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61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61
“흐흐흐! 제법이군.”
“각주! 모처럼 재밌는 상대를 만났구려. 좋은 친구를 둔 것 같소.”
“어릴 적부터 내 무공 상대로 매일 같이 코피를 흘리던 놈이오.”
세 사람은 여전히 상대를 무시하고, 가볍게 생각한다.
“고맙다. 네놈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구나. 인사는 잘 받았다. 그럼 우리가 준비한 선물도 드려야지.”
행수가 말을 끝내자마자 단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그들은 모두 경극을 할 때처럼 각자 다른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갑자기 검을 버리더니 가슴에서 두 개씩의 화탄을 꺼낸다.
“이..이 새끼들이 돌았나?”
“피..피하라!”
“물러서시오. 어서!”
세 사람은 서로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뺀다. 하지만 단원들이 심지에 불을 붙이자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세 사람은 물론이고, 단원들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멈...춰...라! 파진, 네 이놈! 당장 불을 끄지 못할까?”
무진이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분명하다. 동시에 왕명과 조충, 그리고 추개가 나타난다. 그들은 신속하게 단원들이 가지고 있던 화탄을 빼앗아 불을 끈다. 사실 이런 행동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다. 조금만 늦어도 화탄이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물러나시오!”
조충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던 단원들이 행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물러난다.
“어르신, 정말 실망입니다. 청원 자네도 마찬가질세. 안타깝지만 여러분과의 약속은 모두 무효입니다. 계속 같은 행동을 한다면 우린 천마경극단을 저들과 똑 같이 대할 겁니다.”
왕명은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등룡왕에게 돌린다.
“각주! 지금부턴 우리와 놀아야 할 것 같소.”
“안 그래도 언제 나타날까 궁금했었다. 근데 저들을 막은 이유가 뭐냐? 그냥 두는 게 니들에게 이익일 텐데.”
“그게 바로 당신과 우리의 차이야. 당신들은 부하를 개, 돼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몇백 명 정도 죽는 건 신경도 안 쓰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 부하들이 없다면 니들 또한 개, 돼지에 불과하단 걸 곧 깨닫게 될 거야.”
“네가 바로 청운장의 장주란 놈이구나.”
“자, 농담은 그만하고 준비한 걸 풀어보시지. 가능하면 마음에 들면 좋겠다.”
“건방진 놈, 죽으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지 보겠다.”
등룡왕은 말을 하면서 손을 든다.
“참! 가능하면 초능력자나 군발이들은 빼면 좋겠소. 식상하니까.”
“호오! 그것도 알고 있었더냐?”
“각주! 그것도 괜찮을 것 같소. 오랜만에 몸이나 좀 풀어봅시다.”
“꽤 쓸 만 한 놈들 같은데, 나도 좋소.”
“그러지 뭐.”
승상과 중원대장군이 동의하자 등룡왕이 앞으로 나선다. 근데 이들은 검을 모두 내려놓는다. 권법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후후후! 후회할 텐데?”
“그렇게 주둥이를 놀리다가 우리 손에 죽어간 놈들이 수백은 넘는다.”
“누가 쓰러질지는 붙어봐야 알겠지?”
왕명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선다. 그걸 신호로 세 군데서 싸움이 시작된다.
펑! 펑! 펑! ....
처음부터 왕명 형제가 일방적으로 당한다. 등룡왕은 정체 불명의 권법으로 왕명을 몰아붙이고, 승상은 태극권과 비슷한 권법으로 조충을 공략한다.
그에 비해 중원대장군은 단순하게 힘으로 추개를 공격하고 있다. 모두 강력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공격이라 왕명 형제는 피하거나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우욱!”
추개는 벌써 바닥을 뒹군다. 하지만 둔해 보이는 중원대장군 등력군이 어느새 따라와 연속으로 공격한다.
펑! 펑!
이젠 더 이상 피하지도 못하고 겨우 손과 발로 공격을 막는다. 하지만 그것도 간단하지가 않다. 등력군의 내력이 실린 공격을 맨몸으로 막는다는 건 말이 쉽지 엄청난 충격을 감당해야 한다.
