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은 시작되고 – 7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반격은 시작되고 – 77
“뭐하냐? 난 말과 행동이 다른 놈들을 아주 싫어한다.”
무진은 얘기를 하느라 제자리 서 있는 동생들을 보며 주먹을 들어올린다. 순간 세 사람은 오뚝이처럼 튀어 오르며 자세를 잡는다.
“니들의 결연한 의지를 보면서 나도 감동을 받았다. 해서 수련 강도를 좀 더 높이기로 했다.”
“예에?”
“여기서 어떻게 더 강하게 한단 말입니까? 내력도 사용 못하는데.”
“이 자세로 일다경만 가도 우린 죽습니다.”
“죽는지는 두고 보면 알 테고, 지금부터 그 자세로 한 사람이 둘을 업고 간다. 교대는 한 시진 단위로 한다.”
“예에? 두 사람을 업는다고요?”
“그래. 마륜이부터 시작해라.”
무진은 그렇게 말하곤 호란의 손을 잡고 휑하니 가버린다.
“이건 일형의 업보요. 업보.”
“내가 왜?”
“일형이 그랬잖소? 대형의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그럼 니들은 반대했니?”
“그래도 우린 일형처럼 강하게 말하진 않았소. 그러니까 책임지시오.”
“어떻게?”
“계속해서 일형이 우릴 업고 가는 거요. 그럼 대형의 무공을 빨리 배우고 계속 일형 노릇도 할 수 있잖소?”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마륜이 십대마공의 기운을 모두 제거할 때까지 두 사람을 업고 다녀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의외로 마륜이 무진의 말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얘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임화와 왕개의 태도도 달라진다. 다시 승부욕이 발동한 것이다.
“안 됩니다. 우리 몫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우리가 일형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절대 양보할 수 없습니다.”
“후후후! 마음대로 하십시오.”
얘기가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자 무진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괜찮을까요? 내력도 사용하지 않는데.”
“걱정 마시오. 저들은 수많은 고난을 극복한 걸물들이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할 거요.
“안 되면 당신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겠죠?”
“후후후,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합시다.”
이렇게 무진 일행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북경의 인근의 천진.
< 북경만큼 크지 않지만, 북경보다 더 부자들이 많은 동네. >
< 황족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 >
<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장. >
천진이란 이름 뒤에 항상 따라 붙는 말들이다. 하지만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인구대비 거지들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고, 도둑들이 가장 많은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휘황찬란한 불빛, 귀를 자극하는 음악소리, 여인들의 웃음소리, 점원들의 손님 부르는 소리, 그리고 중원제일의 요리사들이 만드는 음식 냄새. 이것들은 모두 천진 시내 유흥가의 풍경이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웅장하지만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앞을 점잖게 생긴 사내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저희 영웅루는 중원제일의 맛을 자랑합니다. 한 번 맛보면 최소 열 번은 찾게 되는 영웅루에서 꿈같은 밤을 즐겨보세요.”
“황학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맛도 최고, 미모는 천하제일, 배당금은 중원제일. 이 모든 걸 황학루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점원들이 호객행위를 하면서 손님들을 가로채지만, 워낙 관광객과 원정 도박꾼들이 많다 보니 어딜 가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때 이상한 풍경이 연출된다.
“월향(月香)이가 출근한다!”
“월향이가 떴다!”
골목에 가마 한 대가 나타나자 주루의 점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잡는다.
월향.
당금 22세. 유흥가 출신이면서 천하5대미인에 들어가는 여인이다. 천진의 황족과 부호들이 그녀를 후처로 들이기 위해 집요하게 유혹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는 도도한 여인이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남자가 없는 건 아니다.
태사 양곤.
당금 65세. 역대 최연소인 30세에 태사가 된 인물이다. 황실에서 최고위 관료는 승상이지만, 명예로 친다면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 바로 태사다. 승상이 권력을 가졌다면 태사는 명예를 먹고 산다. 그가 그렇게 유명 인사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바로 황제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월향은 오직 태사 양곤을 위해 이곳 유흥가에 나온다. 그녀가 떴다는 건 오늘 양곤이 이곳에 나타난다는 걸 의미한다. 특이하게도 월향은 특별히 소속된 주루가 없다. 양곤이 원하는 주루면 어디든지 간다. 이곳 유흥가에서 유일하게 그녀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오늘은 가마가 영웅루 앞에 멈췄다. 순간 유흥가의 모든 시선이 그곳에 집중된다. 다른 주루의 점원들은 영웅루의 점원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보내고, 사내들은 월향이가 가마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린다.
“우와! 저게 사람의 얼굴이냐?”
“저런 계집을 낳은 어미는 어떻게 생겼을까?”
“니 엄마랑 정반대로 생겼겠지.”
“미친 놈, 그래도 우리 엄만 니 엄마보단 예뻤다.”
“지랄하네. 난 니 엄마를 젊었을 때 봤지만, 넌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봤잖아?”
월향이 가마에서 내리자 사방에서 사내들의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자들의 안타까운 투정이다. 그녀가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막 주루로 들어갈 찰나에 돌발사태가 발생한다.
“어멋!”
“이..이런! 아이고고고.”
“쿠웅!”
