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11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나를 숨겨 적을 끌어내다 – 11
“정말 요?”
“눈으로 보고도 안 믿으면 할 수 없지. 그런 애들을 뭐라고 부르는 지 아냐?”
“글쎄요?”
“그런 걸 바로 띨띨이라고 하는 거야.”
다시 조충과 추개의 말장난이 시작된다. 하지만 소개와 왕명의 말발도 만만찮다.
“쯧쯧, 우리 고귀하신 형님들은 언제 철이 들려나?”
“아마 죽기 전엔 힘들걸?”
“그건 곤란합니다.”
“왜?”
“생각해보십시오. 형님들이 저러고 있으면 누가 여자를 소개시켜주겠습니까? 그럼 평생을 우리가 두 분을 돌봐야 합니다. 형님은 그래도 좋습니까?”
“그건 안 돼! 난 미려와 단 둘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왕명은 한 걸음 물러나며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한다.
“그래도 형님들에겐 한 가지 매력이 있어요.”
“매력? 저 놈들에게 그런 게 있었나?”
“그럼요. 우리 형님들이 이거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소개를 주먹을 앞으로 내민다. 싸움을 잘한다는 뜻이다.
“하긴 원래 여자들은 싸움 잘 하는 사내에게 뻑 가지.”
왕명의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추개와 조충의 표정이 밝아진다.
“추개야.”
“예, 형님.”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소. 근데 형님!”
“왜?”
“지난번에 북경에 갔을 때 말이오.”
“그런데?”
“여심관에서 태양장 놈들과 시비가 붙었잖소?”
여심관은 북경 홍등가의 유명 술집이다. “그랬지.”
“그때 여심관의 제일기녀인 옥정이가 내가 놈들을 해치우는 걸 보곤 완전히 반했다고 했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어?” “예. 전 그 때 고년이 그냥 날 기분 좋게 하려고 한 말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근데는 무슨 근데요? 방금 막내가 말하는 거 못 들었소?”
“막내가 무슨 말을 했지? 아! 여자들은 싸움 잘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거?”
“예.” “야,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조충과 추개 두 사람은 황급히 태양장의 무사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걸 보는 왕명과 소개의 입가에 미소를 번진다. 하지만....
“아이고고..!”
추개는 달려가든 속도 그대로 바닥을 구른다. 중원대장군부의 장수들이 검을 들고 공격하자 조충이 그를 앞으로 민 것이다.
“아이고, 형이란 인간이 동생을 죽이네.”
추개는 계속해서 넘어지면서 죽는 소릴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무서워하거나 죽을 것 같은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 있게 피하자 장수들이 작전을 바꾼다.
“합벽진을 펼쳐라! 중..원..천..하!”
뒤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스무 명의 장수들이 왕명 형제를 둘러싸고 집중 공격을 한다.
“우웃! 형님, 장난이 아닙니다.”
“검강이다! 조심해라.”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검에서 검강이 뻗어 나오며 왕명 형제를 집중 공격한다.
쩌어어어엉!
찌이익!
소개와 추개의 옷자락이 찢어지고, 조충의 머리카락도 조금 잘려나간다.
“자연무예를 펼쳐라!”
“예!”
왕명의 명령에 따라 이들도 합공을 펼친다. 그렇다고 손을 잡거나 하진 않는다. 대신 서로의 기운이 하나처럼 같이 움직인다.
챙그랑!
따앙!
연속해서 검이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형제들의 공격으로 인해 장수들의 검이 부러진 것이다.
“생사무를 펼쳐라!”
이어서 생사무를 펼친다.
“우욱! 무..물러나라!”
“악마의 무공이다!”
생사무에 의해 연속으로 다섯 명의 장수가 쓰러지자 뒤에서 지켜보던 자들이 후퇴 명령을 내린다. 그렇다고 왕명 형제들이 순순히 받아줄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소개는 장수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생사무를 펼친다.
“허억! 어떻게 무릎이 반대 방향으로... 크악!”
“이것도 무공인가? 케엑!”
“대형을 갖춰라. 합공이다. 중..원..천..하!”
다시 뒤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장수들은 신속하게 대형을 형성하며 공격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들보다 왕명 형제의 동작이 더 빠르다. 대형이 형성되기 전에 네 사람이 장수들 속으로 파고든다.
장수들도 만만찮다. 그들은 황급히 멀리 물러난다. 동시에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아온다.
“피하라!”
“우욱!”
왕명이 낌새를 차리고 소리쳤지만, 추개가 조금 늦어 왼쪽 종아리를 화살이 스치고 지나간다. 뒤이어 소개도 왼쪽 옆구리를 부여잡는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만약 이때 왕명이 나서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세를 잡고 화살이 날아오는 숲을 향해 손을 흔들자 마치 거대한 태풍이 불어오듯이 아름드리나무들이 흔들린다.
“크아아악!”
다시 한 번 더 손을 흔들자 비명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무사들이 나무에서 떨어진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동생들이 생사무로 장수들 사이를 파고든다. 옆구리와 다리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격은 위력적이다. 특히 반대로 꺾이는 팔과 다리를 아무도 막질 못한다.
“크으윽! 아무 것도 아닌 놈들인데....”
장수 중 한 명이 쓰러지면서 한 말이다. 근데 그 말을 들은 왕명이 손을 들어 동생들을 제지한다.
“그럼 다른 걸로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단 거냐?”
“그렇소.”
“후후후, 좋다. 충아!”
“예, 형님.”
“중원대장군부의 장군들께서 네가 부실해 보이나 보다. 정중하게 상대해 드려라.”
