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6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69
“그 두 곳 다 아미파와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새로운 곳을 찾아야지 뭐.”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자고 나면 적이 되는 곳이 바로 무림이니까요.”
“그러니까 둘 중에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곳이 바로 저놈들이 속한 문파란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분까지 속이고 아미파를 공격할 이유가 없죠.”
“야, 우리 일이가 제법 똑똑하구나. 우리 아름다운 스님! 이 정도면 저들이 누군지는 아시겠죠?”
“물론이에요.”
“그럼 제가 처리할까요? 아님....”
“아니에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
자미는 일초와 곤일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근데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쪽에 있던 자가 곤일을 향해 손을 내뻗는 것이 아닌가?
퍼어엉!
“크윽!”
상당히 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곤일이 뒤로 튕겨나간다. 사내들의 공격을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피하지 못한 것이다.
“고..공자님!”
자미가 곤일을 향해 몸을 날린다. 동시에 일초의 공격이 시작된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감히 내 동생을 쳐?”
곤일을 공격한 자는 이미 일초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목이 꺾였고, 나머지는 그의 회전하며 휘두른 발길질에 모두 뒤로 튕겨나간다. 그들을 처리한 건 태민 사형제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사내들이 모두 혈도가 제압당한다.
“괜찮으세요?”
“으음! 물론입니다. 이 정도로 죽진 않습니다.”
자미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비해 곤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선다.
‘내력이 실린 주먹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것도 전혀 방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데도 멀쩡하다. 내상도 입은 것 같지 않다. 설사 사부라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자미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곤일을 뚫어지라 쳐다본다.
“스님, 아무래도 이 자들은 아미에서 처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전 자미라고 해요. 식사라도 대접을 해드려야 하나 상황이 그렇지 못하군요. 송구하지만 먼저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자미는 일초에게 인사를 한 다음 곤일에게 시선을 돌린다.
“공자님의 성함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사부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자미는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던지 말꼬리를 흘린다.
“곤일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으음!”
곤일도 자신이 말을 해놓고도 놀라는 눈치다. 그건 형들이나 호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자미가 어떤 대답을 할지가 궁금해서다.
“좋아요. 그럼 그 때 뵙죠.”
자미는 다시 정중하게 인사를 한 다음 주루를 나선다. 물론 사내들은 아미파의 제자들이 끌고 간다.
근데 그들이 나가고 나서도 한 동안 침묵이 흐른다. 일초는 물론이고, 태민 사형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곤일 역시 머쓱했던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야! 자식 이거 완전히 바람둥이네.”
“일이가 이렇게 용기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 지금 숨을 못 쉬겠다. 너무 부럽고, 너무 자랑스럽다. 살아오면서 내 주변에 일이만큼 여자에 강한 남자는 없었다. 지금부터 일이는 내 사부다. 인생의 사부. 그런 의미에서...”
“야아아아...!”
“우와아아아..!”
일초와 태민 사형제는 일제히 손바닥으로 곤일의 등짝을 때린다.
“그만! 그만 해라.”
무진이 제지하고서야 겨우 장난을 끝낸다.
“야, 근데 일이가 멋지고, 용기 있는 남자인 건 인정하겠는데 일초 너 조금 섭섭하다.”
“왜요? 내가 말을 잘못했소?”
“내가 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주변에 여자에 강한 남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말 할 수 있냐?”
“으하하하하!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우? 내가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형님이 말을 했으니까 하리다.”
“무슨 말?”
“들어보시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형님이 아가씨를 꼬셨소? 아님 아가씨가 불쌍한 형님을 거둬준 거요? 우리 분명히 합시다. 여기 아가씨도 계시니까 확실하게 매듭을 지읍시다.”
“야, 꼭 그렇게까지 말 할 필요는 없잖아?”
무진은 곧바로 꼬리를 내린다.
“안 돼! 오늘은 결판을 내고 말 거야. 대체 날 언제까지 외롭게 만들 거야?”
“오라버니, 그만 봐주세요. 그렇다고 제가 희생했다고 하면 정랑의 입장이 뭐가 되겠어요?”
“에잉?”
“하하하! 오늘은 대형이 완패입니다. 완패!”
“누님까지 나섰으니 빨리 백기를 드세요.”
“백기?”
“예.”
“그럼 저놈이 기고만장할 텐데?”
“그럼 어때요? 대형에겐 항상 비장의 무기가 있는데...”
“비장의 무기? 형한테 그런 게 있었어?”
“하하하! 그렇지. 그게 있었지. 그것만 있으면 지놈이 아무리 세게 나와도 한 방에 깨갱이지.”
“비장의 무기? 그게 뭐요?”
태민과 무진의 공동작전에 일초가 갑자기 주춤한다.
“임마! 말할 것 같으면 그게 무슨 비장의 무기냐? 하여튼 너 앞으로 조심해라. 잘못하면 앗! 소리도 못하고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무진은 그 말을 하고선 2층 객잔의 방으로 올라가버린다.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넌 무슨 말인지 알겠니?”
“전 전혀 감을 못 잡겠는데요. .... 형님!”
곤일이 갑자기 일초를 부른다.
“무섭게 왜 그래?”
