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조합
바칸 일행은 두 무리로 나뉘어 바하를 방문했다. 미클과 톰슨은 두 드워프를 데리고 물건 사러 가고 존과 바칸은 빈둥거리며 용병 조합의 접촉을 기다렸다.
"용병 조합에서 왔다. 따라와."
미리 언질을 받았기에 존은 시비를 걸지 않았다. 대신 바칸이 나섰다.
"우린 용병 아니야."
"알아. 비밀거래하려고 부르는 거야."
할 말을 마친 용병이 돌아섰다. 바칸과 존은 목덜미에 이빨 자국이 선명한 용병 뒤를 따랐다.
용병 조합은 꽤 한산했다. 여름은 상인과 용병 그리고 선원이 가장 바쁜 계절이다. 길드에 남아있는 건 사무직이거나 간부 그리고 애송이뿐이다.
아니면 권력 암투에서 밀려나 일거리를 잘 받지 못하는 퇴물이거나.
바칸과 존은 혼자 쓰기엔 너무 넓은 조합장 사무실로 안내받았다. 제국에만 서식하는 붉은 뿔 사슴의 머리가 박제되어 걸려있었고 전쟁 용병으로 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깃발 조각이 벽면을 가득 덮었다.
"조합장이다."
일선에서 물러난 지 꽤 되는지 몸이 좀 무거워 보이는 사내였다.
"무슨 거래지? 조합과는 전혀 접점이 없었는데 말이야."
"얼마 전에 오크 사냥하러 갔던 용병 몇이 주검이 되어 발견됐어."
바칸의 예상과 달리 조합장은 딴소리해댔다.
"참 안타까운 일이네? 이름이나 알려 줘. 가는 길에 교단에 들러 기도해 주게."
용병들의 복식은 다른 지역 것이었다. 바칸은 조합장이 다섯 용병 이름을 한 글자도 모른다는 데 전 재산을 걸 용의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며칠 지나서 너희 둘이 길드에 오크 가죽을 팔았어. 오크 유인하는 음식 레시피를 알고 있다는 말도 했고."
"그래? 참 공교로운 일이네?"
조합장은 바칸과 존의 표정을 계속 살폈으나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바칸은 시종일관 태연했고 존은 시종일관 아무 생각 없었다.
"우리 용병은 레시피 갖고 오크 잡으러 간 거야.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너희 둘이 우리 용병 죽이고 오크 가로챈 게 틀림없어."
조합장은 자신 있었다. 교단 법정까지 간다고 해도 승산이 충분하다. 조합이나 개인 이름으로 한 헌금을 생각하면 서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교단은 반드시 조합 편을 들어줄 것이다.
'그럼 3백 골드 어음도 사라지는 거고. 이 정도 큰 건이면 처음으로 용병 조합에서 길드장이 나올지도 몰라.'
"난 모르는 일이야."
"거짓말. 교단 법정에 가자."
바칸은 기가 막혀 큰소리로 웃었다. 아무리 못 배워먹은 용병이어도 조합장 정도면 머리가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바하의 용병 조합장은 바칸의 기대에 아주 못 미쳤다.
"말린 오크 똥집처럼 생긴 얼간이 새끼야. 뒈지고 싶어?"
바칸의 폭언에 조합장은 대꾸할 생각도 못 하고 눈만 꺼무룩거렸다. 달랑 둘이 조합 건물에서 조합장인 자신한테 욕을 퍼부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길드에 팔린 오크 가죽엔 문신이 17개 있었어. 문신 17개면 족장이야. 네가 용병 천 명 보냈어? 3백 마리 규모의 오크 부락 족장을 상처 하나 없이 잡게?"
"그러니까 내 뜻은. 너희가 레시피 가로채서 그걸로 오크 잡았으니 용병 조합에 어느 정도 나눠줘야 한다는 말이야."
바칸의 말에 당황한 조합장은 아무 말이나 쏟아냈다.
"레시피 꺼내 봐. 오크 부락에서 족장만 쏙 빼내 올 정도 레시피라면 엄청 중요한 거니까 조합에 따로 보관한 거 있겠지?"
사실은 용병 조합도 레시피 가로채려고 다섯 용병을 뒤쫓던 중이었다. 당연히 레시피 내용을 전혀 몰랐다.
"그래. 톰슨, 빨리 레시피 가져와."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험상궂은 인상의 용병들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린 것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바칸은 가장 앞에 선 놈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용병은 뱃멀미 하듯이 속이 어지럽고 하늘땅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받았다.
