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54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54
“밤에 둘이 사라졌단 말이지?”
“예.”
“일 났네. 일 났어. 혹시 저 늙은 양반들도 알고 있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시진이나 나갔다 왔으니 모르진 않을 겁니다.”
“다 큰 여자가 외간 남자와 한 시진 이상 나갔다 왔는데, 그것도 밤에 말이야.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후후후, 알만하다. 알만해.”
“무슨 말씀입니까?”
“이놈아, 무슨 말은? 그냥 우리만 물먹었단 거지.”
“설마요?”
“민이 넌 그게 문제야.”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넌 순진해서 항상 니 몫을 못 챙긴다는 거야.”
“그건 제가 아니라 형님이겠죠?”
“그런가? 하긴 그래서 우리 둘만 이렇게 외톨이로 남았겠지.”
“근데 정말로 어르신들이 알면서도 그냥 두는 걸까요?”
“당연하지. 그게 아니면 저렇게 태평하게 가만있겠니?”
일초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무진 부부와 노인들을 힐끔 쳐다본다.
“하긴 운이가 우리 얘길 다 들었으면서도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흥! 그렇게 잘 아는 양반들이 계속 옆에서 방해를 할 거요?’
태운이 두 사람에게 전음을 보낸다.
“야, 정말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바로 저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난 운이가 여자에 빠져서 형들을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좋으면 니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되잖아?”
‘그게 좋겠네. 대신 절대로 따라오지 마시오. 알았죠? 만약 방해하면 그땐 형님들이랑은 절교요. 절교.’
태운의 전음에 일초와 태민은 어이가 없어서 서로 쳐다보며 헛기침만 한다.
“허 참!”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그러거나 말거나 태운은 아예 공령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공 낭자, 우린 저쪽으로 가봅시다.”
“예.”
공령도 자연스럽게 따라 나선다.
“형님, 저게 제가 알고 있던 그 사제가 맞습니까?”
“그건 내가 하고픈 말이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의리를 따지면서 절대 나보단 장가를 먼저 안 갈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너도 저럴 거지?”
“무슨 말씀이세요? 절 어떻게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저도 저렇게 변할 걸요? 하하하!”
“에잉? 이 자식이!”
태민이 농을 하자 일초는 주먹으로 때리는 척을 한다. 한편 이 모습을 보곤 공청과 천호상이 기뻐한다.
“무 대협, 정말 보기 좋지 않습니까? 동생이 자기들보다 먼저 여자가 생겼는데도 화를 내기는커녕 저렇게 좋아하니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전 혹시나 손위 분들이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거듭 감사드립니다.”
공청은 노심초사했던 일이 풀리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험험!”
“호호호! 그야 그렇지요.”
하지만 내막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무진 부부는 헛기침을 하며 멋쩍게 웃는다.
한편 호수 옆 숲속으로 들어간 태운과 공령은 한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주로 산책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지만 간간히 일명 ‘나 잡아봐라’와 같은 놀이도 한다.
“일초 오라버닌 정말 재밌는 분이군요.”
“재밌다기보다 특이하다고 해야겠죠.”
“어떻게요?”
“중원제일의 살수이면서 살인보단 고문을 좋아하고, 다른 무인들은 실력을 많아야 삼 할 정도 숨기는데 형님은 칠할 이상을 숨기고, 항상 동생들보다 먼저 결혼을 하겠다고 하고선 정작 자신은 여자 사귀기에 소극적이죠.”
“정말요?”
“그것만이 아니라오. 우리가 보기엔 무시무시한 대형에겐 하루다 멀다하고 개기면서 동생들한텐 항상 자상하고, 힘들다, 피곤하다, 배고프다 하면서도 항상 형제들을 먼저 챙기는 그런 분이랍니다.”
태운의 말 속에는 일초에 대한 정이 듬뿍 담겨 있다.
“듣고 보니 인정이 많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분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특이하다는 거죠. 요즘 무림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분이랍니다.”
“근데 그건 형제분들이 모두 그런 것 같던데...”
“하하하! 나를 빼고선 다 그렇죠.”
“공자님은 왜요?”
“난 무당에 있을 때부터 항상 말썽쟁이였고, 그 때문에 사형이 고생을 많이 했답니다.”
“원래 어릴 땐 누구나 다 그렇잖아요? 저도 스물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썽을 많이 피웠어요.”
“낭자가?”
“그럼요. 전 여름이면 유모나 호위무사 아저씨들이 힘들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강가나 계곡으로 놀러가자며 고집을 부렸고, 겨울이면 눈 구경을 하고 싶다고 생떼를 부렸죠.”
“그래서 어떻게 됐소?”
“열 살이 되기 전엔 몇 번 제가 이기곤 했죠. 하지만 그 후론 혼나기만 하고 한 번도 못 갔어요. 할아버지랑 아버님이 상당히 엄하셨거든요.”
“그래서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씨도 곱구나.”
태운은 얘기를 억지로 몰아간다.
“부모님이 엄하시면 그렇게 되는 건가요?”
“주위에서 보면 대부분 그렇죠.”
“그럼 저도 애기를 낳으면 엄하게 키워야겠네요. 공자님 생각은 어떠세요?”
“예에? 그걸 왜 제게....”
태운은 애기와 자녀교육 얘기가 나오자 당황한다. 공령의 질문은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공자님은 모르셨어요?”
“뭘요?”
“아..아니에요. 그런 게 있어요.”
공령은 말하기가 곤란했던지 대충 얼버무린다. 그때 뒤쪽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그림 좋다. 마치 한 쌍의 종달새 같네. 재잘! 재잘! 재잘!”
