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구 경매
톰슨은 한참 살피다가 슬라임 하나 찍었다.
"저놈 끌어내."
장대가 슬금슬금 슬라임에게 향했다. 조준하고 끈을 당기자 집게발이 슬라임을 꽉 잡았다. 빠르게 장대를 거둬 슬라임을 통에 넣었다.
톰슨이 나무를 깎아 만든 칼로 슬라임을 헤집었다. 톡 소리와 함께 슬라임 핵이 튀어나왔다. 열 마리 골랐는데 일곱 마리에서 핵이 나왔다. 꽤 괜찮은 성과다.
핵 일곱 개를 주머니에 넣은 톰슨은 세인에게 슬라임 사체를 건넸다.
"햇빛에 바싹 말리면 가루가 된다. 서컹귀 잎 우린 물에 풀어서 양과 말에게 우선으로 먹여. 쥐는 역병에 잘 안 걸리니 남는 게 있으면 먹이고."
"양과 말에겐 얼마나 먹여야 하지?"
"그냥 주면 돼. 필요한 만큼 먹고 남길 거야."
할 일을 마친 톰슨은 평소보다 많이 서둘러서 목장을 떠났다. 말 한 마리 끌어낸 톰슨은 안장을 씌우고 항구로 달렸다. 항구에 도착한 다음 역전이라고 이름 지은 곳에 말을 맡기고 여관으로 달려갔다.
여관에서 드워프 장신구 경매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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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경매에 앞서 재미난 내기 하나 하겠다."
경매가 시작하기 전에 바칸이 내기를 제안했다.
"여기 보면 총 열다섯 점의 장신구가 있다. 드워프 장신구와 인간 장인의 장신구를 제대로 구분해내는 자에겐 드워프 장신구 하나를 선물로 주겠다."
바칸은 자기 가슴에 달린 드워프 장신구를 가리켰다.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비나크 공작을 따라온 헤노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알아맞힌 사람이 여럿이라면 어떻게 할 건데?"
"알아맞힌 사람은 다 준다."
전시대에 진열한 경매품은 보석을 세공한 장신구 세 점에 금속 장신구 열두 점이었다. 귀족이 데려온 감정사들이 앞으로 나가 장신구를 살폈다.
잠시 살피고 돌아온 감정사가 귓속말했다.
"후작, 장난치는 것 같다. 모든 장신구가 드워프 솜씨다."
후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른 귀족의 표정을 살폈다. 의아해하는 자도 있고 득의의 웃음을 짓는 자도 있었다. 아마 모두 비슷한 결론을 얻은 것 같았다.
'뒤집어서 생각해야 하는가? 그런데 어느 게 드워프 장신구가 아니라고 해야지?'
그때 비나크 공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모든 장신구가 드워프 솜씨다."
다른 귀족들도 분분히 따라 했다. 후작은 이럴 땐 자기주장 내세우기보단 대세에 따르는 게 답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후작 역시 모든 장신구가 드워프 솜씨라고 말했다.
"여기서 드워프 장신구는 열세 점이다. 일단 드워프 장신구가 아닌 두 점은 경매에서 제외하겠다."
바칸이 보석 세공품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객석에서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터졌다.
"안 된다. 내가 꼭 사고 싶었던 장신구다."
금속 실을 꼬아서 감싼 보석은 밝은 빛을 받아 선명한 물방울 모양을 형성했다. 금속 실이 가린 부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깎은 보석이었다.
보석 자체의 순도나 크기는 중간 등급 수준이지만, 절묘한 설계와 세공으로 그 가치가 수십 배는 뛰었다.
"드워프 장신구의 판매 권한은 여기 제국 출신 귀족 다미앙에게 있다. 여러분이 원하고 다미앙이 동의한다면 드워프 장신구 경매 전에 먼저 이 두 보석의 경매를 진행하고 싶다. 동의하는 사람은 의견을 발표하도록."
대부분 귀족이 동의했다. 다미앙은 뜸 좀 들이다가 고개 끄덕여 동의했다.
"이 두 보석 장식은 한 사람이 착용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는 반지고 하나는 목걸이다."
바칸은 두 보석 세공품을 함께 단상에 올려놓았다.
"이 보석은 전면에서 오는 빛만 받도록 설계했다. 아마 지금까지 여러분은 목걸이보다 반지를 더 탐냈을 것이다. 물방울이 선명한 반지의 보석과 달리 목걸이는 나뭇잎처럼 형상이 흩어졌으니까."
바칸은 목걸이를 직접 목에 걸었다. 탄성이 여러 곳에서 터졌다.
착용하여 뒷면은 빛을 받지 않게 변하자 목걸이가 진가를 드러냈다. 목에 걸린 보석은 거꾸로 된 물방울이 맺혔다.