세븐 브레이크의 '브레이크 센스'에 속한 기술 중 하나였다.
가장 앞에 선 용병이 갑자기 멈추자 뒤따르던 놈들이 좌우로 퍼졌다. 바칸의 왼쪽 주먹이 콧날이 오뚝한 용병 콧등을 때렸다.
콧등을 맞은 용병은 코피와 함께 눈물도 흘렸다. 슬퍼서가 아니라 단지 맞은 부위가 안 좋았다. 강한 자극을 받은 눈물샘이 주인의 감정과 상관없이 액체를 생산했다.
찰싹.
바칸 등 뒤에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터졌다. 존이 벽에 건 무기를 잡으려는 조합장 뺨을 때렸다.
"죽이지 마."
바칸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뺨 때리는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조합장이 저대로 죽어버리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타격음이었다.
달팽이관의 혼란을 해소하지 못해 여전히 어질거리는 놈 배를 힘껏 걷어찼다. 눈물샘이 과할 정도로 열심히 작동하여 눈물이 시야를 가린 자도 주먹 한 대 더 맞고 쓰러졌다.
그러나 급히 오느라 맨손인 자들과 달리 뒤에 선 자들은 무기를 들었다. 불쑥 찌르는 공격 때문에 바칸은 조금씩 뒤로 물러서야 했다.
"대장, 비켜."
존의 외침이 들려오기도 전에 바칸은 벌써 옆으로 피했다. 그만큼 존의 달음박질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왔다. 벽에 걸린 커다란 금속 방패를 벗겨 든 존이 조금씩 안으로 들어오던 용병들을 덮쳤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앞장선 용병에 밀려 대부분 쓰러지고 문틀도 부서졌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도 넉넉한 문인데 존이 긴 방패를 가로로 든 탓에 문틀과 충돌했다.
거추장스러운 방패를 버린 존이 비칠거리며 일어나는 용병 허리띠를 잡았다. 한 손으로 쑥 끌어와서 두 손으로 번쩍 든 다음 몸을 틀어 벽에 던졌다.
벽이 얇은 건지 존의 힘이 너무 센 건지 벽이 일부 무너졌다.
존이 몸을 문 쪽으로 돌리자 조합장의 부름에 달려온 자들이 황급히 뒷걸음쳤다.
바칸은 단지 용병 조합과 협상해서 오크 부락을 토벌하려 했던 것뿐인데, 왜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었다.
"존, 문턱 넘는 놈은 죽여."
"문턱 밟으면?"
"문턱 밟아도 죽여."
존과 사내들이 문틀이 부서진 문을 두고 대치했다. 바칸은 의자에 앉아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했다.
"살려줘. 살려달라고."
대치하는 사이에 어느새 정신을 차린 조합장이 퉁퉁 부은 얼굴과 혀로 간절히 애원했다.
"이제부터 네가 왜 오늘 죽는지 이유를 말해줄게. 왜 죽는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죽으면 너무 불쌍하잖아."
그때 조합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무기 부딪히는 소리에 작은 비명도 섞였다.
"벌써 왔으니 못 알아듣더라도 간단하게 말할게. 난 길드에서 3백 골드 받을 게 있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용병 조합장이 데려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존은 조합장의 멍청해지는 표정을 보는 게 너무 즐거웠다.
"첫째. 용병 조합이 길드 사주를 받고 3백 골드 어음을 가진 사람을 죽였다."
"아니야. 난 그럴 생각 전혀 없어."
"둘째. 용병 조합이 어음을 빼앗아 3백 골드를 챙겼다."
"아니라니까."
"셋째. 용병 조합이 3백 골드 어음을 가진 자와 작당해서 길드장 자리를 차지할 음모를 꾸미는 중이다."
그때 소란이 그쳤다. 눈물 줄줄 흘리는 조합장의 절망에 찬 표정을 감상하는 중에 스물이 넘은 자들이 조합장 사무실 앞을 막은 용병을 치우고 존과 마주 섰다.
"존, 길 비켜줘."
바칸 역시 조합장 멱살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소매가 없는 상의를 입은 자가 30센티 정도 길이의 칼을 들고 조합장에게 다가갔다. 단추가 없는 옷은 허리에 두른 천 덕분에 펄럭이지 않았다.
푹 소리와 함께 조합장의 목이 반쯤 잘렸다. 칼이 길이에 비해 넓은 편이고 칼등에 톱날 같은 이빨이 있어서 뽑을 때 목이 썰리며 자른 효과를 보았다.
"이놈하고 저놈."
