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74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74
“바위는 멀쩡한데.... 이건 뭐지? 구멍은 구멍인데,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깨끗하지?”
바위의 정 중앙에 손가락 굵기 만 한 구멍 다섯 개가 나 있다.
“서...설마!”
사룡 왕개는 화들짝 놀라며 바위 뒤로 달려간다.
“쟤는 또 왜 그래? 천마일지가 이런 거라면 십대마공도 별 볼일 없다는 건데....”
“사...삼형!”
“왜 그래? 뭔 일이야?”
“이..이걸 보시오. 어서요!”
왕개는 숨이 넘어가듯 임화를 부른다.
“바위가 멀쩡한데 더 볼 게 뭐 있다고...”
임화는 바위 뒤쪽으로 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앞쪽에서 본 것과 똑 같은, 아니 위치만 뒤바뀐 그 다섯 개의 구멍이다.
“구멍이 뒤쪽에도 있다는 건... 뚫렸다는 거지? 일형!”
임화는 몸을 돌리며 일룡을 찾는다. 근데 그는 벌써 바로 옆에 와 있다.
“왜? 안 믿겨?”
“이..이게 가능한 일이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할 수 없지.”
“아..아니오. 못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믿을 수가 없단 뜻이오.”
“이야! 우리 일형이 드디어 해냈다. 해냈어! 야호!”
“얼씨구!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삼룡과 사룡은 일룡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것들이 미쳤나! 그래. 나도 좋다. 좋아! 야호!”
드넓은 연무장에서 늙은이 셋이서 한 동안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소리를 지른다.
“쯧쯧, 한심한 것들. 겨우 십대마공으로 무림을 정복할 생각을 하다니.”
“우리로선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죠.”
“그렇긴 하지. 사실 욕심만 아니면 그렇게 나쁜 놈들은 아닌데 말이야.”
“교화를 시켜 보시게요?”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러기엔 세상을 너무 오래 살았어.”
“나이 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원래 나이를 많이 먹으면 아집이 강해져서 남의 말을 잘 안 들어먹거든.”
“그런 걸 해내는 게 당신 주특기잖아요?”
“그럼 한 번 시도를 해볼까?”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했으니 지금 하는 건 어때요?”
“그러지 뭐.”
“근데 저들은 어쩌죠?”
호란은 아직도 건물 지붕에서 떠나지 않은 정파의 핵심인물들을 보고 있다.
“지켜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무진은 그렇게 말하곤 호란의 손을 잡고 날아간다. 순간 각 건물 지붕 위에선 수십 개의 눈빛들이 햇살에 반사돼 반짝인다.
“야아! 일룡이 십대마공을 익혔다. 이제 무림을 제패하고 황실까지 장악하자. 야! 너무 좋다.”
무진은 지붕에서 내려오자마자 일룡 일행 속으로 밀고 들어가 같이 뛰어논다. 심지어 일룡과 사룡의 손을 잡고 흔들어댄다.
주춤!
일룡은 물론 삼룡과 사룡 모두 동작을 멈추고 그를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진은 계속 춤추면서 떠들어댄다.
“이러다간 노망들었다는 소리도 듣고, 미쳤다는 소리도 듣겠다. 그래도 좋다. 일룡이 십대마공을 익혔으니 두려울 게 뭐냐? 절대로 말하지 마라. 태양장은 백 년 전에 십대마공을 완전하게 소화하고, 더 뛰어난 무공을 만들었다는 걸. 초일은 이백 년 전에도 십대마공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걸. 절대로 초치는 소리 하지 마라. ....”
무진은 쉬지 않고 뛰며 소리를 지른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호란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야! 뭐해? 이렇게 좋은 날 놀아야지. 미친 듯이. 왕개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여자가 없어서 그래? 그럼 내 마누라도 끼워주지 뭐. 그래도 싫어?”
“.....?”
삼룡과 사룡은 무진의 물음에 대답을 못한다. 결국 무진이 동작을 멈추고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니들 많이 컸다. 내 말이 그렇게 우습니?”
“예에?”
“그..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런데 대답을 안 하는 이유가 뭐냐? 아, 그렇지. 이 자식 때문이구나. 꼴에 일룡이라고 어깨 힘주고, 갈구는 모양이지?”
“아..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까부터 보니까 고작 십대마공 같은 쓰레기를 익혔다고, 지랄발광 하던데. 너 지금 십대마공인지 천마일진지 하는 거 대성했다고 저절로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지?”
“.....?”
그때까지도 일룡은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 그 동안 삼룡과 사룡이 무진의 정체에 대해서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서 더 그렇다.
“니들 눈에는 이런 게 대단하게 보이니?”
무진은 말을 하면서 손으로 옆에 있는 바위를 만진다. 그러자 만지는 곳마다 일룡이 만든 것과 같은 구멍이 쑹쑹 뚫린다. 세 사람은 즉시 바위 뒤로 달려가서 확인한다.
퍽! 퍽! 퍽!
“아야! 바위가 분명한데.”
일룡은 주먹으로 바위를 쳐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대체 머리는 왜 달고 다니니? 너 이리 와봐.”
무진은 손가락으로 일룡을 가리킨다.
“나?”
“나? 이 새끼가 하늘같은 선배한테 뭐라고? 너 방금 나? 라고 했니?”
퍼억!
“크악!”
일룡은 대답하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나간다.
“어쭈! 이젠 엄살까지 부리네.”
“커억!”
