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 공국
10월 3일. 제국 사신을 태운 배가 아틀란티스 영지에 도착했다.
"제국과 17개 왕국의 적법한 통치자이자 대륙의 수호자이며 신의 가장 충실한 종인 필립 3세는···"
사신이 읽는 책봉 선언에 따르면, 바칸은 간악한 몬스터와 목숨 걸고 싸웠고 신의 의지를 널리 퍼뜨렸으며 제국과 황제에게 충성하였다.
고귀한 품성과 바른 행실은 타 귀족의 귀감이 되었으며 적과 목숨 건 싸움을 벌일 때도 결코 품위를 잃은 적 없었다.
"고귀한 칭호와 그 칭호에 어울리는 사명을 바칸에게 부여한다. 아틀란티스 공국의 설립을 정식으로 승인하며 바칸을 공왕으로 책봉한다. 그로 말미암아 제국 지배령 마르카다와 블라우크의 지배권을 아틀란티스 공국에 위임한다."
책봉이 끝난 후 황제의 하사품을 내리는 순서가 되었다.
"백은 왕관 하나, 보석 왕관 하나."
백은 왕관은 공왕이 쓰는 거고 보석 왕관은 왕비의 것이다.
"제국 혈통의 우수한 가륵말 세 필."
가륵말은 동대륙과 서대륙에서 최고로 치는 말을 교배하여 얻은 품종이다. 1세대는 양쪽의 우수한 혈통이 드러나 훌륭하지만, 2세대는 평범하고 3세대는 오히려 평범한 말보다도 못하다.
"동대륙 비단 15필. 남대륙 푸른 상아 한 쌍."
동대륙 비단으론 공왕이 평소에 입는 옷을 만든다. 푸른 상아는 공국의 국새를 만드는 용도다. 짧고 굵은 푸른 상아는 큰 도장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공국 깃발 세 개."
방패에 흰머리수리 문양이 그려진 커다란 깃발 세 개 받았다.
그 외에도 황실에선 잘 만든 접시와 수저 등을 내렸고 제국 학자의 저서 2백 권을 내렸다.
'신의 속삭임이 없다.'
'신의 속삭임'은 저자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전부터 전해온 책이다. 대부분 교단은 신의 속삭임에서 문장을 따서 기도문을 만든다.
서대륙 종교의 형성에 아주 큰 역할을 한 책으로 정상 상황이라면 공왕 책봉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제국과 교단 사이가 완전히 벌어졌구나.'
다미앙은 제국의 명예 후작이 되었고 존과 미클과 톰슨은 아틀란티스 공국의 백작이 되었다. 바칸의 책봉 의식에 이어 넷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 하는 행사도 간략히 진행했다.
"그럼 이만 마치겠다."
책봉을 끝낸 사신은 부랴부랴 배를 타고 떠났다.
"날도 늦었는데 하루 묵고 가도 되잖아. 왜 저리 서두르지?"
"여긴 삼 황자 세력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사신이 확실한 삼 황자 사람이 아니라면 빨리 떠나는 게 오래 사는 길이다."
"제국 참 살벌하구나."
"영지 관리 중에 제국 첩자가 있을 수도 있고 영지민이나 항구에 있는 자유민 중에 제국에 정보를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바칸이 미클과 관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상관없어. 일만 잘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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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국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구조를 달리한다."
관리는 영지 소속과 왕실 소속 둘로 나눴다. 영지 소속은 전처럼 영지의 업무를 보면 된다.
왕실 소속은 영지가 아닌 국가로서의 아틀란티스를 위해 일한다. 영지 관리의 월급은 영지 자금에서 나가고 왕실 소속 관리는 바칸이 월급을 줘야 한다.
"해군을 창설한다. 2백 명으로 생각하고 있고 주요 임무는 영해 방어다."
"경제부를 설치하여 조합을 관리한다. 조합은 민간 조직이니 권력이나 무력이 아닌 법과 규정으로 다스려야 한다."
"영지 서쪽과 남쪽에 일정 간격으로 작은 석성을 짓는다. 소규모 부대를 주둔하여 영지 방어를 강화할 것이다."
바칸이 한 얘기를 바탕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마르카다와 블라우크에 대한 지배권은 당분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수원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지 사람이 많아졌지만, 물 공급에 문제는 없었다. 호수의 물은 처음과 비교해도 크게 줄지 않았다.
그러나 지붕은 비가 오기 전에 수리해야 하고 외양간은 소 잃기 전에 고쳐야 하는 법이다.
