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7
“지..직접 듣진 못했고, 장관님과 영주님이 하는 얘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에? 아, 예! 여..열쇠입니다. 열쇠.”
“황금열쇠?”
“그..그렇습니다.”
“태양장에서 가지고 있던 황금열쇠를 동창이 받아간다? 원래 동창과 태양장이 그렇게 밀접한 관계였냐?”
“나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받을 장소는?”
“......”
“후후후, 당연히 태양장이겠지?”
“그..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 자식이 누굴 바보로 아나? 우리도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데서 만나다가 태양장과 황실의 관계가 소문이라도 나면 황족들이 가만있겠냐?”
“아! 그렇군요. 하지만 저도 장소는 잘 모릅니다.”
“영주는 알겠지?”
“아마 영주님도 아직은 모르실 겁니다.”
“왜?”
“장관님의 친서에 적혀 있다는데 태양장에서 약 오백 리 떨어진 곳에서 개봉하란 지시를 받았습니다.”
“지랄을 해요. 지랄을. 지들이 무슨 비밀 공작원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그건 그렇고 이젠 그만 가야하지 않을까?”
“가다니요? 어딜 말입니까?”
“어디긴 어디냐? 북망산천이지.”
“크으윽!”
노인은 바닥에 떨어진 암기를 주워 무사의 심장에 밀어 넣는다.
“야..약속을 해놓고...”
“약속은 무슨? 난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난 네놈과 같은 과라 약속이란 말 자체를 싫어해.”
노인은 벌써 목이 꺾어진 동창의 무사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댄다.
“그나저나 이놈들이 서로 싸우다 상잔(相殘)한 걸로 만들어야겠지?”
노인은 동창의 영주가 부하의 시신을 보고 의심을 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암기를 빼서 일초의 손에 쥐어준다. 근데...
“크윽!”
갑자기 노인의 몸이 굳어진다. 심장과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일초의 손의 그의 혈도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이..이게 뭐지? 네 놈들은 안 죽었어?”
“영감탱이가 미쳤나? 네 놈도 멀쩡한데 앞날이 구만 리인 우리가 왜 죽어? 안 그러냐? 동생들아!”
“물론이죠. 전 장가도 가고 애들도 최소 다섯은 낳을 겁니다.”
“전 형님보단 오래 살고 싶습니다.”
태민 사형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이들은 죽는 것까지도 연기를 한 것이다.
“이제 우리 차롄가?”
일초가 쓰러진 노인 앞에 의자를 놓고 앉는다.
“뭐가 말이냐?”
“말이냐? 이 새끼가 주제파악을 못하네.”
끄아아악!
일초는 노인의 손목을 반대 방향으로 꺾어버린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노인은 바닥을 뒹군다.
“나도 한 성질 한다는 소릴 듣는 사람이다. 질문은 두 번 하지 않는다. 넌 누구냐?”
“.... 크으으윽!”
노인이 머뭇거리자 일초의 손이 그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
우두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노인은 정신을 잃는다. 하지만 태민이 뺨을 때리며 바로 깨운다.
“영감! 이번에는 무릎이다. 또 벙어리 행세하면 아예 못 걸어 다니게 병신으로 만들어주마. 넌 누구냐?”
일초는 똑 같은 질문을 한다.
“후후, 글쎄? 내가 누굴까?”
제압당해서 꼼짝을 못하던 노인이 갑자기 일어서면서 얼굴이 변한다. 손목도 어깨도 멀쩡하다.
“혀..형님!”
“대..대형!”
“대형,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니 누나가 피곤했던지 금방 곯아떨어지더라. 그래서 따라 나섰지.”
“그렇다고 이런 장난을 치면 어떡해?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일초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동창까지 끼어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운이는 황금열쇠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구나.”
“열쇠도 열쇠지만 황금열쇠로 열고 들어가면 안에 뭐가 들었을지 너무 궁금해요.”
“솔직해서 좋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단 금괴가 더 중요하다.”
