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6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62
“실컷 울어라. 사내라고 울지 마란 법은 없으니까. 근데 그렇게 계속 울다간 재미난 구경을 못할 텐데...”
재미난 구경이란 말에 두 사람은 몸을 홱! 돌리며 왕명과 등룡왕을 쳐다본다.
“명이 형님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등룡왕은 왜 저러고 있죠?”
“그러니까 재밌는 거지. 때린 놈이 맞은 놈보다 힘이 더 빠진 거란다.”
“그게 가능해요?”
“명이 놈이 꼼수를 쓰면 그럴 수도 있지.”
“꼼수라고 요? 명이 형은 그럴 분이 아닌데.”
“쯧쯧, 너흰 대체 왜 그래? 순진해서 그런 거니? 아니면 정말 멍청한 거니?”
“명이는 원래 속임수를 잘 모르는 친구입니다.”
“지랄하네. 저런 놈들이 알게 모르게 꼼수를 얼마나 부리는지 모르지?”
“설마요?”
“안 그러면 어떻게 때린 놈이 더 지치냔 말이야?”
“그야 대협께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겠죠.”
“야, 이것들 봐라. 그러니까 명이는 착하고 난 나쁜 놈이란 말이지?”
“그..그게 아니라.”
“됐다. 나 지금 무지 삐졌다. 화도 나고. 갑자기 등룡왕 저 놈을 성한 상태로 넘겨주기 싫어지네. 사지를 자르고, 인사불성인 채로 넘겨주면 어떨까?”
“아이고, 대협! 끝나고 제가 장안제일루인 해심루에서 거하게 쏘겠습니다. 제가 좀 모자라더라도 너그럽게 봐 주십시오.”
“해심루? 그 해산물 전문이라는 그 주루 말이냐?”
“예, 특식으로 대접하겠습니다.”
“흠! 그러면 생각이 좀 달라지지. 일단 명이가 어떻게 하는지 본 다음에 결정하자.”
“예, 대협!”
무진은 행수와 단장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한참을 떠들었다.
“마..마교출신이냐?”
등룡왕은 내공과 염력을 모두 왕명에게 빼앗겨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다. 왕명은 등룡왕이 마지막에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맞는 순간 그 기운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는 그걸 이용해서 전신혈도를 넓히느라 늦게 일어선 것이다.
“마교? 그게 뭐하는 종자들이냐? 먹는 거냐? 아님 입는 거니?”
“아니야. 마교가 아니고선 이렇게 될 리가 없다. 절대로!”
쫘아악!
“정신 차려! 그래서 네놈은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세상에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한 네놈은 영원히 2류다 2류!”
왕명이 가볍게 뺨을 때렸을 뿐인데 등룡왕은 열 바퀴도 더 구르더니 행수와 단장 앞에서 간신히 멈춘다.
“마무리는 어르신이 하세요.”
“며...명아, 고맙다.”
“형님, 이 은혜 잊지 않겠소.”
“형님의 꼬임에 안 넘어가고, 끝까지 버텨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하하하! 안 그래도 크게 말했는데 들었소?”
“대신 해심루에서 저녁식사는 나도 참석이다.”
“물론이지요. 마음 같아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다 대접하고 싶소. 천마경극단의 이름으로 형제분들을 다 모시겠습니다.”
“넌 어찌 된 놈이 동생들은 숨이 넘어가는데 저녁 타령이냐?”
왕명과 단주가 즐겁게 얘기하자 무진이 심술을 부린다.
“세상에 숨넘어가는 놈들이 저렇게 생생합니까? 어라? 승상이 저렇게 강했나?”
승상과 싸우는 조충이 계속해서 밀리고 있다. 겉으로 멀쩡하지만 표정이 어둡다.
“생사무가 안 먹히는 겁니까?”
“승상이 사용하는 무공이 특이해서 그렇다.”
“혹시 마교입니까?”
“그래. 흡정마공이다.”
흡정마공(吸精魔功)은 마교 십대마공 중의 하나이다.
“상대의 내공을 흡수하는 건 생사무와 같지만, 흡정마공은 흡수한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사용한다. 반면 생사무는 자연의 상태로 돌려보낸다.”
“승상의 내력이 충이보다 강해서 그런가요?”
행수의 질문이다.
“넌 아직 안 갔냐? 잔치라도 열어야지.”
“다 잡은 고긴데 천천히 요리해서 먹어야죠.”
등룡왕은 단장이 데려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맛난 요리도 너무 끓이면 타는 법이란다.”
“명심하겠습니다. 대협, 우린 삼십 년을 준비했습니다. 설사 탄다 하더라도 놈이 몰락한 이상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그럼 됐고. 근데 너 언제까지 대협이라고 할 거냐?”
“그..그럼... 예, 알겠습니다. 형님.”
첫 만남부터 그렇게 부르라고 했지만 행수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세상에 니가 형님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더 있겠냐?”
“크흐흐흐흑! 감사합니다. 대형!”
“아이고 내 팔자야. 명아, 니 형수 어디 갔니?”
“등룡장에서 한 가지를 찾을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빨리 와서 이 자식 좀 데려갔으면 좋겠다. 당최 울어대서 미치겠다.”
“동생이 형을 닮는 데 어쩌겠습니까? 하하하하!”
“그 말은 너도 울보라는 거지? 그치?”
“아, 이런! 또 당했네.”
“넌 천년이 지나도 날 못 이긴다.”
“제가 대형을 이겨서 뭐하겠습니까?”
“자식, 그 말은 마음에 든다. 그런 의미에서 설명을 해주지. 파진이 너도 잘 들어라.”