“크윽!”
추개는 두 번의 공격을 막고 튕겨나간다. 그건 왕명과 조충도 마찬가지다. 불과 십여 초만에 옷이 걸레가 될 정도로 찢어지고 흙으로 뒤덮인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영리한 놈들이다. 분명히 충격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치명상은 입지 않는다. 교묘하게 기운을 빗겨 맞고 있다.”
“후후후, 그런 꼼수가 얼마나 통하는지 보자.”
“이런 놈들은 시간을 끌면 피곤해진다. 빨리 끝내자.”
이들은 상대를 얕보고 속전속결을 위해 내력을 더 끌어올린다.
콰아앙!
왕명은 처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주먹에 왼쪽 어깨를 맞고는 뒤로 구르며 튕겨나간다. 하지만 등룡왕의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곧바로 따라와 이번에는 오른발로 옆구리를 가격한다.
“크아악!”
처음 공격에 충격을 받았는지 두 번째는 아예 피할 생각도 못한다. 그렇게 왕명은 연속으로 다섯 번의 공격을 받는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벌써 사달이 났을 것이다. 그나마 내공이 강해서 견디고 있다. 이걸 지켜보는 행수와 단장은 마음이 급하다.
“어르신, 장주가 위험합니다.”
“으음! 우리가 살기 위해 저들을 희생시킬 순 없다. 아이들을 준비시켜라.”
“예!”
단장은 즉시 몸을 돌려 단원들을 향해 손을 올린다. 공격 신호다. 하지만 그는 손을 올리려다 몸이 굳어진다.
‘그냥 지켜봐라.’
‘대..대협!’
‘대협 같은 소리하네. 그렇게 부르고 호구처럼 대하냐? 내가 만만한 모양이구나.’
‘아..아닙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행수는 즉시 무릎을 꿇는다. 아니, 꿇으려다 몸이 굳어진다.
‘지랄을 하세요. 죽을죄를 지었으니 그냥 죽어버리겠다? 그럼 끝나는 거냐? 그래. 니가 죽는 거야 그렇다 치자. 근데 쟤들은 왜 끌어들여? 저 어린 것들을 모두 죽이면 넌 지옥에 가서 마음 편히 잘 살 것 같니? 미친 새끼야!’
‘크흐흐흑! 대협! 죽여주십시오.’
‘난 너처럼 복수에 미친놈은 안 건드린다. 너 같은 놈은 죽어서도 따라다니거든.’
‘전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들을 죽게 둘 순 없잖습니까?’
행수는 왕명과 동생들을 가리킨다.
‘네 눈에는 쟤들이 죽을 것 같니?’
‘.....?’
행수는 다시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못한다. 조금 전과는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냥 찌그러져서 구경이나 해.’
‘예..에.’
이렇게 무진은 두 사람과 함께 무대에서 싸움을 지켜본다. 한편 등룡왕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진다.
‘분명히 놈은 충격을 받았다. 근데, 정작 나는 솜뭉치를 때리는 것 같다. 내 주먹에 길들여진 걸까? 아무튼 이렇게 해선 곤란하다. 한 방에 끝내야 한다. 한 방에.’
등룡왕은 일방적인 공격에도 왕명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얼굴을 붉히며 내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퍼억!
“케엑!”
소리가 크지 않다. 분명 모든 내력을 오른발에 집중해서 왕명의 가슴을 가격했다. 정통으로 정확하게 맞았고, 왕명 역시 충격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근데 등룡왕은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단전이 허전하기 때문이다. 단전에 모여 있던 기운이 반 이상 빠져간 것이다.
‘이..이게 뭐지? 단전이 비었다. 이놈이 흡성마공을 익혔나?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컥!”
그 순간 왕명의 반격이 시작된다. 바닥을 뒹굴던 왕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주먹으로 등룡왕의 턱을 날려버린다. 충격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는 간담이 써늘함을 느낀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반격이기 때문이다.
“이 개자식이! 이야압!”
