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70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70
“과거에도 구룡의 막내는 아미파의 몫이었으니 사실 일 게다. 그리고 보니 구룡에 대해서 너희도 알 때가 됐구나. 이곳 일이 정리되면 설명을 해주마. 세월이 많이 변했기 때문에 변동이 있을 수는 있지만, 크게 변하진 않았을 거야.”
“알겠습니다. 허락이 난 모양입니다.”
일초의 말이 끝나자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일행은 미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일행은 여승의 안내로 장문인의 숙소에 도착한다.
“일초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일초살수라고 불리곤 했었죠. 믿으실지 모르지만 지금은 은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긴 제 형님 부부이고, 이 아이들은 제 동생입니다.”
“무진이라고 하오이다.”
“호란이에요.”
“태민입니다.”
“태운입니다.”
“곤일이라고 하옵니다. 대장로와 장문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호호호! 늙은이가 복이 많은 모양일세. 무림의 신성들을 한꺼번에 만나니 말이야. 넌 몸이 괜찮니?”
대장로는 호란에게 관심을 보인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행이구나. 네 아비의 일은 내 책임이 크다.”
“아닙니다. 아버님이 생전에 대장로님을 뵙고 인사드리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답니다.”
“영민한 아이였는데... 안타깝구나.”
“무림을 위해 하신 일이신데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아버님도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아미타불! 네가 그리 말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구나. 근데 네 아비가 전하라고 한 물건은 어찌됐느냐?”
“송구합니다만 혼란 중에 분실하고 말았습니다. 한 동안 그걸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포기했습니다.”
“쯧쯧, 목숨을 바쳐서 어렵게 구한 것이거늘... 근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느냐?”
“그건 아버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제 안전을 위해 그리하신 모양입니다.”
“아미타불! 그나마 다행이구나. 그게 나쁜 놈들의 손에 넘어갔으면 어찌 될 뻔 했느냐? 근데 무슨 일로 아미를 찾으셨소?”
호란의 일이 정리되자 대장로는 일초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건 제 형님께서 말씀하실 겁니다.”
“참! 무진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소이다.”
무진이 대장로를 평대하자 장문인의 얼굴이 굳어진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사부를 친구처럼 대하니 편할 리가 없다.
“요즘 무림 문파들이 그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대장로는 말하면서 강력한 기운을 무진에게 날려 보낸다. 하지만 무진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치 기운을 보내지도 않은 것처럼.
‘으음! 분명히 내공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내 기운을 흘려보낼 수가 있지?“
“특히 태양장과 구룡단에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요.”
대장로는 무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하지만 무진의 입에서 구룡이란 말이 나오자 금방 호기심 대신 경계심을 드러낸다.
“구룡에 대해서 잘 아시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대장로라면 모를까.”
‘이놈이 뭘 알고 자꾸 구룡을 거론하는 걸까? 위험한 놈이다. 눈여겨봐야겠다.’
대장로는 마음을 다잡고는 계속 질문을 한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두 가지 일로 왔소이다.”
“두 가지 일?”
“그렇소. 일단 아미에서도 잘 알겠지만 멸정사태가 우리를 공격한 일에 대한 해명부터 듣고 싶소.”
“으음!”
멸정사태의 이름이 거론되자 대장로와 장문인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건 아미파의 장문인으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변명을 한다면 당시 그 일은 아미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소. 게다가 무림맹의 결정사항이라 우리로선 어쩔 수가 없었소.”
장문인은 급한 나머지 얘기를 둘러댄다. 하지만 그걸 두고 볼 무진이 아니다.
“장문인께선 뭔가 착각을 하는 모양이오. 당시 멸정사태는 분명히 아미파 장로회의 결정으로 참여했다고 했소. 더구나 당시에는 무림맹이 아닌 태양장이 상황을 주도했소. 이건 어찌 설명할 거요?”
“으음!”
장문인은 대답을 못하고 표정이 굳어진다. 대신 대장로가 나선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길 바라오?”
“후후후! 대단하오. 대단해.”
“무슨 뜻으로 한 말이오?”
“요즘 아미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들을 말 몇 마디로 용서를 하는 모양인 듯해서 한 말이오. 역시 부처의 제자들이라 마음이 너그러운 모양이오. 하지만!”
무진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우린 당신들처럼 말 몇 마디로 원수를 용서할 만큼 마음이 넓지 못하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단 거요?”
“우린 아미와 끝장을 볼 준비가 돼 있소.”
무진이 말을 끝마치자 장문인의 집무실은 무형의 기운에 의해서 들썩거린다. 순간 장문인과 대장로가 깜짝 놀란다.
‘이놈의 내력이 이 정도였나? 이 상태로 이들과 싸우는 건 곤란하다.’
‘으음! 지금 상태에서 이들과 싸우면 우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이들의 비위를 맞춰서 가능한 적이 되는 걸 피해야 한다.’
대장로와 장문인은 상황 판단을 빨리 한다.
