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2 장 검귀 아케드.
진월도 그제야 뭔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돌린다. 진월의 예민한 감각에도 이제야 느껴지는 것을 청안의 사내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진월보다 감각이 훨씬 뛰어난 자라는 뜻이다.
청안의 사내가 시선은 먼 곳에 둔 채 진월에게 묻는다.
“네 대답 여하에 따라 너희들의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 그 꿈이 뭐였지?”
“…….”
“두 번 물어야 하나?”
“……흑룡.”
“…….”
진월은 머뭇거리다 말을 하고 청안의 사내는 말이 없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다. 청안의 사내가 다시 묻는다.
“특징이 있었나?”
“왼쪽 눈에 기다란 금색 흉터가 있었소.”
“……큭, 크크크, 하하하하~”
청안의 사내가 갑자기 파안대소를 한다. 한참을 웃더니 진월을 본다.
“정말인가?”
“…….” 진월이 고개만 끄덕인다. 사실 진월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미친 듯이 웃었으니 꼭 비웃음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었다.
청안의 사내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진월을 뚫어져라 본다.
“남아서 혼종이 된 자들이 있다고 하더니 그래도 쓸 만한 놈들도 있나 보군. 하긴 나도 혼종이니 뭐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쉐인이 보기에는 분위기가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저 강을 건널 수 있는 겁니까?”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
청안의 사내가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숲에 숨어있지 말고 앞으로 나오시지.”
“…….”
꽤 먼 거리지만 목소리는 길게 이어지며 숲까지 울린다. 숲 속에 있던 동물들이 청안의 사내의 목소리가 숲을 흔들자 혼비백산해서 날거나 도망을 갈 정도다. 이후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마치 아무도 없다는 듯 시위를 하는 것 같다.
화악~ 청안의 사내의 몸에서 기력이 방출된다.
주변으로 퍼지는 훈풍에 진월을 비롯한 모두가 움찔할 정도의 힘이 담겨 있다. 사내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넘실거린다. 진월의 영력의 불길과 모습이 비슷했다. 불길이 기다란 날개처럼 뒤로 퍼지더니 보이지 않는 벽에 붙는다.
즈즈즉~ 묘한 소음을 발한다.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벽을 형성하고 있던 육각형 모양의 판이 떨어져 나온다. 물론 떨어진 판은 다시 원상태로 수복된다. 사내의 기운에 잡혀있던 육각형 판은 그의 기운과 같은 푸른색으로 변해 있다.
“말로 해서 듣지 않는다면 맛을 봐야겠지.”
쾌래래랙~ 허공에 떠 있던 육각형의 판이 맹렬히 회전을 하며 나른다. 양옆으로 쫙 퍼지더니 마치 커브를 돌듯 중앙으로 서서히 모인다. 사람 몇이 안아야 할 아름다리 나무들이 소리 없이 잘려 나간다.
우지끈! 쿵! 쿠과과광~
아름드리나무들이 힘없이 쓰러진다. 더 놀라운 장면은 쓰러진 나무들이 서서히 사라져 간다. 블랙이 그 모습에 깜짝 놀란다.
“어?”
“저곳도 금역이지. 마력에 의해 유지되는 숲 정도라고 해두지.”
“신기하네요.”
“신기? 나는 귀찮군.”
청안의 사내가 대놓고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무가 쓰러지자 숲에 숨어 있던 자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꽤 떨어진 거리지만 누구인지 파악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중앙에 선 자가 부대를 이끌고 앞으로 다가온다. 거리가 꽤 되니 오는데도 한참 걸린다. 청안의 사내는 그 시간을 그저 묵묵히 지켜봐 준다.
다가오던 주비엘이 부대를 세워둔 후 혼자서 앞으로 걸어 나온다.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서더니 슬쩍 고개를 숙인다. 하는 행동이 윗사람을 대하는 것 같다.
“다크 하이 주비엘, 계를 지키는 아케드님을 뵙습니다.”
“저자들과는 다르게 이곳이 금지인 것을 아는 자들인데 말이야.”
“저자들 때문에 별 수 없이 금지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저자들만 내주시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흠. 모르고 들어온 놈들은 그런다 치지만 알면서도 들어온 놈들에게 그런 아량을 베풀어야 하나? 더구나 저자들은 내 구속 하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두 발 달린 놈들이야. 언제든 걸어갈 수 있지. 대신 이쪽이 아닌 저쪽만 가능하겠지만…….”
