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0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0
“이씨! 잘해도 때리고, 못 해도 때리고. 어디 나이 어린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수?”
“세상에 생강시 열 놈을 일각도 안 돼서 처리하는 놈이 어딨냐? 그러니까 아직도 나올 생각을 안 하지.”
지금 두 사람은 이곳의 주인들을 끌어내기 위해서 일부러 소릴 지르며 장난을 치고 있다.
“안 나오면 처 들어가면 될 거 아니오? 아얏! 이번에는 뭣 때문에 때리는 거요?”
“이 자식아, 처음부터 들어가자고 했으면 괜히 힘들게 소릴 안 질렀을 거 아냐?”
“그걸 내가 정했소? 자기가 정해 놓고선.... 씨발! 나 안 가.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안 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뻑하면 때리질 않나? 자기가 잘못하고선 나한테 떠넘기고 말이야. 안 가!”
일초는 다시 꼬장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래. 넌 여기서 망이나 봐라. 우린 들어간다.”
무진은 뒤따라 들어온 동생들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순간 호란의 품속에서 소미가 고개를 내민다.
“야아옹! 캬아아악!”
“그래. 조심할 게.”
아마 소미가 무진에게 안의 상황을 설명한 모양이다. 소미는 무진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적멸장을 샅샅이 돌아봤기 때문에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니가 거기 왜 있냐?”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선두에 일초가 선다.
“안이 위험하다면서요?”
“그래서?”
“그럼 당연히 내가 앞장서야죠.”
“왜, 조금 전에 안 들어간다고 지랄하더니?”
“나야 안 들어가고 싶죠? 하지만 형님과 동생들이 위험에 빠진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안 들어갈 거요?”
그렇게 말하곤 일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근데 문을 여는 순간 뒤로 몸을 날린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 개의 암기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에이 씨빨! 알고 있었지?”
“뭘?”
“기관이 설치된 거 말이야.”
“당연하지.”
“근데 왜 안 말렸어?”
“네놈이 말릴 틈이라도 줬냐?”
“아...알았어. 까짓것 내가 먼저 죽지 뭐. 들어 가!”
말에서 밀리자 일초는 그냥 안으로 들어간다.
“미친 놈! 죽기는 왜 죽어? 기관은 한 번밖에 없는데.”
무진은 말은 그렇게 하곤 안으로 들어가진 않는다. 그러자 다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일초가 달려 나온다.
“한 번밖에 없다며?”
소리치는 그의 가슴에는 수십 개의 침이 박혀 있다. 다행히 피부에는 파고들지 못하고 모두 바닥에 떨어진다.
“그걸 들었어? 그냥 해본 소린데.”
“어이구, 이 화상아! 하긴 누굴 탓하겠어? 영감탱이를 믿은 내가 바보지. 바보야.”
“흐흐흐, 그러게 매사에 신중하라고 했잖아!”
“언제? 언제 그랬어?”
“지금 하고 있잖아!”
“아이고, 저런 인간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으니 내 팔자도 참 한심하다. 한심해!”
“그래. 한심한 놈은 밖에 기다려라. 우리끼리 처리하고 올 테니까.”
“무슨 소리야? 대체 날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그러다 또 기관이 작동하면 어쩌려고?”
“그럼 같이 죽지 뭐.”
“이 새끼는 어찌 된 게 입만 열면 죽는데?”
“그러니까 같이 죽자고!”
“이젠 아예 물귀신 작전이군. 그래, 같이 죽자.”
이번에는 무진이 앞장선다.
“흐흐흐! 작전 성공이다. 제대로 한 번 걸려봐라.”
일초는 무진이 앞장서자 환하게 웃으며 뒤따른다. 하지만 한참을 들어가도 기관이 작동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씨, 또 당한 거야?”
“그러게 되지도 않는 잔머리를 왜 굴려?”
무진과 일초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상황이 바뀐다.
“대형! 지하입니다.”
지하가 나오자 태민이 선두에 선다.
“신속하게 이동한다.”
“예!”
태민 사형제는 대답을 하곤 그대로 밑으로 몸을 날린다. 지하계단 양쪽에 횃불들이 꽂혀 있어서 내려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 뒤로 무진과 일초가 따른다.
“냄새가 심상찮소.”
“인체 실험을 하는 모양이다.”
“적마교가 태양장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죠.”
“하긴 적마교가 비록 사파지만 혼자선 그런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을 하진 않겠지.”
“그럼 아가씨의 부친이신 호명 선배도 그 때문에 적마교를 떠나려고 하신 걸까요?”
“그게 아니고선 설명할 길이 없다. 태양장이 적마교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신분이 발각되기도 했겠지만.”
두 사람이 얘기를 하면서 천천히 내려가자 밑에서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민이와 운이가 화가 많이 난 모양입니다.”
“인체실험 하는 걸 봤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허억!”
잠시 후, 두 사람이 지하에 도착하자 일초는 몸이 굳어버린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다.
“저..저게 모두 사람이야?”
“엄밀한 의미에선 사람이라고 할 순 없겠지.”
지하엔 지상의 서, 너 배 규모의 너른 공간이 있다.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건 대부분이 침상이다. 수백 개의 침상 위엔 사람으로 보이는 물체가 놓여 있고, 그 옆엔 침상의 숫자만큼의 나무 관이 있다. 무진의 말처럼 이곳은 적마교의 비밀 생체 실험실이다.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동물이군.”
“저긴 반대요. 상체가 동물이고, 하체는 사람이요.”
침상 위에 누워 있는 물체는 모두 반인반수의 괴물이다.
“죽일 놈들! 모두 생사람과 짐승들을 저렇게 만든 것 같소.”