“아미타불!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한 동안 아미가 정파로서의 역할을 못한 건 인정합니다. 그 점 아미의 책임자로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러분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함한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여러분에게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에 따른 요구사항이 있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장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한다.
“좋소. 장문인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리도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소. 대신 우리에게도 한 가지 요구사항이 있소. 그건...”
무진의 말을 중간에서 대장로가 가로챈다.
“혹시 두 번째 방문 목적과 관련이 있소?”
“하하하! 역시 늙은 생강이 맵긴 맵나 보오. 그렇소. 우리는 천인문을 봤으면 해서 왔소이다.”
“천인문?”
“그렇소.”
“으음! 그건 어렵지 않소. 지난 300여 년 동안 항상 개방되어 왔으니까. 하지만 무림인들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오.”
“어떻게 다릅니까?”
이번에는 일초가 나선다.
“무림인들은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볼 수가 있소.”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습니까?”
“항상 그렇진 않았소.”
“근데 우리에게 조건을 제시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건 원래 고금제일인께서 천인문을 이곳에 만드실 때 허락하신 일입니다. 아미는 방문자에게 조건을 내걸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일종의 관리자에 대한 배려라고나 할까요?”
장문인이 설명을 한다.
“그 말씀은 아미는 우리에게 천인문을 보여주기 싫지만, 조건을 만족시키면 어쩔 수 없이 보여줘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런 셈입니다.”
장문인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좋습니다. 조건을 들어볼까요?”
“우선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하나는 최근 아미에서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걸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분 중의 한 분이 아미제일후기지수와 대결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형님!”
일초가 무진에게 화살을 넘긴다.
“후자로 하자. 그리고 일이가 나선다.”
“예에? 일이가요?”
“그래.”
“대형! 전 아직 수련이 부족합니다.”
곤일은 무진에게 무공을 배운 지가 채 한 달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 걱정하는 눈치다.
“부담 갖지 마라. 천인문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 형제는 네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 알겠습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자, 우린 준비가 됐소.”
“클클클! 제법 강단이 있는 아이로군. 실력도 있으면 좋으련만.”
대장로는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곤일은 특정 문파의 제자가 아니다. 그건 체계적인 수련을 받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곤일의 부친 곤명이 비록 점창제일 속가제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곤일이 점창의 제자는 아니다.
“자미야!”
대장로는 곧이어 밖을 향해 소리친다.
“예, 사부님!”
대답과 함께 젊은 여승이 들어온다.
“어? 어디서 많이 보던 스님이네?”
“그러게 말이에요. 아주 낯이 익네요.”
일초와 호란이 반가워한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곤일은 상당히 놀란 눈치다.
‘내가 저 스님과 싸운다고? 그건... 곤란한데.’
그는 벌써 난감해하고 있다. 그건 자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대장로 멸절사태의 제자이자, 장문인 자혜선사의 사매이다.
“어린 나이에도 장문인의 사매란 건 실력이 상당하단 건데.... 괜찮겠죠?”
“그렇소. 우리가 사람은 잘 본 것 같소.”
얘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형님!”
“아, 죄송합니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무진은 일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두른다. 근데 그때까지도 자미는 곤일에게서 눈을 떼질 못하고 있다. 곤일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돌려버릴 정도로.
‘저 사람과 대결을 하라고?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된다고 할까? 그럼 뭐라고 핑계를 대지? 아! 정말 저 분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이 없는지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그때 사부인 멸절사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마야!”
“예, 사부!”
“준비 됐느냐?”
“....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한다. 근데 이번에는 곤일이 머뭇거린다. 하지만 무진의 한 마디에 곧바로 전의에 불태운다.
“무인은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사적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나중에 큰 후회를 남긴다. 알았으냐?”
“예! 대형, 명심하겠습니다.”
‘자미 스님, 전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아무쪼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설혹 부상을 당하더라도 절 원망하진 마세요.’
‘내가 다치는 건 상관없지만 약속은 잊지 마시오.’
‘약속이라면...’
‘벌써 잊었소? 같이 차를 마시기로 한 거 말이오.’
‘아! 알았어요. 전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그 말 잊지 않겠소.’
곤일과 자미는 전음을 나누면서 바깥으로 나간다. 커다란 마당에 마주 선 두 사람은 정중하게 인사한다.
“비무는 한 사람이 중상을 입거나 항복할 때까지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또한 암수를 쓰면 패한 것으로 한다. 시작하라!”
장문인의 우렁찬 목소리로 싸움을 시작한다.
“타핫!”
자미는 장문인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곤일의 가슴을 향해 파고든다.
“우웃!”
곤일이 황급히 생사무의 보법을 펼치며 피한다. 하지만 한 번 기선이 제압당하자 계속해서 밀린다.
“호오! 자미의 아미구양공이 7성의 경지를 넘어섰구나.”
아미구양공(蛾眉九陽功)은 아미파를 대표하는 무공 중의 하나로 내공을 바탕으로 한 장공이다. 일단 한 번 맞으면 신체의 중요 장기를 서서히 무력화시키는 무서운 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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