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6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67
‘으음! 이..이건 사람이 만든 내단이다. 대체 이렇게 강한 내단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무림사에 몇 명이나 될까? 혹시 흑사신을 만든 자일까? 아니다. 그도 이 정도의 내단을 만들진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이게 그의 내단이라면 무림은 한 동안 암흑기를 맞이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한 사람뿐이다. 마교의 시조인 천마(天魔)! 그는 말년에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말이 있다. 그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만약 곤명의 선조들이 사악한 기운을 줄여놓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무진은 영물의 성분을 파악한 다음 본격적으로 길들이기에 들어간다. 자신이 만든 자연심법을 이용해서 기운을 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벽에 부딪힌다.
‘우욱! 이게 뭐지? 내단에 아직 영적인 기운이 남아 있었나?’
천마의 기운이 강력하게 방어벽을 치고 버틴 것이다.
‘네놈은 누구냐? 누군데 감히 날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거냐?’
내단에 남아 있던 천마의 혼령이 말을 걸어 온 것이다.
‘후후, 이미 죽은 놈이 뭔 미련이 남아서 아직도 이승을 헤매고 있느냐?’
‘건방진 놈. 내가 누군지 알고 그 따위 말을 하냐?’
‘알면 뭐가 달라지냐? 남의 몸에 빌붙어 살려면 고분고분해야지.’
‘뭐라고? 감히 나 천마더러 고분고분하라고?’
‘오라! 그러니까 천마란 이름으로 꼬장을 한 번 부려보시겠다? 그럼 나도 할 수 없지.’
‘어떻게 하려고?’
‘말 안 듣는 놈들은 집 밖으로 쫓아내야지 별 수 있나?’
‘뭐..뭐라고? 날 자연 속으로 버리겠단 거야?’
‘니가 말을 안 듣겠다면 그럴 수밖에.’
‘흥! 네놈이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순순히 물러날 것 같니?’
‘그건 해보면 알겠지. 간다!’
무진은 바로 자연무예를 펼친다. 몸속에 들어와 있는 천마의 기운을 입으로 옮기더니 바로 밖으로 내보낸다.
‘허억! 하..하필이면 자연무예를 익힌 놈이라니?’
순식간에 천마의 기운 1/3이 밖으로 나가 흩어진다.
‘자..잠깐!’
‘됐다. 난 너랑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영원히 살아라. 참! 그건 알고 있지? 한 번 자연 속으로 돌아가면 자연무예를 익힌 사람의 도움 없인 영원히 허공에서 떠돌아야 한다는 거.’
무진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낸다. 순식간에 반 이상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져..졌다. 네 말대로 할 테니까 그만해라. 어서!’
‘흐흐흐, 항복하는 놈의 말투가 그 모양이냐?’
‘그럼 나더러 어떡하라고? 아..알았소.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제발 그만 하시오. 이렇게 부탁하오.’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라. 그럼 혹시 아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부활 할 수 있을지.’
‘부..부활! 정말이오?’
‘자식이, 속고만 살았나?’
‘근데 지금 뭘 하려는 거요?’
‘간단하다. 니 기운을 순화시켜서 앞의 두 사람에게 나눠주는 일이다.’
‘뭐..뭐요? 그럼 난 어떡하고?’
‘너야 나랑 오랫동안 같이 살면 되지.’
‘당신이랑?’
‘마음에 안 들면 할 수 없지 뭐.’
무진은 다시 자연무예를 펼친다. 아니, 펼치려는 순간 천마가 기겁하며 반대한다.
‘아..아닙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한 번만 더 개기면 그땐 바로 내 몸에서 쫓아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라.’
‘예. 다신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천마의 기운을 몇 차례 일주천 하자 바로 고분고분해진다. 모두 자연심법의 힘이다.
‘지금부터 내가 기운을 움직이는 경로를 잘 기억하시오. 자연심법이라고 하는 운기법이오. 이후에도 지금과 똑 같은 방법으로 일추천하면 기운을 소화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요. 일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대로 그냥 두면 된다. 평소 익히던 운기법과도 전혀 충돌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주화입마와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럼 동시에 시작합니다.’
