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1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1
‘흥! 그래서 동생은 나 몰라라 하고, 둘이서만 재미 보겠단 거요?’
‘이 새낀 꼭 매를 버는 말만 해요.’
‘아얏!’
무진의 주먹이 일초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애들아, 나 먼저 들어간다.’
일초는 무진의 약을 올려놓고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혀..형님!’
‘같이 가요.’
‘대형, 누님! 우린 들어갑니다.’
곤일을 마지막으로 형제들은 모두 거대한 장강의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 그들이 소란을 벌이는 사이 색정련의 여인들과 격렬하고 열정적인 정사를 벌이던 수병들이 사라지고 없다.
“전 오라버니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저놈은 최근 몇 달간 거의 잠을 자지 못했소.”
“그 정도로 힘든가요?”
“그렇소. 자신이 살수로 있으면서 결혼을 포기한 상태였소. 하지만 최근 우리와 연을 맺으면서 그 여인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거요.”
“불쌍해서 어떡해요?”
“기다려 봅시다. 이런 건 본인이 결정해야 하는 거요.”
“오라버니 결혼만큼은 꼭 제 손으로 해드리고 싶어요.”
“우리도 같이 할까?”
“막내까지 다 함께 하는 건 어때요?”
“그거 좋네. 모든 일이 정리되면 그때 합시다.”
“준비는 제가 할게요.”
“고맙소.”
무진은 호란의 두 손을 쥐며 끌어당긴다.
“정랑!”
호란은 몸을 무진에게 맡긴다.
“당신 품에 안기면 항상 편안해요.”
“나도 그렇소. 당신 품은 어머니의 그것처럼 마음을 안정시킨다오.”
“호호호! 선실로 들어가야겠어요.”
“왜?”
“저길 보세요. 열 쌍의 눈이 우릴 주시하고 있어요.”
호란의 말대로 돛대 뒤에선 천년마녀를 위시한 색정련의 여인들이 숨어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그거야 이렇게 하면 되지 뭐.”
무진이 손을 한 번 휘두르자 거대한 돛이 두 사람과 여인들의 사이를 가린다.
“이야! 이런 방법도 있네.”
이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눌 분위기는 마련되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쯧쯧, 동생이란 것들이 형을 도와주질 않네.”
“그러게 말이에요. 삼촌들이 조카를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에요.”
일초를 위시한 동생들이 물속에서 잡은 고기들을 갑판 위로 던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선은 밤을 새워 절애도(絶崖島)를 향해 달려간다.
다음 날 저녁.
관선은 멀리 절애도가 보이는 곳에 닻을 내린다. 원래는 정오 무렵에 도착했지만 어둠이 내릴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무진 일행은 모두 선수(船首)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들어간다!”
일초가 명령을 내리자 다시 배는 천천히 움직인다. 잠시 후, 배는 비밀수로로 진입한다.
“그믐이라 달도 없는데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요?”
“함정이면 빼도 박도 못합니다.”
“중요한 건 저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불안하면 준비를 해야겠지만, 일단 맡겼으면 믿어야지.”
동생들이 걱정하자 무진이 다독인다.
“대형, 진입했습니다.”
비밀수로의 폭은 관선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생각보다 넓지만 관선이 워낙 커서 좁아 보이는 것이다. 다만 저녁이고, 불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앞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오로지 5단주의 조타술에 의존하고 있다.
끄끄끄끙끙...!
“허억! 이..이 사람아! 조심해야지.”
관선이 절벽에 부딪치려 하자 성주가 기겁하며 소리친다. 혹시 잘못되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극도로 긴장해 있다.
두 사람은 지금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자칫 비밀수로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진일행에게 맞아 죽을 것이고, 통과해도 무진 일행이 수로맹주를 처리 못하면 그에게 죽게 된다. 게다가 비밀수로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조종을 잘못해서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죽을 맛이다.
“조용히 좀 하세요. 안 그래도 간 떨려 죽겠는데, 그러다 실수하면 성주님이 책임질 겁니까?”
“아..알았네.”
“가서 부하들 단속이나 하세요. 제가 소리치면 막대로 배가 부딪히기 전에 벽을 밀어야 합니다.”
수병들에겐 기다란 막대가 지급되었다. 배가 절벽과 충돌할 경우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다.
“나더러 그런 잡일을 하라고? 자네 뒷감당할 자신 있나?”
성주는 무진 일행에 이어 5단주에게까지 무시를 당하자 분노한다.
“후후후, 우리 성주님이 자존심이 상하신 모양이네. 근데 말입니다. 그 자존심도 우리가 살아남아야 찾을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여기를 무사통과 못하면 성주님이나 전 죽은 목숨입니다. 아시겠어요?”
“으음!”
“어서 가세요. 파도가 강해서 밀려오면 배가 파손될 수 있습니다.”
“아..알았네. 근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이 속도라면 반 시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렇게 많이 걸려?”
“이런 곳에선 배가 크면 더 어렵습니다.”
“알았네. 허억!”
성주가 움직이려는 순간 쿠웅! 하고 배가 절벽에 부딪힌다.
“어서요! 또 부딪치면 가라앉은 수가 있어요.”
“아..알았네. 뭐하느냐? 빨리 밀어라. 빨리!”
성주는 5단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밑으로 내려가며 소리친다. 한편 무진 일행은 위기 상황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냥 두고 보실 거요?”
일초의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하다.
“넌 저 놈을 잘 아니?”
무진은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한다.
“얘긴 들었지만 만난 적은 없소. 자료에는 상당히 영악하고, 의외로 무공이 강하다고 나와 있었는데.... 놈이 장난치는 걸까요?”
