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4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4
“우욱! 콜록, 콜록!”
곤일은 물을 많이 먹었는지 올라오자마자 토한다.
“죄..죄송합니다.”
“수고했다. 많이 배웠느냐?”
“제가 부족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럼 됐다. 나중에 황제수전을 익히면 좋아질 거다.”
“예. 예에? 황제수전을 요?”
“왜, 배우기 싫어?”
“아..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우린 형제란 걸 잊지 마라.”
“예, 대형!”
콰아앙!
곤일이 무진과 얘기하는 사이 연못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저것들이 돌았나? 내력도 없이 어떻게 저런 걸 만들어?”
“이놈아! 그러니까 무식하단 소릴 듣는 거야.”
“그래. 나 무식하다. 그럼 형이란 사람이 가르쳐 줘야지, 욕부터 하냐?”
“쯧쯧, 언제 철이 들래?”
일초가 자극하지만 무진은 애써 무시한다.
“저건 세 사람이 직접 만든 게 아니다.”
“예에?”
곤일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다고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다.”
“흥!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듣소?”
“후후, 너 요즘 자연무예 안 배우냐?”
“자연무예? 그러니까 세 사람의 움직임에 의해서 주위의 기운이 영향을 받고, 그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냐?”
“나야 되지만 일이는....”
“말씀은 이해가 되지만 상상이 안 됩니다.”
“세 사람이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연못의 물이 반복해서 부딪히고, 그게 하나로 응집될 때가 있다.”
“그 힘이 강해지면 저렇게 물기둥이 생기는 겁니까?”
“그래. 자연무예를 배우지도 않은 너도 아는데 일 년 넘게 배운 놈은 감도 못 잡으니...쯧쯧쯧!”
“누가 감도 못 잡는다는 거요?”
“그럼 설명해봐.”
“설명? 으음!”
일초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한다.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그 동안 다음 준비나 해둬.”
“알겠습니다.”
곤일은 대답을 하곤 어디론가 달려간다.
“상당히 치열한데요?”
호란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연못을 쳐다본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한 쉽진 않을 거요.”
콰콰쾅쾅!
이번에는 더 큰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물기둥뿐만 아니라 수로왕과 태민 사형제도 물 위로 뛰어오른다. 호란의 말처럼 싸움이 막바지에 이른 모양이다.
‘이제 그만하고 나오너라.’
무진이 전음을 보내자 태민 사형제는 금방 물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수고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부족해서....”
“수로왕은 평생을 수공만 익혔다. 그에 비해 너흰 익힌 지 보름 만에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싸웠다. 그러고도 니들이 이긴다면 수로왕이 아니지.”
“근데 정말 그냥 둘 겁니까?”
“버릇은 고쳐야지. 시작해라.”
무진은 태민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곤일에게 명령을 내린다.
“예. 대형!”
곤일은 가져온 기름통을 연못에 뿌리기 시작한다. 수병들이 가지고 온 수백 통 중에서 먼저 이십 통 정도를 뿌린다.“
“기다려라.”
“무섭다. 무서워!”
일초는 무진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뭐가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통구이로 만들려고 하잖아?”
“으음!”
그제야 태민 사형제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이다!”
멀리 수면 위에 물체가 어른거리자 무진이 지시를 내린다.
“예.”
곤일은 기다렸다는 듯이 연못의 기름에 불을 붙인다.
화르르르!
순간 물위로 올라오던 수로왕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컥! 컥! 저 새끼들이 미쳤나? 그래. 한 번 해보자. 니들이 아무리 지랄해도 물속에 있는 한 절대로 지지 않는다. 헉! 헉!’
수로왕은 숨을 헐떡이며 기름이 적은 곳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점차 기름띠가 두터워지더니 불이 붙는다.
‘허억! 꼬르르륵!’
그는 당황한 나머지 물을 마시며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헉! 헉! 대..대체 저 새끼들 정체가 뭐야? 놈들은 날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놈들이 원하는 게 뭘까? 혹시 구룡단? 그럼 태양장에서 보낸 거군. 개자식들! 죽는 한이 있어도 태양장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수로왕은 이빨을 깨물려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이동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워..원하는 게 뭐냐? 말을 해야 알지!”
수로왕은 소리치지만 그때 마다 돌아오는 건 불길뿐이다.
“변태새끼들! 저것들은 지금 즐기고 있다. 그..그래. 바로 그거다. 수로왕이 물속에서 죽었다고 소문을 내서 수로맹을 완전히 몰락시키려는 거다. 절대 네놈들 뜻대로 해줄 순 없다. 허억!”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보지만, 이젠 헤엄치는 건 고사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아악!”
숨을 참지 못하고 수면 위로 올라오다가 불이 머리카락에 붙어서 황급히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이렇게 죽을 순 없다. 평생을 바쳐 오년 전에야 겨우 수로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대로 죽기엔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깝다. 하..하지만... 숨을 쉴 수가 없다. 크아악!”
이번에는 물 위로 올라오자 몽둥이가 날아와 머리와 어깨를 강타한다. 다행히 기름이 떨어졌는지 더 이상 불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올라와도 곧바로 몽둥이가 날아온다.
“크으으윽!”
결국 그는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버린다.
“끌어내라.”
간신히 그 소리만 듣고 그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다.
수로맹 문제를 해결한 무진 일행은 이번에는 육로로 이동하고 있다.
“수로왕을 믿소?”
일초는 벌써 일주일 째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지금까진 무진은 ‘너라면 믿겠냐?’는 말만 했고, 그때마다 일초는 ‘난 못 믿소.’란 말을 했다.
“수로왕은 나와 형제가 아니다. 하지만 서로 필요에 의한 동료는 될 수 있다.”
“그게 다요?”