‘미..미쳤어. 미쳤어! 동시에 두 사람에게 기운을 넘겨준다는 거야? 혹시 양의심공(兩意心功)이라도 익힌 건가? 그것도 아닌데... 대체 이놈은 누구야? 고금제일인자의 경지에 오른 나도 모르는 무공을 펼치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건 나보다 무공이 더 뛰어나단 말인데....’
천마가 고민에 빠진 사이 무진은 곤명 부자의 몸속에 그의 내공을 옮기고 있다. 열 번 정도의 일주천을 시키고 나자 두 사람의 몸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일초 형님!”
그걸 가장 먼저 감지한 사람은 바로 태운이다.
“으응? 저게 뭐지?”
“저건 자연심법으로 일주천하는 모습이에요.”
호란의 설명이다. 그녀의 말대로 두 사람의 몸에는 무진이 일주천하는 경로대로 혈도를 잇는 투명한 빛이 선처럼 이어져 있다.
“아가씨, 잘못된 건 아니죠?”
곤명 부인의 눈 속엔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좋은 징조니까 걱정 마세요. 부인께서도 무공을 익혔으니까 잘 봐두세요. 저 빛을 따라서 일주천을 하시면 지금보단 훨씬 더 수월하게 운기조식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그럼요. 자세한 건 나중에 부군께 여쭤보시면 설명해 주실 거예요.”
“감사해요.”
부인이 대답하는 사이 무진이 먼저 눈을 뜬다.
“정랑, 수고하셨어요.”
“나야 뭐 한 게 있소? 두 사람은 두 시진 후에나 깨어날 테니 우린 그만 나갑시다. 너희도 따라오너라.”
“예.”
무진을 따라서 형제들은 모두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것으로 해심장의 일도 일단락이 된다.
구룡(九龍)은 요즘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일룡이 갈수록 자신을 피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다. 지난 번 만남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둘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히려 더 멀어진 것 같다. 게다가 이상한 소문이 들려와서 그걸 확인하기 위해 구룡단에 들린 것이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으음! 그래도 남녀 문제는 알 수가 없는 거야. 만약 소문이 사실이면 어떡하지? 일단 오라버니에게 직접 확인하는 게 중요해. 그리고 그게 거짓이면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서 뿌리를 뽑을 거다. 완전하게!”
구룡은 일룡의 숙소로 향하다 걸음을 멈춘다. 지나가는 부하들의 얘기가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한 거 아냐?”
“그러게. 지난 번 오룡 어른 숙소에 번을 설 때도 봤던 여인인데...”
“구룡단 소속도 아니라며?”
“나도 자세히는 몰라. 다만 한 여인이 두 분 어른의 숙소에 머문다는 게 조금 그래.”
“조금은 무슨? 그럼 안 되는 거지. 게다가 보아하니 처녀도 아닌 것 같던데 말이야.”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잘못하면 경을 치를 수도 있어.”
“그..그럼세.”
두 사람은 황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서...설마! 아..아닐 거야. 오라버니는 절대 그럴 분이 아냐. 절대로!”
구룡은 전력을 다해서 한 곳을 향해 몸을 날린다.
한편 이곳은 일룡의 숙소.
지금 방안에선 두 남녀가 나신 상태로 뒤엉켜있다. 그것도 침대가 아니라 맨 바닥에서 그러고 있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분명 일룡 어르신이 절 유혹하신 거예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태양장의 둘째 며느리인 주련이다. 그는 얼마 전 오룡과도 이렇게 침대에서 뒹굴었다.
“헐헐헐! 어째 말을 이상하게 하는구나. 널 자빠뜨린 건 분명 나지만 유혹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호호호! 그렇게 되는 건가요? 중원제일고수인 어르신이 저 같은 기름기 빠진 여편네의 유혹에 넘어오시다니 의외네요.”