“저야 영광이죠. 겨우 무림의 말석을 차지하는 놈이 언감생심 중원대장군부의 장군님을 언제 또 뵐 수 있겠습니까?”
“장 장군. 중원대장군부의 위엄을 보여주시오.”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놈은 목을 따야 하오.”
장수들은 험한 말을 마구 쏟아낸다. 하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다.
“커어억!”
시작하자마자 조충의 발길질에 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부..분명히 관절은 정상적이었는데...”
“그럼 아깐 왜?”
“아깐 우리 실력이 니들보다 못했나 보지 뭐.”
조충은 손을 털며 제 자리로 돌아온다. 근데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천년회의 회주를 비롯한 핵심 인물들이다. 그들은 왕명 형제를 지원하기 위해서 왔다. 회주인 미려는 왕명 형제의 싸우는 모습을 넋 나간 듯이 지켜보고 있다. 특히 그녀는 왕명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회주님!”
미려를 부회주가 깨운다.
“아! 부회주.”
“계속 지켜보기만 하실 겁니까?”
“아..아닙니다.”
미려는 왕명만 쳐다보다 깜짝 놀란다.
“중원대장군부 놈들을 모두 제압하라!”
그제야 미려는 앞으로 나선다.
“예!”
천년회의 삼십 명에 이르는 초능력자들이 대답하며 장수들을 제압하기 시작한다. 부상을 당한 장군들이 초능력자들의 염력을 견뎌내지 못한다. 이렇게 장내는 금방 정리된다.
“단전만 파괴하고 모두 돌려보내라.”
미려는 상황을 자신이 직접 정리한다. 순간 조충의 표정이 굳어진다.
“누이, 그건 형님께서 처리하실 문제입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그녀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사과한다.
“아닙니다. 이양 나선 김에 회주께서 마무리를 해주시지요. 그 동안 저흰 동생들의 상처를 살펴보겠습니다.”
“아! 부상은 심한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가벼운 찰과상입니다.”
“다행이에요. 그럼 장내 정리는 저희가 할 게요.”
평소 냉철하기로 소문난 미려는 왕명 앞에선 쩔쩔 맨다. 그걸 모면하기 위해 그녀는 중원대장군부의 장수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군부가 무림사에 개입하지 않는 규칙은 수백 년 동안 황실과 무림의 불문율이었다. 근데 감히 황실을 지켜야 할 장수들이 무림의 일에 끼어들었다. 이건 황권에 대한 도전이며, 역모와 반란에 준하는 행위이다. 이에 참수로 그 죄를 물어야 하나 이 또한 무림과 황실의 불문율이기에 단전을 파괴하는 선에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만약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에는 천년회가 무림을 대신해서 중원대장군부를 응징할 것이다. 이의가 있는 자는 말하라!”
“.....”
처음에는 나서려던 장수들이 천년회라는 말이 나오자 다시 물러난다. 그들도 천년회가 어떤 조직인지 아는 모양이다. 천년회는 황권이나 군부의 이름으로 억누를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당장 시행하라!”
그녀의 한 마디에 제압된 장수들의 단전이 초능력자들에 의해서 파괴된다.
“크으윽!”
한 순간에 중원 천하를 호령하던 스무 명의 장수들이 평범한 무부로 전락한다. 근데 막 장수들을 보내고 주위 정리를 마치자 왕명을 위시한 형제들이 긴장한다. 그건 미려를 위시한 천년회의 초능력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무 뒤로 몸을 숨기시오.”
급기야 왕명이 명령을 내린다.
“강시다!”
많지도 않다. 불과 셋인데도 엄청난 기운을 쏟아낸다.
“우웃! 뭔 강시가 이래?”
추개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밀린다.
“아무래도 새로 만든 강시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없던 강시라...”
“혹시 염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신가?”
강시를 유심히 살피던 소개의 말이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초능력이 안 먹힙니다.”
바로 이것이다. 천년회 초능력자들의 말처럼 강시의 초능력은 압도적이다. 천년회의 무사들은 계속 뒤로 밀린다.
“크으윽! 마..말도 안 돼!”
“초능력이 안 먹히다니? 정말 강시가 염력을 쓴단 말이야?”
“아악!”
심지어 초능력으로 상대하던 천년회의 무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모두 물러서라!”
급기야 부회주가 무사들을 뒤로 물린다. 이런 상태에선 강시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형님! 아무래도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가자!”
지금까지 지켜보던 왕명 형제가 앞으로 나선다.
“잘 들어라. 놈들은 맞받아치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자연무예를 사용해서 놈들의 기운을 약화시켜야 한다.”
“놈들의 기운을 받아들여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란 말씀인가요?”
“바로 그거다. 대신 최대한 천천히 해야 한다.”
“대형의 당부 말씀 때문인가요?”
“그래. 지금도 어디선가 우릴 지켜보는 자들이 있을 거다. 천천히 하면 기운을 조절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형님은 잠시 쉬십시오. 누님과 얘기도 나누시고요.”
추개가 멀리 떨어져 있는 미려에게 묘한 미소를 보낸다.
“엉뚱한 생각 말고 일처리나 잘 해라.”
“알겠습니다. 가자!”
조충을 선두로 세 형제는 앞으로 나선다. 각자 강시들을 한 명씩 맡는다. 그때 미려가 부회주와 함께 왕명에게 다가온다.
“장주님, 위험하지 않을까요?”
미려의 목소리엔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초능력자들도 어쩌지 못하는 자들을 일반 무사들이 상대하겠다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 중에는 자신의 친동생도 포함돼 있으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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