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7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78
“그 말은 모두 공짜로 쓸 수 있다는 거죠? 공식적으로.”
“이것도 있잖아?”
태민이 품속에서 손바닥 크기 만 한 물체를 꺼낸다. 황금상단의 단주가 무진 형제들에게 하나씩 준 신패다. 그것만 보여주면 황금상단 소유의 시설에선 무조건 공짜다. 평생 동안 그렇게 사용할 수 있다.
“그 중에 옷 가게도 있을까?”
“두 군데나 있던데?”
“잘 됐다. 객잔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옷을 한 벌씩 해 입자.”
“일이는 그렇다 해도 우린 왜요?”
“이런 말을 못 들어봤니? 사람을 평가하려면 그 주변의 친구들을 보라고 했다. 우리가 잘 차려입어야 일이에 대한 월향이의 시선이 달라지는 거야.”
“근데 우리가 처음부터 월향이에게 접근할 계획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구체적인 상황을 몰랐으니까. 그래서 우린 니가 일부러 그녀에게 접근을 한 줄 알았다.”
“이거 참 낭패네. 내가 일을 저질렀으니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곤일은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근데 그런 고민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일이 생겼다.
“무슨 일이오?”
진수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형제들이 앉은 탁자를 에워쌌기 때문이다.
“체포하라!”
대답 대신 돌아오는 건 체포 명령이다.
“크윽!”
방금 말한 자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태민이 던진 젓가락이 그 자의 귀에 꽂혔기 때문이다. 순간 무사들은 모두 한 발 뒤로 물러난다.
“니들 눈에는 우리가 개, 돼지로 보이냐?”
“.....?”
태운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못한다.
“질문이 어렵니? 아니지. 대가리가 나빠서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데. 니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린 이유 없이 건드리는 놈은 절대 그냥 두지 않는다. 알았냐? 왜냐고? 우리는 니들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개, 돼지가 아니거든. 그 정도면 이해가 되려나?”
태운은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린다. 여기에 곤일이 말뚝을 박아버린다.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죽기 싫으면.”
“이 새끼들이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끄아악!”
곧바로 곤일의 오른발이 뒤쪽에 숨어서 말하는 중년인의 턱을 날려버린다. 워낙 빠르게 일어난 일이라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중년인은 주루 입구까지 날아가 문에 부딪히고서야 겨우 멈춘다. 당연히 일어나지 못한다. 일순 주루에는 정적이 흐른다.
“이봐. 저들은 태사원의 무사들이잖아?”
“그러게.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거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저 친구들의 실력도 장난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지.”
“그렇지. 태사가 누구야? 황제도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황제의 사부야. 사부!”
“근데 태사원의 무사들이 저들을 왜 체포하려는 거지?”
“그건 내가 좀 알지. 아까 영웅루 앞에서 저기 중간에 앉은 친구랑 월향이가 부딪혔어.”
“뭐라고? 월향이랑 부딪혀?”
“그랬다니까.”
“죽었네. 죽었어. ‘저 친구는 오늘을 못 넘긴다.’ 에 백 냥을 건다. 백 냥!”
“이 친구야. 그건 이곳 제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인데 걸기는 뭘 걸어?”
“그런가?”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어떻게?”
“저 친구들도 보통이 아니야.”
“그래서?”
“태사원에 고수들도 많고,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있다지만 저 정도 실력자들을 잡아들이려면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할 거야. 태사가 직접 나선다면 모를까.”
“태사가 나서면 뭐해? 평생 책벌레로 산 양반인데.”
“이 사람이 또 모르는 소릴 하네.”
“내가 모른다고?”
“그래. 최근에 들은 얘긴데, 태사어른이 무림인 출신으로 엄청난 고수라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너 같으면 학문도 천하제일이고, 무공도 절대고수가 될 수 있겠어? 온 천지에 날고 기는 놈들 천진데.”
“자네 말이 설득력은 있지만, 내게 그 말을 한 어른은 이름만 대면 니들도 알 수 있는 사람이야.”
“사실 그런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오랜만에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기만 한데.”
손님들이 저마다 얘기를 나누는 사이 입구에서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는 상황을 보더니 금방 진수의 자리로 걸어온다.
짝짝짝짝!
“이야, 배포가 어마무시하게 크신 분들이네.”
40대 초반의 중년인이 손뼉을 치며 진수와 형제들을 향해 다가온다.
“태사원의 총관이다!”
“쟤들은 이제 죽었다.”
태사원(太師院)의 총관 금백(金帛).
20대까지만 해도 청년십대고수에 들 정도로 뛰어난 검객이었다. 근데 태사의 그늘 밑으로 들어간 이후 지금껏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우리보다 배포가 더 크단 거야?”
금백이 거드름을 피우자 태운이 비꼬듯이 말한다.
“이야, 배포만 큰 게 아니라 입담도 제법일세.”
“멍청한 놈, 자길 욕하는 지도 모르고 입담이 좋단다.”
이번에는 강펀치가 날아간다.
“으음!”
충격이 큰지 금백의 표정이 굳어진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는 순간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지..진수 형님이 아니십니까?”
“네놈 눈엔 내가 아직 형으로 보이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이 세상에서 형으로 모시는 분은 한 사람뿐입니다.”
“지랄을 해요. 그런 놈이 떠날 땐 말도 없이 가냐?”
금백과 진수는 잘 아는 사이다. 과거 금백이 승상부에 적을 둔 적이 있었고, 두 사람은 두 살 차이로 진수가 형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태사원에 의지하게 되어 그만.....”
