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9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93
소개다. 그는 한 시진 전에 무진의 서찰을 가지고 형들과 합류했다. 당분간은 같이 행동할 모양이다.
“작은 승패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군. 그럼 잠수는?”
“그건 최근에 퍼진 대형에 대한 소문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문?”
“예. 묵사회와 우리 개방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대형과 무당수호대가 금정에서 실종됐다는 겁니다.”
“사실이냐?”
“그럴 리가 있습니까?”
“하긴 서찰을 보냈다는 건 안전하단 거니까.”
“그렇다면 대형이 초일에게 그런 믿음을 주기 위해서 잠수를 탄다는 뜻이겠군. 그만큼 위험했단 소리겠지?”
한 시진이 넘도록 침묵하던 일초가 끼어든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곧 놈들의 공격이 시작되겠군. 니들 생각은 어떠냐?”
“소나기를 피하느냐? 아님, 정면 돌파를 하느냐? 그게 문제로군.”
조충은 그답지 않게 표정이 진지하다.
“피하는 건 우리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봐라.”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죠.”
“죽는 시늉이라도 하잔 거냐?”
“바로 그겁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금선탈각(金蟬脫殼)입니다.”
금선탈각은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알맹이만 쏙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긴다는 뜻이다. 상대가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면 그렇게 믿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뜻은 좋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지.”
“일단 놈들에게 우리 위치를 노출시켜야겠지요.”
“그렇지. 그래야 찾아올 테니까.”
“운아, 구체적으로 생각한 거라도 있니?”
“아직 자세한 건 없습니다만 머리를 맞대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예. 우리 모두 공간이동술이 원숙한 경지에 있어야 합니다.”
“원숙하단 게 어느 정도냐?”
“한 뼘 정도 두께의 벽을 뚫고 나갈 정도입니다.”
“우린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일초가 조충과 눈으로 확인한 다음 말한다. 그 다음 태민이 말한다.
“우리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태민 사형제는 같이 수련을 했으니까 정확할 것이다.
“제가 안 되면 곤란하겠죠?”
마지막으로 소개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야! 이러다간 막내한테 추월당하겠다.”
“축하한다.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느라 수련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고생이 많았겠구나.”
“대단하다. 충아, 조만간에 우리가 얘들한테 밀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늘부턴 잠자는 시간을 없애야겠다.”
“미친 놈, 그렇게 몸을 혹사하니까 실력이 안 느는 거야.”
“그런가? 그럼 잠을 한 다섯 시진쯤 자볼까?”
“하하하! 형님, 그러다가 잠꾸러기라고 소문나면 어쩌시려고요?”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게 해야 될 것 같다.”
“왜요?”
“야, 나중에 미령이랑 결혼하면 하루 종일 방에서만 지낼 텐데. 미리 연습을 해둬야지.”
“지랄하네. 그게 동생들한테 할 소리냐?”
“야! 여자 문제는 얘들이 우리보다 고수야. 고수!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그런가? 혹시 니들은 벌써 거시기를 했니?”
“거시기가 뭡니까?”
“거시기를 몰라? 거시기는 말이다....”
“일초 형님, 오늘은 그 정도로 참아야겠습니다.”
“왜?”
“놈들에게 우리 존재를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운이 입구를 보며 말한다.
“그래야지. 으잉? 쟤들은 이런 곳에 올 얘들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입구에선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다. 여자 둘에 남자 셋이다. 그들을 쳐다보는 일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경천왕 주도의 장남 주민, 차남 주천, 막내 주희
천부왕 주성의 장남 주걸, 막내 주선
경천왕과 천부왕은 황제의 사촌 동생들로 황실의 실세들이다. 주로 골치 아픈 황족 문제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린 경천왕부와 천부왕부에서 나왔다. 지금부터 여긴 우리가 사용한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사라져라. 당장!”
주천이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오자마자 손님들을 쫓아낸다. 지금 찻집에는 모두 다섯 탁자에 약 스무 명 정도의 손님들이 앉아 있다. 근데 단 한 명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거 재밌네. 그러고 보니 모두 알 만한 사람들이야.”
조충이 눈을 반짝인다.
“소개야.”
“예. 형님.”
“오늘 여기서 무슨 일이라도 있니?”
“글쎄요? 금시초문입니다. 근데 지금 저들 마음은 한 가지 염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야, 우리 막내도 이젠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구나.”
“공간이동술을 능숙하게 펼칠 정도면 그 정도는 당연하지.”
“그런가? 그건 그렇고, 그 염원이란 게 뭐냐?”
“한 가지 보물이 오늘 여기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보물?”
“예. 물건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사람?”
사람이란 말에 일초가 끼어든다.
“예. 그것도 여자입니다.”
“여자? 근데 계집들은 왜 왔어?”
“쯧쯧, 너 그렇게 여자의 마음을 몰라서 앞으로 어떡할래?”
“그럼 그렇게 여자를 잘 아는 네놈이 설명을 해봐라. 계집들이 이런 자리에 나오는 이유를.”
“그거야 당연히 질투심 때문이지. 자신보다 예쁜 것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게 궁금해서 온 거지.”
“니들 생각도 그러냐?”
“잘은 모르지만 그럴싸한 분석입니다.”
