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26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26
“울컥!”
무진은 명상 중에 피를 토하며 과거로부터 빠져나온다.
“정랑!”
호란은 그를 안고 움막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힌다.
“으으으으으!”
무진은 전신을 떨면서 고통스러워한다. 마치 서리가 앉은 것처럼 전신이 하얗게 변한다.
‘위험하다. 몸이 너무 차갑다. 기혈이 뒤틀린 상태에서 명상까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불을 최대한 높이고, 이불을 모두 덮어보지만 효과가 없다.
‘이 상태론 체온을 높이긴 어렵다. 으음, 그 방법밖에 없다.’
그녀는 스스로 옷을 벗고 그 옆에 눕는다. 자신의 체온으로 무진의 몸을 데우려는 것이다.
‘으으으으! 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 정랑의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내 몸부터 데워야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손으로 가슴을 비롯한 전신을 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입에서 뜨거운 숨소리가 흘러나온다.
“하, 하악! 으으음... 정랑!”
이어서 무진의 몸을 애무한다. 가슴부터 시작해서 목과 입술, 그리고 아래로.....
그녀는 거의 한 시진을 그렇게 무진을 자극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무진의 몸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하얀 냉기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반면에 호란은 점점 힘을 잃어간다. 상처도 다 아물지 않았는데 너무 많은 기운을 사용한 탓이다.
“허억! 저..정랑!”
그녀가 거의 정신을 잃어갈 무렵 갑자기 무진이 그녀의 위로 몸을 싣는다.
“크크크!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이 이성을 잃은 듯하다.
“저..정랑! 이..이러시면... 정신 차리세요. 허억! 으으음!”
이번에는 상황이 뒤바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란이 그를 자극했다면 이젠 무진이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를 점령해 들어간다.
“크으윽!”
“아아악!”
두 사람은 이미 몸이 뜨거워진 상태라 금방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은 새벽이 밝아서야 진정되고 무진은 깊은 잠의 늪으로 빠져든다.
< 추울수록 더 아름다운 눈꽃은 우리 님 마음 같이 뜨겁고, 뜨거울수록 더 황홀한 열꽃은 우리 님 거시기 같네. >
“호호호호!”
아침 햇살이 가득 찬 움막 안에선 호란의 콧노래소리가 흥겹다. 그녀는 스스로 지은 노래를 부르다 부끄러운지 웃으며 얼굴을 붉힌다.
“우리 정랑은 잠꾸러기네. 이제 그만 일어나셔요. 아침을 드셔야죠.”
그녀가 침대로 가서 무진의 몸을 가볍게 흔들어보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사실 무진은 식사를 잘 하지 않는다. 월계 마을에 있을 때만 해도 거의 식사를 하지 않았다.
외관상으론 많이 먹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흉내를 낼 뿐이다. 무당제자들과 여행을 시작하면서 약간씩 먹고 있을 뿐이다. 호란도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마땅찮아서 식사 준비를 한 것이다.
“너무 예쁘다.”
그녀는 아침 이슬에 반사된 햇살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걸 보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절로 마음이 동한 것이다. 근데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뭔가 시커먼 물체가 안으로 들어온다.
콰앙!
문이 부서지면서 그녀보다 배나 더 큰 곰이 들어온다. 겨울 잠자리를 찾던 중인 모양이다.
타핫!
호란은 오른발로 곰의 턱을 날린 다음 품에서 단검을 꺼내 곰의 심장 부위를 정확히 찌른다. 번개 같은 움직임이다. 문을 열기 직전 곰을 감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는다.
쨍그랑!
단검은 곰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곰의 가죽이 단단하기도 하지만 상처 때문에 내력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 주원인이다.
“크아앙!”
곰은 멍하니 서 있는 호란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녀의 머리는 몸과 분리됐을 것이다. 그녀는 간신히 피한 다음 무진을 향해 몸을 날린다. 호란은 재빨리 그를 업고서 벽에 세워져 있는 사냥용 죽창을 들고 곰에게 달려간다.
퍼억!
곰의 머리를 노리던 죽창은 정작 곰의 왼발을 찌른다. 동시에 그녀는 창문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여기까지는 성공이다.
“크악!”
호란의 비명이 사방으로 울러 퍼진다. 창문을 통과하는 순간 곰의 주먹이 그녀의 왼쪽 어깨를 강타한 것이다. 그녀는 무진을 업은 상태로 바닥을 뒹군다. 순간 정신을 잃는다.
“크아아앙!”
발등에서 피가 흐르자 곰은 극도로 흥분한다. 그대로 달려와 등에 업혀 있는 무진을 잡더니 던지려 한다. 그런 다음 호란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으으윽! 어찌된 일이지? 기운을 움직일 수가 없다.’
무진은 막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겨우 상황 판단을 하고 기운을 움직이려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것이다. 몸은 물론이고, 자연의 기운을 사용할 수가 없다. 분명히 어제 저녁만 해도 기운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때가 곰이 그의 등을 잡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끝인가? 내가 던져지면 란이는 분명 죽임을 당할 것이다. 안 된다. 그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무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운을 사용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번뜩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갑자기 눈을 감더니 손을 앞으로 내민다.
푸욱!
마치 모든 걸 포기한 것 같은 행동에 곰의 목이 잘려 바닥에 떨어진다. 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땅바닥에 내려선 무진조차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뿐이다.
