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장 배고프다고 하잖아.
그날 저녁 뉴스에는 긴급 속보가 쏟아진다. ‘서해 또 다시 교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갑작스런 긴급 훈련 중 북측 군함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했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어선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우리 측 이지스함이 발견, 격퇴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기사의 상단에는 함수에 불이 붙어 뒤로 꽁무니를 빼는 671함이 찍혀있다. 참 기자들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사진은 어디서 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점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졌다는 내용은 없다. 이미 정보의 통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자들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정보를 흘린 쪽이 대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무리하게 훈련을 만든 김해종 중장에게는 실이 아닌 득이 됐다. 덕분에 문책이 아닌 시기적절한 긴급 훈련으로 상황을 좋은 쪽으로 전개했다는 좋은 평가까지 받았다.
* * *
진월의 차가워져 버린 육신은 NSCT 본부로 이송된다. 곁에서 같이 따라온 창민은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벌겋게 충혈 되고 눈두덩은 부어 있다. 국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민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그도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는 위치다.
진월의 주검이 의무실로 옮겨진다. 가는 길 중간에 NSCT 내의 모든 직원들이 나와 있는 것 같다. 그 중에는 재수 없는 부국장 년의 얼굴도 보인다. 창민은 갑자기 울컥한다. 기회가 된다면 면상을 한번 짓이겨주고 싶은 여자다. 하지만 화를 낼 힘도 없다.
검은 시체 백에 들어 있던 진월의 주검이 밖으로 꺼내진다. 본부 내 주치의가 진월의 주검을 확인한다. 국장과 창민 외 진월의 팀원들이 곁에서 확인을 한다. 그 남자 같던 강희도 눈물을 훌쩍이고 있다. 울지 않으려 버텼으나 터지는 눈물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해군에서 각별히 신경을 썼는지 진월의 전신이 하얀 천으로 덮여 있다. 얼굴 위의 천을 걷어낸 본부 내 주치의가 천천히 하나씩 살핀다. 직접적인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다. 그러다가 국장을 본다. 계속 있을 거냔 의미다.
고개를 끄덕인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럼, 부검할 때는…….”
“그때는 나가 있겠네.”
“…….”
주치의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진월에게 집중한다. 이제는 흉부 부위다. 어깨를 살피고 내려가던 주치의가 손이 있는 부위까지 가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처음부터 녹음을 하고 있었기에 주치의는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가만 있어 봐라. 이거 뭔가?”
“왜 그러나?”
국장이 묻는다.
“사후경직이…….”
주치의가 진월의 팔을 슬쩍 든다. 그대로 들린다.
“일어나지 않았군.”
“그렇습니다. 바다에서 건진 후 여기까지 오는 데만 3시간입니다.”
“이미 일어났어야 할 시간이라 이거지?”
국장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때 진월의 손에 꽉 쥐어진 물건이 보인다.
“저건 뭐지?”
“모르겠습니다. 1차로 해군에서 군의관들이 살폈을 텐데 그대로 뒀군요.”
“크크크!”
갑자기 국장이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모두 의아한 표정이다.
“못 뺀 것이지. 놔주질 않으니까.”
“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저 인간이라면…….”
묘하게 국장의 얼굴에 미소가 머문다.
“다 때려치우고 소생술부터 해보게.”
“넥?”
참 당황스럽게 만드는 주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미 죽은 사람이다.
“입 다물고 얼른 해봐. 미친 짓 한다 생각하고.”
“…….”
말 그대로 미친 짓이다. 하지만 해서 손해 볼 것도 없으니 행한다. 갑자기 의무실 직원들이 바빠진다. 전기난로부터 찾아서 온기부터 제공한다. 중심정맥로를 확보하고 약물을 투여한다. 혈관을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혈관 확보도 잘 되고 있었다. 주치의의 고개가 연신 갸웃거려지고 있다. 산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판단하기가 묘해진다.
경험이 많은 의료진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기관을 확보하고 기관내 삽관이 이루어진다. 이후 필요한 약재가 중심정맥을 향해 계속 쏟아진다. 도파, 노르핀, 에피네프린, 아트로핀 등 심장을 뛰게 해주는 약들이 집중 투여된다. 심장에 대한 압박도 30여분을 시행한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다.