“저도 충이 형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태민 사형제는 조충에게 힘을 실어준다.
“안 되겠다. 막내 니가 한 번 더 수고해줘야겠다.”
그건 여자들의 마음을 읽어보란 뜻이다.
“형님이 직접 하셔도 되잖습니까?”
“난 대형이랑 약속했다.”
“무슨 약속을 요?”
“사적인 일로 남의 마음을 읽진 않겠다고.”
“그럼 저도 안 됩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
다른 형제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다. 단순히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무진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근데 여기에 있는 놈들도 만만찮은데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정도의 미인이면 누굴 말하지? 아가씨나 우리 색시들 정도면 모를까.”
“그러게요. 황실에도 그 정도의 미인은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황후라면 몰라도.”
“제가 잘못 알았나 봐요.”
다시 소개가 나선다.
“그게 무슨 소리냐?”
“사람은 사람인데 여자가 아니고, 남자인 모양입니다.”
“사내라고?”
“예.”
“그건 더 말이 안 되잖아? 대형이라면 모를까? 우리 말고 그럴 만한 사람이 어딨다고?”
한편 경천왕의 차남인 주천도 찻집 안을 살피다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닫고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일초 일행을 향해 걸어온다. 그들이 앉은 곳이 난로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 탐이 난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일초를 비롯한 형제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도 못 붙이고 멍하니 서 있다.
“어이, 쓰레기들! 오랜만이네.”
일초는 그들을 아는 체 한다. 일초와 그들은 악연이 있다. 그들이 길거리에서 노인들을 괴롭히는 걸 보고는 약간의 교훈을 내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르침 덕분에 그들은 무려 두 달이나 침대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런데도 경천왕과 천부왕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못했다. 상대가 천하제일살수인 일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복수를 하려다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덜덜덜덜덜....!
선두의 주천은 물론이고, 뒤쪽에 있던 주희와 주선조차도 몸을 떤다. 지난 번 일이 떠오른 순간 자연스럽게 주눅이 든 것이다. 그 때 두 사람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훈이가 형님들을 뵙습니다.”
“린이가 오라버니들을 뵙습니다. 소방주님도 오랜만이네요.”
정훈과 남궁린이 일초 일행을 발견하곤 다가와 인사를 한다.
“뭐해? 왔으면 앉아야지. 차도 한 잔 하고.”
충이가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한다.
“아닙니다. 일행이 있어서 오늘은 인사만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일간 한 번 보자. 참, 진수는 잘 있으니까 걱정 말고.”
“예. 감사합니다. 그럼 저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린이한테 잘 해라. 너한테 시집가기엔 아까운 아이다.”
“하하하! 섭섭한 말씀이지만 사실이니까 받아들이겠습니다.”
“호호호! 고마워요. 언제든지 저희 집에 오시면 항상 맛난 거 책임지고 해드릴게요.”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조카가 생기면 꼭 연락해야 한다. 알았지?”
“예. 염려마세요. 가장 먼저 오라버니들께 연락할 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암!”
이렇게 정훈 부부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들은 승상부의 인사들과 같이 왔다. 한편 이렇게 되자 찻집 안의 모든 시선이 일초 형제에게 집중된다. 북경최고의 망나니인 경천왕부와 천부왕부의 자식들이 꼼짝을 못하고, 승상의 아들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누군지 궁금해서다. 이때 찻집의 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어라! 이거 우리 생각이 완전히 틀렸네.”
입구를 보며 조충이 한 말이다.
“황세손을 뵙습니다.”
찻집에 있던 사람들 중에선 일초 일행을 제외하곤 모두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그것도 제일 앞의 꼬맹이에게 한 것이다. 그는 바로 황세손인 주후이다. 이전에는 병약해 보였는데, ‘영혼단’을 먹고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미홍에게 무공도 배워서 꽤 남자다워졌다. 그는 이런 뒷골목 찻집에서조차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자 짜증을 낸다.
“이것 봐. 내가 움직이면 여러 사람이 난처해진다고 했잖아?”
그는 뒤에서 따라오는 여인에게 소릴 지른다. 그녀는 무진을 대신해서 황실을 보호하고 있는 주작단 단주 미홍의 의동생 교희이다. 지금은 황세손을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 그 뒤로 금의위의 부통령인 맹준이 찻집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호호호! 그렇게 말씀하시면 곧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 뭐야? 너 지금 날 속이는 거 있지? 분명히 난 여자는 만나기 싫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여길 온 거면 다신 날 볼 생각마라.”
“제가 꾸민 건 따로 있지만, 저길 보세요. 누가 있는지.”
교희는 조금 전에 맹준으로부터 일초 일행이 있단 소릴 들었다. 그래서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뭐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여기에 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 .... 가만. 눈에 익은 사람들인데... 일초 형님이다! 충이 형님도 있고, 다 있네. 형님!”
황세손은 입구에서부터 일초가 있는 곳까지 한 번에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긴다. 일초를 비롯한 형제들은 지난 번 실종 사건의 인연으로 북경에 올 때마다 황세손을 만나서 같이 수련을 해왔다. 평소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심이 강했던 황세손은 이들을 친형처럼 따랐고, 황후도 그게 황세손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허락했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내가 아는 동생은 이렇게 무겁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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