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55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55
“말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즉시 진짜 내시가 된다는 것만 잊지 마라.”
“어..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후후후, 그걸 모른다면 할 수 없지.”
“끄아아악!”
이번에도 태운은 거시기를 터뜨려버린다. 이제 세 번째 순서다.
“너도 싫으면 바로 말해라. 니들 말고도 말할 놈들은 넘치니까. 설사 니들이 말하지 않아도 곧 만천하에 진상이 밝혀지겠지. 셋이다. 하나, 두울, 세...엣!”
“마..말하겠습니다. 말.... 크아아악!”
분명히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태운은 셋이 끝나자 바로 발에 힘을 준다.
“하긴 이건 내가 황제에게 상을 받아야 할 일이야. 가짜 내시들이 황궁의 후궁이나 궁녀들을 건드리면 자칫 가짜 황자들이 태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어쩌면 벌써 사달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어떤 황자가 진짜 황제의 자식인지 알 수가 없겠군. 그래. 차라리 황제에게 고하자. 이건 역모나 다름없다. 아니, 역모가 분명해. 그럼 이놈들은 물론이고, 구족이 사그리 멸족되겠지?”
“대..대협!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네 번째 책임자는 역모란 말에 기겁하며 소리친다.
“난 네놈이 말하는 건 막지 않는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면 그땐 네놈만 꼭 집어서 황제에게 고할 테니 알아서 해라.”
“아..알겠습니다요. 저희는 제1영주의 부하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우리는 모두 거시기를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1영주 산하의 무사들은 모두 그렇단 말이지?”
“그..그렇습니다.”
“다른 영주들의 부하는?”
“자세히 모르지만 놈들은 얼굴에 털이 없는 걸로 봐서는 내시인 게 분명합니다.”
동창은 황제 직속의 정보기관으로 황실의 안위를 보위하기 위해 황실과 황족, 그리고 역모 등을 집중 조사해서 황제에게 보고한다. 책임자인 장관은 환관의 일인자인 사례태감이 맡으며, 그 아래 열 명의 영주가 있다.
그 중에서 제1영주는 장관의 궐위 시 그 직을 이어받는 핵심 중의 핵심 인물이다. 영주 아래에는 수십 명의 향주가 있고, 그 아래에 다시 채주들이 있다. 방금 태운에게 신나게 터진 네 명의 책임자가 바로 채주들이다.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황실 최고 권력기관인 동창의 제1영주가 부하들을 모두 가짜로 바꿔치기 했단 말인데. 너라면 믿겠니?”
“그..그게...”
“이게 어떤 의민지는 알겠지?”
“예.”
“그러니깐 역모란 걸 알면서도 가담을 했다?”
“예에? 아..아닙니다.”
역모란 말에 가짜 동창무사는 깜짝 놀란다.
“누구의 지시냐? 아니, 네놈들은 어디 소속이냐? 그것도 아니다. 어디 출신이냐?”
“.....”
태운의 질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무사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흐흐흐! 이것들이 내 말을 쌩 까버리네. 쯧쯧쯧, 불쌍한 놈들. 아무래도 형님이 나서야 할 것 같소.”
갑자기 태운이 허공을 보며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 근데 정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하하! 내 몫까지 남겨두다니 이래서 내가 운이를 좋아한단 말씀이야.”
일초다. 그와 동생들은 무진의 전음을 받고 처음부터 일을 꾸몄다.
“공자님!”
태운이 뒤로 물러나자 공령이 달려와 그의 품에 안긴다. 아마 마음을 많이 졸인 모양이다.
‘동생아! 한 잔 거하게 쏴라.’
‘운아, 이 사형의 공도 잊으면 안 된다. 알았지?’
‘아..알았소. 그러니까 지금부턴 방해 마시오.’
‘난 오리고기가 좋더라.’
‘난 요즘 양고기가 당기더라.’
‘알았다니깐! 분명히 말하지만 방해하면 앞으로 특식은 꿈도 꾸지 마시오.’
‘흐흐흐, 그래. 오면서 보니까 저 뒤가 좋더라. 조용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찾기도 어렵겠더라.’
‘그런 곳이 있단 말이오. 알았소. 일초형은 내가 책임지고 오리고기 전문점으로 모시겠소.’
‘그럼 난?’
‘그거야 사형하기 나름이지.’
‘알았다. 앞으로 니들 두 사람을 방해하는 인간은 내가 책임진다.’
‘흐흐흐, 사형이 그렇게 나온다면야 당연히 양고기 전문점으로 모셔야죠.’
‘운아! 양고기집은 기주가 맛있다더라.’
기주(冀州)는 사천성에 위치한 고장으로 아미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알았소. 대형이 기다리고 있을 거요. 일이나 빨리 처리하시오.’
태운은 그렇게 전음을 보내곤 공령을 품에 안고 그 자리를 떠난다.
“자, 우리도 진지한 시간을 가져볼까?”
일초가 앞으로 나서자 동창 무사들이 두려움에 몸을 떤다.
“미리 말하지만 우리 형님은 중원제일의 고문전문가시다. 그걸 참고해서 말하기 바란다.”
“이..일초살수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일초를 알아보곤 소리친다. 그러자 주위는 일순 아수라장이 된다. 동창무사들은 모두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치다 서로 뒤엉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상황을 연출한다.
“흐흐흐흐! 어느 놈부터 시작할까?”
“저...전 아닙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아악!”
동창무사들의 비명소리는 멀리 찻집에 있는 무진에게까지 들린다.
개봉(開封).
중원제일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장.
