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3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39
“이것 보시오. 장문인! 무슨 근거로 그런 막말을 하시오? 그럼 우리가 저 살인마들과 같은 편이란 말이오?”
“가주! 전 세가들이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니라, 그런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해명을 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주께서 해명하셔야 할 것은 왜 저들이 우리를 공격했으며 우리가 공격을 받을 때 세가들은 왜 침묵을 지켰는가 하는 겁니다. 이 자리엔 구파일방이나 세가를 제외한 수많은 정파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희 구파일방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설명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으음!”
진운자의 반박에 제갈청은 말문이 막힌다. 모든 정황 증거가 사대세가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때 세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 그들은 모두 복면을 하고 있다. 가슴에는 삼, 사, 칠이란 글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삼룡과 사룡, 그리고 칠룡이 온 것이다.
“구룡단이다!”
“삼룡이다!”
군중들이 그들을 알아본다.
“무림동도 여러분! 저희는 구룡단에서 왔습니다. 늦게 도착해서 자세한 사정을 모릅니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되었습니다.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룡단이면 나설 자격이 있지.”
“삼룡께서 잘 정리해 주시오.”
곳곳에서 구룡단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특히 사대세가 측에서 구룡단을 반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처음부터 암초에 걸려 좌초 위기에 내몰린다.
“안녕하십니까? 무당의 진운자입니다.”
다시 진운자가 나선다. 사대세가 측에선 그가 나서자 모두 인상을 찌푸린다.
“아! 오랜만일세. 극양자 선배는 건강하신가?”
“예, 어르신들 덕분에 건강하게 잘 지내십니다. 근데 조금은 의외입니다.”
진운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가 잘못됐나?”
“제가 어렸을 때니까 아마 30년은 됐을 겁니다. 그때 세 분이 저희 무당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아마 당시엔 일룡 어르신도 계셨던 거 같습니다.”
“우리가 무슨 얘길 했는데 의외라는 건가?”
“태양장과 구룡은 과거 고금제일인자에게 다시는 무림에 나오지 않을 거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태양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약속을 파기하고 무림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물론 구룡에게도 그런 유혹이 없는 건 아니지만, 끝까지 고금제일인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하셨죠. 아마 당시 삼룡 어르신께서 가장 강력하게 말씀하신 걸로 기억합니다만.”
“으음! 내가 그랬단 말이지?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세상은 변했네. 현 무림의 혼란이 우리 구룡에게 방관자가 아닌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하고 있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근데 이런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어떤 생각?”
“구룡단이나 태양장이 나섬으로 해서 무림이 더 혼란스러워졌다는 생각 말입니다.”
“뭐..뭐라고? 저 놈이?”
삼룡은 화가 나 손을 검의 손잡이에 올린다. 만약 사룡이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진운자를 공격했을 지도 모른다.
“자넨 어릴 적부터 말도 잘하고 영민하더니 결국 장문인이 됐군. 축하 하이.”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야. 내가 알기로 무당은 5년간 봉문하기로 선언했던 것 같은데 여긴 어쩐 일인가?”
사룡의 반격은 핵심을 찌른다. 순간 구파일방 쪽, 특히 무당 제자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하지만 진운자는 예상을 했다는 듯이 여유를 부린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먼저 저희 무당이 5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장로회의의 결정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운자는 품속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그대로 읽는다.
우리 무당 장로회의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
첫째 향후 일정 기간 봉문을 임시로 해제한다.
둘째, 그 기간은 중원과 무림에 흐르고 있는 암흑의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다.
셋째, 위와 같은 무림의 혼란이 해소되면 무당은 반드시 남은 봉문 기간을 실행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현 장문인이 책임지고 사퇴한다.
“이상이 이번 봉문 중단과 관련한 장로회의의 결정문입니다. 만약 남은 봉문 기간을 실행하지 못하면 저 진운자는 장문인직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으음!”
사룡은 대꾸를 못하고 신음소리만 낸다.
“그건 그렇고 어르신들께선 어쩐 일이십니까?
“아! 그게 말이야.”
사룡은 잠시 머뭇거리며 삼룡과 칠룡을 쳐다본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계속 잇는다.
“오면서 듣자니 구파일방과 사대세가가 반목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사실인가?”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구파일방과 태양장의 대립이죠. 부디 구룡단은 저희 구파일방과 척을 지지 않기 바랍니다.”
구룡단의 의도는 번번이 진운자에 의해서 차단된다.
“그럴 리가 있나? 다만 우리는 큰 적을 앞에 두고 정파 간에 반목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네. 그건 적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놈들을 처리한 후에도 정파 내의 앙금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네.”
“좋은 말씀입니다. 해서 저희 구파일방은 영웅맹 건설의 문제는 보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상태로는 영웅맹을 만들기도 전에 정파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게 좋겠군.”
사룡은 쉽게 동의한다. 구룡단으로서도 현재 구파일방을 설득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태양장 역시 무리하게 밀어붙일 경우 실익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반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무림 대회는 흐지부지 끝나 버린다.
