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 장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진월과 블랙이 다시 달리고 있다.
진월이야 원래 체력이 좋으니 아직까지 여력은 충분했다. 블랙 또한 뛰는 것 같지만 능력을 이용해 훌쩍 훌쩍 날아오른다. 다만 블랙의 경우 정신력의 소모가 심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도 진월의 피를 마셔 체력을 회복했기에 지금까지 무리 없이 버틸 수 있었다.
쐑~ 쐐액!
콱 콰악!
시커먼 화살이 날아와 진월과 블랙이 지나친 굵은 나무기둥에 박힌다.
블랙이 뒤를 슬쩍 돌아본다. 귀신 같이 쫓아온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쓰러뜨린 자들만도 수십이다. 진월이 흔적을 지우며 이동한 거리도 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마치 그들에게 추적기라도 붙여 놓은 듯 끈질기게 따라 붙고 있었다.
둘이 안아도 다 안아지지 않을 정도로 굵은 나무를 끼고 돈다. 블랙은 돌자마자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다. 진월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숲이 우거진 곳이라 나무 그늘에 숨으면 순간적으로 그 흔적을 찾기 힘들어지는 곳이다.
뒤를 쫓던 자들이 굵은 나무를 끼고 돌자마자 주춤한다. 그들이 보기에도 흔적이 전혀 없었다. 풀과 떨어진 나뭇잎 위로 사람이 밟고 지나간 흔적이 없다. 흑갈색의 피부에 뾰족한 귀를 가진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보아 쫓는 자들은 다크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어둠과 친숙한 존재들이다. 어둡다고 해서 그들의 시야가 방해받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둘이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다. 입은 벌리지 않고 흔적을 찾았는지를 서로에게 묻는다. 둘 다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다크 엘프의 수색대에서만 잔뼈가 굵은 그들이다. 그들이 다시 뒤를 돌아본다. 뭔가에 시선이 박혀 있다. 둘이 다시 뒤로 가서 확인을 한다. 진월의 발자국이다.
둘 중 하나가 묻는다.
“어디로 갔지?”
“…….”
동료가 검지를 세워 입을 가린다. 주의하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추적을 하며 당한 동료들의 수가 상당했다.
딱!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음이다. 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간다. 손에 들린 활 또한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있다. 훈련을 제대로 받은 이들이다.
“뭔가 이상…….”
말을 하던 자가 멈춘다. 그의 시선에는 이미 동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있다. 어둠 속에서 검은 손이 뻗어 나와 동료의 입을 막고 목을 조르고 있었다.
“움직이면 네 동료가 죽는다.”
“…….”
“추적은 너희 둘이 마지막인가?”
“…….” 대답이 없다.
우둑! 진월은 잡고 있던 자의 목을 비튼다. 가차 없는 행동이다.
“익!” 다크 엘프가 동료의 죽음을 보자 진월을 향해 바로 화살을 날린다.
퍼억! 화살이 뭔가에 박혔다.
동료를 죽였던 진월의 검은 손도 사라졌다. 한순간 다크 엘프는 진월을 잡았다는 확신에 찬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니 화살을 맞고 멀쩡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푹!
“억!” 다크 엘프의 입에서 격한 통증을 뜻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하복부로 향한다. 옆구리에 검은 빛을 발하는 물체가 쑥 빠져나와 있다. 진월의 단검에 흑빛 영사가 맺혀 길게 이어진 모습이다. 흑빛 영사는 검은 불길도 품고 있어 단검의 끝에서는 불길이 위로 치솟고 있다.
다크 엘프는 마치 작살에 꿰인 물고기 같았다. 진월의 나머지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쥔다. 오른손에도 흑빛의 영사가 맺혀 있다. 경련하던 다크 엘프가 감전된 듯 경직된다. 흑빛의 영사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크 엘프의 몸으로 스며든다. 그의 혈관을 타고 잠입하듯 흑갈색 피부가 검은 빛으로 불뚝불뚝 솟아오른다. 잠시 후 오렌지 빛을 지닌 그의 눈빛까지 모두 검은 색으로 변한다.
블랙이 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신기해한다.
“지금 뭐 하신 거예요?”
“최면.”
“최면을 이렇게 걸어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더군.”
“공부를 많이 하시나 봐요?”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
블랙의 입장에서는 답변하기가 애매한 말이다. 진월이 지키게끔 만드는데 일조하는 자들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월이 블랙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다. 괜한 말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진월은 다시 다크 엘프에게 집중한다.
“추적조는 둘이 마지막인가?”
“그, 그렇다.” 대답에 진월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답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숨을 돌릴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다.
“우리를 놓치지 않고 추적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그건…….” 다크 엘프가 저항을 한다. 진월이 더 강한 힘을 불어넣는다.
“크윽! 주술사 마고의 추적술이다.”
“추적술?”
“발자국을 추적할 수 있다.”
“어떻게?”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마고가 주술을 펼칠 당시의 땅을 밟았을 때의 흙이 신발 바닥에 아직까지 붙어 있다. 그 흙이 모두 떨어지기 전까지는 추적을 피할 수 없다.”
블랙이 어이가 없는지 투덜거린다.
“우리가 건너온 천(川)이 몇 개인데 흙이 아직까지 붙어 있어요.”
“흙에다가 접착제라도 발랐나 보지.”
“지금 장난할 때예요?”
“그러면 화낼까?”
“참나.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니에요. 계속 추적을 받게 될 텐데.”
“신발을 벗어버리면 되겠군.”
“지금 그걸 말이라고…….” 블랙이 말을 하다가 만다. 가장 좋은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땅바닥을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다. 다크 엘프들의 신발을 뺏어 신자니 블랙에겐 크고 진월에게는 작다.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진월이 블랙을 보며 한마디 한다.
