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 구획
바칸은 율족한테서 총 5개의 정령석을 얻었다. 몇 달 지난 지금 햇빛과 달빛을 받아 매우 투명해졌다.
영지에는 현재 세 부족의 드워프가 있다. 바위와 금속과 장신구. 바칸은 각 부족에 정령석 하나씩 줬다.
바위 드워프가 16명이 되었고 장신구를 제작할 드워프는 8명이 되었다. 금속을 이용해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 드워프 역시 8명이 되었다.
"이 두 갠 락과 링이 먹고 그림자 합쳐."
그림자는 짝수로 합쳐야 한다. 둘, 넷, 여섯 이런 식이다. 바칸은 제발 새로운 부족의 드워프가 나오길 빌었다.
"금속 하나, 바위 하나, 장신구 하나, 나무 셋."
"드워프가 나무도 다뤄?"
"희귀 부족이야. 아무래도 여기에 바위와 금속 그리고 나무가 많아서 그런 거 같아. 이런 조합은 참 드물지."
바칸 머리에 벼락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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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들 잘 봐둬. 나무 베는 기술 알려준다."
존이 시범이랍시고 도끼로 나무 잘 베는 기술을 가르쳤다. 다른 사람에겐 너무 어려웠다.
'강한 힘'으로 베는 '고급' 기술이었다.
"멍청이, 넌 나서지 마."
존에게 핀잔을 준 바칸이 제대로 가르쳤다.
"태양은 하늘에서 조금 남쪽에 있다. 그래서 남쪽이 더 빨리 자란다. 무슨 뜻이냐면."
바칸이 도끼로 나무를 찍었다.
"느리게 자란 북쪽이 더 단단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딜 찍어야겠어? 당연히 남쪽이지."
바칸 손에 들린 도끼가 적절한 리듬으로 나무를 찍었다.
"사람은 적고 나무는 많다. 그러니까 끝까지 도끼로 다 베려고 하지 마. 요 정도로 찍으면 돼."
절반 정도 찍은 바칸은 밧줄을 들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낮은 곳보단 높은 곳에 밧줄을 달아야 나무가 쉽게 쓰러진다. 그러나 너무 높으면 오히려 낭패지. 딱 요 정도, 요 정도가 좋다."
톰슨이 말에게 씌운 굴레에 밧줄을 묶었다. 말이 용을 쓰며 앞으로 걷자 우지끈 소리와 함께 나무가 부러졌다.
부러진 나무는 말이 그대로 끌고 갔다.
"큰 조로 작업한다. 셋이 도끼로 나무를 찍고 여섯은 뿌리 뽑는다. 힘으로 안 뽑히면 삽으로 뿌리 주변을 파고 특별히 굵은 뿌리는 톱으로 벤 다음 뽑으면 된다."
도끼를 든 남자들이 나무를 적당히 베면 말이 쓰러뜨리고 그대로 끌고 갔다. 목장 근처로 끌고 간 나무는 노예들이 달라붙어 가지를 베고 껍질을 벗겼다.
가지나 껍질은 물에 담가 썩혀서 쥐 먹이로 썼다. 드워프 셋이서 쓸 만한 목재를 골라냈다.
"최고급 목재다. 이건 영주성에 가져가."
못 쓸 나무는 장작이 또는 쥐 먹이가 될 예정이고 쓸만한 나무는 황무지로 옮겨 집 짓는 용도로 했다. 가구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는 바칸의 성을 짓는 낮은 바위산으로 향했다.
병사들이 뽑은 뿌리는 힘 좀 쓰는 남자 노예가 끌고 갔다. 비나크 공작이 보낸 노예는 어린 노예나 여자 노예를 빼면 다 건강한 남자 노예였다. 늙고 병든 노예는 한 명도 없었다.
나무가 사라진 곳은 여자 노예와 어린 노예들이 부러진 가지나 뿌리를 줍고 돌멩이도 주웠다.
가지나 뿌리는 모아서 목장으로 가져갔고 돌멩이는 도랑에 깔았다. 사람들이 쓰고 버린 물이나 목장에서 쓰고 남은 물이 하수도를 통해 이곳으로 흐를 예정이다.
마침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남쪽 숲의 총지휘를 미클에게 인계한 바칸은 주사기와 양젖을 들고 늑대 인간을 찾아갔다. 바칸 뒤에는 일곱 명의 호위가 따랐다. 가장 나이 많은 호위는 10살인 가드였다.
"털 진짜 많아."
늑대 인간을 본 자이르가 말했다.
"조용히 해. 호위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가드의 훈계에 자이르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가드는 가장 먼저 호위가 된 아이였고 싸움에 천부적인 자질을 갖췄다. 다미앙이 어린 노예를 고를 때 잘 싸우는 것과 똑똑한 것 두 가지를 봤는데 가드는 싸움 쪽이었다.
