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장 탈출 시도
유리벽 앞에 거대한 체격을 지닌 남자가 서 있다.
유리벽 너머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마주 보고 있다.
“오늘이 6일째라네.”
“알고 있어요.”
“자네를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필요하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자치고는 강단이 있어.”
“이제 그만 오시지요. 날마다 접대해야 하는 저도 힘이 들어요.”
“무시하지 않아줘서 고마울 뿐이야.”
저벅저벅!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군복을 입은 자들이다. 특수복인 것 같은데 본적이 없는 군복이다. 나타난 자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전철에게 묻는다.
“이 여잡니까?”
“그렇다네. 대단한 여자지. 잘 지켜봐 줬으면 좋겠네.”
“어디 가십니까?”
“금방 올 거네. 혹 여자를 찾으러 오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니 잘 감시해주게나.”
“저희를 부른 것을 보니 대단한 자들인가 봅니다.”
“아마 버거울 것이네.”
“…….”
질문을 던진 대장이란 자의 눈초리가 꿈틀거린다. 자존심을 건드는 발언이다.
“저희 다섯이면 당신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해보지는 않았잖아?”
“…….”
“넘치는 자신감은 좋은데 때론 그것이 독이 될 때도 있다네.”
탁!
전철이 대장이란 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친다.
“아! 우리 아가씨한테 인사를 안했군.”
똑똑!
전철이 유리벽을 노크하듯 두드린다.
“아마 내일은 내가 못 오지 싶어. 서운해 하지 말고 잘 지내고 있게나.”
“흥! 누가 보면 연인인지 알겠네요.”
“며칠 사이 자네 연인보다 내가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나?”
“…….”
민서는 어이가 없는지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연인이라고 공개한 적도 없고 둘이 오붓하게 차 한 잔 마신 적도 없었다.
전철이 떠났다. 나타났던 의문스런 다섯 남자도 사라졌다. 아마도 통제실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자 공허함이 더 크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공동을 둘러본다. 인공적으로 만든 모습이 많이 보인다. 분명 뭔가를 발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을 개조한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민서는 갑자기 한기를 느낀다. 공허함 때문에 마음이 쓸쓸하고 신체 또한 그래서 더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싫다.”
이런 상황이 싫었다. 갑자기 엄마 생각도 많이 났다.
엄마도 본인과 같은 쓸쓸함을 느꼈을까 싶어 갑자기 슬퍼졌다.
“싫어.”
민서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부정을 담은 말이 흘러나온다.
지직~
유리벽의 양자차단막이 반응한다. 분명 민서에게서 에너지가 흘러나오니 일어나는 반응이다. 통제실에 있던 자들은 경고 소리에 민서를 비추는 모니터에 집중한다. 모너터링 요원이 안심시키듯 한마디 한다.
“항상 있던 일입니다.”
“저 여자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렇게 많은 요원들을 붙이는 것이지?”
“저희는 잘 모릅니다. 그냥 능력을 지닌 여자고 미끼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 여기까지 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저희도 같은 생각이지만 부장님 생각은 다르니 할 말은 없습니다.”
“전! 부! 장!”
대장이란 자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자 한자 곱씹어 전철의 직함을 되뇐다.
대장이란 자가 그러던 말던 통제 요원 중 하나가 모니터에 들어온 붉은 경고를 보며 말한다.
“철책에서 비상이 발동되었습니다.”
“뭐?”
모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혹시 침입자가 있는 것은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뭔데?”
“오보인 것 같습니다.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지랄들 한다.”
그들의 관심이 철책의 비상에 쏠려있을 때 민서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
‘이건 뭐지?’
유리벽에 안 보이던 흠집이 보인다.
민서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흠집을 향한다.
지지직~
‘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어.”
민서의 의지가 음성으로 표출된다. 언령의 힘이 손끝에 실린다.
쩍!
유리벽이 더 갈라진다. 민서의 뇌리로 장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간다.
똑똑!