“우리 둘은 내기를 했다.”
“내기?”
“그래. 니가 좋아하는 내기.”
“뭔 내기를 했소?”
“그 전에 황제수전을 놈에게 넘겼다. 해설서까지.”
“미..미쳤소?”
“민이에게도 줬다. 그래서 3년 뒤에 만나서 승부를 내기로 했다.”
“그러니까 수로왕과 민이가 황제수전을 익혀서 3년 뒤에 이기는 자가 수로왕이 된다. 그 말이오?”
“그래.”
“허 참! 대체 정신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왜?”
“놈은 평생 수공을 익혔소. 거기에다 황제수전의 해설서까지 줬는데 겨우 한 달 정도 익힌 민이가 어떻게 이긴단 말이오?”
“어째 넌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니가 가르치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데.”
“그..그게 아니라... 내가 요?”
“그래.”
“하하하!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요. 민의 재능에 천하제일 무공 선생인 내가 있는데 뭘 못하겠소? 민아, 안 그러냐?”
“아,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태민은 마지못해 대답한다.
“오라버닌 매번 당하면서 왜 시비를 걸어요?”
가만히 지켜보던 호란이 나선다. 근데 그녀의 얼굴이 변했다. 이마에 작은 점이 있고, 피부도 약간 검게 변했다. 전체적으로 얼굴이 평범하게 변했다. 여전히 미인이지만, 이전처럼 천하제일미라는 소릴 듣긴 어려울 것 같다. 일행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기 싫어서 호란 스스로 변화를 준 것이다.
“그거야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저의 희생정신이죠. 생각해보세요. 누구처럼 하루 종일 분위기나 잡고 있어 봐요. 동생들이 숨이라도 제대로 쉬겠어요?”
“하긴 우리 정랑이 분위기가 없긴 하죠.”
갑자기 호란도 무진을 공격한다. 순간 모든 시선이 무진에게로 집중된다.
“왜 그래? 난 아무 짓도 안 했다.”
“그게 문제요.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으니까 아직 조카 소식이 없는 거잖소?”
“야, 그게 어째 나만의 문제냐? 하루 종일 니들이랑 같이 있는데 내가 무슨 재주로 애를 만들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어라! 그 말이 그렇게도 사용되네?”
“요즘도 암습을 하세요?”
암습이란 일초가 밤낮 없이 기회만 되면 무진을 공격하는 걸 말한다. 무진과 인연을 맺은 이후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일종의 두 사람간의 수련 방법이다. 다만 요즘은 밤에 주로 이뤄진다.”
“야, 그게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사냐?”
“그래 놓고 애기가 없다고 하면 안 되죠.”
갑자기 태운이 무진의 편을 든다. 이쯤 되면 편 가름이 대충 마무리 되고 본격적인 싸움에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싸움의 한 축인 호란의 행동 때문에 금방 상황이 종료된다.
“어딜 가오?”
마을로 들어서자 그녀는 입구에 있는 조그마한 주루로 향한다.
“누님!”
태민이 황급히 그녀를 뒤따른다.
“민아!”
“예, 누님.”
“냄새가 죽이지 않니?”
“하하하! 만두가 드시고 싶으세요?”
주루에선 만두 튀기는지 냄새가 일품이다.
“오늘따라 뭐가 자꾸 당긴다.”
“호..혹시....”
“호호호! 너도 아기가 보고 싶니?”
“당연하죠. 대형께서 얼마나 기다리시는데요?”
“네가 봐도 그렇지?”
“예. 말씀은 안 하시지만 아이들을 보면 얼굴이 밝아지고, 그럴 때 마다 꼭 누님을 쳐다보셔요.”
“그래? 정말 아이를 갖긴 해야겠구나.”
“누님은 안 가지고 싶은 가 봐요.”
“그럴 리가 있니? 난 정랑보다 훨씬 더 갖고 싶단다.”
“정말로 하늘을 보기가 힘든가요?”
“호호호! 애가 별 소릴 다 하네. 그럼 니가 기회를 마련해줄거니?”
“최소한 일초 형님이 방해하는 건 막아야죠.”
“그래.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좀 말려다오. 어제 밤에도 분위기를 한 번 잡아보려는데 오라버니 땜에. 호호호! 아니다. 됐다. 들어가자.”
“어서 오십시오.”
두 사람은 점원의 인사를 받고 안으로 들어간다.
“누님, 주방엔 왜요?”
호란은 들어가자마자 자리가 아닌 주방을 찾는다.
“오늘은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우리 가족을 먹이고 싶다.”
“호오! 젊은 아가씨가 마음이 곱네.”
그녀가 주방 앞에서 기웃거리자 할머니 한 분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할머니가 주방장이세요?”
“주방장이랄 건 없고, 그냥 책임지고 있지. 근데 처자가 음식은 할 줄 아나?”
“호호호! 할머니, 처자가 아니에요.”
“에잉? 벌써 결혼했어? 어떤 놈이 이렇게 예쁜 처자를 차지했을까? 부럽네. 부러워.”
“호호호! 저기 저 놈이랍니다. 잘 생겼죠?”
호란은 막 안으로 들어오는 무진을 가리킨다.
“으음, 어린놈이 잘 생기긴 했네. 아니지. 횡재한 거야. 횡재. 요즘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착한 처자가 어딨어?”
“그래도 제가 착하단 소릴 듣는 건 좀 그래요.”
“무슨 소리! 요즘 세상에 저렇게 많은 식구를 직접 밥 해먹이겠다는 여자가 어딨어? 근데 정말 할 거야?”
“잘하진 못하지만 해보고 싶어요.”
“마음씨가 고와. 그럼 한 번 해봐.”
“감사해요.”
“쯧쯧, 정말 아쉽다.”
노파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