다음 회합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없이 끝났으니, 향후 영웅맹을 건설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큰 불만이 없는 듯하다. 일단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안심하는 눈치다. 태양장은 처음엔 구파일방을 무력으로 제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심각이 개방에 의해 무너지는 걸 보고는 물러날 명분을 찾고 있었다. 그러니 오히려 퇴로를 찾은 셈이다.
이곳은 소림사에 위치한 무당파의 숙소.
일단의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극양자가 무 대협을 뵙습니다.”
극양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입구까지 달려 나와 무진에게 큰 절을 올린다.
“영감! 오랜만이야. 소림까지 먼 행차를 하셨구먼.”
“대협을 뵙는 일인데 저승이라고 멀다 하겠습니까?”
“쯧쯧, 나이만큼이나 아부도 느는군.”
“헐헐헐! 그게 다 무 대협께 배운 탓이지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자신에 놀란다네. 좋아한다. 예쁘다. 당신은 못 하는 게 뭐야? 이런 말들이 줄줄 나오니 나도 내 자신이 감당이 안 되네.”
“정랑!”
옆에 있던 호란이 무진의 옆구리를 찌른다.
“아, 내 내자일세. 처음은 아니지?”
“그럼요. 건강한 모습을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어르신의 배려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해요.”
호란은 부부가 무당산에 머물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인사를 한다.
“별 말씀을요. 대협의 부인이시면 저에겐....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무진 부부와 극양자가 인사하는 걸 보고, 진운자를 제외한 무당 제자들은 극도로 긴장한다. 극양자가 큰 절을 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과연 상대 인물이 누구냐 하는 궁금증에 서로 전음을 나누며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 인사는 그만하고 이 애들은 누군가?”
무진이 이번에는 진운자에게 화살을 옮긴다.
“봉문 기간에 새로 훈련시킨 아이들입니다.”
“이름은 정했어?”
“아..아닙니다. 안 그래도 대협께 부탁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음! 봉문 기간에 훈련시킨 놈들이니까 봉문대(封門隊)라고 하지 뭐. 어때?”
“헐헐헐! 역시 무 대협 다운 작명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봉문대다. 알았느냐?”
“예, 장문인!”
제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자, 그럼 이름도 정했으니 실력을 확인해봐야지?”
“예에?
“왜? 넌 제자들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안 궁금해?”
“하하하! 대협의 독심술은 여전하시군요. 이놈들도 그 동안 고생깨나 했습니다.”
진운자가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니 봉문대에 많은 투자를 한 모양이다.
“영감 작품이야?”
“아닙니다. 손자 놈이 하도 우겨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더니 봉문대 같은 걸 다섯 개나 만들었습니다.”
“다섯 이나?”
“예. 그 뒷받침을 하느라 제 허리가 다 휘어졌습니다.”
“이거 왜 이래? 무당수호령주가 무림제일부호란 걸 알 만 한 사람은 다 아는데.”
“대협만 아시는 거겠죠?”
“그런가? 아무튼 그 중에서 저놈들이 제일 똘똘하다는 거지?”
“사실 진운자 저 놈이 자랑하고 싶어서 데려 온 겁니다.”
“후후후! 저 정도면 자랑할 만하지. 하지만 무예는 끝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극양자는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 사이 일행은 숙소 뒤의 공터에 도착한다. 수련하기에는 적합한 곳이다. 무진 일행이 모이자 주위에 있던 소림 승려들도 하나 둘 구경꾼으로 참여한다.
“잘 들어라. 지금 하는 비무는 실전처럼 한다. 죽기 싫으면 최선을 다해라. 민이부터 한다.”
“예. 대형.”
“민이 혼자요?”
“그럼 안 돼?”
“무 대협, 진백자라고 합니다.”
진백자는 진운자가 새로 임명한 제오장로이다.
“말해보게.”
“외람된 말씀이오나 봉문대는 지난 일 년 동안 사숙조님과 장문인께서 손수 지도하신 무당제일의 세력입니다. 게다가 100:1입니다. 아무리 민이의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실전 대결은 위험합니다.”
“누가?”
“예에?”
“누가 더 위험한지는 두고 보면 알 거다. 민이는 생사무만 사용한다.”
“예, 대형!”
“반면 봉문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알았느냐?”
“예!”
“시작하라!”
봉문대의 함성과 함께 비무가 시작된다.
“크악!”
시작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비명소리가 마당을 울러 퍼진다. 태민의 발길질에 봉무대원 한 명이 쓰러진 것이다.
“허억!”
“과..관절이 바..반대로 꺾였다! 으악!”
“장문인, 아니 사형! 저게 뭡니까?”
진백자는 순식간에 다섯 명의 제자들이 쓰러지자 깜짝 놀라며 진운자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저 무공은 신체의 모든 관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그것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공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습니다.”
“너도 그렇게 봤느냐? 무 대협!”
이번에는 진운자가 무진을 찾는다.
“자연무예라는 것이다. 자신의 내공은 버리되 주위에 있는 모든 자연의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지. 물론 지금 민이는 그것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공격이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 있습니까?”
“강한 것도 있지만, 상대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예에?”
진백자는 무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못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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