전철이란 사내가 유리벽을 두드린 부위다. 그 부위가 지금 약간의 자극이 가해지자 갈라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너무나도 자연스런 동작이었기 때문이다.
민서의 뇌리에 고민이 자리한다.
‘왜?’
당연한 질문이다. 이제껏 본인을 구속하고 관리감독 하던 자다. 그런 자가 왜 이런 호의를 베푼다는 말인가? 분명 다른 함정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갈 곳이 생겼는데 계속 갇혀있을 생각 또한 없다.
“열어!”
파아~
유리벽이 파열되며 터져 나간다.
삐삐삐삐~
경보음이 동굴 안에 메아리친다. 통제실에 있던 대원들의 시선이 모두 모니터로 향한다.
“어떻게 된 일이야?”
“탈출 했습니다.”
“항상 있던 일이라며?”
“절대 깨질 수 없는 유리입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통제 요원들이 책임을 추궁하는 사이 대장이라 불렸던 사내와 나머지 넷은 사라졌다. 그들은 달리는 와중에 대화를 나눈다.
“죽여도 됩니까?”
“그랬으면 좋겠다만 뒤처리가 너무 힘들다.”
“그럼, 어디 한군데 부러뜨리는 것까지는 괜찮겠지요.”
“거기까지는 괜찮겠지.”
“눌린 것도 많은데 내래 아주 조져버리갔시우.”
“말투 조심해라.”
“네.”
“탈출구는 두 개 뿐이다. 그년이 알리도 없고 말이야.”
그들의 착각일 뿐이다. 각 곳에 경비를 서는 인원들이 있다. 그들은 민서의 능력에 대비해 보안 고글까지 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귀까지 막지는 못했다. 민서는 능력의 진보가 있었고 언령은 청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니나 다를까 민서가 경비 하나를 언령으로 구속하고 있었다.
“입구는?”
“두 곳이 있습니다.”
“정식 입구 말고 비밀 통로로 쓸 수 있는 곳이 있나?”
“네.”
두 개 뿐이라고 했던 아까의 말과는 다르다.
“그곳은 어디지?”
“B4 통로를 따라 계속 왼쪽으로 돌면 막다른 곳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외부 공기를 유입하는 환풍구가 있습니다.”
“통로를 여는 키는?”
“이 신분증을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잘 자!”
스르륵~
경비병이 그대로 쓰러진다. 민서는 경비병을 그대로 둔 채 B4 통로를 찾아 움직인다.
그녀 또한 움직이려다 약간 비틀한다. 갑자기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한 탓이다. 머리를 몇 번 흔든 민서가 다시 움직인다. 그녀의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다. 워낙 강희와 진월이 강해 민서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 또한 틈틈이 무술을 익혀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진월의 특훈 때문에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있는 상태다.
찰칵찰칵!
달리는 와중에 민서는 경비병에게 빼앗은 권총을 점검한다. 탄환은 충분했다.
그녀가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다섯 남자가 쓰러진 경비병을 발견한다.
“외상은?”
“없습니다.”
“고글도 그대로 쓰고 있는데……?”
“그냥 자고 있습니다.”
“깨워봐.”
짝짝!
뺨을 제대로 맞은 경비병이 슬쩍 눈을 뜬다.
“억!”
“그 여자는?”
“그, 그 여자요?”
“기억에 없나?”
“네.”
“통제실에서 연락입니다. B4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요상한 계집이군. 대비들 단단히 해.”
“네.”
“너희들은 특수전 사령부의 최고 엘리트다. 기억하도록!”
그들은 다시 움직인다. B4통로로 접어드는 길은 두 갈래다. 조금 더 가까운 곳과 좀 더 돌아가야 하는 길이 있다. 셋, 둘로 나뉘어 민서를 쫓는다.
민서는 이미 B4통로의 끝에 도착해 있었다.
보안 카드를 이용해 문을 연다.
