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66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66
“이 자식이 미쳤나? 뭔 헛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모두 병기를 내려 놔라. 어서! 안 그러면 이놈의 머리통은 바닥을 구르게 될 것이다.”
“어떡하지? 우린 그럴 생각이 없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무진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마치 태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한다.
“이이익! 이래도? .... 허억! 어...어떻게 된 거지?”
여인은 손가락에 힘을 줘보지만 태민의 목에 들어가지 않는다.
“글쎄? 그럼 나도 한 번 해볼까? 여자 목을 꺾는 건 처음이라 어떨지 모르겠네.”
어느새 태민의 손이 여인의 목에 올라가 있다. 사실 태민의 손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여인이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두두두둑!
태민이 손에 힘을 약간 줬을 뿐인데도 여인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악! 아..안 돼!”
“뭐가? 넌 다른 사람을 죽여도 되고, 난 안 되는 이유를 말하면 살려줄게.”
“그..그건...”
“후후후, 보아하니 저 피들을 모두 니가 흡수할 모양인데. 천인혈마녀(千人血魔女)가 돼서 뭐하게?”
자세히 보면 중앙의 웅덩이에 모여 있는 피가 중간의 여과장치를 통과해 여인의 침대까지 연결돼 있다. 아마 여과 장치를 통과한 피가 여인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그..그걸 어떻게 아느냐?”
“니 말이 더 웃긴다. 저 정도 피가 모이려면 적어도 천 명의 목숨이 필요할 테고, 그걸 여인이 흡수하면 천인혈마녀가 될 텐데, 무림인 치고 그걸 모를 사람이 어딨어?”
“쯧쯧, 그게 문제였어. 자기만 대단한 줄 알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무림세계를 너무 몰랐던 거야.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였단 거지.”
태운까지 거들고 나선다.
“호호호! 난 그런 거 모른다. 다만 네 놈은 내 손에 죽는다는 건 확실하게 알고 있지.”
“후후후! 겨우 이걸 믿고 그러냐?”
태민은 날카로운 비녀를 보여준다.
“그..그걸 찾아내다니...”
“아니면 이거?”
이번에는 연검이다. 그건 침대 모서리에 숨겨져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이거냐?”
이번에는 암기다. 그건 여인의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더 있으면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 참, 하나가 더 있었군.”
쫘악!
“아악!”
태민이 여인의 뺨을 때리자 입안에서 바늘 모양의 암기가 떨어져 나온다. 입천장에 숨겨져 있던 것이다.
“아직도 더 남았냐? 없으면 이젠 그만 헤어지자. 네 년의 상판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려서 말이야.
“자..잠깐만!”
태민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여인은 기겁하며 소리친다.
“왜, 살고 싶어?”
“그..그래요.”
“그럼 네 머리 값을 하면 된다.”
“머리 값?”
“없다면 할 수 없지 뭐.”
태민이 다시 손에 힘을 준다.
“아..아니에요. 있어요. 있어. 말 할게요.”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예. 저 걸 열어보세요.”
여인은 정면에 보이는 벽장을 가리킨다. 그녀가 말을 하자마자 벽장이 저절로 열린다. 무진이 작품이다.
“허어억!”
여인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무진은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벽장이 움직였으니 놀랄 수밖에. 한편 벽장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있다.
휘이이이익!
상자는 무진의 앞 공중에 멈춰서 저절로 열리더니 그 속에서 종이 한 장이 천천히 내려온다.
“니가 말 한 게 이거냐?”
“그래요.”
쫘아악!
“아아악!”
무진의 손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여인의 뺨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땀구멍이 터진 것이다.
“처리해라!”
“예, 대형!”
무진의 명에 따라서 태민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아니에요. 이번에는 정말로.... 아아악!”
두두두둑!
여인의 목은 힘없이 밑으로 꺾어진다.
“서찰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습니까?”
“다른 곳에도 이와 비슷한 시설이 있다는 내용이다.”
태운의 질문에 무진이 설명한다.
“그럼 곤란하잖습니까?”
“거짓말이다. 시간을 끌어보려는 수작이지.”
아마 무진이 여인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다.
“이곳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불태운 다음 완전히 봉쇄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처리하마. 물러나라.”
“예, 대형.”
동생들이 2층으로 올라가자 무진은 몸을 날린다. 그러더니 피가 담겨 있는 연못 중앙의 공중에서 천천히 몸을 회전한다. 그러자 지하 3층의 공기가 천천히 그를 따라서 움직인다.
“사형! 대형이 뭘 하시려는 걸까요?”
“글쎄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 대형은 이곳을 불태우기보다 정화시키려 할 거야.”
“어떻게?”
“나쁜 기운을 대형의 몸속으로 받아들인 다음 정화시켜서 내보는 거지.”
“그럼 나쁜 기운은 어떻게 되는 거요?”
“그것까진 나도 잘 몰라. 좀 더 지켜보자.”
“으음! 사형 말대로 나쁜 기운들이 대형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소.”
태운의 말대로 핏물이 점점 맑게 변하고 있다.
“우웃!”
“기운을 최대한 끌어올려라!”
“예!”
