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2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27
“대형이요?”
“세상에서 제일 무뚝뚝한 우리 형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상상이 안 되네.”
“정말이야. 물어 봐.”
“흥! 그러니까 동생들은 안중에도 없었겠지. 아마 우리가 오니까 귀찮았을 거야.”
“방해꾼이 왔다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우린 대형을 찾느라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는데.”
“멀리서 대형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간신히 참았어요.”
“아..알았다. 알았어. 내가졌다. 이리 와봐. 얼마나 컸는지 한 번 안아보자.”
“형님!”
“대형!”
태민 사형제는 달려가서 무진의 품에 안긴다. 이들의 인사 방법은 항상 이렇다. 감정을 최대한 증폭시킨 다음 눈물로 승화시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다.
“늙은이가 보냈느냐?”
“예, 대형 말씀대로 우린 이제 속가제가가 됐습니다.”
“앞으론 두 분을 모시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후후, 듣기는 좋다만 언제까지 우리랑 살 거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계속 이렇게 살면 되죠.”
“그래서 계속 우리 사랑을 훼방 놓겠다고?”
“니들은 결혼도 안 하고?”
무진과 호란에 연속으로 동생들을 몰아세운다.
“결혼요?”
“그건 생각을 안 해봤는데....”
호란의 질문에 두 사람은 당황한다.
“정말?”
“예에...”
태민은 말꼬리를 흘린다.
“그럼 안 되겠네.”
“뭐가요?”
“정랑이 니들 결혼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거든. 그래서 최근에 괜찮은 신붓감을 찾았는데, 니들이 싫다니 할 수 없지 뭐.”
“정말입니까? 누군데요? 어떤 여자예요? 예쁜가요? 혹시 저희도 아는 여잔가요?”
태운은 숨도 쉬지 않고 질문을 해댄다.
“싫다며?”
“누가 싫다고 했어요? 생각을 안 해봤다는 거지.”
“그 말이 그 말이잖아?”
“그럼 누님은 결혼할 생각을 많이 해서 대형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어요?”
“당연하지. 난 어릴 적부터 정랑과 같은 분이랑 결혼할 생각이었어.”
“누님이?”
“그래. 나 원래 엉큼한 여자야. 몰랐지?”
“몰랐다기보다 상상이 안 가네요.”
“난 결혼할래요.”
태운이 갑자기 폭탄선언을 한다. 당연히 무진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며칠 전만 해도 무당 도사였던 놈이 결혼한다는 말이 잘도 나오네. 원신천존께서 이 얘기를 들으면 뭐라 하실까?”
“저야 안 하고 싶지만 형님이 저희를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신다니 어찌 동생 된 도리로서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야, 우리 운이 정말 말 잘한다.”
“말이야 청산유수지. 그래. 우린 어떻게 찾았니?”
“우리도 요즘 형님처럼 개코란 별명을 얻고 있습니다.”
“니들 힘으로 찾았단 말이냐?”
“한 동안은 우리 힘으로 두 분을 찾아다녔습니다. 헌데 갑자기 개방에서 우릴 찾아왔습니다.”
“개방에서? 혹시 추개라고 하더냐?”
“예.”
“나와 형제의 연을 맺었다.”
“말씀 들었습니다.”
“뭐라더냐?”
“두 분이 실종됐다고 하셨습니다.”
“실종?”
“예. 그 형님께선 따로 할 일이 있다며 우리에게 두 분에 대한 정보를 주셨습니다.”
“고생깨나 했겠구나.”
“사흘 동안 이 일대를 샅샅이 뒤져서 간신히 구덩이를 찾았습니다.”
“구덩이?”
“예, 형님이 만드신 거 아닙니까?”
“관련된 건 맞지만 내가 만든 건 아니다.”
“아! 어쨌든 그걸 찾고서야 실마리를 풀 수 있었습니다.”
“그럼 숲속에서 싸운 것도 니들이냐?”
“그걸 누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난 니들인지도 모르고 피해서 여기로 왔지.”
“아, 그러셨군요.”
“우리가 일대를 살피자 암습을 하더군요.”
“태양장이더냐?”
“그렇습니다. 아마 놈들은 우리가 형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굽니까? 당연히 처리했죠.”
“그건 그렇고, 자! 그 동안 수련은 열심히 했겠지?”
“물론입니다. 사형의 등살에 하루에 겨우 두 시진씩 자고서 수련에 몰두했습니다.”
“두 시진씩이나 잤단 말이냐? 내가 니들만할 때 어떻게 수련했는지 말해줄까?”
“.....?”
무진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 두 사람은 입을 다문다.
“십대 때부터 잠은 거의 자지 않고, 하루에 한 시진씩 명상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명상도 그날 수련한 걸 복기하는 시간이었다.”
“며칠이면 모를까, 그게 일 년 동안 가능합니까?”
“무림에서 방구깨나 끼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지.”
“잠도 안 자고 수련만 하니까 방구가 자꾸 나오는 겁니다. 아얏!”
태운이 투덜대자 사형인 태민이 꿀밤을 준다.
“형님이 까라고 하면 깔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따라와!”
태민은 사제의 귀를 잡고 끌고 나간다.
“아아얏! 놓고 갑시다. 아프단 말이오.”
“수련하기 싫으면 청소할래?”
“무슨 소리요? 내가 언제 안 한다고 했소? 갑시다! 가!”