“종달새 같은 소리하네. 계집년은 사내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아부를 다 떨고, 사내놈은 계집년을 어떻게 하면 자빠뜨릴까 잔머리를 굴리고 있구먼.”
“그거야 사내놈이라면 다 그런 거 아닌가? 우와! 엄청나네. 저런 상판은 황실에서도 못 봤는데...”
“어디? 허억! 후궁들보다 예쁜 년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다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두 네 명으로 그 뒤에 부하들이 여러 명이 있다.
‘동창? 놈들이 여긴 어쩐 일이지? 아직도 금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나?’
태운의 생각처럼 이들은 동창의 무사들이다. 근데 동창의 무사들은 모두 내시들 중에서 뽑기 때문에 여자들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근데 이들은 처음부터 치근대고 있다.
“후후후, 요즘 동창에선 거시기를 안 자르는 모양이지? 아니면 뽑고 나서 거시기를 새로 붙였나?”
태운은 처음부터 동창 무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을 한다. 도발을 한 셈이다.
“이 새끼가 죽고 싶어?”
앞쪽에 선 네 명의 동창 무사들이 검을 빼들고 앞으로 달려온다. 하지만 그들은 달려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나간다. 태운의 생사무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그들로선 관절이 반대 방향에서 꺾이며 날아오는 주먹과 발을 막을 방법이 없다.
“크아악!”
“케에엑!”
연달아 네 번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까불고 있어. 동창이라고 아무데서나 깝죽대다간 죽는 수가 있다. 어라! 아직 혼이 덜 난 모양이네.”
태운은 동창 무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시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뒤에 있던 부하들이 먼저 몰려온다.
“아이구, 냄새야! 썩어도 너무 썩었다. 대체 언제부터 동창이 쓰레기집합소가 됐냐? 이런 건 한꺼번에 태워야해. 암!”
태운은 이번에도 먼저 움직인다. 그는 몸을 회전하며 동창 무사들 속으로 뛰어든다. 먼저 발로 검을 모두 쳐낸 다음 생사무(生死武)를 펼친다.
“어..어떻게 무릎이 반대로 꺾이... 커억!”
순식간에 세 명의 무사가 턱과 옆구리, 그리고 가슴을 맞고 쓰러진다.
“합공을 펼쳐라!”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치자 동창 무사들은 잠시 뒤로 물러나더니 태운을 둘러싼다.
“동창합벽진(東廠合壁陣)!”
이들은 황실제일의 무사답게 잘 훈련돼 있다. 명령이 떨어지자 검을 들고 동시에 태운을 향해 몸을 날린다.
“아악! 공자님!”
태운이 위기에 몰리자 공령이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에 동창 무사들이 잠시 주춤거리고, 그 사이에 태운이 그들 사이로 파고든다.
태운은 동창 무사들의 검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손등이 날아오는 검 날을 따라 상대의 손까지 미끄러지더니 손목을 쳐 검을 떨어뜨린다. 그런 다음 팔꿈치가 반대로 꺾어지며 목젖을 쳐버린다.
“크윽!”
한 명이 쓰러지자 그를 방패삼아 정면으로 들어오는 동창무사의 검을 오른발로 찬 다음 그의 몸이 휘청거리자 왼 주먹으로 그의 턱을 날려버린다.
이런 방식으로 다시 다섯 명을 해치운다. 동창무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 뿐 태운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물러나라!”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그것이 오히려 무사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서 몸을 빼기 위해서 중심을 뒤로 옮겼다. 그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태운은 그걸 놓치지 않고 그들의 발목과 무릎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커억!”
“크아악!”
곳곳에서 비명이 울러 퍼진다. 그들은 모두 발목과 무릎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군다. 특히 무릎이 반대 방향으로 꺾여 걷질 못한다. 이제 동창무사들 중에 땅 위에 정상적으로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한 번 확인해볼까?”
“뭘 확인하시게요?”
상황이 끝나자 공령이 나선다.
“이상하지 않소?”
“뭐가요?”
“원래 동창 무사들은 거시기가 없잖소?”
“거시기라면.... 아!”
공령은 거시기의 뜻을 알고는 얼굴을 붉힌다.
“험! 험! 이 새끼들은 대체 뭘 먹기에 거시기가 없어도 여잘 밝히는 거야? 한 번 확인을 해볼까?”
태운도 멋쩍었던지 황급히 동창무사들을 향에 다가간다. 그 중에서 제일 앞쪽에 있는 자의 가랑이 사이 중요 부위를 발로 차버린다.
퍼억!
“끄아아악! 내..내 거시기! 으으악!”
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사는 거시기를 붙잡고 바닥을 뒹군다.
“뭐야, 이게? 내시가 어떻게 거시기가 달렸지? 요상한 일일세. 그렇다면....”
태운은 다시 그 옆에 있는 동창무사의 중요부위를 발로 찬다. 무릎이 부러진 무사가 피하려 하지만, 발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며 정확하게 가격한다.
퍼억!
“크아아악! 씨발! 내..내 거시기가, 거시기가 터...터졌다. 아아아악!”
똑 같다. 두 번째 무사도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군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데? 황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태운은 처음 그에게 맞은 네 명의 책임자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다.
“이 정도면 상황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태운은 가장 앞쪽에 있는 책임자의 거시기 위에 오른발을 올려놓고 질문을 한다.
“크아아아악!”
태운은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 대답이 없자 곧바로 발에 힘을 주며 거시기를 터뜨려버린다. 첫 번째 책임자는 바닥에 누른 액체를 배설하며 계속해서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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