상인으로 보이는 자의 손가락질에 따라 칼잡이는 용병 둘을 더 죽였다. 하나는 존에게 던져져서 피떡이 된 자고 하나는 눈물샘이 진정하며 겨우 시야를 회복한 콧대 높은 용병이었다.
"큰일이군. 저 두 놈이 반란을 일으켜 조합장을 죽였어. 일도 많은 시긴데 빨리 새 조합장부터 뽑아야 할 거 같아.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남은 용병들이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자칫 자신들도 숙청될 수 있기에 섣불리 소리도 내지 못했다.
"넌 여기 없었던 거로 하는 게 좋겠지?"
상인의 말에 바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합장이 나보고 어음을 당장 사용하라고 협박했어."
"목적이 뭐라던가?"
"식량 운송에는 용병이 더 많이 참여한다며? 내가 어음 쓰면 식량을 급히 운송해 와야 하고. 그렇게 되면 용병들이 바하로 돌아올 것이고. 이 기회에 선원 조합이랑 상인 조합을 힘으로 장악하고 길드장 되겠다고 하던데."
"그럼 저 두 놈은 조합장과 함께 역모를 꾸민 나쁜 놈이겠군."
"놈들의 협박에 겁먹고 굴복하려던 차에 상인 조합과 선원 조합이 양심 있는 저 용병들 도움으로 나를 구했지.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해."
바칸과 상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멍청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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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울 일이 없을까?"
길드는 상인 조합과 선원 조합 그리고 용병 조합이 함께 세웠다. 당연히도 무력이 가장 약한 건 상인 조합이다.
길드 규모를 키우려면 상인 조합의 역할이 필수다. 그래서 초반에 선원 조합이 길드장 2번 맡은 후로는 줄곧 상인 조합이 차지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길드는 정체되었다. 이는 상인 조합의 무능이 아니라 바하의 한계 때문이었다. 해마다 하는 일이 똑같아지며 상인 조합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었다.
"덕분에 용병 조합에 영향력을 확대했고 선원 조합이 우리보단 용병 조합을 더 주시하게 되었다."
"잘만 하면 두 조합을 상인 조합 밑으로 둘 수도 있겠지."
바칸도 유능한 상인과 친분을 쌓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다.
바칸과 존이 용병 조합으로 간 사실을 빠르게 알아챈 게 우연인지 모르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정보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우연이라고 쳐도, 바로 스물이 넘은 사람을 모아서 용병 조합으로 쳐들어갈 정도로 행동력이 좋고 배포가 두둑한 자다.
"내가 돈이 필요해서 오크 가죽 좀 벗기려는 데 말이야."
똑똑한 놈과는 길게 말할 필요 없어서 참 편했다.
"멍청한 조합장이 거래가 아닌 협박을 했군."
조금은 어긋났지만, 아예 틀린 추리는 아니었다.
"만일을 대비해 머릿수 채워줄 용병이 좀 필요해. 오크랑 일대일로 1분 정도 버텨줄 실력이면 돼."
"가죽은 내가 전부 구매하지. 길드에 비밀로 해 준다면 시장 가격보다 5푼 정도 더 쳐주겠어. 그리고 용병 문제도 내가 해결해 줄게."
상인이 거래를 제안했다.
"최소 백 개는 예상하는데."
가죽 백 개가 아니라 문신 백 개라는 뜻이다.
"골드 넉넉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선금으로 30골드만 줘."
길드도 여유 골드가 100 안 되는 시기다. 일개 상인이 선금으로 30골드 내놓는다는 건 어림없다.
그러나 바칸은 상인 뒤에 누가 있는지 대충 짐작 가기에 상대의 지급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문신 백 개는 20골드로도 족할 텐데?"
특별한 문신이 섞이지 않은 이상 20골드도 필요 없다.
"족장 가죽이랑 주술사 목걸이까지 포함."
상인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상인 조합에 가서 선금 주지. 용병 문제도 며칠 안으로 해결한다."
선금으로 30골드 챙긴 바칸은 존과 함께 바하를 떠나 나머지 일행과 만나기로 약속한 곳으로 향했다. 미행은 붙지 않았다.
- 작가의말
브레이크 센스 - 감감 - 撼感
흔들 撼에 감각 感
턱 때리기, 뺨 때리기, 관자놀이 때리기, 뒤통수 후리기 등 다양한 초식 존재.
특징 : 아기의 죔죔권에 취약함.
세븐 브레이크의 세 번째 기술 등장했습니다. 동시에 본문에서 짧은 단락으로 왜 문턱 밟으면 안 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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