"지혜와 생명을 상징하는 물방울이 인간의 영혼이 담긴 머리로 향했다.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커다란 축복을 담은 작품이지."
반지와 목걸이의 경매에는 다섯 명이 참여했다. 치열한 경합을 통해 480골드에 낙찰되었다.
바칸이 드워프 장신구가 아니라는 걸 밝히지 않고 그대로 팔았으면 훨씬 비싸게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8월까지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때까지 지급하지 않으면 오늘 경매는 무효인 거로 하고 다른 사람에게 판매한다. 대금은 금화로 해도 되고 물건으로 해도 된다. 물건이라면 영지 항구까지 가져다줘야 한다."
바칸의 말에 목걸이와 반지를 낙찰한 귀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귀족과 바칸이 사인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반지와 목걸이를 나무함에 넣어서 경매장 금고에 보관했다.
"이제부터 드워프 장신구 판매를 시작하겠다. 진행은 판매권을 가진 다미앙이 하겠다."
바칸은 경매 무대를 다미앙에게 내주고 객석에 앉았다. 톰슨과 존 그리고 미클이 미리 자리에 앉아서 과일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첫 경매품은 '비상하는 드래곤' 브로치다."
용이 불을 토하며 하늘을 나는 모습을 빚은 브로치였다.
"대장, 왜 제일 귀한 물건부터 내놓지? 경매에 대해 알려줄 때 귀한 물건은 가장 마지막에 꺼낸다고 했잖아."
다미앙이 제일 귀한 물건부터 꺼냈다. 미클은 비싸게 받으려면 귀한 물건을 늦게 꺼내야 한다던 말이 기억났다.
"비나크 공작을 포함해 총 열 명의 귀족이 초대장을 갖고 방문했다. 저들은 같은 편이야."
"무슨 연관이 있지?"
"경매는 사려는 사람들한테 싸움 붙이는 거야. 파는 사람을 싸움 붙이면 가격을 깎을 수 있고 반대로 사려는 사람을 경쟁시키면 가격을 더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저들이 경쟁 관계가 아니라는 거지."
"방금 내가 만든 목걸이랑 반지 사려고 다섯이 싸웠잖아."
"그건 내가 판을 흔들어서 그렇지. 저들은 아마 미리 상의가 되었을 거다. 귀족의 품위 때문에 적당한 가격까지 올리겠지만, 과한 경쟁으로 쓸데없는 지출을 하고 싶진 않았을 거야."
미클은 물론 톰슨도 바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경매에 장신구 열 점 판다고 예전에 말했어. 그리고 공작은 자신 포함해서 열 명 불러왔지. 아마 한 명이 하나씩 가져가기로 했을 거야. 장신구 하나 얻은 사람은 경매에서 빠지기로 했겠지."
미클과 톰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칸의 추측은 합리적이었다.
"난 어제 갑자기 장신구가 열 점 넘는다고 알려줬어. 정확히 얼만지는 안 알려줬고. 저들은 아마 공작이 가장 많이 갖는 쪽으로 협의를 봤을 거야. 초대장을 발부한 게 공작이니까 말이야."
"난 처음에 열다섯 점 내놨어. 아마 저들은 공작이 3점 가져가고 후작 둘이 2점씩 가져가고 백작은 1점 가져가기로 했을 거야. 남은 하나는 백작들만 경합하기로 합의 봤겠지."
존이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했다. 최근 셈하는 법을 배워서 손가락을 이용한 계산에 재미 들였다.
"맞아. 그러면 딱 맞아."
"그런데 난 두 개가 드워프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어. 13점이 되니까 저들도 난감할 거야. 어떻게 나눠야 할지 고민이었을 거야. 공작이 4점 가져가고 남은 자들이 하나씩 가져가는 건 좀 아니야. 그렇다고 공작도 2점 가져가고 후작도 2점씩 가지는 것도 아니야. 비나크 공작은 저들의 우두머리야. 일반적인 우두머리와 부하의 관계는 아니지만, 비나크 공작의 권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해. 그래야 무리를 유지할 수 있거든."
"그래서 저들이 반지랑 목걸이도 경매하라고 요구한 거야?"
"그렇지. 저들이 단지 네 작품이 탐나서 그런 건 아니란 말이야. 아마 두 후작이 하나씩 가져가려 했겠지. 공작 체면도 살리고 두 후작 체면도 살리는 방법이니까. 그런데 내가 하나로 팔아버렸어."
"그럼 어떻게 된 거야?"
미클과 톰슨은 경매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너무 궁금했다.