"호수 있는 바위산 말고 그다음 바위산 있지? 내일부터 우리가 거기서 바위를 깎을 거야. 사람 보여도 공격하지 마."
"거긴 우리 영역이다."
"매일 양젖 한 통씩 줄게. 이만큼 큰 통으로. 소금도 타서."
늑대 인간들이 모여 수군거렸다. 족장은 모두의 의견을 모아 정확히 표현하는 자이다. 영역과 관련한 중요한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순 없다.
"좋다. 대신 달이 뜨기 전에 물러나야 한다."
달이 뜨면 늑대 인간은 성질이 포악해진다. 흥분이 이성을 넘으면 영역에 침입한 인간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영지 구획을 다시 세운다."
영지는 크게 세 개 구역으로 나뉘었다. 영주성과 항구 도시 그리고 거주 도시. 현재 짓고 있는 바칸의 영주성 말고 바위산 전체를 영주성으로 부르기로 했다.
펑퍼짐한 바위산은 가장 높은 곳에 짓는 바칸의 영주성 말고도 집 지을 땅이 많았다. 미클이나 존이나 톰슨은 물론이고 금속 세공사와 그 가족도 영주성에 살기로 했다. 가죽 재봉사는 장인 칭호를 받아야 영주성에 살 자격이 생긴다.
서퍼나 세인이나 뮤릭 등 조합장과 조합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자들 역시 영주성에서 가족과 살 수 있다.
전문 병사와 호위 그리고 그 가족도 당연히 영주성에 산다. 그리고 10살 미만의 연고가 없는 아이들도 영주성에 살면서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고 각 조합에서 기술을 배울 것이다.
바칸의 원래 구상은 이랬다.
모든 영지민이 영주성에 살고 황무지에 도시를 지어 자유민들에게 내준다. 항구 도시는 잠시 찾은 손님이 머무는 곳으로 한다.
농사는 최소한으로 지을 생각이었기에 바칸의 계획엔 무리가 없다. 기술자와 병사만 보유하려 했기에 영주성만으로도 모든 영지민을 넉넉히 수용할 수 있다. 자질구레한 일은 자유민을 고용하는 거로 해결한다.
그런데 비나크 공작의 술수로 노예 8천 생겼다. 이 인구는 바칸이 10년 뒤에나 가능할 거로 예상했었다. 영지가 안정을 찾으면 자유민을 영지민으로 천천히 전환하기로 했고 그 기간은 최소 10년이라고 여겼다.
어쩔 수 없이 황무지에 지을 상업 도시를 거주 도시로 변경했다. 남쪽 숲과 가까운 쪽에 나무로 집을 지어 갑자기 생긴 사람을 수용하고 북쪽은 원래 계획대로 상업 건물을 세우기로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항구 도시와 거주도시를 합칠 예정이다.
"거주 도시 북쪽에 큰 광장을 지을 거야. 분수 광장."
바칸의 말에 락이 아주 기뻐했다. 락은 원래 영주성에 분수 광장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바칸은 바위에 구멍을 너무 많이 파면 지반이 약해진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중앙에 큰 분수를 만들고 광장 곳곳에 작은 분수를 만들어. 그리고 광장 주변의 건물은 모두 돌로 짓는다."
영지 관리들이 사무를 볼 사무청을 비롯해 도서관 등 건물도 지을 예정이다. 당분간 책 사들일 여유는 없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한 건물이기에 미리 지으려는 생각이었다.
"항구 도시엔 시장 두 개 더 지을 계획이다. 고급 물품만 취급하는 시장을 따로 지어 모든 거래에 세금 매긴다. 가게마다 간격을 두고 건물 든든하게 지어."
"물건을 대량으로 팔고 사는 시장은 매대보단 창고가 커야 할 거야. 여긴 월세 받을 생각이다. 창고는 돌로 짓고 매대는 나무로 짓는다."
"개인이 물건을 들고 와서 파는 시장은 매일 자릿세 받을 거다. 비싼 물건 파는 자는 들이지 말고. 이 시장은 모두 나무로 짓는다."
"톰슨, 같이 일할 사람 좀 뽑아둬. 영지 내 운송 수요가 늘어날 거야. 이후 겔트 왕국과 해적섬 그리고 야만족 부락까지 무역하려면 선단도 만들어야 하고. 너 혼자 다 감당할 수 없어."
"베록, 너 역시 마찬가지야. 이후 영지의 모든 창고로 들어가고 나가는 물건의 장부를 네가 총괄해야 해. 항구 도시에서 싣고 내리는 물건도 다 기록해야 하니까 사람 한둘로는 어림없어. 거주 지역에도 창고 지을 생각이고 남쪽 숲에도 지을 거야."