“그럴 거야. 죽은 것보단 살아 있는 걸로 해야 더 강한 괴물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지하 실험실엔 강시들은 없다. 대신 열다섯 명의 호위 무사들이 실험하는 의원들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태민 사형제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사들은 제압당한다. 그때 의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얘들을 깨워라. 어서!”
의원들 중 한 명이 소리치자 몸을 숨기고 있던 의원들이 괴물들에게 달려간다.
“꺄아아앙!”
그걸 지켜보던 소미가 호란의 품속을 빠져나와 의원들을 향해 달려간다.
“으악!”
“아아악!”
소미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스무 명 의원들의 얼굴을 긁어버린다. 소미가 워낙 영물이기도 하지만 의원들이 무공을 모르기 때문에 모두 얼굴을 부둥켜안고 쓰러진다. 근데 그 중 두 명의 의원이 괴물을 깨우는데 성공한다.
“끄아아앙!”
“기세가 대단한데요? 쟤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쉽진 않겠지만 강시들과 싸운 경험이 도움이 될 거야.”
“차라리 제가 나설까요?”
“쯧쯧, 네 놈만 실력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니?”
“예에? 그래도 아직 착한 애들인데...”
“착하면 일찍 죽어야 돼?”
“그건 아니지만.... 어라? 정말이네.”
무진과 일초가 얘기하는 사이 태민 사형제는 괴물들과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일초의 예상과는 달리 동생들은 괴물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오히려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여리게만 봤는데 상당히 거치네요.”
“반년이 넘도록 매일 맞아봐라. 안 거칠어지면 그게 이상하지.”
그 동안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시진씩 무진과 대결을 해왔다. 그렇게 실전 경험을 쌓은 결과 지금은 일초보단 못하지만, 거의 무림 고수들과 맞먹는 노련함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도 처리하긴 어렵겠는데요?”
“호호호! 오라버니가 몸이 근질근질한가 봐요?”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호란이 한 마디 거든다.
“하하하! 아가씨께 들켰네요.”
“하지만 그렇게 되긴 어렵겠네요.”
그녀의 말대로 태민과 태운은 생사무를 사용해서 괴물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태민은 옆구리 한군데만 집중 공략해서 괴물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반면 태운은 괴물의 전신을 공격해서 힘을 분산시킨 다음 약점을 찾아내고 있다.
“크윽!”
“꺄아악!”
두 괴물은 동시에 바닥을 뒹군다. 태민과 싸운 괴물은 전신의 관절이 모두 부서졌고, 태운과 싸운 괴물은 눈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꿈적도 하지 못한다.
“수고했다. 너희가 잘 싸운 것도 있지만, 놈들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더욱 분발하기 바란다.”
“명심하겠습니다.”
“모두 대형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니들이 내 동생이란 게 자랑스럽다. 앞으론 나도 더욱 분발할 생각이다.”
일초는 진심으로 동생들을 격려한다.
“넌 할 일이 있지 않니?”
“제가 요? 그런 게 있었습니까?”
“싫다는 뜻이냐? 그럼 민이가....”
“아..알았소. 하면 될 거 아니요?”
“자식이 한 번에 하는 법이 없어요. 잔소리가 좋으면 앞으로 계속 해주지 뭐.”
“나라고 잔소리를 듣고 싶겠소? 지저분한 일만 시키니까 그렇지.”
“알았다. 넌 쉬어라. 앞으론 뒤처리를 내가 다 할게.”
“됐소. 그래 놓고 얼마나 괴롭히려고. 근데 이 새낀 왜 숨어 가지고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거야?”
일초는 쓰러져 있는 의원과 괴물들을 피하면서 안쪽으로 들어간다. 지하에는 넓은 광장 외에도 몇 개의 방이 있다. 대부분 약초를 비롯한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은 거기뿐이다. 일초도 그곳을 차례대로 살피고 있다. 아마 책임자를 찾는 모양이다.
“여우야, 여우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발가락도 보이고, 옷자락까지 보이네. 타핫!”
일초는 창고를 살피다 두 번째 방에 들어가서는 발로 바닥을 힘껏 내리친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내려앉더니 그 속에서 한 명이 솟아오른다.
“아악!”
그는 즉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른다. 일초의 오른발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커억!”
60대 초반의 노인은 얼굴을 부여안고 바닥을 구른다.
파팟!
일초는 즉시 아혈을 제압해버린다. 자결을 막으려는 것이다.
“난 시간 끄는 걸 싫어한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일초는 무진을 흉내 낸다. 하지만 혈도 제압당한 노인이 대답할 리가 없다. 그냥 눈만 깜빡거릴 뿐이다.
“말하기 싫단 거지? 흐흐흐! 하긴 정신교육을 하고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지.”
일초는 노인의 머리카락을 잡아들어 올리더니 정수리와 목, 그리고 단전 부위의 혈도를 차례로 누른다. 그러자 노인은 전신을 떨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으으으으으..!”
내가 개발한 탈혼사심(奪魂死心)이란 건데 니들이 그동안 해온 것과는 색다른 맛일 거야.
덜덜덜덜...!
시작과 동시에 노인의 몸은 눈에 뜨이게 흔들리고 식은땀을 흘리는 건 물론이고, 거시기에서 누른 액체가 줄줄 흘러내린다. 겁을 먹고 애기처럼 실례를 한 것이다.
“후후후, 역시 고문도 많이 해본 놈들이 더 반응이 빠르단 말씀이야. 이 정도면 대답할 준비가 됐겠지? 아니라고? 그럼 한 단계 더 높은 놈으로 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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