승상부와 태사원이 경쟁관계에 있다 보니 떠날 때 말하기가 곤란했다는 뜻이다.
“불과 5년 만에 총관이라.... 대단하구나.”
“모두가 형님과 승상어른의 가르침 덕분이지요.”
“그런 소릴 듣자고 벌거숭이인 널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말 속에는 깊은 형제의 정이 듬뿍 담겨 있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승상부의 둘째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막내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언젠가 알게 되겠지.”
“그 말은 이유가 있단 말씀이오?”
“어쩌면 영원히 네게는 말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크크크크, 하지도 못할 말을 왜 하는 거요?”
“네 스스로 찾아보란 뜻이다. 궁금하면.”
“말로 장난치는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려.”
금백은 서서히 감정을 드러낸다.
“항상 불만불평에 잘난 척하는 네놈이랑 같은 거지.”
“흐흐흐흐! 누가 들으면 진짜 형제인 줄 알겠소.”
“궁금하면 그것도 알아보든지.”
“뭐요?”
“못 들었으면 흘려버려라.”
“아! 됐소. 그보다 일단 좀 따라가야겠소.”
“누가, 왜, 어딜?”
“개, 돼지가. 이유는 없다. 돼지우리로.”
진수가 묻고, 태운이 답한다.
“그 말이냐?”
“뭔 소리요? 우리 대장이 좀 보자네.”
“우린 남자는 별로 안 좋아해. 그리고 보고 싶은 놈이 와야지.”
태운이 계속해서 딴지를 건다.
“어이, 넌 좀 빠져라. 형들이 얘기하는 데 애들이 끼어드는 거 아니다.”
“지랄하네. 누가 형이야? 좋은 말 할 때 꺼져라. 죽기 싫으면.”
태운은 결정타를 날린다. 갑자기 금백의 얼굴이 붉어진다.
“꼬나보면 어쩔 건데? 개뿔도 없는 것들이 거들먹거리기는. 쪽수가 많다고? 그런 건 삼류들한테나 써먹는 거야.”
태운은 의도적으로 도발한다. 반대로 금백의 태도는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한다.
“어쩔 거요? 형이 제일 연장자인 것 같은데, 결정을 하시오.”
“우리 형제는 나이가 많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씨발,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정말 피를 보고 싶어?”
“원래 피를 볼 생각이 아니었니?”
태운의 말이 사실이다. 금백은 피를 봐서라도 끌고 갈 생각이었다. 헌데 진수가 끼어들면서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진수 형, 난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 형도 태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그가 직접 나서면 끝장이야.”
“놀고 있네. 마지막 경고다. 우리야 말로 조용히 꺼지면 더 이상 문제 삼진 않겠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우릴 건드리면 그땐 니들은 물론 대가리 놈도 이 세상 하직이다. 알았냐?”
태운은 태사를 죽인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형님, 저놈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누굴 죽인다는 거요?”
금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진수에게 되묻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에 말을 잇지 못한다.
“내 동생들은 한다면 하는 아이들이다.”
“뭐..뭐요? 지금 그게 승상의 아들로서 할 말이오?”
“그 말은 넌 태사가 아버지를 죽이라고 해도 거부할 수 있다는 거냐?”
“무..무슨 말이오? 누가 누굴 죽인다고요?”
“후후후, 총관이란 놈이 태사의 정체를 모르다니. 그 동안 연기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
금백은 아무 말 없이 한 동안 진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몸을 돌린다.
“좋소.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리다. 하지만 곧 날 그냥 보낸 걸 후회하게 될 거요.”
“나도 한 마디 하지. 난 동생이 역모 죄를 지어도 버리지 않는다. 대신 그놈을 수렁에서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잊지 마라. 니 스스로 날 형님이라 불렀다는 걸. 그리고 궁금한 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부르르르...!
금백은 등을 돌린 상태에서 몸을 떨다가 그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 자완 무슨 관계요?”
“저놈이랑 내 목숨 중에 선택하라면 난 저 놈을 지켜야 한다.”
“형님의 목을 포기해서도 저 자를 구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래.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면 내 행동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태운의 질문에 진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건 저 양반이 형의 친동생이란 말 이외엔 설명할 길이 없소. 그렇게 이해해도 되겠소?”
“.....”
진수는 대답 대신 눈을 감고 깊은 상념에 잠긴다. 이거 어째 이번 일은 순탄하진 않을 것 같다. 그때 갑자기 진수가 눈을 뜬다.
번쩍!
“만약에 말이다. 태사가 나와 진호, 그리고 아버지의 관계를 알고 호야를 끌어들였다면 어떻게 되는 거니?”
“형! 무슨 말이야? 차분하게 말해봐. 알아들을 수 있게.”
“그래. 금백이, 아니 진호는 내 친동생이야. 사실 나도 저 놈이 승상부로 들어온 뒤에야 알았어.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태사가 수작을 부린 것 같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먼저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부터 알아야 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리 집안은 조부님이 억울하게 역모사건에 휘말려 멸문을 당했다. 근데 조부님이 아무런 뒷배가 없는 승상, 즉 아버지를 젊은 시절부터 많이 도와주셨나봐. 그래서 날 뒤로 빼돌려 양자로 삼았던 거야. 진호는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다고 들었다. 근데 몇 년 뒤 우연히 그놈이 양자로 들어오게 됐어.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물론 나도 전혀 몰랐다. 후후후, 형이란 작자가 친동생을 못 알아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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