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4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48
“흠흠!”
위사들은 무진의 말이 못마땅하면서도 모두 사실이라 반발은 못하고 헛기침만 해댄다.
이때 일단의 사람들이 장원 안에서 달려 나온다. 현령과 그 부하들이다.
“정주 현령 최극입니다.”
“반갑소. 무진이라고 하오. 같은 성내에 근무하면서 처음이라니 너무 한 것 같소.”
“그러게 말입니다. 앞으론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고맙소. 현령의 말씀을 들으니 마치 오랜 친우를 만난 것 같소.”
“제가 영광이지요.”
현령은 최대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즙포사신은 호북성 전체의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현령보다 직책이 높다. 특히 이곳 정주의 현령은 하북팽가의 낙하산이기 때문에 호북성에선 인정을 못 받는다.
“근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현령은 마치 의외라는 듯이 말한다. 사실 그로선 팽가의 살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잘못으로 보고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현령께서 여기 어쩐 일이오?”
“저야 관내에 살인사건이 생겼으니 당연히 와야죠.”
“좋은 말씀이오. 근데 시장 상인들이 살해당해도 현장을 나가 보시오?”
“그거야.... 으음!”
현령은 말문이 막혀 대충 얼버무린다.
“범인은 잡았소?”
“현장에서 잡았습니다.”
“현령이 직접?”
“아닙니다. 당시 전 현장에 없었고, 총관을 위시한 수십 명이 그들과 싸워 간신히 제압했다고 합니다.”
“그들?”
“예, 두 명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가주를 살해하는 걸 총관이 직접 봤소?”
“그건 아니지만 그들이 가주를 면담한 뒤 가주가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범인이 아니라 용의자란 말이군.”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일단 현장부터 본 다음 그들을 만나봅시다.”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잠시 후.
일행은 살해 현장인 대전(大殿)으로 들어간다.
하북팽가의 가주 팽호는 대전의 전면에 있는 거대한 의자에 앉아서 죽었다. 그 주위에서 무진과 현령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피식!
시신을 살피던 무진이 가볍게 웃는다.
“왜 그러십니까?”
“총관을 불렀소?”
“예. 금방 올 겁니다.”
“현령이 오기 전에 총관이 시신을 살펴봤겠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이걸 한 번 보시오.”
무진은 대전 바닥을 살피던 현령이 다가오자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는 가주의 얼굴을 잡아당긴다.
찌이익!
얼굴이 그대로 한 꺼풀 벗겨진다. 가주는 인피면구를 한 가짜였다.
“허억!”
현령은 얼마나 놀랐던지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난다. 잘못했으면 엉덩방아를 찍을 뻔했다.
“어..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건 현령이 대답할 문제요.”
“그야 그렇지만....”
그때 총관이 안으로 들어온다.
“호북성의 즙포사신이시라고요? 팽가의 총관을 맡고 있는 팽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정중하게 인사한다. 근데 무진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원래 관부의 인물들은 자신의 이름을 잘 밝히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팽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진은 곧바로 총관을 몰아세운다.
“허억! 으음!”
총관은 가주의 얼굴을 보자 얼굴이 굳어진다. 놀라는 게 아니라 당황한 것이다. 보통 죄 지은 사람들이 들통이 났을 때의 표정이다.
“총관은 알고 있었소?”
“그럴 리가 있겠소? 꿈에도 상상 못한 일이오. 감히 어떤 놈들이 이런 천인공로할 일을 한단 말이오?”
뒤늦게 총관은 분노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어색하다.
“상태로 봐선 인피면구를 한 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은데, 팽가와 같은 대문파에서 아무도 몰랐다는 게 이상하지 않소?”
“그야 그렇지만 우리 팽가에선 정말 아무도 몰랐소.”
“가족들도 몰랐단 거요?”
“그건 제 소관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근 가주께서 건강이 좋지 못해 바깥출입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얼마 전에 가주를 뵌 적이 있는데, 상당히 건강해 보였소.”
“.....”
무진의 말에 총관은 대꾸를 못한다. 대신 현령이 나선다.
“범인을 데려왔으면 들여보내라.”
“예!”
대전 밖에서 대답이 들리며 관병들이 두 사람을 데리고 온다. 바로 태민 사형제이다.
“가주를 자네들이 죽였나?”
심문은 무진이 직접 한다.
“즙포사신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진의 단도직입(單刀直入)적인 질문에 태민이 당당하게 대응한다.
“후후후, 어린친구들이 맹랑하군. 그럼 여긴 왜 왔나?”
“가주에게 경고하려고 왔소이다.”
이번에는 태운이 나선다.
“경고?”
“그렇습니다. 지금 정주는 팽가에 대한 불만으로 폭동 직전의 상황입니다. 잘못하면 팽가는 영원히 이곳 정주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뿐인가?”
“그 외에도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다만 핵심은 그것입니다.”
“이건 본 적이 있나?”
“무진이 가주의 목에서 손가락 길이만한 제법 긴 바늘 하나를 뽑는다.”
“본 적은 있습니다.”
“본적은 있다라.... 그럼 자네들이 한 건 아니라는 건데.”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어느 멍청한 놈이 사대세가의 가주를 살해하고 유유자적하며 걸어 나가겠습니까?”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나?”