“일단 여길 빠져나갈 때까진 지켜보자.”
‘으음! 소개가 보낸 자료에 의하면 저놈 실력이 수로맹에서 수로왕 다음으로 강하다고 했는데... 형님은 뭔가 아는 눈치군. 후후,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군.’
일초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며 5단주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그건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곤일은 그를 이전부터 알고 있는 눈치다.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뭐가?”
“전 이전에 저 자를 두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분명 그때 그 사람인데, 분위기는 다릅니다.”
“어떻게?”
“이전에 본 사람은 그냥 도둑놈처럼 생겼고, 또 우직하게 행동했습니다. 저 자도 생김새는 같지만 행동은 전혀 다릅니다. 저 자는 영악하고, 야비하며, 한 마디로 처세술이 뛰어납니다.”
“무공은 어땠어?”
“싸우는 걸 본 적은 없지만 내력도 뛰어나고, 절정의 고수라고 들었습니다.”
“근데 저 놈은 내력은 물론이고, 실력도 겨우 고수라는 소릴 들을 정도다. 지금은 단전이 파괴돼 그마저도 무용지물이 됐지만. 으음!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일초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실력을 감추고 있거나, 아님 가짜입니다.”
“후후, 안 그래도 너무 밋밋했는데 기대가 된다.”
“형님도 참, 저 자가 우릴 함정에 빠뜨릴지도 모르는데, 그게 기대돼요?”
태운이 일초에게 불만을 표시한다.
“이놈아! 무인에겐 순탄한 삶은 독과 같은 거야. 이런 일이 자주 생겨야 노력도 하고, 발전하는 거지. 안 그렇습니까?”
일초는 화살을 무진에게 돌린다.
“안 그래도 고민 중이었는데 잘됐다. 이번 일은 니가 다 처리해라.”
“나 혼자 수로맹을 요?”
“방금 니가 말했잖아? 이런 일을 통해서 발전한다고. 열심히 해서 하루빨리 독립하기 바란다.”
“하하하! 저희도 발전하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형님에게 양보할 게요.”
“부럽습니다. 형님! 아니, 축하드린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좋겠습니다.”
“전 수로왕만큼은 직접 상대하고 싶었는데, 형님에게 양보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이것들이! 그래. 나중에 보자. 내일부턴 특훈이다. 특훈!”
일초가 특훈이란 말을 하려는 순간 동생들은 모두 몸을 날려서 멀리 피해버린다.
“호호호! 우리 오라버니 이제 큰일 났네. 동생들 놀려먹기도 쉽지 않고. 무슨 낙으로 살까?”
“이런 걸 두고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거야. 장난을 쳐도 적당히 해야지. 아무리 동생이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골탕을 먹으면 대책을 안 세우겠냐?”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거요?”
“호오! 동생들이 안 먹히니까 형님을 갈구시겠다? 좋다. 앞으론 나랑 놀자. 특훈도 좋고.”
“흥! 누가 형님이랑 논대요? 난 가서 수로왕을 맡을 테니, 나머지는 형님이 알아서 하시오.”
일초는 그 말을 남기고 선미로 사라진다.
“쯧쯧, 나더러 잔챙이들을 맡으라고? 야, 니가 다 맡기로 했잖아!”
“싫으면 애들한테 맡기든가. 마음대로 하시우.”
“어이구, 저 화상! 이젠 아예 내 말도 씹어버리네.”
“호호호! 표정이 밝은 걸 보니 마음을 정한 것 같죠?”
“고집 부리면 지만 손해지 뭐. 그녀가 아니면 어느 여자가 저 성질을 맞추고 살겠소?”
“지난번에 오라버니가 정랑보고 하던 말과 비슷하네요.”
“무슨 말이오?”
“제가 아니면 정랑은 장가가기 힘들다고.”
“미친 놈! 내가 여자들한테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사귄 사람이 많나 봐요?”
“아..아니오. 당신도 알다시피 지난 세월 난 깡촌에서만 살았소. 그런 곳에서 어떻게 여자를 사귀겠소?”
“근데 왜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런 말이란 자기가 여자에게 인기가 좋다는 것이다.
“일초 저 놈이 하도 놀려대기에 그냥 해본 거요. ... 이제 거의 다 온 모양이오. 나도 가봐야겠소. 찬바람 너무 많이 쐬지 말고 들어가 있으시오.”
무진은 무안했던지 꽁지를 내뺀다.
“호호호! 순진하시긴. 그래서 전 당신이 더 믿음이 간답니다.”
반 시진쯤 지나자 5단주의 말대로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조용합니다.”
비밀수로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앞에는 커다란 호수가 나타난다.
“강 속에 있는 호수라... 아쉽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전쟁터로 변해야 하니 말이야.”
무진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일초에게 신호를 보낸다.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달린다. 목적지는 저기 보이는 불빛이다. 출발!”
일초가 내력을 실은 목소리로 소리치자 배는 빠르게 움직인다. 근데 가장 중요한 조타수를 잡은 5단주가 반대하고 나선다.
“아..안 됩니다!”
“뭐가?”
“여기엔 함정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하면 배가 공격을 받아 침몰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 마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지만...저길 보세요!”
5단주의 말대로 관선이 움직이자 호수의 중앙에서 거대한 그물이 솟아오르면서 뱃길을 가로막는다.
“쏴라!”
일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치고, 그 소릴 들은 동생들이 그물을 향해서 불화살을 쏜다. 연속으로 수십 발의 화살이 정확하게 그물에 꽂혀 순식간에 옮겨 붙는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