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2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23
“혀... 대공자!”
양문은 순간 무진을 형님이라고 부를 뻔했다.
‘이건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다. 그렇다는 건 형님이 내상을 크게 입었다는 건데.... 어떡하지?’
양문은 무진을 진맥하려다 포기하고 월령전의 무사들을 살핀다.
“퇴각하라!”
뒤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치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크윽!”
유호도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다리의 상처가 생각보다 심하다. 출혈도 심했지만 암기에 독이 묻어 있었다.
“공자, 대공자와 아가씨가 돌아가셨소이다.”
“뭐..뭐라고?”
유호는 기어오다시피 와서는 호란의 상태를 살핀다.
“이..이익!”
그는 호란의 호흡이 끊어진 걸 확인하곤 극도로 분노한다. 그로선 평생 처음으로 흠모하는 여인을 만났다. 근데 자신의 정적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
“으아아아아아! 커커커억! 우욱!”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기혈이 역류해서 피를 토한다.
“공자!”
파팟!
양문이 유호의 혈도를 막아서 지혈을 하자 일단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게 보인다.
“둘째 공자님!”
대륜장의 무사들이다. 그들 중 셋이 유호를 황급히 들쳐 업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머지는 무심장을 정리하고 양문이 지낼 곳을 마련해주었다. 다음 날 양문은 마차를 마련해서 무심장을 나섰다. 무심장의 사람들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무심장을 떠난 무진과 호란은 우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중간에 형제들을 만나서 잠시 얘기를 한 걸 제외하곤 곧바로 이동하고 있다. 형제들 각자에게 임무를 주고 두 사람만 떠나는 중이다. 그 와중에 태양장에 대한 소문도 들었다. 추개와 소개가 보내온 소식이다.
< 태양장의 공식 후계 구도는 일공자인 소장주와 이공자인 둘째 공자의 전면 대결로 치닫고 있다. 발단은 소장주가 둘째 공자를 공격한 것이고, 이에 둘째 공자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의외로 태양장은 조용하다. 장주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일체 언급이 없다고 한다. 태양장에 정통한 사람들은 태양장의 전통대로 승자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
이게 개방에서 가져온 보고서의 내용이다.
“정랑, 우린 어디로 가나요?”
“후후, 보름이 지났는데 이제야 물어 보는 거요?”
“정랑이 말씀해주실 때까지 기다렸죠. 궁금하진 않지만 그래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여쭤보는 거예요.”
“아미파로 가는 중이오.”
“저더러 머릴 깎으라고 하실 건 아니죠?”
“물론이오. 당신이 머릴 깎으면 나도 중이 돼야 하는데, 그건 싫소.”
“호호호! 갑자기 정랑의 머리 깎은 모습이 궁금해지네요. 재밌을 것 같아요.”
“흉하겠지. 당신은 그래도 예쁠 거요.”
“호호호! 칭찬이죠? 요즘 정랑에게 예쁜 말만 들어서 너무 좋아요.”
“당신이 좋으면 앞으론 좀 더 자주 하리다.”
“저야 좋지만 오라버니들의 질투가 심해서 곤란해요.”
“질투하면 어때서? 그게 싫으면 장가를 가든가.”
“그리고 보니 전 앞으로 바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거라도 있소?”
“형제들이 하나 같이 혼자니 저라도 나서서 뚜쟁이 역할을 해야죠.”
“하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당신이 나선다면 조만간 하루가 멀다 하고 시집 장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소. 우욱!”
“정랑!”
무진이 피를 토하자 호란이 그의 몸을 안고 진정시킨다. 무진은 무심장에서 큰 내상을 입었다. 호란과 양문이 위기에 처하자 자신도 모르게 내력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전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뭐가 이상하오?”
“정랑의 심법은 언제 어느 때나 원하면 멈출 수 있다고 했어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그리고 자연무예도 그래요. 자연의 기운을 몸속으로 끌어들였다가 사용하는 거나, 그냥 자연 상태에 있는 걸 바로 사용하는 게 뭐가 달라요? 몸속에 받아들였다가 사용하는 기운은 내상을 일으키지 않는데, 자연 상태에서 바로 사용하다 멈추면 내상이 생긴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으음!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은 것 같소.”
“어떻게요?”
“아직도 내가 기를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소.”
“정랑이요?”
“그렇소. 자연의 기운을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건 자신의 그릇에 맞게 할 수밖에 없지만, 바로 사용하는 건 다른 것 같소. 무심장에서도 거기에 문제가 있었던 거요. 나도 모르게 내 그릇보다 더 큰 기운을 사용한 모양이오.”
“자연의 기운을 몸에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사용하는 것도 그릇의 크기와 관련이 있단 말씀인가요?”
“그렇소. 만약 내가 당황하지만 않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요. 하지만 난 당신과 문이가 위기에 빠지는 걸 보곤 급한 나머지 너무 큰 기운을 사용한 거요.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소.”
“내공을 갑자기 거둬들인 게 문제였군요.”
“그렇소. 사용한 것도 제어하기 힘든데 거두기까지 했으니 내 그릇이 감당을 못한 거요.”
“으음!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그 외에도 문제는 있소.”
“어떤 문젠가요?”
“자연의 기운을 몸속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좋긴 한데, 여전히 그릇을 키워야 하는 숙제가 남았소.”
“현재로선 기운을 받아들이지 않고선 그릇을 키우기 어렵다는 거군요.”
“그렇소.”
“그래도 전 정랑을 믿어요. 언제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발전을 이뤘으니까요.”