이게 바로 그거였다. ‘모든 걸 버리면 모든 걸 얻는다.’는 경지.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연무예를 펼친다.
스르르르릉!
순간 일대의 기운이 그의 손놀림에 따라서 움직인다.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기운이 그의 손에 의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으음! 손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는 이번에는 그냥 생각만으로 기운을 사용한다.
“우웃!”
그는 자신이 하고도 놀란다. 손으로 한 것보단 약간 부자연스럽지만, 생각만으로도 기운이 움직인 것이다.
우르르르릉!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단지 눈으로 보고 생각했을 뿐인데, 움막 반대편의 산봉우리 하나가 통째로 공중으로 솟아오른 것이다. 다시 제자리를 내려앉을 땐 미세한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무진은 이제 또 다른 무공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휴우! 꼭 이런 홍역을 치러야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나? 무공을 익히기 전에 심장부터 단련시켜야겠다.’
그는 손으로 심장을 만지며 호란에게 시선을 돌린다.
“괜찮소?”
그녀도 막 정신을 차렸다.
“정랑이 제 목숨을 또 구해주셨군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날 구해준 거요. 고맙소.”
“호호호! 아무렴 어때요? 우리는 한 몸인 걸요.”
“하하하! 듣고 보니 그렇구려.”
무진은 호란에게 다가가며 포근히 감싸 안는다.
“정랑! 이제 뜻을 이루셨나요?”
“완전하진 않지만 고민거린 해결했소. 그것도 당신 덕분이오.”
“호호호! 모든 게 저 때문이면 어떡해요?”
“난 사실만을 얘기하는 거요.”
“그럼 앞으론 제가 없으면 안 되겠군요.”
“지금까지도 당신이 없었다면 이런 경지에 오르진 못했을 거요.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이 아니었으면 난 세상에 다시 나오지도 않았을 거요.”
“호호호! 그 어떤 사랑 고백보다 듣기가 좋네요.”
“그런 의미에서 당신에게 선물을 하나 하고 싶소.”
“선물을 요? 혹시 결혼 예물을 말씀하는 건가요?”
“그렇소. 혹시 따로 원하는 거라도 있소?”
“전 당신만 있으면 돼요.”
“하하하! 그런 거 말고 갖고 싶은 거나 원하는 거 말이오.”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정랑은 제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모르시죠?”
“다 말해도 좋소. 한꺼번엔 못해줘도 반드시 다 해주리다.”
“호호호! 말씀만 들어도 다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네요. 그럼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말해보시오.”
“이미 제 맘을 읽은 건 아니죠?”
“말했잖소? 노력하고 있다고. 이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읽을 수가 없소.”
“좋아요. 제가 원하는 건 사랑이에요.”
“사랑? 세상에서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런 거 말고. 어제 저녁에 당신이 해준 정열적이고, 뜨거운 사랑 말이에요.”
“하하하! 그게 그렇게 좋았소?”
“이젠 당신의 몸과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행복했어요.”
“알았소. 앞으론 더 노력하리다. 아니, 지금 하는 건 어떻소?”
“흥!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런 말을 하시기예요?”
“하하하! 사실 방해꾼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까 또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소.”
“그럼 우리 다른 곳으로 도망칠까요?”
“그럴까?”
무진은 말을 하면서 두 손으로 호란의 허리를 감싼다.
“호호호! 애들이 흉보겠어요.”
“볼 테면 보라지? 저놈들이 우리 사랑을 방해한 게 한 두 번이오?”
“그럼 우리도 골탕을 먹일까요?”
“어떻게?”
“둘을 결혼시켜서 방해하면 되죠.”
“하하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 안 그래도 서희를 한 놈에게 보낼 생각이오.”
“저도 생각이 같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서희도 동의했고.”
“후후후! 이놈들아, 니들 이제 제대로 걸렸다.”
두 사람이 재밌게 얘기하는 사이 멀리서 두 사람이 달려오는 게 보인다.
“대형!”
“란이 누님!”
태민과 태운 사형제이다. 그들은 극양자와 진운자의 명을 받고 두 사람을 찾아 나섰다.
“태민과 태운이 대형과 누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은 무진과 호란에게 정중하게 인사한다.
“우리 예쁜 동생들, 그 동안 잘 지냈어?”
호란은 두 사람의 손을 만지며 반가워한다.
“누님도 참, 우리가 어린아인가요? 예쁜 동생이 뭐예요? 늠름하다. 듬직하다. 멋지다. 사내답다. 이런 말들도 많은데.”
태운은 약간 토라진 얼굴을 한다.
“어이구, 그래서 우리 예쁜 동생들이 삐졌어?”
호란은 아예 엉덩이를 두드리며 애정을 표시한다.
“삐졌다기 보단 누님이 보고 싶어서 혼났어요. 그래서....”
태운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글썽인다.
“그래. 누나도 니들이 보고 싶었단다. 정랑만 아니었으면 무당으로 돌아갔을 지도 몰라.”
호란도 같이 눈물을 훔치며 동생들을 안아준다.
“누님!”
세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잘들 한다. 그래. 니들 눈에는 누나만 보이고, 이 형님은 안 보이냐?”
“이크! 큰일 났다. 정랑이 삐졌나 봐.”
“형님이 삐질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러게요. 매일 천하제일미인인 누님과 같이 있었으면서.”
“듣고 보니 그러네. 아까도 그러더라고. 나랑 같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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