등룡왕은 다시 전력을 다해서 주먹으로 왕명의 왼쪽 어깨를 친다. 조금 전에 때렸던 바로 그곳이다.
“크윽!”
“우욱!”
근데 비명소리가 왕명의 것만이 아니다. 등룡왕도 조금 전에 맞았던 턱이 돌아가며 고통을 느낀다. 오히려 처음보다 훨씬 더 아프다.
“어..어떻게 한 거냐?”
정작 놀란 건 그게 아니다. 그는 왕명의 주먹이 날아오는 걸 보고 피하면서 주먹을 날렸다. 근데 왕명의 팔꿈치가 반대 방향으로 꺾이면서 그의 턱을 가격한 것이다.
“글쎄? 무슨 일이 있었니?”
왕명은 생사무를 사용했다. 이렇게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된다.
“크크크, 고작 두 대 때렸다고 이긴 것처럼 거들먹거리기는. 그럼 이것도 피해봐라!”
등룡왕은 다시 공격한다. 이번에는 발이다. 오른발로 왕명의 왼쪽 옆구리를 노린다. 워낙 빨라선지 왕명은 그대로 맞는다. 대신 그의 주먹이 등룡왕의 왼쪽 눈을 정통으로 가격한다.
“크윽!”
“으악!”
두 사람은 동시에 쓰러진다.
“미..믿을 수가 없다. 대체 그게 뭐냐? 어떻게 사람의 관절이 반대로 꺾일 수가 있단 말이냐?”
“넌 원래 싸울 때 그렇게 말이 많니? 세심각주면 특별한 줄 알았더니 완전히 수다쟁이구먼.”
“뭐..뭐라고? 수다쟁이? 오냐! 완전히 짓밟아주마.”
우우우우웅!
등룡왕은 내력 대신 염력을 사용한다. 갑자기 주위에 회오리바람이 불고 돌멩이들이 날아다닌다. 그 영향으로 경극 무대까지 흔들리며, 그 위에 있던 무진과 행수 일행이 뛰어내린다.
“우와! 쎄다.”
회오리바람이 왕명의 몸을 휘감고 등룡왕을 향해 움직인다. 마치 바람이 끌어당기는 것 같다. 이 상태로 끌려가서 등룡왕의 공격을 받으면 왕명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렇게 왕명은 등룡왕의 염력을 견디지 못하고 끌려간다.
“어어어어어!”
“퍼엉!”
“커억!”
왕명은 피를 토하며 공중으로 날아간다.
“대..대협! 그냥 두실 겁니까?”
“넌 어째 예술을 한다는 놈이 저걸 이해 못하냐?”
“무슨 말씀이신지?”
“원이 넌 명이의 연기를 어떻게 생각하니?”
갑자기 무진이 화살을 단장에게 넘긴다.
“명이 형님이 연기를 하신다고요?”
“그럼 넌 명이가 저런 놈에게 당할 거라 생각해?”
“예에?”
“어째 말은 형이라고 하면서 그 형에 대해서 1도 모르는 것 같다. 하긴 사부가 그러니 제자 놈은 어련할까?”
무진은 행수도 힐난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자라서....”
“지랄한다. 넌 그게 문제야. 겸손이 지나치면 결례라는 말도 몰라? 뻑 하면 고개를 숙이고 잘못했대. 넌 뭘 그렇게 잘못하고 사냐?”
“시정하겠습니다.”
“쯧쯧, 그렇게 착하기만 하니까 항상 남에게 당하는 거야. 친구한테도....”
무진은 말을 하다가 자신에 대한 얘기라는 걸 깨닫고는 입을 다문다.
“하긴 누굴 탓하겠냐? 너나 나나 다 똑 같은 걸. 걱정마라. 저 놈은 반드시 니들 손으로 처단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대협!”
“그 놈의 대협 소리 좀 하지 마라. 난 니들이 좋다.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지, 누굴 괴롭히고 빼앗고 그러면 되겠냐?”
“흐흐흐흑!”
“대형! 크흐흐흑!”
행수와 단장은 무진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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