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8
“쯧쯧, 저렇게 맹하니까 막내 동생한테도 놀림을 당하지.”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소개가 장난은 쳤지만, 형을 놀릴 아이는 아니오.”
“형님, 막내가 형님을 놀린 건 아니지만 당한 건 사실입니다.”
“내가 뭘 당해?”
“방금 형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어떻게 형님을 추적할 건지. 막내는 소미가 있단 생각은 못하고, 대형이 힘드실까봐 꾀를 낸 거죠.”
“그러니까 사향을 가지고 있으면 날 쉽게 추적할 수 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막내야, 운이 말이 사실이냐?”
“죄송해요. 하지만 약속하셨으니 딴소리하면 안 됩니다.”
“그 참! 처음부터 계획을 세운 거냐?”
“그건 아닙니다. 처음엔 형님께 부탁을 드리려고 했는데, 사향이란 말에 형님이 덥석 문 거죠.”
“좋다. 막내가 그러라면 군말 없이 해야지. 언제부터 해야 되냐?”
“반 시진 뒤입니다. 무슨 이윤지는 모르지만 놈은 매일 똑 같은 시간에 움직입니다.”
“그럼 우리도 움직이자.”
그 말만 하고 일초는 먼저 관제묘를 나선다.
“쟤가 왜 저러냐? 불안하게.”
“그러게요. 보통 때 같으면 난리를 쳤을 텐데.”
“그렇다고 막내와 싸울 순 없잖소?”
일초는 ‘씨익!’하고 웃으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긴 한데.... 어째 불안하다.”
“대형! 걱정 마십시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정랑, 우리 꾀돌이 막내가 뭔가 비책이 있나 봐요.”
“그럼 다행이고. 자, 우리도 가보자.”
무진을 선두로 모두 일어나 일초를 따른다.
“저놈이냐?”
“예. 천소란 자입니다. 평소엔 항상 태양장의 소장주와 같이 움직이는데 금괴 때문에 남은 것 같습니다.”
철마객잔(鐵馬客棧)의 별원.
무진 일행은 대하의 중심지에 위치한 이곳이 잘 보이는 건너편 건물의 지붕 위에 있다. 태민 사형제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일초와 소개가 얘기하는 사이 천소는 별원의 담을 넘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서두르지 마라. 천천히 따라가도 충분하다.”
“그러다가 번번이 놓쳤습니다.”
“추적은 심리전이다. 너도 해봤으니 알겠지만 도주하는 자는 절대로 직선거리로 가지 않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서두르다 도주하는 자를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그래서 실패하는 거다.”
“그럼 어떻게 추적하는 게 좋습니까?”
“일단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중요하다. 내가 도주자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끝임 없이 해야 된다. 여길 봐라. 갑자기 세 갈래 길이 나타났다.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니?”
“저라면 오른쪽 길로 가겠습니다.”
“이유는?”
“왼쪽은 산길이고, 오른쪽은 마을로 이어져 있습니다. 금괴를 가지고 산을 오르진 않겠죠?”
“형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 내가 괜한 걸 물었네. 됐고. 아가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일초는 무진에게 물으려다 황급히 호란에게 화살을 돌린다.
“자식이, 물었으면 답을 들어야지.”
“그럴 거면 아예 형님이 하시오.”
“나야 말로 됐다. 당신 차례요.”
“예. 저도 오른쪽이에요. 하지만 이유는 달라요. 낮에 오면서 봤는데 왼쪽 산길은 양자강과 연결돼 있어요. 언뜻 생각하면 금괴를 배로 수송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 아니라고 봐요. 금괴의 양이 많기 때문에 배론 절대 수송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만약의 경우 배가 가라앉으면 금괴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역대 어느 황실도 금괴를 배로 수송하진 않았어요.”
호란의 설명은 제법 그럴싸하다. 그 때문인지 무진과 소개는 물론이고, 질문자인 일초조차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일초의 설명은 정 반대이다.
“전 왼쪽입니다. 물론 곧바로 가진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곧바로 가지 않았는데 왼쪽으로 갔다니요? 그럼 돌아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소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로 그거다. 여길 봐라.”
일초는 왼쪽 담벼락으로 움직여 설명을 계속한다.
“어? 이게 뭐지?”
“잘 봐라. 뭔지?”
담벼락 위엔 기와 조각과 낙엽 등이 뒤엉켜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뭔가 지나다닌 흔적이 분명하다. 기와는 부서졌고, 낙엽엔 발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방향도 반대쪽인 게 분명합니다. 한 번 따라 가보죠.”
일행은 모두 담벼락을 따라서 이동한다.
“형님 말씀이 맞았군요.”
일행이 도착한 곳은 처음 출발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약 삼십여 장 떨어진 곳이다.
“근데 왜 이쪽으로 갔을까요? 산과 강으로 이어진 곳인데.”
“그건 가보면 알겠지. 시간 관계상 지금부터 제가 앞서 나가겠습니다.”
“알았다. 조심해라. 소개의 말처럼 놈이 무공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약삭빠른 놈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초는 무진에게 목례를 한 다음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넌 일초가 너의 의도를 몰랐다고 생각하느냐?”
“그 말씀은 일초 형님이 알면서도 속아줬단 건가요?”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일초는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자질 면에선 오히려 날 능가한다.”