태운은 청소라는 말에 기겁하면 따라 나선다.
“호호호! 귀엽지 않나요? 제 동생들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요즘 세상에 저런 깜찍한 애들은 드물어요.”
“귀여운 건 모르지만 깜찍하다는 건 좀.... 아..아니오. 귀엽고 깜찍한 동생들이오. 하하하!”
호란이 노려보자 무진은 곧바로 말을 바꾼다.
“호호호! 하하하!”
두 사람은 동생들을 따라 나가며 즐겁게 웃는다.
‘과연 내가 추구하는 무예는 어떤 것인가? 신선이 되는 것? 아니면 약자 위에 군림하기 위한 도구? 그도 아니면 내 몸과 주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 그 모든 걸 합친 것? 과거 난 자연무예 같은 걸 몰라도 고금제일인자란 소릴 들었다.
난 내공을 다 잃고 나서야 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 이런 무공들을 배워서 어디에 써 먹어야 하나? 자연무예라.... 마음의 무공을 배우면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 치자 그럼 그 다음엔 뭘 하지?
정말로 신선이 되는 무공을 익혀야 하나? 내 몸을 지키고, 형제들을 보호하는 일은 그런 걸 몰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무공에 대한 욕구는 매일 같이 샘솟고 있다. 성취욕 때문인가? 아니면 과거에 연연해서인가? ..... 어쩌면 그게 원인일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원수를 찾고 복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공을 되찾으려고 했고, 그 덕분에 지금은 과거의 나를 뛰어넘었다. 그런데도 자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배신자들 중에도 살아남은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지금도 무림을 지배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더 무공에 집착하는 것일 테고.
..... 복수가 무조건 나쁜가? 날 배신했다고 해서 모두 악인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내게 보여준 모습대로 무림을 지배한다면 무림은 절대 평화로울 수가 없다. 현 무림이 혼란스러운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무공을 배우는 거라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후후! 내 자신을 합리화하는 건가? 으음!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무공을 익힐 수 있다. ....’
이렇게 시작된 무진의 명상은 밤이 새도록 계속된다.
이곳은 중원제일의 상단인 황금상단이다.
아침이 되면서 상단 전체가 발칵 뒤집어진다.
< 황금상단의 비밀금고가 털렸다! >
중원제일의 상단이자, 단주는 중원제일의 부자이다. 그런 사람의 비밀금고에는 황궁금고와 맞먹을 정도의 귀한 물건들이 쌓여 있다. 그런 것이 하루 밤사이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모두 털린 것이다.
놀라운 건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천 명이 넘는 식솔들이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만약 아침에 단주가 비밀금고를 열어보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입니다.”
“후후후, 자넨 금고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아는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금 단주의 집무실엔 두 명이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다. 한 명은 단주인 천호상이고, 그 맞은편엔 총관인 현호가 앉아있다.
“금괴일세.”
“아, 금괴였군요. 다른 건요?”
“다른 건 없었네. 다른 것들은 따로 보관하고 있네.”
“예에? 모두가 금괴였다면....”
현호는 처음에 금괴란 말을 듣곤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근데 전부 금괴란 말에 상당히 당황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단주의 침실 밑에 있는 비밀금고는 침실보다 다섯 배나 더 크다. 거기에 반만 채워졌다 해도 그 규모가 엄청나다. 어쩌면 황궁금고보다 더 많은 양의 금괴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근데 전체가 금으로 채워졌단다.
“양이 문제가 아닐세. 그 중 반은 황실을 대신해서 우리가 보관해온 걸세.”
“예에? 황실의 물건을 우리가 왜?”
보관해왔느냐는 말이다.
“전쟁을 대비해서 금괴를 분산시켜 놓은 걸세.”
“그럼 금괴가 군자금이었다는 건데, 정말 큰일이군요.”
“이번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황금상단이 무너지는 건 물론이고, 자네와 난 역모의 죄로 목이 떨어질 거야.”
“혹시 짐작하는 거라도 있습니까?”
“자넨 내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나?”
“단주님의 배포야 익히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여유를 부린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수백 년을 이어온 황금상단입니다. 이제 포기하고 싶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건 단주님의 힘 또한 그만큼 강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결코 이렇게 당하지만 않을 거라 믿습니다.”
“후후, 좋게 봐줘서 고맙네. 일단 상황부터 판단해보세.”
“예, 단주.”
“자네 말대로 금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 그건 한 가지의 경우뿐이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금괴에 대해서 잘 알고, 그걸 흔적도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세력이 얼마나 될까?”
“황실과 태양장!”
“바로 그걸세.”
“황실은 자기 물건을 훔칠 이유가 없으니, 결국은 태양장이란 말이군요.”
“그렇다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네.”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 돈으로 금을 사 모으거나, 황실과 태양장의 싸움을 붙이는 거지.”
“황실 몫의 금괴는 어느 정도 됩니까?”
“황금으로 일억 냥일세.”
“으음! 단주님 재산의 2할이군요.”
“돈이야 앞으로 벌면 되지. 하지만 황실과의 신뢰가 깨지면 황금상단은 존재하기 어렵네.”
“그렇다고 황실이 일방적으로 우릴 공격하진 못할 겁니다.”
“그야 그렇지만 황실이 우릴 죽이려 한다면 못할 것도 없네. 당장 황실과의 거래만 끊어도 우리 수입의 반 이상이 줄어들 테고, 황실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온갖 놈들이 시비를 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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