주치의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는다. 열심히 했건만 의미가 없으니 더 힘이 팔린다.
“후우~ 더 이상은…….”
“그래. 수고했네.”
주치의도 국장도 아쉽다. 약간의 기대를 했던 국장도 고개를 젓는다. 고개를 푹 숙이더니 창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의무실을 나서려 한다. 같이 움직이려던 창민이 우뚝 멈춰 선다.
쿵!
한 번의 움직임이다. 창민의 고개가 진월의 가슴 부위를 본다. 하지만 이후 반응이 없다.
똑똑똑똑~ 수액의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갑자기 빨라진다.
창민의 뛰어난 청각은 그것조차 놓치지 않는다. 뭔가 이상했다. 이상한 반응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고 있었다. 수액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창민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같이 보던 이들이 모두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수액의 봉지가 빠른 속도로 눈에 보일 정도로 쪼그라든다.
“지금 뭐해?”
국장이 갑자기 소리친다.
“네? 뭘?”
“배고프다고 하잖아. 빨리 갈아줘 봐.”
“…….”
어이가 없다. 하지만 왠지 맞는 말인 것 같다. 수액을 교체한다. 1리터짜리 수액이 단 10분도 안 되어서 모두 투여된다. 기네스북 감이다. 저러고도 혈관이 멀쩡하다니 이것도 연구대상이다. 진월의 혈색이 돌아온다. 손가락이 움찔거린다.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서서히 뜨인다. 맨 처음 들어온 것은 국장의 면상이다. 국장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진월이 힘겹게 뜬 눈을 다시 감는다. 국장이 기뻐서 묻는다.
“왜 힘겹게 뜬 눈을 다시 감아?”
“…….”
진월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닫힌다. 그러나 소리가 너무 작아 안 들린다. 기력이 딸리긴 딸리는 모양이다. 창민은 진월이 힘들어 하자 국장에게 권한다.
“좀 쉬게 해주시죠?”
“넌 들었지?”
“뭘요?”
“딴 소리 하지 말고, 진월이 뭐라고 하던?”
“눈 버렸다고요. 됐습니까?”
“지어 대지 말고.”
“맞아요.”
“그렇게 길지 않았다.”
“…….”
참 날카롭기도 하다. 창민조차 어이가 없다.
“그렇게 듣고 싶으세요.”
“그래. 뭐라 하던?”
“기분 좋아서 말씀드립니다. 팀장님 환생 기념으로다가.”
“그래.”
“ ‘C발’ 이랍니다.”
“…….”
“나 같아도 저 상황이면 그 말 할 것 같아.”
강희가 씩 웃으며 한마디 한 후 바로 나간다. 초상집 분위기가 한순간 화기애매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 * *
본부 내 마련되어 있는 격투 실에 진월이 서 있다. 그의 앞에는 강희, 최탑, 마명, 목영호 이렇게 네 명이 마주 서 있다. 진월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쩡해 보였다. 국장은 한쪽에 앉아서 구경하며 계속 깐족거리고 있다.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 난리냐? 다시 한 번 죽고 싶은가 보구나.”
“자꾸 악몽을 꾸니 말입니다.”
“무슨 악몽?”
“늙은 귀신도 아니고 자꾸 누구 얼굴이 불현 듯 확 떠오릅니다. 눈을 뜨지 말았어야 했는데…….”
“크흠!”
“뭐하나? 안 덤비나?”
진월은 국장에게 한마디 한 후 바로 관심을 전환시킨다.
“조절 좀 하시지요.”
“영력의 사용은 자제하도록 하지.”
“자제가 아니고 영력으로 하는 공격은 절대 안 됩니다. 실전이 아니니까. 몸 푸는 정도만!”
“그렇게 하지.”
대련인지라 조절이 들어간다. 더구나 진월의 능력이 최근 가장 많이 늘었다. 가장 강자가 제일 많이 늘었으니 실력 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국장이 그 모습을 보더니 또 끼어든다.
“상처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안 덤벼?”
국장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 진월이 다시 강희 외 팀원들을 재촉한다. 강희가 으쓱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날린다.
훅~ 빠르다.
팡! 바람이 터진다. 강희의 권이 진월의 손바닥에 잡혀 있다. 그때 국장이 또 말한다.
