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1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1
“아...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그 사이 혈도가 풀렸는지 노인은 커다란 지하실이 울릴 정도로 소리친다.
“형님이 보기에 준비가 된 것 같소? 내 눈에는 안 된 것 같은데...”
“아...아닙니다. 뭐든지 원하시는 건 다 마..말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자. 니 사부 인간백정은 지금 어딨니?”
“예에?”
노인은 인간백정이란 말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선다. 그리곤 다시 전신을 떨면서 오줌을 지린다.
“으으으으! 그...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멍청한 놈! 무림에서 저런 괴물을 만들 수 있는 놈이 인간백정 말고 누가 있냐? 있으면 말해 봐라. 단지 사마의(死魔醫) 네놈이 그 짐승의 제자란 게 의외일 뿐이다.”
사마의는 무림최고의 의원이면서 무림최악의 공적 중의 한 명이다. 수백 명의 멀쩡한 사람을 납치해서 인체 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게 삼십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가 강시를 만든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인간백정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인간백정이란 별호로 봐선 사마의보단 더 악독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다..당신은 누구요?”
“너 새끼 지금 내 말을 씹는 거지?”
일초는 다시 혈도를 제압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린다.
“도..돌아가셨습니다.”
일초는 잠시 무진을 쳐다본다.
“좋다. 그 말은 믿어주지.”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일초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누구의 지시를 받았느냐? 적마교냐, 아님 태양장이냐?”
‘크으윽! 이놈들은 모든 걸 다 알고 왔다. 그런데도 질문하는 이유가 뭘까?’
“끄아아악!”
사마의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오른 손목이 잘려나간다. 정확하게 말하면 뽑힌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니가 천하제일일지 모르지만 고문만큼은 나보다 잘 하는 인간은 없을 거다.”
“이...일초살수!”
그제야 사마의는 자신이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사마의처럼 평소 누군가에게 쫓기는 자들에겐 살수가 제일 무서운 존재다.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나 가족들이 복수를 위해 살수를 고용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고 무서운 존재가 바로 일초살수이다.
“으으으으으...! 제...제발! 원하는 건 모두 말 할 테니 깨끗하게 죽여주시오.”
“그거야 니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알았습니다. 명령은 적마교에서 받았지만, 그들을 조종하는 건 태양장입니다. 그리고 중원에 이런 곳이 다섯 군데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으면 모든 게 중단 될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장은 이것 외에도 지금껏 세상에 나오지 않은 극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건 사천당가에서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창에선 전설로만 전해오던 독성지체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사마의는 스스로 지혈한 다음 한꺼번에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쏟아낸다. 하지만 일초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이미 무진에게서 진실이 아니란 전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흐흐흐! 난 그래도 개봉에 있는 네놈 가족만은 건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안 되겠군.”
“그..그걸 어떻게.... 그것만은... 제발! 마..말씀드리겠습니다. 전부 다!”
“됐다. 네놈이 아니라도 말해줄 놈들은 많으니까. 대신 개봉과 북경에 숨겨 놓은 네놈의 후손들은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거다. 어떻게 알았냐고? 후후후, 그건 나만의 영업비밀이니까 말하긴 곤란하고, 한 가지만 더 말해줄까? 네놈에겐 너도 본 적이 없는 손주들이 세 명이 더 있단 사실을.”
“예에? 호..혹시?”
“그래. 네 며느리와 딸들이 임신을 했다. 아마 곧 태어날 거다.”
“저..정말입니까?”
“궁금하면 이걸 읽어봐라. 개방의 비밀서고에서 훔친 거니까 틀리진 않겠지.”
일초는 두루마리 하나를 사마의에게 던진다.
사마의.
무림최고의 의원이자 최고의 마의(魔醫). 소문에 의하면 인간백정이란 자의 제자이다. 인간백정은 천축 제일의 의원으로 천축무림에서 공적으로 몰려 중원으로 숨어든 인물이다.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을 동물처럼 죽이고, 실험 도구로 삼는 자이다. ......
무림맹에선 비밀리에 사마의를 무림제일공적으로 선언했다. 그의 가족 관계는 일곱 명의 마누라에 아들이 다섯이고, 딸은 무려 열두 명이다. 손자는 .....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사마의 자신조차 잊어버린 사실까지 빼곡이 적혀 있다. 마지막에 개방 방주의 도장이 찍혀 신빙성을 더한다. 이렇게 되자 사마의는 일초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당신의 말을 믿겠소. 하지만 나도 한 가지 요구할 게 있소.”
“흐흐흐, 네놈이 큰소리치는 걸 보니 꽤 묵직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건 당신이 판단할 일이고, 죽기 전에 손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소.”
이번에도 일초는 무진에게 먼저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무진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쯧쯧쯧, 어떡하냐? 우리 형님께서 협상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말이야.”
‘이건 또 뭐냐? 일초살수의 형님이라니? 으음! 하긴 아무리 천하제일살수라도 혼자의 힘으론 태양장과 맞설 순 없겠지. 하지만 이번만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
“크아아악!”
사마의가 잔머리를 굴리는 사이 일초의 손이 다시 그의 혈도를 짚어버린다.
“말했지? 우린 협상 따윈 하지 않는다고.”
“이..이건 나만 알고 있는 정보요. 만약 막지 못하면 수만, 아니 수십, 수백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소.”