“예에? 형님을 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라버니는 적어도 실력을 1/3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음흉한 놈이지. 귀여운 악마라고나 할까? 헐헐헐!”
‘으음! 그런 면에서 난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정말 최고의 길은 멀고도 멀구나.’
소개는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질만 뛰어나다고 다 최고가 되는 건 아니니까. 우리 막내는 충분히 날 뛰어넘을 수 있을 거야.”
“정말요?”
“그럼 내가 그런 걸로 농을 하겠니?”
“그건 아니지만 너무 꿈같은 얘기라서....”
“하하하! 매사에 자신감을 가져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 최고로 만들어 줄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래. 내가 힘이 된다니 다행이다. 자, 그럼 우리도 출발하자. 소미야!”
“야아옹!”
무진이 부르자 소미는 대답을 하곤 호란의 품속에서 나와 앞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소미는 산길을 한참 동안 돌다가 멀리 보이는 선착장으로 달려간다.
“정랑, 우리가 삼거리에서 출발한 이후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거 아세요?”
“알고 있소.”
“대형, 우리가 함정에 빠진 걸까요?”
“글쎄다? 함정은 함정인데, 우리가 아닌 것 같다.”
무진이 말하는 사이 멀리서 일단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동창입니다.”
소개는 어둠 속에서도 상대를 알아본다. 아마 복장이 특이해서 그럴 것이다.
“저들도 아니다.”
“하긴 태양장과 동창이 사이가 나쁠 리가 없죠.”
“이상하네요. 분명 동창은 태양장에 황금열쇠를 받으러 간다고 했는데.”
“장소가 문제겠지.”
“그게 여기란 건가요?”
“아닐 수도 있소. 열쇠는 다른 곳에서 받았지만, 그걸 사용하기 위해서 왔을 수도 있으니까.”
“혹시 금괴가 숨겨진 곳을 열기 위해서 황금 열쇠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영주란 자를 만나보면 알겠지. 갑시다!”
무진은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동창 무사들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간다.
‘으음! 대형의 신법은 이제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도 저리도 자연스럽게 달릴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내공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무진은 호란의 손을 잡고서 자연스럽게 달린다. 마치 걷는 것 같지만, 그 속도는 전력을 다해 달리는 소개보다 더 빠르다.
“소개야!”
“예, 대형!”
“열심히 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단다. 항상 최선을 다하되 지나치게 매달려선 안 된다. 편안하되 깊이 생각해야 근본에 도달할 수 있는 원리와 같은 거란다.”
“예, 대형. 명심하겠습니다.”
무진은 소개가 무공에 지나치게 집착하자 적절하게 충고한다. 순간 소개는 깨달음을 얻고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기운을 차분하게 움직인다. 그러자 조금 전보다 기운이 훨씬 더 부드럽게 움직이며, 신법 또한 자연스러워진다.
“호호호! 정랑, 우리 막내는 정말 학습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하나를 가르치면 열 이상을 소화시켜요.”
“그렇소. 형들이 막내에게서 많은 자극을 받을 것 같소.”
무진과 호란은 소개의 발전 속도를 보며 흐뭇해한다.
“대형! 제 3의 세력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근데 저들은 누구냐?”
무진이 쳐다보는 곳엔 일단의 사람들이 건물 지붕을 타고 달리고 있다. 대략 오십 명은 넘어 보이는데,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상당한 고수들이다. 근데 그들만이 아니다. 그 뒤를 십여 대의 말 탄 자들이 따르고 있다. 복장으로 봐선 중원인들이 아닌 것 같다.
“세외오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금괴가 전쟁자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아니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으음! 말을 탄 걸로 봐선 철기맹인 것 같습니다.”
소개는 이국적인 복색에다 말 탄 자들이라 철기맹(鐵騎盟)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철기맹은 세외오천 중, 중원의 동북부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으로 지금의 만주지방을 장악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마민족의 후예들이다.
“아니다. 다시 자세히 보거라.”
“철기맹이 아니라면.... 세외오천이 아니군요.”
“그래. 신형세력이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세외오천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근데 태양장과 동창에 들킨 거군요. 제 아무리 신흥세력이라고 해도 태양장과 동창의 눈을 피하긴 쉽지 않겠죠?”
“그건 좀 더 지켜봐야겠다. 돈 앞에선 적이 동지가 될 수도 있고, 동지가 바로 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얘기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흘러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금괴를 사이에 두고 여러 세력이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하고, 피 터지는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저들 사이에서 그네를 타면서 교묘하게 빠져나와야 된다.”
“금괴는 우리가 가지고 놈들끼리 싸움을 붙이자는 말씀인가요?”
호란은 주로 듣지만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살핀다.
“그렇소. 부탁한 건 준비되고 있니?”
“예, 아마 말씀하신 시간 내에는 준비가 될 겁니다.”
“그래. 속도를 좀 내야겠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모양이다.”
“예!”
소개는 대답을 하곤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무진도 지붕 위로 뛰어오르더니 신속하게 움직인다. 예상한 일은 금방 현실로 드러난다.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 전방에서 싸움이 벌어진다.
선착장이다. 조금 전에 지나간 철기맹을 흉내 낸 자들이 동창을 공격하는 모양새다.
“주위를 살펴봐라. 분명히 태양장 놈들이 지켜보고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소개는 대답을 하곤 다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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