“그러게 말이다. 네 년이 차에 음약을 타지 않았다면 어떻게 너처럼 메주 같은 계집을 품을 수 있겠느냐?”
“그래서 후회가 되세요?”
“내 사전에 후회란 없다.”
“그 말씀은 제 거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걸로 이해해도 될까요?”
“네가 몸까지 바쳐가면서 애걸하는데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느냐?”
“호호호! 그건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말씀인데요?”
“그럼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해볼까?”
“가능하면 제가 조금 더 흥분할 수 있게 해주세요.”
“헐헐헐! 좋다. 네 몸뚱이만큼은 내가 그 동안 맛본 계집들 중에서 최고다. 특히 너의 봉사 정신만큼은 인정을 해주마.”
“저도 지금껏 여럿 사내를 맛보았지만 어르신만큼 허리놀림이 유연하고 힘찬 사낸 처음이랍니다. 누가 어르신보고 내일 모레가 백세라고 하겠어요?”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더 허리를 돌려볼까?”
“어머머! 금방 끝내고 그게 가능해요? 이십 대도 아니고.”
“헐헐헐! 그거야 확인을 해보면 알겠지.”
“자...잠깐만요.”
“왜? 싫어?”
“그럴 리가 요? 전 생각보다 뜨거운 여자랍니다.”
“근데?”
“일단 일은 마무리를 해야죠.”
“헐헐헐! 제법이야. 태양장주가 네년을 신뢰하는 이유가 있었군.”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어요. 그건 그렇고 이제 답을 주셔야죠.”
“그러니까 네 제안은 구룡 중 나머지를 모두 제거하고 태양장과 일대일로 거래하자는 거지?”
“꼭 제거하란 말씀은 아니에요. 구룡단을 일통하란 말씀이죠. 그럼 무림을 통일하면 어르신과 장주님이 공동으로 지배하게 되는 거잖아요?”
“넌 나 혼자 힘으로 구룡단을 접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호호호! 왜 이러세요? 어르신이 오래 전부터 준비하셨다는 걸 모를 줄 아세요?”
“호오! 그것도 알고 있었어?”
“제가 아니라 장주님이 알고 계신 거죠.”
“역시 태양장주는 무서운 인물이야. 하긴 동업자가 되려면 그 정도의 비밀은 공유해야겠지. 좋다. 네 제안, 아니 태양장주의 제안을 받아들이마.”
“호호호! 역시 어르신은 화통하시군요. 이제 무림은 장주님과 어르신의 거나 마찬가지예요. 어머! 근데 이놈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을까요?”
“글쎄? 이유는 모르지만 네가 풀어줘야겠다.”
“어떻게요?”
“어떻게 는? 이렇게 지.”
“허억! 뭐..뭐가 이렇게 딱딱해요? 하악!”
“후후후, 네가 딱딱한 걸 싫어할 줄은 몰랐다.”
“아..아니에요. 조..좋아요. 아아! 어..어르신!”
이렇게 두 사람은 바닥에서 다시 뒹굴기 시작한다.
한편 이 모습을 처음부터 다 지켜본 이가 있었다.
‘더러운 것들! 반드시 내 손으로 네 년 놈들을 찢어 죽인다.’
구룡이다. 그녀는 일룡에 대한 배신감과 주련의 난잡함에 치를 떤다. 특히 일룡에겐 여인으로서, 그리고 동료로서의 배신감을 동시에 느낀다.
‘차분하게 냉정을 찾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당할 수도 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일룡과 태양장이 손을 잡았다면 나 혼자의 힘으론 복수를 할 수 없다.’
구룡도 무서운 여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방 냉정을 되찾고 복수를 생각한다.
‘후후후, 생각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겠군.’
구룡은 머리를 굴리다 갑자기 눈을 반짝인다. 그녀는 지금 지붕에서 기와를 뜯어내고 일룡의 숙소를 훔쳐보고 있다. 근데 숙소의 천정에 두 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처음엔 흥분해서 보지 못했는데 냉정을 되찾자 눈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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