"레드 벨트 상류로 모험가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수십 년 전에 큰 강이 물줄기를 트는 일이 발생했다. 그 원인이 '땅의 정령'의 분노였다. 그때부터 야만족이 비나크 지역으로 오는 발길이 끊어졌는데, 레드 벨트가 그 이유로 짐작된다.
"처음부터 붉은 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류로 가서 맑은 물이 있다면 땅을 파서 영지로 흐르게 하면 된다."
왕실 관리는 종이에 영주성 옆을 지나는 줄을 죽 그었다.
"이렇게 소 목장과 종합 목장 그리고 영주성 곁으로 해서 바다로 흘러가는 게 좋다고 본다. 단지 물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운반 수단도 된다."
"그것보단 남쪽 숲에서 구불구불 흐르게 하는 게 좋다. 그럼 마을도 여럿 세울 수 있다."
굳이 영주성까지 쉽게 이를 수 있는 물길을 터줄 필요는 없다.
"항구 도시에서 모험가를 찾아 의뢰한다. 일단 찾고 생각하자."
바칸은 확실치 않은 일로 너무 시간을 잡아먹는 게 싫었다.
"어제 들어온 정보다. 보나르 지역에서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다."
정보 취합을 책임진 관리가 보고했다. 바칸뿐 아니라 대부분 관리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이건 바하를 향해 무력시위를 벌인 다음 영지 거래 품목을 통계 낸 자료다."
쌀의 매입이 서서히 줄었고 기타 물품은 꾸준히 늘었다. 상인들을 불러들여 경제 규모를 불리기 위해 쉽게 상하거나 망가지는 물건만 아니라면 웬만해선 다 사들였다.
"확인해보니 바하에서 쌀을 시세보다 더 주고 사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쌀 파는 상인들은 바하로 갔고, 다른 물건은 바하에서 제대로 팔리지 않아 우리 영지로 찾아왔다."
"보나르 지역에서 비나크 지역과 전쟁을 벌이려는 건가?"
겔트 왕국은 총 6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수도가 있는 겔트 지역을 비롯해 3개 지역은 서 겔트로 분류되고 동 겔트도 3개 지역이 있다.
동 겔트의 3개 지역은 남북으로 쭉 나열되었다. 가장 북쪽이 비나크이고 그 밑에 보나르가 있으며 가장 남쪽에 헤크 지역이 있다.
바하에서 남쪽 바다로 통하는 강은 보나르를 지나지만 헤크 지역은 지나지 않는다. 헤크 지역은 호수나 작은 개울이 많아서 마을은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큰 강이 없어서 대규모 교역이 이뤄지지 못했고 몬스터가 많아서 소규모 상단의 움직임도 침체하였다.
비나크와 더불어 평민 영주의 세력이 강성한 지역이며 서 겔트와 마찰을 가장 많이 빚는 지역이다.
"비나크의 농간인가 아니면 뮬리치의 수작인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귀족 영주와 평민 영주, 서 겔트와 동 겔트, 절반 정도 귀족의 지지를 받는 왕실과 평민 영주들 지지를 받는 교단, 겔트 귀족과 제국 혈통의 귀족.
겔트 왕국은 대립 구도가 너무 복잡했다. 평민 영주들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비나크 공작과 보나르의 세 귀족이 손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게 아니면 뮬리치가 같은 제국 혈통인 보나르의 세 귀족에게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다.
"비나크 공작인 경우와 베르크 자작인 경우를 가정하고 분석해라. 정보가 틀릴 수도 있으니 두 가능성 모두 버릴 수 없다. 비나크가 아니고 서 겔트와 전쟁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헤크 지역은 남쪽 바다로 통하는 강을 자신들 지역에 넣으려고 예전부터 노력했다. 보나르가 헤크를 도와 미아르 지역을 공격할 수도 있다."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바로 보고해라.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간다."
"구름꽃을 튀겨서 만든 '솜'이라는 물건을 천 사이에 끼워 넣어 옷을 만들었다. 가죽옷보다 가볍고 더 따뜻하다. 안을 천으로 하고 겉을 얇은 가죽으로 하면 내구성도 기대할 수 있다."
"솜을 넣은 이불을 만들면 장작을 많이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모자와 장갑 그리고 신발에도 넣을 수 있다."
관리들이 다투어 발언했다. 더 중요한 직책을 맡으려면 자기 능력을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문제점은?"
"튀긴 덕분에 물에 젖어도 사라지진 않지만, 여전히 습기에 취약하다. 자주 불에 쫴 말려야 한다."
"해결책은?"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이다."