“예, 대형!”
“크게 두 가지 차이다. 첫째는 마교와 정파 무공의 차이라면 차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마교와 정파라고 나누긴 어렵지만 편리상 그렇게 구분한 거다. 널리 알져진 얘기지만 마교의 무공은 속성으로 익힐 수 있는 반면, 정파의 무공은 오래 걸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교는 편법을 사용하는 반면 정파는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지. 그래서 나이가 많은 승상의 내공이 강하고, 그걸 바탕으로 우위를 점하는 거야.”
여기까진 왕명이나 행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눈치다. 하지만 지금부터 조금 다르다.
“두 번째는 충이가 자연무예를 원숙하게 익히지 못해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네를 잘 타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예를 들어 승상이 내력을 빨아들이면 싸우지 말고 놈이 하자는 대로 따라간다. 그것도 몸속까지. 물론 보기에 따라선 기운이 빼앗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몸속을 휘젓고 다니면서 더 많은 내력을 끌고 나오면 되는 거란다.”
“결국 순리대로 하면 된다는 말씀이군요.”
“비슷한 말이다. 자연무예가 추구하는 바가 그렇기 때문이다. 저길 봐라.”
무진이 조충을 가리킨다. 그는 무진의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한다. 무진이 자신의 말을 그에게 전음으로 보낸 모양이다.
“하하하! 역시 충이는 영민하군요.”
“그럼 추개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추개에겐 좋은 기회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행수가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넌 무공에 그렇게 관심이 많아서 경극은 어떻게 했니?”
“경극도 하고 무공도 익히면 좋잖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너도 자연무예를 익혀라. 원이도 같이.”
“저..정말입니까?”
행수가 눈물을 감동을 했는지 글썽인다.
“자..잠깐! 너 또 울려고 그러지? 이번에도 울면 방금 한 말 취소다. 취소.”
“그래도 나오는 눈물을 어떻게 막습니까? 대신 소리는 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미친다. 미쳐! 명아.”
“예, 대형.”
“내 말 잘 들어라.”
“예. 말씀하십시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초랑 이놈은 절대로 붙여 놓지 마라. 알았지?”
“왜 그러십니까? 전 보기에 좋은데.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너 지금 제 정신이냐? 일초 하나도 버거운데 이놈까지 엮이면 죽음이다. 죽음. 절대로 안 된다. 절대로.”
“그게 제 힘으로 되겠습니까?”
“하긴 내 말도 안 듣는 놈들이 네 말이라고 듣겠냐?”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 말해봐라. 어서!”
“일초야 어차피 혜련이랑 결혼을 할 테고, 어르신. 아니지 이젠 파진 형님이라고 해야지.”
“헐헐헐! 너한테 형님이란 소릴 들으니 기분이 좋구나.”
“그게 아니라 형님도 장가를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대형하고 농담 따먹기 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요.”
“그거 좋네. 니가 책임지고 한 번 추진해봐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 나이에 장가간다고 하면 욕합니다. 욕해.”
“그럼 나는?”
“예에? 아, 죄송합니다.”
“쯧쯧, 그놈의 죄송하단 말은 언제쯤 안 하게 될지... 참! 얘기가 완전히 샛길로 빠졌네.”
“예, 추개 얘길 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그렇지. 추개는 경험이 좀 더 필요하다. 더구나 놈은 어린 시절부터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덩치가 작다. 저런 아이에겐 중원대장군처럼 덩치가 큰 사람이 천적이다. 원래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천적 간에는 많은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근데 저 두 사람은 내력의 차이가 많다. 중원대장군은 군인이면서도 무인 못지않게 수련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무공으론 추개가 이길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거다.”
“아! 무슨 말씀인지 이해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 어떻게 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그렇지. 저길 봐라. 추개도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상대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봐라! 처음으로 등력군을 넘어뜨렸다. 이제부터 원하는 걸 할 수 있을 거야.”
무진의 말대로 중원대장군은 추개를 공격하다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 넘어진다.
“이제 시작이라고요?”
“그렇지. 오늘 저녁은 추개가 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오늘은 천마경극단에서 내고 추개는 내일 하지 뭐.”
“저나 충이보다 더 많은 걸 얻었단 말씀인가요? 밥을 사야 할 정도로?”
“당연하지. 생각을 해봐라. 너희들은 원래 하던 것에 하나를 더 추가했을 뿐이다. 그것만 해도 결코 작진 않지만, 추개는 성격을 달리한다. 저 놈은 우선 무공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자연무예를 익히게 된 것 만큼이나요?”
“그렇지. 또한 평생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 덩치 큰 자에 대한 약점을 극복했으니 앞으로 저 아이의 무공실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거다.”
무진은 한 동안 추개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의 말대로 중원대장군의 힘을 역이용하게 되자 상황이 뒤바뀐다. 등력군은 연속으로 공격이 무산되고 역습까지 당하자 더욱 거칠게 몰아붙인다.
“크윽!”
추개는 가슴을 얻어맞고 옆으로 쓰러지며 바닥을 뒹군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나 생사무로 등력군의 배를 공격한다. 오른발이 정확하게 명치를 가격한다.
“커억!”
등력군은 놀란 눈을 하면서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진다.
“무..무슨 무공이냐?”
“네 무공은 무엇이냐?”
“.....?”
“네가 말하면 나도 말하지.”
“크크크큭! 좋다. 지금부터 제대로 한 번 놀아보자.”
중원대장군 등력군은 일어서서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는다.
“호오! 요즘은 십대마공이 유행인가 보네. 진이는 내 뒤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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