처음에는 턱이었고, 이번엔 목을 맞는다. 이상한 건 무진과 일룡이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데도 마치 무진이 바로 앞에서 직접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이리 와!”
무진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일룡을 부른다. 하지만 상황판단을 못한 일룡은 내력을 극도로 끌어올려 공격 태세를 갖춘다.
“흐흐흐,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는 거지? 바라는 바다.”
“일형! 안 됩니다.”
“죽을 지도 모르오.”
삼룡과 사룡은 극구 말린다. 하지만 일룡은 생각보다 감각이 둔하다.
“걱정마라. 어린놈이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 거니 죽이지는 않으마.”
“아이고, 이 양반아. 당신이 죽는단 말이야. 당신이!”
“뭐..뭐라고?”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돼?”
“이 자식이 뭔 소릴 하는 거야?”
“저 양반이 바로 고금제일인이란 말이오. 알겠소?”
“고금제일인? 누가? 저놈이? 크아악!”
일룡의 말이 끝나자마자 망치보다 더 강한 힘이 턱을 강타한다. 처음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한 힘이다.
“요즘 것들은 당최 말로 하면 들어먹질 않아요. 니들도 대가리 박아!”
무진의 한 마디에 삼룡과 사룡은 번개처럼 빠르게 머리를 바닥에 댄다.
“니들 말이야. 이 새끼한테 내 얘기 한 번도 안 했지?”
“...예에.”
“죄..죄송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니들이 더 나쁜 놈이네. 니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지?”
“배신입니다.”
사룡이 대답한다.
“흐흐흐, 그걸 잘 아는 놈이 배신을 해? 난 고금제일인이라는 말이 싫어서 이백 년 전에 버렸다. 근데도 니들은 입만 열면 날 고금제일인이라고 불렀다. 그래 놓고 배신했다. 그 정도로 내가 물렁해 보여?”
“으으으으으!”
“크으으으윽!”
두 사람은 지금 대답할 겨를이 없다. 하늘에서 집채 만 한 바위가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이 등에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머리는 반쯤 땅속에 파묻혀 있다.
“똑바로 해라. 내가 그 동안 니들을 마음만 먹었다면 수천 번도 더 죽였어. 동생들의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니들을 그냥 둔 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돌아와 사과할 줄 알았다. 근데 뭐가 어쩌고 어째? 고작 한다는 짓이.... 너도 여기 와서 대가리 박아! 확! 그냥 목을 따버릴까 보다. 빨리 안 와!”
“아..아닙니다.”
그제야 일룡도 상황판단을 조금 한다. 달려와 두 사람 옆에 머리를 박는다.
“으윽!”
그는 머리를 땅바닥에 대자마자 신음소리를 낸다.
‘으으으으! 태어나서 이런 고통은 처음이다. 으아아아아! 그럼 저 인간이 진짜 고금제일인자란 말이야? 마..말도 안 돼!’
“이 새끼는 기본이 안 됐어. 사람이 말을 하면 믿으려고 노력은 해야지. 내가 고금제일인자가 아니면 뭐겠어? 뭔데 십대마공을 익힌 네놈을 아기 다루듯이 하겠냐고? 제발 생각을 좀 하고 살아라. 알았냐?”
“예에? 예! 알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이백 년 이상을 살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니들은 백 년을 살아도 무방하고 난 안 된다는 거지?”
“아..아닙니다. 으아아아악!”
“까불지 말고 주둥이 닥쳐! 한 번만 더 신음소릴 내면 그땐 아예 신음소릴 낼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무진은 갈수록 더 강하게 몰아붙인다.
“삼룡!”
“예, 어르신!”
“너 이제 그만 살고 싶니?”
“예에? 그..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겨우 십대마공으로 초일이를 상대할 생각을 했으니 하는 말이다.”
“무림 사상 십대마공을 익힌 사람은 천마 이후로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이번에는 사룡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다.
“휴우!”
무진이 기운을 거두자 사룡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너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없지?”
“예.”
“그럼 날 마음껏 속여 봐라. 오늘 고통의 참맛을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아..아닙니다. 어르신을 배신한 건 죄송합니다만 전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지랄하네.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말을 해라. 난 길게 말하는 거 싫어한다.”
“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삼형과 저, 그리고 일형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구룡은 모두 인생의 패배자였습니다.”
“잠깐!”
처음부터 무진이 말을 자른다.
“너 지금 신파극 분위기를 만들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만하겠습니다.”
“어라? 이게 제법 세게 나오네. 좋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들어보자.”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우리 구룡은 패배자의 길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쳤고, 그래서 죽음의 길인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이상입니다.”
“야, 간단해서 좋다. 근데 어째 배 째라는 말 같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후후후, 그래? 니들도 같은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일룡과 삼룡도 동의한다.
“죽음의 길이란 걸 알면서 달려왔다? 재밌기도 하고 제법 멋있는 말이다. 그래. 잘됐다. 어차피 죽을 거 고금제일인자한테 맞아죽으면 되겠네. 그러면 천하제일인자란 소린 들을 수 있잖아?”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말은? 그냥 패죽이겠다는 거지. 모두 일어선다.”
“예에?”
“예!”
“일어선다!”
세 사람은 동시에 벌떡 일어난다.
“니들 입으로 말했듯이 니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인정하지?”
“예.”
“그럼 일단 죽을 만큼 맞고 시작하자.”
“크아악! 케엑! 컥!”
이때부터 본격적인 구타가 시작된다. 무진은 단순무식하게 그냥 오른발로 무자비하게 가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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