화악~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정도다. 위쪽을 바라보자 거대한 환풍기 날개가 돌고 있다. 민서가 들어선 방은 외부에서 들어온 공기가 분배되는 공간이다. 황급히 주변을 살핀다. 빛이 들어오는 곳은 천장뿐이다. 하지만 환풍기 때문에 나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비밀 통로라 했으니 분명 어딘가 출입구가 또 있을 것이다.
전면에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홈이 슬쩍 보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먼지가 쌓여서 그렇지 분명 레버다. 민서가 그 레버를 잡아당긴다.
“이익!”
드득!
오랫동안 손을 대지 않아 녹이 슬었다. 민서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많은 힘을 가한다.
끼이익~
후웅~
쇠문이 열림과 동시에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친다. 문틈으로 흙과 풀도 흘러들어온다.
“…….”
문을 연 민서는 아무 말이 없다. 한참 멍하니 밖만 쳐다본다.
민서의 시선에 비친 바깥 풍경은 아름답다. 하지만 현재의 그녀에게는 그런 모습이 들어오지 않는다. 낙하산이 없이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비밀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보라우.”
“…….”
“이제 알갔으면 그 문 닫으라우.”
“여기가……?”
“기렇지. 동무가 보고 있는 그대로지. 여기는 북조선인민공화국이지.”
대장이란 자는 민서가 있는 곳이 드러나 버리자 편하게 말을 해 버린다.
“곱게 가자우. 우리도 더 이상은 힘쓰기 싫으니 말이야.”
“그럴까요?”
“…….”
민서의 물음에 대장은 답이 없다. 약간 강직된 것 같은 모습이다.
타앙~
민서의 권총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을 뿜는다. 대장이란 자의 허벅지를 향해서다.
* * *
창민의 시야는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카메라로 치면 고성능 카메라로 화각이 넓은 카메라다. 물론 사람이 볼 수 있는 시야는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사물의 소소한 움직임까지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능력이 더욱 월등한 것이 창민이다. 더구나 그의 눈은 망원경이 필요 없을 정도로 뛰어난 확대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눈으로 오성산을 살피고 있지만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순간 자연의 빛과는 다른 미약한 빛이 산그늘 속에서 반짝였다.
“응?”
“왜? 뭔가 있니?”
강희가 창민의 반응에 묻는다.
“아니. 청명도가 높질 않아서 정확히 보이질 않네.”
“싱겁기는?”
“그런데…….”
타앙~
창민의 귀에 4킬로미터의 거리를 넘어 미약하게 들려온 총성이 있다.
타타앙~
다시 두 발의 총성이 들린다. 진월도 약간의 반응을 보인다. 분명 총성이다.
“창민!”
“네. 들었어요. 분명히 총성입니다.”
“권총 소리다.”
강희나 초병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다. 그들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강희는 두 사람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소리조차 죽인다. 진월이 창민을 향해 묻는다.
“방향을 잡을 수 있나?”
“저쪽 같습니다.”
창민이 방향을 가리킨다. 아까 빛의 깜박임이 의심되었던 곳이다.
“소리가 뚫린 공간에서 울린 소리가 아니다.”
“맞아요. 몇 번의 부딪침을 거친 소리에요.”
진월도 창민이 가리킨 방향을 본다. 그러나 청명도가 낮아 정확하게 보이진 않는다.
창민은 조금 더 집중한다. 마치 그의 눈에서 빛이라도 뿜어질 것 같다. 그가 부릴 수 있는 최대 능력을 동원한다.
흐릿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는 대기 중의 미세먼지들이 길을 열어 주는 것 같다. 창민의 감각에는 마치 눈알이 빠져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찰칵!
뇌리에 마치 사진이 찍히는 것 같은 소리가 전달된다.
“어?”
창민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온다.
탕~
낡은 쇠문이 닫히는 소리가 창민의 귀로 흘러든다. 그리고 그의 뇌리에는 하나의 영상이 남아 있다. 낯익은 여자의 실루엣이다. 닫히는 쇠문의 사이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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