아케드의 손이 진월이 온 방향을 향한다. 결국 강을 건네 줄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비엘의 눈빛이 반짝인다.
“이곳에서 구속을 해도 되겠습니까?”
“금지의 의미를 모르나? 하긴 요새 내가 조용히 있기는 했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주비엘의 손이 꽉 쥐어진다.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놓칠 아케드가 아니다. 그의 입가에 조소가 담긴다. 약자를 앞에 둔 강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다.
“저들을 꼭 잡아야 하는 이유나 들어보도록 하지.”
“…….”
“꼭 두 번씩 묻게 하는군.”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저들이 저희에게 많은 피해를 줬기 때문이지요. 지금 제 뒤에 있는 병력의 네 배 정도 되는 수가 저들에게 당했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하기에…….”
“사실인가?”
“…….” 진월이 고개만 끄덕인다.
“저놈은 말이 없어. 정 떨어지게 시리.”
“저자들이 먼저 저희를 공격했단 말이에요.” 블랙이 억울함을 항변한다.
“먼저 공격했다는데……. 이유는?”
“…….” 주비엘이 잠시 머뭇거린다.
“이유가 없나?”
“저들이 먼저 무단 침입을 했기 때문이지요.”
“무단 침입?”
“나기 일족의 마을에 무단으로 침입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나기니가 죽었지요.”
“나기니? 아아! 그 뱀 몸통을 가진 일족을 말하는군.”
“그렇습니다. 저희의 관할 하에 있는 일족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저들을 구속하려 했는데 저항이 거세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사실인가?” 아케드가 이번에는 블랙을 향해서 묻는다. 블랙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유리한 대로만 말하는군요. 초대 받아서 간 것이지 무단으로 침입을 한 것은 아니랍니다. 그 초대도 미심쩍기는 했지만요.”
“하긴 궁금하기도 했겠지. 다른 세상에서 온 자들이니까.”
“먼저 파견된 저희 대원들 수십이 이미 나기 일족인가 하는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었다고요. 그런 상황에서 그냥 죽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으음. 아주 일목요연하군. 내가 검귀로 불리기는 하지만 공평한 사람이야. 사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아케드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자다. 편을 들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아케드가 주비엘을 향해 묻는다.
“이 벽을 건널 수 있는 조건이 있는데 그건 알고 있겠지?”
“첫째, 허락 받은 자. 둘째, 당신과 겨뤄 이긴 자로 알고 있습니다.”
“들었나?”
아케드의 질문이 갑자기 진월을 향한다. 진월의 답을 바라는 시선이다.
“들었습니다.”
“자네들은 우선 첫째에는 해당되지 않으니 둘째에 해당이 되겠군. 생각이 있나?”
“아케드님!”
주비엘이 놀라서 나선다. 진월이 겨뤄서 이기면 벽을 통과시켜주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자네 입으로 조건에 대해서 읊지 않았나?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뿐이다. 그 기회는 바로 너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당신이 벽을 지킨 이후 그 누구도……?”
“잘 아네. 결국 벽을 넘을 수는 없다는 뜻이지. 왜? 한번 넘어보고 싶은가?”
“검을 든 자로서 당신과 겨뤄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영광이겠지요. 하지만 오늘은 목적이 다릅니다.”
“그러면 그냥 지켜봐.”
아케드가 주비엘에게 말을 한 후 다시 진월에게 시선을 옮긴다.
“어때?”
“조건이 그렇다면 응하겠소.” 진월의 말투도 바뀐다.
“아하하! 역시 배짱 하나는 두둑하군. 좋아. 준비해.”
“준비는 되었소.”
진월이 아케드의 앞에 마주 선다. 진월의 근육이 소리 없이 팽창을 한다. 심박수는 빨라지고 혈류의 흐름이 빨라진다. 그의 몸에서 미증유의 거력이 용솟음친다. 일 단계의 준비는 끝났다. 바로 이어 이 단계로 진입한다. 그의 몸에서 영력의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그 이상의 단계로 간다면 영사로 만들어진 갑옷을 걸쳐야 한다. 하지만 진월은 이 단계에서 멈춘다. 그 모습을 보던 아케드의 고개가 갸웃해진다.
“끝인가?”
“그렇소.”
“무기는?”
진월이 주먹을 들어 보인다. 그 모습에 아케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봐주는 것 없다.”