한 젊은 사내가 영웅루를 나오다 월향의 옷자락을 잘못 밟아서 그만 넘어진 것이다. 근데 넘어지면서 그녀의 옷자락도 같이 끌고 가 둘이 같이 쓰러진다. 그것도 월향이 사내의 몸을 덮친 꼴이 된다.
“어머머!”
그녀는 황급히 일어서려다 사내의 얼굴을 보고는 잠시 머뭇거린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녀의 눈빛은 크게 흔들린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점원을 비롯한 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달려가지만, 그녀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죄송해요. 제가 앞을 잘 보고 다녔어야 하는데, 다친 곳은 없으세요?”
“괜찮습니다. 제 불찰로 생긴 일인 걸요. 낭자는 괜찮으시오?”
“전 공자님 덕분에 무사하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월향은 농담을 한다. 자신이 사내의 몸 위로 넘어져 다치지 않았다는 거다. 보통 여인으로선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보는 눈도 많은데 이제 일어나야 하지 않겠소?”
그때까지도 월향은 사내의 위에 누워 있었다.
“어머! 힘드셨죠? 제가 보기보단 좀 무거운 편이랍니다.”
그녀는 일어나면서 손을 내민다.
“고맙소.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손을 잡아보긴 처음이오.”
“호호호! 그런 말은 아무리 들어도 기분이 좋군요. 당신도 어딜 가든 못 생겼단 소린 안 들을 것 같은데요?”
“그 말도 듣기가 나쁘진 않구려.”
“혹시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이런! 내가 먼저 물어봐야 하는데, 실수를 했소.”
“전 월향이라고 해요. 어릴 적엔 부모님들이 소향이라고 불렀지요.”
“아, 당신이 이곳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그 아가씨였구려. 참! 난 곤일이라고 하오. 반갑지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진가 보오.”
그렇다. 사내는 바로 곤일이다. 그는 진수와 태민 사형제를 기다리다 밖으로 나오는 길이다.
“바쁜 일이 있으세요?”
“형님들이랑 약속을 했는데, 오지 않아서 나와 봤소이다.”
“아, 형님들을 찾아나서는 중이었군요. 그럼 할 수 없이 다음을 약속해야겠네요. 실은 저도 약속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시오.”
“네! 앞으론 다른 여인들과는 부딪히지 마세요.”
“알았소. 가능하면 그렇게 하리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월향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곤일은 곧바로 몸을 돌린다. 그때 앞쪽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아!”
“일이가 먼저 와 있었구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더라.”
태민 사형제와 진수다.
“형님들도 보셨소?”
“주위를 봐라. 적어도 수백 개의 눈빛이 널 난도질하고 있단다.”
“후후후! 누가 들으면 일부러 넘어진 줄 알겠습니다.”
“그런지도 모르지.”
“그런 말씀이랑 하지 마세요. 자미 낭자의 귀에 들어갔다간 뼈도 못 추립니다.”
“널 믿고 싶지만 사내란 족속들이 워낙 음흉해서 말이다.”
태운이 은근히 곤일을 놀린다.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난 일이의 행동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진수도 한 수 거든다.
“왜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잘못은 고사하고 너무 능숙하게 행동해서 문제지. 오죽했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니까.”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야?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한다. 그런 건 타고나는 거야.”
“후후후! 하긴 보통 사내들은 그 정도 미인과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 긴장해서 말도 못하죠.”
태운은 실실 웃으면서 말한다.
“근데 계속 여기에 서 있을 거니?”
“아이고, 죄송합니다. 들어가시죠.”
곤일이 고개를 숙이며 형들을 안쪽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태민이 반대한다.
“여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조금 있으면 태사도 올 테고.”
“그럼 저기로 가시죠.”
이렇게 해서 진수와 형제들은 그 옆의 황학루로 들어간다.
“말도 안 돼! 미남계라뇨?”
자리에 앉자마자 곤일이 펄쩍 뛴다.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다. 미남계라고 하면 남자가 얼굴을 무기로 여인을 이용하는 거지만, 이번의 경우는 반대다. 내 인생의 선배로서 장담하는데 그 월향이라는 아가씨는 너한테 빠졌다. 얼굴만 보이면 저절로 접근할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태사란 인간이 우릴 건드릴 거야.”
진수가 상황 설명을 한다. 그러자 태민 사형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곤일도 강하게 반대하진 못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그렇게 정리하고, 개방의 정보가 정확해야 할 텐데....”
진수는 말꼬리를 흐린다. 그의 말 속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개방의 정보를 믿고 여기까지 왔다.
“막내의 말에 의하면 개방이 3년에 걸쳐 무려 삼십 명의 핵심 정보원을 희생시키고서야 겨우 알아낸 정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한 달 동안 우린 다섯 군데를 거쳐 이곳까지 왔습니다. 태사보다 더 높은 곳은 황제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설사 태사가 초일은 아닐지 몰라도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태민 사형제는 태사와 초일의 연관성을 믿는 눈치다. 그래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럼 일단 가까운 곳에 방을 잡고 일을 준비하자. 공식적으로 우린 황금상단의 본단에서 파견된 거다.”
“오면서 들었는데 이곳 유흥가만 해도 주루와 객잔을 포함해서 황금상단 소유 건물이 무려 스무 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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