“그렇게 말해주니 힘이 생기는구려. 근데 지금 상태에서 누군가가 우릴 노리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소?”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전 정랑을 믿어요. 설사 위험하다 해도 정랑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요.”
“하하하하! 그댄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하는구려.”
“그래서 싫으세요?”
“그럴 리가 있겠소?”
“전 정랑이 듣기 좋으라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말 할 뿐이에요.”
“진심이란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요?”
“잘 아시잖아요? 제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요.”
“참, 요즘은 그 연습도 하고 있소.”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이전에는 당신을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이 읽어졌었소. 처음엔 좋았소. 그 덕분에 당신을 내 마음에 두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한 점도 많아졌소. 내가 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이 저절로 읽혀졌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선택이 가능한가요?”
“연습을 하고 있소. 내가 원할 때만 읽을 수 있게 말이오.”
“그건 잘하시는 것 같아요. 만약 정랑이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불쾌할 수도 있으니까요. 호호호! 전 아니에요. 전 정랑과 모든 것이 하나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도 당신은 내 맘을 읽을 수 없잖소?”
“궁금하면 물어보죠 뭐.”
“후후후, 그렇게 하면 되겠군.”
“지금 물어볼 게 있어요.”
“말해 보시오.”
“원래는 두 가지가 궁금했는데, 하난 이미 해결이 됐어요.”
“그게 뭐요?”
“아버님이 제게 남긴 걸 아시는가 하는 건데, 이미 알고 계실 테고.”
“그렇소. 다른 건 뭐요?”
“안 읽으려고 애쓰시지 마세요.”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소.”
“호호호, 그럼 말씀드리죠. 아..아니에요. 정랑이 말씀해주실 때까지 기다릴래요.”
“하하하! 내 가족 얘기요?”
“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치도록 궁금했어요. 근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아요.”
“나도 숨길 생각은 없었소. 다만 아직까지 얘기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오.”
“그럼 마음이 내키면 그 때 해주세요.”
“지금 하고 싶은데 방해꾼이 왔소.”
“잘됐네요. 안 그래도 전 정랑의 손길이 좀 필요해요.”
“후후후, 나도 그렇고 싶었소.”
“히히히! 아 따뜻하다.”
무진이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젓꼭지를 만지자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든다. 그녀도 무심장에서 다친 상처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 지난 보름 동안 계속 치료했는데도 그렇다. 단검과 암기에 독이 묻어 있기도 하지만, 무진의 도움 없이 운기조식으로만 치료를 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다.
“으음! 적마교인가? 지금 내 상태론 자연무예를 펼칠 수 없다. 후후후, 모처럼 몸으로 때워야겠군.”
무진은 허탈하게 웃으며 작은 공터 앞에 우마차를 세운다.
“그만 나오시지?”
잠시 후.
다섯 명의 덩치가 큰 사내들이 숲에서 나온다. 그들은 모두 웃통을 벗고, 손에는 쇠사슬을 감고 있다.
“흐흐흐, 어린놈이 제법 눈썰미가 있구나.”
“적마교의 고수들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가?
“호오! 우리가 적마교에서 왔단 것도 알고, 제법이네.”
“네놈이 무진이란 놈이냐?”
“무진이는 맞는데, 놈은 아니야. 근데 니들은 남의 말을 씹는 게 습관이니?”
“씹어?”
“사람이 질문을 했으면 답을 해야지. 쯧쯧, 내가 뭘 물었는지도 모르지? 한심한 놈들. 그러니까 항상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거야.”
무진은 상대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어린놈의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더러 한심하다네.”
“아냐, 아냐. 한심하단 건 과분하고, 멍청한 거야.”
“이 새끼가 정말 죽고 싶나?”
“그럼 날 살려주려고 했어?”
“흐흐흐, 어린놈이 어른에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걸 보니 한 가닥 하는 모양이다. 근데 말이야.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그런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하니?”
“후후후, 철인오마가 뭐 대단하다고. 1:1로 자신이 없어서 떼거리로 덤비는 주제에.”
철인오마(鐵人五魔)!
‘정파에 소림십팔동인이 있다면 사파엔 철인오마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사파에서 철인오마의 위상은 대단하다. 이들이 무서운 건 각자의 신체가 거의 금강불괴(金剛不壞)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펼치는 합공은 소림십팔동인보다 더 강하는 것이 무림의 정설이다.
“.....”
갑자기 철인오마가 입을 닫는다. 그들은 무진이 자신들을 알아볼 줄은 몰랐다. 근데 자신의 정체를 알면서도 여유를 부린 것이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흐흐흐, 안 그래도 어린놈을 죽이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잘 됐네. 빨리 끝내고 계집을 끌고 가자.”
이들의 목적은 호란이다. 그녀를 끌고 가기 위해서 온 것이다.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무진은 그제야 우마차에서 내려온다.
“가능하면 한꺼번에 덤벼라. 나도 갈 길이 멀거든.”
“그래. 소원대로 해주마. 쳐라!”
촤르르르!
철인오마는 손에 감은 쇠사슬을 풀더니 손을 들어 회전을 한다.
휘이잉! 휘이잉!
다섯 명이 쇠사슬을 돌리며 압박해오자 사방에서 회오리바람이 분다. 하지만 무진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씩 앞으로 파고든다.
무진은 처음부터 철인오마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쇠사슬을 사용하기 때문에 좁은 거리에선 공격하기가 어렵다. 접근전에 약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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