“알고 있습니다.”
“바로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좋겠다.”
“그럼 제가 누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누님!”
“흥! 자기들끼리만 재밌게 놀고... 정말 이럴 거예요?”
“하하하! 난 당신과 같이 있고 싶었는데, 일초 이놈이 당신을 재우고 오라고 해서.... 정말이오.”
“오라버니!”
“아..아닙니다. 전 그냥 얘들이 사내들끼리만 놀자고 해서... 정말 억울합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모두 꾸민 일입니다.”
“사형! 거기에 왜 날 끌어들이는 거요? 아침에 사형이 말했잖아요?”
“내가 뭘?”
“누님 머리 비녀가 너무 낡았다며 하나 준비하자고 했잖소?”
“그..그랬지. 여깄습니다. 나비 문양이 누님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태민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품속에서 비녀를 꺼내 호란에게 건넨다.
“이야! 예쁘다. 이걸 나 줄려고 샀단 말이야? 민아!”
“예, 누..누님!”
태민은 진짜 호란을 위해 산 것처럼 얼굴을 붉힌다.
쪼오옥!
호란은 태민에게 달려가서 볼이 뽀뽀를 한다.
“누..누님!”
“야! 자는 날 버려두고 가는 사람보단 네가 훨씬 더 낫다. 나 이참에 말을 바꿔 탈까 보다. 네 생각은 어떠냐?”
“예에?”
그녀의 농에 태민은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자, 자. 가자! 내가 맛있는 야참을 사줄 게.”
“왜? 아가씨가 바른 말을 하구만. 말이 불성실하면 바꿔 타야지. 암, 그래야지. 아얏!”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너 오늘부터 두 시진씩 특훈을 하고 싶니?”
“흥! 조금만 불리하면 특훈이래. 아..알았소. 가면 될 거 아뇨.”
일초는 무진이 노려보자 황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대하(大河).
이곳은 태양장의 소장주가 금괴를 숨겨놓았다는 바로 그곳이다. 태양장과 황금상단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양자강의 한 선착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무진 일행은 3일간의 여행 끝에 이곳에 도착했다.
“소개가 대형께 인사 올립니다. 누님과 형님들도 안녕하신지요?”
소개는 관제묘의 문을 열자마자 허리를 최대한 숙여 인사를 한다. 이상한 건 관제묘 안에 전혀 인기척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고사하고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호호호! 우리 막내가 못 본 사이에 어엿한 대장부가 됐네.”
“그러게 말이요. 장가를 보내도 되겠소.”
“참 나! 나를 옆에 두고서 그런 말이 나옵니까?”
일초는 본능적으로 무진에게 시비를 건다. 그걸 보고 태민 사형제가 황급히 끼어든다.
“형님, 그러다가 누님한테 찍히면 우리까지 곤란해집니다.”
“그..그럼 안 되지. 대형! 막내를 보니까 우리가 좀 더 분발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일초는 황급히 말을 돌린다.
“그래. 막내가 장족의 발전을 한 것 같구나.”
무진을 비롯한 형제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대형!”
소개가 달려가 무진의 품에 안긴다.
“하하하! 이놈이 다 큰 줄 알았더니 아직은 애기구나 애기.”
“덩치만 컸다고 어른이 되남? 고추가 여물어야지.”
“흥! 일초 형님은 거시기가 여물었는데도 왜 장가를 못 갑니까?”
소개가 무진의 품속에서 혀를 빼죽 내밀며 반격을 가한다.
“으하하하하! 호호호호! 하하하하!”
“야! 정말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 일초 네놈이 언젠가는 임자를 만날 줄 알았다.”
“제 생각에는 당분간은 오라버니 목소리가 반으로 줄어들 것 같아요.”
“누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일초 형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신 분이 아닙니다. 아마 곧바로 반격할 걸요?”
