓰면 황실에 남아 있을 여인이 한 명도 없을 거요.”
“큰일 났네요. 그 말이 자미의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자미는 아미파의 속자제가가 된 곤일의 정혼녀이다.
“그 말은 당신이 자미에게 전하겠다는 뜻이오?”
“호호호! 같은 여인이자 언니로서 동생에게 경고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큰일 났네. 일이 저 놈은 화가 나면 물불을 안 가리는데.”
무진의 말대로 곤일의 얼굴이 점점 붉게 변한다. 화가 났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화가 났다기보다 자미를 생각할 때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수줍어서 그런 것이다.
퍼어어어엉! 우르르르릉!
두 사람의 기운이 공중에서 부딪치자 연무장 전체가 흔들린다. 동시에 두 사람은 스무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다.
“마..말도 안 돼! 이건 아니야!”
초이는 곤일이 자신과 평수를 이루자 몸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당황한다. 그는 이번에는 최선을 다했다. 진수와의 대결에서 당한 걸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퍼억! 빠아아악!
“끄아악!”
초이의 비명소리다. 곤일은 틈을 주지 않고 그에게 파고들어 생사무를 펼치고 있다.
“그..그게 무슨 무공이냐? 새...생사무란 거냐?”
초이는 왼쪽 손목이 부러졌는데도 고통보단 곤일의 무릎이 반대 방향으로 꺾인 것에 더 놀란다. 하지만 그 역시 절대고수이다. 이후 계속되는 곤일의 공격을 한 수 빨리 피해 무력화시킨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내가 손을 들면 전력을 다해서 장원 밖으로 몸을 날려야 한다. 한 순간의 방심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단 걸 명심하기 바란다.’
그 순간 무진의 전음이 들려온다. 하지만 아무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다만 멍개만 무진을 쳐다볼 뿐이다.
피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초이의 움직임을 파악한 곤일이 그에 대응해서 공격하자 상황이 달라진다.
“크아악!”
초이는 곤일의 주먹에 턱을 맞고 바닥을 구른다. 이때부터 일방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우두둑!
“케에엑!”
퍼억!
“커억!”
정확하게 열 대를 맞자 초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팔과 다리는 물론 갈비뼈와 목뼈까지 중요한 관절들이 다 부러진다.
“크크크크! 네놈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살아서 여길 빠져나가지 못한다.”
초이가 말을 시작하자 무진이 손을 들어올린다. 동시에 호란이 멍개를 손으로 잡는다.
우르르르르....!
미세하게 땅이 흔들리더니 지하에서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때는 벌써 무진 일행 모두 몸을 날린 상태이다.
슈슈슈슈슈슈슈.....!
거의 동시에 하늘에서 수천 발의 화살이 날아온다.“
“화..화살이다!
“처..철궁이다! 철궁!”
“우릴 모두 죽일 생각이다!”
철궁은 일반 화살보다 수십 배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내력이 강한 무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으로 금강불괴가 아닌 이상 피하기 어렵다.
“흐흐흐흐! 이놈들아! 고금제일인과 같이 죽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초이는 죽음을 각오했는지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그 때문에 그는 무진 일행이 연무장을 빠져나가는 걸 보질 못한다.
콰콰콰콰쾅쾅...! 우르르르릉....! 쿠아아앙...! 쾅쾅쾅....!
잠시 후, 중원장은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장원이 앉아 있던 곳에는 마치 분지와 같은 엄청나게 넓고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진다.
북경.
일초와 조충, 그리고 태민 사형제는 전임 태사이자 초일이라고 의심받는 천공을 찾아가려던 계획을 연기했다. 무진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 함정(陷穽), 연기(延期) >
딱 두 단어뿐인 서찰이다. 그래도 동생들은 모두 그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한다. 함정이기 때문에 공격을 연기하란 뜻이다. 다만 두 번째 도착한 서찰 때문에 북경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 마지막 작전 준비. 마무리 중요. 잠수. >
이번에는 내용이 좀 더 길고, 해석하기도 더 어렵다. 마지막 작전은 초일을 치는 것으로 그 동안 여러 차례 논의를 했기 때문에 익숙한 말이다. 문제는 마무리와 잠수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일행은 북경 뒷골목의 자그마한 찻집에 앉아 있다.
“제 생각엔 마무리를 한다는 건 몇 차례의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초일이 아직도 몇 가지 수를 더 가지고 있단 것이고, 그건 형님도 준비한 게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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