휙! 아케드의 몸이 바람을 가른다. 바람과 하나가 된 것 같은 모습이다. 바람 속에서 은빛의 번쩍임이 튀어 나온다.
슈칵~ 아케드의 직도가 대기를 가르며 진월의 목을 향해 날아간다.
진월의 손이 아케드의 직도를 향해 뻗어간다. 빨라서 보이지도 않는 도의 방향을 잡아냈다. 손바닥을 중심으로 방패가 형성된다. 진월이 만들어 내던 형상이다. 위력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영사의 윗 단계인 영강의 단계로 중첩이 더해진 방패다.
웅~ 아케드의 직도가 울음을 토한다. 그 짧은 순간 기운의 특성이 바뀌었다. 날카로움만을 담고 있던 직도가 무거운 기운을 담은 중도(重刀)로 바뀌었다.
콰아앙~ 방패와 직도가 부딪치며 굉음을 토한다. 진월의 몸이 옆으로 휙 기운다. 동시에 바닥을 긁으며 밀려난다.
우드드득! 진월의 발이 대지를 파고든다. 신체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웅크리고 있다. 마치 개구리가 앞으로 튀어나가기 전의 모습처럼 보인다.
파악! 진월의 몸이 앞으로 뛰어 나간다. 엄청난 속도다. 지켜보던 주비엘이 깜짝 놀랄 정도의 속도다. 그 잠깐 사이에 사람이 바뀌었나 싶을 정도의 성장 속도다.
진월의 쇄도를 보던 아케드의 몸에도 푸른 불길이 피어오른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까지 어려 있다. 진월의 권에 영력이 중첩되며 검은 권영 위로 금빛의 권영이 맺힌다. 상대의 능력을 알기에 아예 영력의 팔이 만들어진다. 영력의 팔은 강도를 더한다. 영사의 단계를 거쳐 영강의 단계까지 훌쩍 뛰어오른다. 마치 반짝이는 갑옷의 팔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케드의 입에 미소가 머문다. 그의 입에서 작은 음성이 흘러나온다.
“내가 왜 검귀인지 아나?”
“…….”
아케드가 직도를 두 손으로 잡는다. 아케드의 몸에 일어난 푸른 불길이 변화한다. 변화의 시작점은 직도를 잡고 있는 손이다. 불길이 갑옷으로 변한다. 그런데 진월과는 다르다. 마치 소환이 되는 것처럼 갑옷의 조각들이 신체를 덮어간다. 직도 또한 푸른 불길이 덮이며 더 큰 도의 조각들이 직도를 덮어간다. 순식간에 모든 변화가 끝이 난다. 직도의 도면은 두 배정도 넓어졌다. 온통 푸른빛을 띤 아케드의 갑옷은 게임 속의 주인공들 갑옷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윤택이 흐르고 멋져 보인다. 찰갑과 같은 형태이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마치 블루드래곤의 비늘을 가공해 만든 것 같은 윤택이 흐른다.
아케드의 직도가 진월이 날려 보낸 영강의 권영과 충돌한다.
콰아앙! 폭음이 울린다. 충격파가 옆으로 퍼져나간다.
충격파를 막기 위해 블랙은 풍벽을 펼친다. 쉐인은 뭔가를 보고 미소 짓는다.
진월의 권영이 파괴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권영이 어딘가로 날아간다.
주비엘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는다. 그의 손에 마력의 검이 만들어진다. 거의 사람의 신장만 하게 형성된 마력의 검이 진월의 권영과 부딪친다. 막지 않으면 그의 뒤에 있는 병력들 중 일부가 큰 피해를 입을 상황이다.
푸욱! 마력의 검이 권영을 파고든다.
콰아아앙~ 두 기운이 상쇄되어 폭발을 한다. 그 후폭풍 또한 상당했다. 폭발에 의해 주변 대지가 움푹 파이고 멀쩡히 서 있던 병력들이 나동그라졌다. 그만큼 두 기운에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는 뜻이다.
주비엘이 화가 나는지 아케드에게 따지듯 묻는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 난 그저 쳐낸 것뿐인데. 그것도 문제인가?”
“충분히 상쇄시킬 수도…….”
“그 정도 실력을 지녔으면 썩은 눈깔을 아닐 텐데 말이야.”
“…….”
“저자와 나의 모습에서 말이야.”
아케드의 손가락이 진월을 가리킨다. 무슨 의미일까?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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