“후후후, 어딜 가나 꼭 이런 놈들이 있단 말씀이야. 세상을 좌지우지할 만한 정보를 자기만 알고, 자기만 막을 수 있단 착각에 빠진 놈들이. 하지만 지나고 나면 개뿔 아무 것도 아니란 게 밝혀지기 마련이지. 잘 가라. 외롭지 않게 니 후손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널 따르게 해주마.”
이 말을 끝으로 무진 일행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긴다. 그 사이 태민 사형제가 지하 실험실 전체에 기름을 뿌려놓았다. 이제 태운이 들고 있는 횃불만 던지면 이곳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될 것이다.
“일초, 이 개새끼야! 내가 졌다. 졌단 말이다. 말 할게. 전부 다 말 할 게.”
사마의가 항복 선언을 하는 데도 일초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독이다. 독! 놈들이 북경과 개봉을 비롯한 십대 대도시 한복판에 독을 뿌릴 예정이다. 한 날 한 시에.”
“우뚝!”
그제야 무진이 발걸음을 멈춘다.
“네 놈이 뿌린 씨앗이니 네 놈이 막아라. 그럼 넌 네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
“사...살려 주겠단 말이오?”
“우리도 널 살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네 놈 손에 죽은 사람들과 그 가족의 원한은 네 놈이 수십, 수백 번을 죽어도 풀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네 놈이 말한 것들을 모두 막는다면 그들도 우리의 결정을 반대하진 못할 것이다. 선택은 니가 해라.”
“흐흐흐흐, 그러니까 어차피 그 일들을 막다가 죽을 거니까 손해 볼 게 없단 말이군.”
“그건 니가 하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 네놈이 인간백정의 절기를 모두 익혔거나 익힌다면 불가능하지만도 않을 테니까.”
“허억! 그걸 알다니... 당신은 또 누구요?”
“그건 네놈이 수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알기 힘들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엔 나 말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소.”
“후후후! 그럼 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귀신이냐?”
“그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소. 대체 누구요?”
“후후후, 괜히 힘 빼지 마라. 저 양반에 대해서 알고 나면 네가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게 될 테니까.”
“으음!”
“근데 넌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 거냐? 운아!”
일초는 사마의가 머뭇거리자 태운에게 신호를 보낸다.
“예, 형님!”
태운은 들고 있는 횃불을 실험실의 중앙에 던진다.“
휘리리리링! 화르르르!
횃불은 날아가자마자 바닥에 흥건한 기름과 하나가 되어 사방을 불바다로 만든다.
“가..같이 갑시다!”
후다다다닥!
사마의는 횃불이 공중으로 떠오르자마자 혼신의 힘을 다해 계단을 향해 달린다. 오히려 계단을 오르는 건 무진 일행보다 더 빠르다. 일행이 일층에 올랐을 땐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혼자 보내도 될까요?”
“후후후, 저놈은 지금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할 입장이다. 그렇다고 비밀을 다 토설한 상태에서 적마교나 태양장 근처엔 갈 수도 없을 테고. 오히려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막으려고 애쓸 거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개방으로부터 놈이 말한 독과 관련된 사항을 전달받고 형님이 고민이 많았다. 황금상단을 포기할 생각도 했을 정도로.”
일초가 태민의 물음에 전후 상황을 설명한다. 이런 걸 일타쌍피라고 한다. 단 한 번에 인체 실험과 독 살포 문제를 다 해결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럼 오히려 잘 된 일이군요.”
“잘됐다는 말은 좀 그렇고. 고민거리를 해결했으니 한 결 가벼운 마음으로 황금상단으로 갈 수 있게 됐다.”
“다행이군요.”
일초와 태민의 대화가 마무리 되자 이번에는 태운이 나선다.
“형님들은 이번 일을 예상하고 있었죠?”
태운의 질문에 일초과 무진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실은 개방의 보고서엔 최근 사마의의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기대를 한 건 사실이다.”
“우리도 형님이 사마의와 인간백정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대충 눈치를 챘습니다.”
“음흉한 놈들! 순진한 척하더니 속으론 호박씨를 까고 있었군.”
“모두 형님의 가르침 덕분이지요.”
“저희 사형제는 항상 형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럼 나도 음흉하단 말이냐?”
“그럼 아니냐?”
무진이 슬쩍 끼어든다.
“아가씨!”
일초는 할 수 없이 자신의 지지자이자 마지막 보루인 호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저도 가능하면 오라버니 편을 들어주고 싶은데, 이번 건 안 되겠네요. 누가 봐도 그건 사실이에요.”
“예에?”
“하하하!”
“히히히히! 이번에는 형님의 완패입니다. 완패!”
“쯧쯧, 형이란 놈이 동생들에게 놀림감이나 되고, 잘 하는 짓이다.”
“니들 나중에 나 좀 보자.”
“형님, 혹시 이런 말 아세요?”
“무슨 말?”
“‘나중에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태운이 결정타를 날려버린다.
“하하하! 호호호!”
이렇게 무진 형제는 웃음보따리를 터뜨리며 긴장을 푼다. 한편 무진 일행이 떠난 후 적멸장은 지하에서부터 불타기 시작해 무려 일주일 동안 꺼지지 않았다. 한 동안 동네 사람들은 지독한 냄새로 인해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고 한다. 냄새는 적멸장이 전소한 뒤에도 한 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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