무진의 몸은 그대로인데 흡입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태민 사형제는 기운을 끌어올리고서야 간신히 버틴다. 일각 정도 지나자 지하 3층에선 더 이상 사악한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심지어 중앙의 연못에도 맑고 깨끗한 물이 고여 있다. 이제 이곳엔 흑사신과 관련된 그 어떤 증거도 남아 있지 않다.
“가자!”
“대형!”
“괜찮으십니까?”
“니들이 보기엔 어떠냐?”
“나쁘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좋아 보이십니다.”
“후후, 그래. 원래 독물에겐 독이 영양분이지.”
“아, 예.”
태민은 고개를 꺄웃거리며 무진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간다.
“걱정마라. 사기는 모두 태워버렸으니까.”
꼭 태워버린 건 아니지만 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해심장의 사당(祠堂) 지하실엔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곤명 부부와 무진의 형제들이다.
“이게 바로 말씀드린 흑사신의 신물과 영물입니다.”
곤명이 무진의 앞에 내놓은 건 하나의 신패와 손바닥 크기 만 한 유리병이다. 신패는 앞뒤로 여러 가지 그림이 그러져 있고, 유리병엔 시커먼 액체가 들어 있다.
찌이이이잉!
곤명이 품속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낼 때부터 그러더니 바닥에 내려놓자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흔들린다. 일초가 직접 잡고 제어하려 하지만 오히려 몸이 같이 떨린다.
“이..이게 뭐지?”
그는 얼른 무진에게 넘긴다. 그랬더니 잠잠해진다.
“뭐요? 그게 형님과 인연이 있는 거요?”
“혹시 아까 대형이 흑사신의 기운들을 흡수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그건 또 뭔 소리냐?”
태운의 말에 일초가 되묻는다.
“나중에 설명하마. 그보다 이게 흑사신의 신물인 건 사실입니다. 신패의 앞뒤에 무공이 적혀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사악한 무공이라기 보단 소림의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소림이라고요?”
무진의 말에 곤명은 상당히 놀란 눈치다.
“그렇습니다.”
“음! 안 그래도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무공과 관련된 겁니까?”
“그렇습니다. 선조들로부터 구전으로만 전해온 건데, 흑사신의 무공이 불교와 관련돼 있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만은 아닙니다. 원래 양 극단은 서로 통하는 법이니까요.”
“저도 달마선사의 무공이 악마와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단 얘길 들었습니다.”
일초까지 나서서 곤명의 얘기를 뒷받침한다.
“혹시 흑사신의 무공이 너무 사악해서 견제하기 위해서 소림의 무공을 신패에 적어 놓은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게 영물이란 건 어떻게 압니까?”
이번엔 태운이 병에 든 물체에 보며 질문한다.
“성분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엄청난 기운이 들어 있는 건 사실이다.”
“사악한 기운을 빼냈다는 건 사실입니까?”
곤일의 질문이다. 부친인 곤명이 조상들이 그렇게 했다는 말을 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그 말씀은 아직도 사악한 기운이 남아 있단 말씀인가요?”
“그렇다. 아무리 기운을 빼내려고 해도 그 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을 빼내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그 기운까지 빼내면 이미 그건 다른 물질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 방법이 없나요?”
“없진 않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곤일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저걸 먹은 사람이 자신의 기운으로 나쁜 기운을 제거하는 거지.”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다면서요?”
“그렇지.”
“그런데 누가 그런 역할을 한단 말입니까?”
“후후후! 일이가 취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아니라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사악한 물질을 받아들일 순 없습니다.”
“만약 사악한 성분을 제거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니?”
“예에? 어떻게 말입니까?”
“방법은 내가 강구할 테니까 넌 선택만 해라.”
“으음!”
곤일은 대답을 못하고 부모를 번갈아 쳐다본다. 혼자서 내릴 결정이 아니란 뜻이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라. 어차피 아비는 그런 게 필요 없다.”
“나도 네 아버지랑 같은 생각이다.”
곤명 부부는 아들을 위해 모든 걸 주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1/3은 부친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일이가 받는 걸로. 1/3만 해도 무림최고의 내공소유자가 될 거요.”
“그 정도입니까?”
일초가 궁금한 모양이다.
“왜 너도 탐나니?”
“그럼 뭐합니까? 내 몸속에 있는 것도 다 소화시키지 못했는데...”
“바로 그거다. 아무리 좋은 영약을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게 분명히 천하제일의 영약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수련하지 않으면 도라지 한 뿌리보다 못할 수도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곤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한다.
“그럼 두 분을 제외하곤 뒤로 물러나 있으시오.”
일초가 일어나면서 자리를 정리한다.
“시간이 걸릴 수가 있으니 각자의 일을 하도록 하고, 자! 나를 바라보고 앉으시오. 일이가 오른쪽에 앉아라.”
“예, 대형!”
“가볍게 기운을 일주천 한 다음 마음을 편하게 하시오.”
“예. 대협!”
곤명과 곤일 부자는 나란히 무진의 좌우에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그런 다음 무진은 병의 뚜껑을 열고서 한 입에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으음! 독특한 맛이다. 첫 맛은 그다지 쓰지 않지만, 갈수록 강해진다. 으음! 그렇다고 쓴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왠지 익숙한 맛이기도 한데... 우욱! 엄청나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강하다. 뜨겁다가도 차갑고, 두 가지가 순차적으로 오지 않고 한꺼번에 온다.’
무진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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