가죽은 여러 층으로 나뉜다. 가장 안쪽의 내피는 얇고 탄성도 괜찮다. 그러나 강한 힘을 받으면 쉽게 찢어지는 약점 때문에 쓸 만한 곳이 없었다.
"내피로 주머니를 만든 다음 솜을 채워 넣고 풀로 붙인다. 3센티 지름의 둥근 모양의 솜덩이가 된다. 내피로 감쌌기에 물에 닿아도 큰 문제가 없다. 이불이나 옷에 이걸 넣으면 된다. 풀로 붙여도 되고 실로 기워도 된다. 솜덩이를 작게 만들면 모자나 장갑에도 넣을 수 있다. 신발은 아직 모르겠다."
"좋다. 경제부를 너한테 맡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설득해서 내게 명단을 올려라."
관리들이 부러운 눈으로 경제부 장관이 된 자를 바라봤다. 아틀란티스 영지에는 아직 사치품이 부족했고 소비할 만한 것도 많지 않다.
관리들이 받는 돈은 넉넉하다 못해 남아돈다. 이러한 환경은 돈보다 명예를 더 추구하는 경향을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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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앙, 헤크 지역 아는 거 좀 있어?"
회의를 마친 바칸은 마르카다와 블라우크와 교역을 마치고 돌아온 다미앙을 찾았다. 증기 기관을 단 5천톤급 배는 일정을 소화하는 데 보름 정도만 걸렸다. 마르카다에서 짐을 싣고 부리는 데 사흘 걸렸고 블라우크는 배를 댄 덕분에 하루만 걸렸다.
"정말 안타까운 곳이지."
몬스터가 많이 산다는 건 사냥과 채집만으로도 먹고 살기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호수나 작은 냇물이 많아서 농사짓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마을 만들 조건을 갖춘 곳이 넘쳐난다.
"작은 마을이 수두룩한데 큰 마을은 생기지 않아."
강 두 개를 낀 바하도 어느 정도 크기가 된 이후에는 성장을 멈췄다. 큰 마을이나 도시가 형성되려면 충족해야 할 조건이 너무 많았다.
"떠돌이 몬스터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야. 먹을 게 많으니 떠돌이들도 생존이 어렵지 않아."
비나크 지역의 떠돌이 몬스터는 오래 살지 못한다. 먹거리가 부족해 인간 마을을 습격하다가 죽기 십상이다. 그러나 헤크 지역은 떠돌이 몬스터도 넉넉히 먹고 살 만큼 풍족했다.
대규모 상단도 소규모 상단도 헤크 지역에서 상행하러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겨울도 비나크처럼 춥지 않아. 그러니 나무를 많이 베지 않지."
비나크는 나무를 너무 베서 문제인데 헤크는 나무를 안 베서 문제다. 장작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 굳이 숲을 힘들게 개간하지 않아도 배곯을 일이 없다.
"식량을 자급자족하니 상인들이 찾지 않아. 교통이 불편한 것도 있지만, 상인은 이익이 있는 곳은 길을 만들어서라도 가는 족속이잖아."
"그래서 평민 영주뿐이구나."
헤크 지역엔 귀족 영주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그마저도 몰락한 귀족이어서 평민 영주와 다름없다.
"헤크 지역은 왜?"
"다미앙, 영주 되고픈 생각 없어?"
"갑자기?"
"헤크 지역에 큰 마을 하나 만들고 싶어. 비나크 지역은 공작과 자작이 있어서 시기를 기다려야 해. 헤크 지역이 손 쓰기 가장 좋은 거 같아."
"왜 하필 나야?"
"제국 귀족. 왕실이 함부로 건드리기 부담스럽지."
다미앙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영지는 제국 출신 인재가 넘쳐났고 유능한 상인들이 찾았다. 다미앙 수준으론 이들과 경쟁하기 힘들다.
게다가 헤크 지역에서 식량을 사들이며 많은 영주와 친해졌다. 바칸의 도움으로 큰 마을을 만들고 군사력만 확보하면 헤크 지역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좋아. 많이 도와줄 거지?"
- 작가의말
아틀란티스 공국이 탄생했습니다. 바 공왕도 슬슬 왕비를 물색해야 하는데.
1. 수인족 소녀 냥냥이 - 메이드 스타일.2. 엘프족 소녀 새침이 - 츤데레 스타일.3. 제국 황제의 외동딸 - 콧대가 높고 잘 퍼주는 스타일.4. 플리모프한 드래곤 - 말해 뭐해.5. 천마의 딸 - 플리모프한 드래곤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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