"경매에 참여한 다섯은 공작과 후작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거야. 미클의 작품 둘을 구매한 자는 드워프 장신구 경매에서 빠져야 해. 어떻게 보면 희생인 셈이지. 무리를 이끄는 자들에게 잘 보일 기회야."
"그럼 공작이 3점, 후작이 2점씩, 남은 6명 귀족이 1점씩 해서 나누면 딱 좋겠네?"
미클의 말을 들은 존이 다시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했다.
"첫 물건을 귀한 거로 내놓으면 9명 모두 경합할 거야. 마지막에 내놓으면 사려는 사람이 줄어서 오히려 높은 가격을 못 받아."
바칸의 말에 미클이 고개를 끄덕였다. 톰슨은 이마를 찌푸리고 고민했다.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었다. 존은 그저 계산하는 재미에 푹 빠져 이해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 비싼 물건부터 쭉 팔겠네?"
"다미앙이 네 말대로 하면 상인 자격이 부족한 거지. 귀한 물건 2개쯤은 남겨야 해. 공작이 적당히 알아서 3점 구매하고 빠진 다음에 남은 귀족끼리 피 터지게 싸울 테니까. 1점만 구매해야 하는 귀족은 귀한 거로 구하려고 공작이 빨리 빠지기를 벼르고 있을 거야."
경매는 바칸 말대로 진행되었다. 사람은 간단한 상황에선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머리가 복잡해진 귀족들은 생각이 단순해져서 다미앙의 수작에 저항 없이 끌려갔다.
첫 장신구는 공작과 두 후작이 치열하게 경합하여 결국 공작이 차지했다. 가장 귀한 장신구를 얻은 공작은 조금 흔한 장신구를 두 개 사고 일찌감치 경매에서 빠졌다.
공작이 빠진 시점에 다미앙은 귀한 물건 두 개를 연이어 내놨다. 치열한 경합으로 두 후작이 한 점씩 얻어갔다. 가장 흔한 가슴에 다는 메달 두 개로 두 후작도 보낸 다음 다미앙은 소매에 하는 장신구와 목깃에 다는 장신구를 내놔 세 번째 전쟁을 일으켰다.
경매를 마치고 계약서도 전부 작성했다. 드워프 장신구는 계약서와 함께 금고로 들어갔다. 대금을 지급하는 즉시 가져갈 수 있다.
"경매에 참여한 분 모두에게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다미앙은 바칸의 세 호위가 입었던 것과 같은 옷을 귀족들에게 세 벌씩 선물했다.
"바칸 소작. 혹시 더 없는가? 우리 가문은 자손이 번성해서 말이지. 아이가 스물이 넘어."
옷을 선물로 받은 후작이 바칸을 찾아와서 구매 의사를 밝혔다.
"귀족만 입을 수 있는 장인 로고가 찍힌 옷은 한 달에 여섯 벌만 만든다. 장인 칭호를 받은 자가 더 생기면 많이 만들 것이다."
"우리 영지에 상단 하나 있다. 달마다 여기로 와서 물건 거래하고 싶은데 괜찮은가?"
"저쪽 평민 여관 근처에 큰 시장을 만들 계획이다. 쌀이나 병장기 같은 물건이라면 영지에서 직접 사겠다. 후작의 상단이라면 내가 값을 좀 더 후하게 쳐주지."
바칸은 바로 영지 교역을 허락하는 문서 하나 만들어 후작에게 줬다. 다른 귀족들도 다가와서 교역 허락을 요구했다. 헤노르 남작도 율도르 공작을 대신하여 문서를 받아 갔다.
비나크 공작은 다른 귀족이 떠나기를 기다려서 바칸과 대화했다.
"내가 지난 거래에서 신세를 많이 진 거 같아. 이건 내 보답이니 거절하지 않았으면 해."
바칸은 공작이 건네는 물건을 받았다. 8천 명 노예에 관한 권리 문서였다.
"소작 덕분에 베르크에서 노예 8천 받아냈어. 보답으로 그 노예를 바칸 소작에게 돌려주지."
'벌써 견제 들어올 줄은 예상 못 했는데.'
바칸은 내색하지 않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기왕이면 여자랑 어린아이로 부탁하겠다. 남자 노예는 너무 먹어서 말이야."
"뜻대로 해주지. 노예를 모두 영지민으로 전환하면 소작은 명년부터 자작이 되겠군."
- 작가의말
- 띠링! 율도르 공작이 영지에 인구 8천 드랍했습니다.
- 띠링! 농지가 없는 관계로 올해를 넘기기 힘들어 보입니다.- 띠링! 주인공 특전 ‘위기는 기회로’ 발동합니다.- 띠링! 디폴트 스킬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발동합니다.- 띠링! 심화 스킬 ‘떡밥 회수’가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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