“글쎄, 석판이 중국에서 발견이 됐단다. 내 친구 놈 중 하나가 역사학자인데 그 놈이 발견을 했다는구나.”
쾅! 쾅! 쾅! 연속 세 번의 타격음이 울린다. 강희가 상단, 중단, 하단을 발로 연달아 가격했다. 물론 그 공격 모두 막혔다.
우둑~ 우두둑~ 진월의 근육이 팽창하며 골격이 부푼다. 강화형 능력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쳇!”
강희가 혀를 찬다. 잡힌 손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 진월이 가격을 하면 그대로 막아야 할 입장이다. 그렇다면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다. 아무리 영력을 사용하지 않고 신체적인 능력만 사용한다지만 강화된 진월의 펀치력은 시멘트벽도 꿰뚫는다. 더구나 회생한 이후 분위기 자체가 약간 바뀌었다. 이미 셋을 셀 시간이 끝나갈 시간이다. 진월도 마치 그것을 노린 것 같다.
훙! 진월의 주먹이 대기를 가른다.
콰앙~
진월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의 계산이 엇나간 것이다. 강희가 잡히지 않은 주먹을 휘둘러 날아오는 진월의 주먹을 쳐올렸다. 아직 능력 발현 시간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피릭! 뭔가 날아온다. 강희가 쳐올린 진월의 팔목을 휘감는다. 최탑이 팔목에 차고 있던 토시에서 줄을 발사해 진월의 팔목을 휘감았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쇠줄이라 웬만해서는 끊어지지 않는다. 진월이 전에 민서를 구하려 했을 때 썼던 것과 같은 재질이다. 최탑이 진월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다.
그 순간 마명의 단검이 진월의 목을 향한다. 목영호의 발차기는 진월의 오금을 노린다.
강희는 호흡 한번 크게 하더니 한손이 잡힌 채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모습을 보던 국장이 한마디 한다.
“아서라. 아서!”
진월이 호흡을 머금는다.
퍼퍼퍽! 강희의 권이 연속으로 진월의 몸에 박힌다. 거의 동시에 마명의 단검과 목영호의 발차기도 진월에게 적중한다.
모두의 뇌리에 ‘왜?’라는 말이 떠오른다. 충분히 맞지 않을 수 있는 실력자다. 그런데 왜?
이유는 분명히 있다. 강희가 뾰로통해져서 내뱉는다.
“무슨 몸이 쇱니까?”
“젠장! 진짜 돌을 찬 것 같네.”
“아아아아~”
마명만 소리를 지르고 있다. 단검을 쥔 손이 진월의 손에 잡혀 있다.
“넌 진짜 찌르려고 하더군.”
“악! 실전같이 해야지요. 실전! 으아아~ 부러진다고요. 이이~ 괴물아!”
우둑~
“컥!”
진짜 부러뜨렸다. 얼굴에는 악마 같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런 진월의 뒤에는 한 덩치 하는 최탑이 진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있다. 마명의 괴성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표정이다.
국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웃는다.
“내가 아서 라고 했잖아.”
“누가 몰라요?”
강희가 짜증난다는 듯이 말한다. 진월은 강희를 보더니 대견하다는 듯 말한다.
“지속시간이 늘었구나.”
“쳇! 그걸 눈치 채고 더 빨리 지른 사람이 누군데요.”
사실 강희가 선제공격을 가할 수도 있었지만 진월의 주먹이 갑자기 빨라졌기에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월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국장을 보며 묻는다.
“석판은 가지고 오고 있습니까?”
“응. 오고 있다.”
“저번에 빼앗긴 석판에도 작업을 해놓으셨잖습니까?”
“해놨지. 대충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고.”
“석판 이야기를 꺼내신 것은 단순히 찾은 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죽다 살아나더니 이젠 신기까지 생겼나 보구나.”
“지금 우리 입장에서 석판 하나 가지고 뭘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렇지. 이용해야지. 썩은 이는 치료를 하던가, 빼내야 하는 법이니까.”
“정보를 흘리실 생각이군요.”
“어떤 놈이 물지, 년이 물지는 두고 봐야겠지.”
악마 같은 눈빛을 흘리는 국장의 모습에 다들 치를 떤다. 지독한 노인네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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