“청소 좀 하지.”
“무슨 청소요?”
“추적조는 이들이 마지막이야. 시간이 좀 있지.”
“그래서요?”
“자네 바람이면 해결 가능할 것 같은데.”
“…….”
블랙은 어이가 없어 진월을 뚫어져라 쏘아본다.
“치료해 준 값은 그것으로 치룬 것으로 하지.”
“…….”
툭! 진월의 냄새 나는 군화가 블랙의 앞에 떨어진다.
“구석구석 흙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부탁하네.”
“지, 지금 내가…….”
“목숨 값! 그것도 두 번이나. 그리고 그대로 두면 앞으로 몇 번이 될지도 몰라.”
“…….” 블랙은 별 수 없는지 부르르 떨며 진월의 군화를 잡는다. 참 팔자에도 없는 남의 남자 군화를 구석구석 살피며 청소를 해야 한다니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성격이 성격인지라 일단 일을 시작하자 정말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현미경으로 봐도 흙 한 톨 없을 정도로 깨끗이 하고 있다.
진월이 다크 엘프에게 필요한 정보를 캐면서 슬쩍 한마디 던진다.
“어허! 그렇게 바닥에 놓으면 떨어진 흙이 다시 뭍을 수도 있는데…….”
“진짜, 이 인간이…….”
퍽! 블랙이 열이 받아 군화를 내팽개친다.
갑자기 간섭을 하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갑자기 새록새록 생각나는 순간이다. 진월이 바닥을 구르는 군화를 보며 최면에 걸린 다크 엘프에게 묻는다.
“자국 보이냐?”
“그렇다.”
“보인다잖아.”
“…….”
블랙이 눈물을 삼키며 다시 진월의 군화를 집어 든다. 괜히 화풀이 했다가 다시 한다. 성질부리면 결국 지 손발만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블랙은 군화를 청소하며 인생의 진리를 배우고 있었다.
* * *
어둠 속에서 두 쌍의 눈동자가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꼬륵! 블랙이 진월을 휙 본다. 진월 또한 블랙을 본다.
“왜?”
“배 안 고파요. 생리적인 현상일 뿐.”
“안 물었어.”
꼬르륵~ 블랙의 배에서 이차 경고음을 보낸다. 절로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월이 조용히 뇌까린다.
“몸은 정직하지. 차라리 방구처럼 조절이라도 되면 좋을 텐데 말이야.”
“…….”
블랙이 입술을 깨문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하루 종일 싸우고 달렸다. 허기지지 않다면 인간이 아니다. 지금도 추적을 따돌리기는 했지만 진월이 쉬지 않고 있다. 마치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배고프니 뭐 좀 먹자고 할 수도 없었다. 사실 먹을 것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진월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굵은 턱선에서 강인함이 느껴진다. 만 하루를 지내며 느낀 점은 약간 엉뚱한 면도 있지만 정말 믿음이 가는 사람이란 점이다. 만일 진월과 같이 오지 않았다면? 이란 가정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생존이 성립할 수 있을까? 란 물음에 ‘예’라고 확실히 답할 수 없었다.
진월이 조용히 말한다.
“포위당하고 있다.”
“네?”
블랙은 진월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추적까지 따돌렸는데 포위를 당하고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강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남았지?”
“직선거리로 10여 킬로 정도 남았어요.”
진월이 블랙이 들고 있는 패드로 시선을 준다. 이미 탐사로봇이 조사해 놓은 지형데이터가 있기에 측정이 가능했다.
“우리가 길을 모르니 방해만 없다면 넉넉잡아 4~5시간 정도 걸릴 거리예요.”
“…….”
블랙이 의견을 개진했지만 진월은 답을 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보이지도 않는 곳을 향해 있다. 좌측부터 우측까지 천천히 둘러본다.
“우리가 향하는 곳을 알고 있군.”
“어떻게요?”
“그건 알 수 없지만 저들의 능력이 뛰어나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나보지. 어렵게 됐군.”
“그냥 포기하고 되돌아갈까요?”
“자네는 다시 올 수 있지만 나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그렇긴 하네요. 그러면…….”
“약간 우회하더라도 돌아가는 수밖에……. 지금부터는 전면에 나서는 것은 자제하도록 하지.”
“저요?”
블랙의 질문에 진월이 고개를 끄덕인다.
“되도록 나무 그늘을 이용해서 내 뒤를 따르는 쪽으로 하지. 정말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나서는 것은 자제하도록 하고.”
“왜 굳이…….”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블랙은 답할 말이 없어진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진월이 느끼는 포위는 그만큼 두터웠다. 그 안에 어떤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정말 최악의 순간 미친 듯이 힘을 쏟아 부어야 할 때 오히려 곁에 있는 동료가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진월이 블랙에게 기도비닉을 부탁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블랙을 가장 쉽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블랙 또한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은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진월이 블랙이 가지고 있는 무기까지 모두 건네받는다. 동이 틀 때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아 있다. 아마도 해가 뜨면 저들의 포위망은 더 좁혀질 것이다.
진월이 나무들 앞에 서 있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나무들이 쓰러진다. 블랙이 옆에서 돕는다. 그녀의 손짓 한번이면 잘린 나무 기둥들이 하늘로 떠오른다. 진월이 바쁘게 움직인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은사가 사방에 걸쳐 얽힌다.
전방의 세 방위 중 정면에는 나무기둥들로 만든 방벽까지 만들어진다. 짧은 시간에 큰 나무들을 기둥으로 수십 미터의 방벽이 만들어졌다. 높이도 3미터가 넘어 쉽게 넘지 못할 높이다.
해가 떠오른다. 숲 속으로 붉은 햇살이 비친다.
쿵! 쿠웅!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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