"대장, 다미앙의 상단에서 사람 좀 데려오는 건 어때?"
비나크 지역에서 쓸만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바하다. 비나크 마을이나 베르크 마을도 바하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남쪽과 북쪽 바다 모두와 통하고 비나크를 통해 수도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교통 요충지여서 사람이 많이 모인다.
"다미앙에겐 더 중요한 일을 맡길 생각이다. 다미앙한테 사람 좀 추천받고 왕국 수도로 가서 인재 영입해야지. 베록은 똑똑한 아이들에게 글 열심히 가르쳐. 괜히 수업 시작하기 전에 훈화 말씀이라고 반 시간씩 떠들지 말고."
떠버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외부에서 사람 영입하면 첩자가 섞일지도 몰라."
"제국에도 이만큼 살기 좋은 영지는 없어. 딴마음 안 생기게 잘해주면 돼. 그리고 톰슨 있는데 뭔 걱정이야."
그때 항구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배가 보일 때마다 종을 울리기로 했다.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바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척이면 허풍쟁이다. 중요한 얘기는 다 했으니 회의는 이만 마치겠다."
회의를 끝낸 바칸은 마차를 타고 항구로 향했다. 바칸이 항구에 도착한 시간과 배가 부두에 정박한 시간이 거의 같았다.
허풍쟁이 선장이 커다란 자루 두 개를 들고 가장 먼저 내렸다.
"20골드."
자루 하나에는 구름꽃 씨앗이 가득했고 자루 하나에는 나무 재를 묻힌 마른 카쿠 열매 조각이 가득했다.
"노어. 내 영지에서 살 생각 없어? 저기 멋진 영주성에서 가족과 함께."
"무슨 꿍꿍이야? 빨리 돈이나 내놔."
"일단 나랑 얘기 좀 하자."
바칸은 허풍쟁이 선장을 끌고 식당으로 갔다. 바칸이 주문하자 얼마 안 지나 구운 고기와 삶은 떡이 나왔다.
"저기, 물도 한 잔 가져다줘."
"뭐야! 정령이냐?"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자 선장이 기겁해 밥상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인간에게 정령은 악한 존재다.
홍수를 일으키는 물의 정령, 화산을 폭발시키는 불의 정령, 지진을 일으키는 땅의 정령, 태풍을 만드는 바람의 정령, 추위를 몰아오고 눈이 내리게 하는 얼음의 정령.
"어서 나와."
바칸은 식당 하인이 가져다주는 물로 목을 축였다. 허풍쟁이는 한참 뒤에 밥상 밑에서 기어 나왔다.
"저건 뭐야?"
"드워프 공법으로 만든 물건이야. 제국 황실에도 있는 물건인데 호들갑은."
"제, 제국 황실?"
선장은 접시에 담긴 떡과 고기로 놀란 가슴을 달랬다.
"난 해적섬이랑 야만족의 땅 그리고 바하를 이은 삼각 무역을 할 거야. 늦어도 내년에 천톤급 이상의 배 여러 척을 만들 생각이지. 선장 자리가 비었는데."
선장은 입안 가득한 고기를 꿀꺽 삼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내가 할게. 바하에 나보다 나은 선장 없어."
"배 여럿이니까 선장 여럿 필요해. 능력 좋은 선장으로 추천해. 능력만 좋으면 되니까 다른 건 생각하지 마."
"알았어. 배는 언제 만들 건데?"
"설계도를 구하고 있어. 설계도만 있으면 만드는 데 문제없어."
"다음에 올 때 가족 다 데려올게. 영지민으로 등록해 줘."
선장은 바하의 자유민 신분이다. 언제든 떠날 수 있기에 영지민 신분에서 벗어나려고 돈 지급할 필요가 없다.
"그래. 그리고 이건 25골드야."
선장은 바칸이 건넨 주머니를 열었다. 안엔 금속 테를 두른 동그랗고 납작한 나무 조각이 여럿 있었다.
"이게 뭐야?"
"우리 영지에서 쓰는 돈이야. 이 돈으로 옷을 사도 되고 음식 사 먹어도 되고 가죽 신발 사도 돼. 그리고 내년부터 집세도 받을 거야."
- 작가의말
떠버리에게 학교 교장직을 맡긴 건 주인공 최대 실수인 것 같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겼습니다.
바칸 : 노 선장, 5골드 더 넣었다.
노어 : 근데 이거 돈 맞아?
바칸 : 게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게임 머니라고 생각해. 환전소 곧 만들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수수료는 싸게 받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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