“그야 피해자가 없어지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만약 가주가 가짜라면?”
“뭐라고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태운이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자 무진이 가주의 얼굴을 보여준다.
“사대세가 가주가 가짜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태민 사형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결국은 팽가의 자작극이란 말인데... 이렇게 한 이유가 뭘까요?”
호란도 호기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건 지금부터 알아내야죠. 현령 생각은 어떻소?”
무진은 현령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때 총관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빠져나가고 있다. 무진은 그냥 두고 현령에게 눈짓을 한다. 현령은 부하를 시켜 추적하게 한다.
“대답을 해야 합니까?”
“아니오. 수고했다. 가자!”
“예, 대형!”
“누님은 그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태민 사형제는 무진의 말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정중하게 인사한다.
“알고 있었니?”
“하하하! 저희가 어찌 형님과 누님을 몰라보겠습니까?”
“이전과 어디가 닮았을까?”
“누님은 아무리 변신을 해도 미모를 감출 수가 없어요. 그리고....”
태민이 설명한다.
“그리고?”
“누님에게서만 나는 향기가 있답니다.”
“나한테서 향기가? 자세히 말해줄래.”
“그런 게 있어요.”
말하기가 곤란했던지 태민이 말을 돌린다.
“나는?”
“대형은 두 가지 면에서 표가 났어요.”
태운이 이어서 설명한다.
“두 가지?”
“예. 한 가지는 대형의 평소 습관입니다.”
“습관?”
“예, 버릇이죠. 대형은 화가 나면 왼쪽 눈을 깜빡이는 버릇이 있어요. 근데 주루에서 세 번이나 그랬답니다. 그러니 어찌 모르겠습니까?”
“내가 그랬나? 그럼 두 번째는?”
“그것도 습관인데, 걸음걸이입니다.”
“내 걸음걸이가 이상하니?”
“이상한 게 아니라 대형만의 습관이 있어요.”
“그거 재밌네. 자세히 말해봐라.”
“대형은 걸을 때 왼손이 오른손보다 조금 더 많이 움직입니다.”
“하하하! 내게 그런 버릇이 있단 말이지? 어떻소? 이놈들 이제 장가를 보내도 앞가림은 하지 않겠소?”
“그럼요. 근데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는 말 안 할 거니?”
“그건 곤란합니다. 궁금하시면 대형께 조용히 물어보세요.”
“정랑도 알고 있어요?”
“아니오.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자, 가자!”
무진은 황급히 발걸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제지당한다.
“자..잠깐!”
현령이다. 그는 무진 형제의 얘기를 듣고서 뒤늦게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는다. 무진이 황룡패를 내보였기 때문이다.
“정주(頂珠) 현령 최극이 황룡패의 주인을 뵙습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자넬 속인 건 사과하네.”
“아..아닙니다. 왕야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령은 무진을 왕야라 부른다. 황룡패의 주인은 자동적으로 황족이 되기 때문이다.
“그 얘긴 그만하고, 자네 도움을 좀 더 받았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현령은 무진이 총관을 추적하려는 걸 눈치 채고 앞장선다.
‘무당 아이들은 어떻게 됐어?’
무진은 이미 소개를 통해서 태민 사형제가 북경으로 이동하는 중에 무당 일행을 만난 걸 알고 있다.
‘상처를 치료한 다음 먼저 출발하셨습니다.’
무진 일행은 팽가의 총관을 추적하면서 전음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니들이 고생을 많이 했구나. 수고했다.’
‘‘자비’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국은 대형의 도움으로 사숙들들과 동문들의 목숨을 구한 셈이지요.’
‘‘자비’는 우리 형제 모두가 합심해서 만든 거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잠행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무진 형제는 한 동안 중원을 떠돌아다녔다. 모두 초일을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었다.
‘근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활동을 해도 되나요?’
태민이 궁금했던 걸 질문한다.
‘위험부담은 있지만 어떡하겠니? 너희도 봐서 알겠지만 놈들은 이번 무림맹의 출범식을 계기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 거다. 그냥 두면 엄청난 희생자가 생길 지도 모른다.’
‘놈들이 형님을 유인하는 거라고 봐야겠죠?’
‘그럴 가능성이 높다. 지난번에 당한 걸 복수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우린 최대한 실력을 숨기면서 놈들의 계획을 저지해야 한다.’
결국 무진은 무림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전술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도착한 모양입니다.’
앞서 가던 현령이 주택가의 끝부분에서 걸음을 멈춘다. 추적자가 남긴 표식이 거기까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가 어딘가?”
“그게....”
현령이 머뭇거린다.
“들어가자!”
그가 말을 못하자 무진은 그대로 밀고 들어간다.
“자..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현령이 황급히 가로막는다.
“무슨 뜻인가?”
“죄송하지만 시간을 좀 주십시오.”
“무슨 시간?”
“사실... 저도 계산이 좀 필요합니다.”
“후후후, 솔직해서 좋군. 하긴 그 동안 팽가에서 받은 혜택이 많으니 등 돌리기가 쉽진 않겠지. 이해하네.”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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