더불어 중원제일의 문파인 개방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개봉성의 성루가 가장 잘 보이는 찻집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둘째 형님, 아무래도 안 올 것 같습니다.”
“안 온다기보다 ‘중원의 빛’이란 조직이 완전히 괴멸됐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아닐세. 자정까진 두 시진이나 더 남았네. 그때까지는 지켜보세.”
이들은 바로 무진의 명을 받고 개봉으로 온 왕명 일행이다. 왕명 옆엔 무림절대검이자 청운장의 총관인 양문과 개방의 고진분타주 추개도 앉아 있다.
이들은 무진의 지시대로 개봉성의 성루에 천(天)자 적힌 깃발을 걸어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무진은 삼 일째 되는 날 ‘중원의 빛’이란 조직의 핵심 인물들이 찾아올 거라고 했다. 하지만 불과 두 시진을 남겨두고도 성루엔 관병들을 제외하곤 접근하는 이가 없다.
“개방에서도 아는 게 없다면 끝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양문은 계속해서 부정적인 얘기를 한다. 추개는 이미 개방의 본단에 있는 비밀서고에서 ‘중원의 빛’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다 살펴봤다. 하지만 양문의 말대로 특별한 게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누군가가 자료를 치운 흔적만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자료를 치웠다면, 그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끝까지 지켜보자는 거다.”
왕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만약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대형을 만나봐야지. 그런 다음 몇 군델 다녀올 생각이다. 너희들은 어쩔 생각이냐?”
“저희야 당연히 형님을 따라야죠.”
“고맙다. 난 너희들과 형제의 연을 맺은 게 자랑스럽다. 이제 대형의 지도하에 모든 형제들이 힘을 합쳐서 무림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
“저도 조금이나마 무림평화에 헌신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전 언제든지 몸을 던질 준비가 돼 있습니다.”
양문에 이어 추개까지도 왕명의 뜻에 동의한다. 근데 추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명의 전음이 들려온다.
‘지금부턴 전음으로만 얘기한다. 갑자기 주위 공기가 달라졌고, 사람들도 몰려들고 있다. 문이는 입구를 맡고, 추개는 방금 자리에 앉은 자들을 보호해라.’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왕명의 설명대로 조금 전에 들어온 세 사람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중이다.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찻집이 포위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여길 포위한 자들이 관병이 아닌 것으로 봐선 무림과 관련된 일이 분명합니다.’
‘잘못하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추개가 전음을 보내는 중에 어디선가 날카로운 물체가 날아와서 탁자 위에 꽂힌다.
팟!
다행히 아무도 본 사람은 없는 듯하다. 물체는 단검으로 손잡이에 종이가 묶여있다. 개방에서 보낸 것이다.
‘무슨 내용이냐?’
추개가 종이를 펼치자 양문이 묻는다.
‘바깥에 있는 자들은 여러 세력이라고 합니다.’
‘여러 세력?’
‘예, 구파일방은 물론이고, 적마교, 심지어는 태양장도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는 적혀 있지 않고?’
‘그건 아직 파악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놈들입니다.’
입구를 주시하던 양문의 전음이다. 그곳에는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추개는 저들이 누군지 알겠느냐?’
‘예. 태양장의 우호법과 적마교의 총사, 그리고 사천당가의 가주입니다.’
왕명과 양문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모두 아는 모양이다.
‘무림의 거두들이 여긴 어떤 일일까?’
‘그야 직접 물어보면 되겠죠?’
양문이 전음을 보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두 노인들로 양문도 익히 잘 아는 자들이다.
“장문인께서 여긴 어쩐 일이오?”
양문은 먼저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청에게 인사한다. 세 사람이 구석 자리에 앉은 자들에게 다가가려다 양문이 나서자 잠시 주춤거린다.
“아! 양형이 아니십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으시더니 여긴 어쩐 일이시오?”
양문은 왕명의 그늘로 들어간 이후 무림에서 잊혀졌다.
“나야 떠돌이처럼 이곳저곳 흘러 다녔지요. 근데 장문인은 어디 전쟁터라도 갔다 왔소? 행색이 왜 그 모양이오?”
양문의 말대로 세 사람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낮에 봤으면 개방 거지들이 형제로 착각할 정도로 차림새가 엉망이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소.”
“근데 두 분도 안면이 있는데, 이분은 언젠가 적마교에서 본 적이 있고, 혹시 태양장의 우호법이 아니십니까?”
아는 척을 하자 두 사람도 양문을 유심히 쳐다본다.
“적마교의 운고(雲高)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지. 신임 총사가 됐다는 소문은 들었소. 늦었지만 감축드리오.”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누군가? 무림절대검(武林絶大劍)이 아니신가?”
그제야 우호법도 양문을 알아본다.
“그렇습니다. 우호법을 뵌 지가 어연 십 년이 다 돼 가는군요.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그 동안은 잘 지냈네만, 오늘은 아닐세.”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 그리고 보니 분위기가 심상찮군요. 볼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럼 전 잠시 물러나 있겠습니다.”
“그래주시게. 저 인간들을 요절낸 다음 회포를 푸세.”
양문이 물러나자 그들은 곧바로 구석 자리로 걸어간다.
“헐헐헐! 돌고 돌아서 온 곳이 겨우 여기더냐?”
“미친 놈, 헉헉거리며 겨우 따라온 주제에 큰소리는. 영감탱이, 가만히 있었으면 제 명대로 살 텐데, 그렇게 죽고 싶더냐?”
상대는 사십대 중반의 여인이다. 그녀는 세 사람에 비해 그다지 지쳐보이지도 그렇다고 몰골이 추하지도 않다.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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