“혹시 신체에 결함이라도 있습니까?”
“결함?”
“예.”
“그런 게 한, 두 가지 없는 사람이 어딨니?”
“키가 작거나 얼굴에 흉터가 있다든가 하는 거 말고요.”
“그럼 뭐? ... 야! 너 지금 이 형님을 뭐로 보고 그런 거야? 나 그런 거 전혀 없다. 지금도 하룻밤에 여러 여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단 말이다.”
“그럼 뭐예요?”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골머리를 싸매겠냐?”
“혹시 뻥은 아니겠죠?”
“그럼 내 손에 죽는 거지. 올라가자.”
“예.”
일초는 씩씩거리며 2층으로 올라간다. 일행은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낼 아침에 아미산에 오를 계획이다.
아미파에 도착한 일행은 곧바로 장문인과의 면담을 신청한다.
“아미타불! 우린 누구라도 장문인과의 면담을 거부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신분은 밝히셔야 합니다.”
“일초살수와 그 일행이라고 전해주시오.”
“일초살수라면... 호..혹시 무림제일살수인 그 분이신가요?”
산문을 지키는 여승은 일초의 말에 기겁한다.
“아마 그럴 거요. 나쁜 뜻으로 온 건 아니니까 염려 마시오.”
일초는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물론 자신이 아미파와는 별로 원한을 산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달려간다.
“어..어느 분이 일초살수이십니까?”
잠시 후, 중년의 여승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접니다. 살수 주제에 법문을 찾은 것도 불경한데, 장문인을 뵙자고 해서 송구합니다.”
일초는 최대한 자세를 낮춘다.
“아..아닙니다. 장문인을 뵐 수는 있지만, 지금은 수행시간이라 잠시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절 따라 오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형님, 가시지요.”
일초는 보란 듯이 무진을 앞세운다. 순간 여승의 눈이 반짝인다.
‘일초살수가 자기보다 훨씬 어린 사람을 앞세우다니... 누굴까?’
여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내한다.
“뭐..뭐라고? 일초살수가 형님이라고 했다고?”
“그렇습니다. 나이도 불과 20대 말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사내입니다.”
방금 무진 일행을 숙소로 안내했던 여승이 아미파의 장문인인 자혜사태에게 보고하는 중이다. 근데 장문인의 옆에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여승이 앉아 있다.
“혹시 젊은이들과 여인도 있더냐?”
“예, 대장로님. 일행이 여럿 있었습니다.”
노여승은 아미파의 정신적인 지주인 대장로 멸절사태이다. 그녀는 장문인의 사부로 다른 곳에서 오랫동안 수련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다.
“아미타불!”
“사부님, 아는 자들인가요?”
“그들이다.”
“그들이라뇨? ... 혹시 무당과 무림맹에서 간세로 적마교로 보냈던 자의 딸이라는....”
장문인이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린다.
“맞다. 그들이 일초를 고용한 모양이다.”
멸절사태는 자기 마음대로 추측한다.
“근데 무슨 일로 우릴 찾아왔을까요?”
“호명이란 아이를 적마교로 보낼 때 내가 가장 강력하게 말했지. 혹시 그걸 듣고 의지할 곳을 찾으려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 아이는 거의 식물인간이 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자가 보기엔 그렇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멀쩡하다?”
“예. 그리 보였습니다. 그녀와 같이 온 사내를 일초살수가 형님이라 불렀습니다.”
“아미타불! 그 놈도 같이 온 모양이다.”
“그 무진이란 자 말입니까?”
“그래.”
“그럼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냐?”
“아무리 무림맹이 적마교의 보물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다지만,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며 면담을 요청한 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잠깐!”
“사..사부! 왜 그러십니까?”
“혹시 지난 번 멸정이 그들을 공격한 것 때문에 따지러 온 건 아닐까?”
대장로가 말하는 건 아미파의 장로인 멸정사태가 구파일방의 장로들과 함께 호란의 비밀을 캐내게 위해 공격한 걸 말한다. 당시 장로들은 무진 형제들에게 혼난 뒤 내력까지 잃은 채 도주했다. 멸정 역시 지금은 아미파를 떠나 아예 은거했다.
“그럼 큰일이지 않습니까? 저들의 무공이 심상찮다고 하던데...”
“일단 단단히 준비해라. 경우에 따라선 전면전이 벌어질 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애들에게 그렇게 전하고, 여기로 데리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여승이 물러가자 대장로와 장문인은 한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긴다.
“지금쯤이면 우리에 대해 파악했겠죠?”
“그렇겠지.”
“그런데도 만나줄까요?”
“만나주긴 할 거야. 지들도 궁금할 테니까.”
“하긴 우리가 찾아온 목적이 궁금하겠지요. 형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아가씨의 상태도 확인해보고 싶을 테고....”
“멸정사태가 형님과 누님을 공격한 일도 마음에 걸리겠죠?”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리겠지.”
무진 일행은 숙소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
“근데 듣기론 여긴 장문인보다 대장로가 실권자라고 하던데.. 장문인이 허락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요?”
태민의 질문이다.
“아마 같이 나올 거야. 소문에 의하면 대장로가 구룡 중의 한 명이란 말도 있다.”
일초의 설명에 무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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