“운이 말이 맞을 겁니다. 막내가 걱정입니다. 괜히 잠자는 사자 코털을 건드려가지고 보복 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사실 일초 형님의 뒤끝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태민 사형제들까지 나서서 일초를 물 먹인다.
“흥이다. 흥!”
일초는 대꾸도 못하고 삐진 척만 하고 있다.
“막내야, 그래도 형인데 니가 한 수 양보해줘라. 안 그러면 내가 힘들어진다.”
무진이 우는 소릴 한다.
“왜요?”
“저 인간이 얼마나 날 갈구는 줄 아니? 시어머니도 저런 시어머니가 없단다. 아마 잔소리 대회를 나가면 1등을 하고도 남을 거야.”
“실은 제가 더 섭섭합니다. 저 나름대로 늙은 형님을 장가보낼 요량으로 개방 제자들을 중원 전역에 다 풀었습니다.”
“풀어서 뭐하게?”
“있잖아요? 가지고 있기만 해도 여자들이 줄줄 따라다닌다는 거 말이에요.”
“노루 사향 말이냐?”
“예.”
“그거 구하기 힘들다던데?”
“전 개방도들이 중원 천지를 무려 한 달 동안 구석구석을 다 뒤져서 겨우 구했습니다. 근데.... 절 보자마자 놀리셨잖아요?”
“사향 효과가 그렇게 좋아?”
“사실 저도 놀랬습니다. 그냥 지니고 있을 뿐인데도 여자들이 줄을 서더라고요.”
“그 정도야?”
“히히히, 막내야. 그것도 모르고 내가 장난이 심했구나. 마음 넓은 니가 이해를 해다오. 너도 알다시피 이 형이 나이만 많고 철이 좀 없잖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다오.”
“대신 한 가지만 해주세요.”
“뭔데? 말만 해라. 니가 원하는 거면 다 들어주마.”
“형님이 잘 하시는 거예요.”
“내가 잘 하는 거? 그게 뭐지?”
“형님이 잘 하는 거면 세 가지 중 하나겠죠 뭐.”
태운이 중간에 끼어든다.
“세 가지?”
“예, 하나는 누구보다 사람을 잘 죽이는 거죠.”
“그거야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 흘러간 과거의 일이야. 두 번째는?”
“고문!”
“고문? 그거야 말로 내가 잘 하는 거지만.... 그것도 요즘은 별로 흥미가 안 생긴다.”
“그럼 한 가지뿐입니다.”
“.....”
태운의 말에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한다.
“추적입니다.”
“아! 그렇지. 그거라면 누구한테도 질 생각이 없다. ... 형님만 빼고. 히히!”
일초는 무진을 힐끔 보더니 웃는다.
“맞습니다. 한 사람을 추적해주셔야겠습니다.”
“이유가 뭐냐?”
“그 자는 태양장의 소장주인 유현의 심복인데, 유현이 형님들을 처리하기 위해 떠나면서 전권을 맡겼습니다.”
“그 말은 그 놈만이 금괴를 알고 있단 뜻이냐?”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놈은 하루에 한 번씩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금괴가 있는 곳에 다녀오는 것 같습니다.”
“그걸 개방이 추적을 못한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무공은 뛰어난 것 같지 않은데 도주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자입니다.”
“근데 말이다. 난 일을 할 땐 항상 선금을 받는다.”
“당연히 드려야죠. 여깄습니다.”
소개는 흔쾌히 사향을 일초에게 건넨다.
“흐흐흐! 이것만 있으면 여자들이 들끓는다 말이지?”
“물론입니다. 나중에 귀찮다고 절 타박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걱정마라. 난 누구처럼 한 여자도 감당 못해 쩔쩔매는 사람이 아니니까.”
“에잉? 너 지금 날 걸고넘어지는 거냐?”
“걸고넘어지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죠. 근데 추적을 시작하면 날 따라오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할 거야?”
“대형이 계시잖아요? 소미도 있고.”
소미는 자기 이름이 거론되자 호란의 품속에서 머리를 쑥 내밀며 주위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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