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장 Chief 하프.
콰아아앙!
굉음이 지축을 울린다. 멀쩡히 서 있는 사람도 중심을 잡지 못할 정도의 충격으로 대지가 진동한다. 거대한 모래 벌레가 진월과 블랙이 서 있던 자리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잘근잘근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듯 주둥이로 계속 땅을 파헤친다.
주술사 마고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인다. 검고 밝은 빛을 발하는 물체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고의 시선을 따라 모래 벌레들도 머리를 쳐든다. 지면 위로 드러난 길이만도 수십 미터다. 한번 몸을 세우자 수십 미터 상공으로 솟아오른다. 치켜든 머리가 다시 지상을 향해 처박힌다. 목표는 바로 빠르게 움직이는 진월이다. 진월의 한 팔에는 블랙까지 잡혀 있다. 모래 벌레들의 일차 공격이 있을 때 진월이 빠른 속도로 블랙을 낚아채서 회피한 것이다.
꽈광 꽝!
모래 벌레들의 거대한 아가리가 다시금 지면을 파고든다. 검은 그림자의 모습이 모래 벌레들의 거대한 몸체에 가려 사라진다. 아가리에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몸체에 가린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일어난 흙먼지 또한 생존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게 한다.
후두두둑~ 충격에 떠올랐던 흙과 돌들이 지면에 떨어져 내린다.
주술사 마고의 시선 또한 모래 벌레들이 처박힌 곳을 유심히 살핀다.
“열 받게 하는군.” 진월의 목소리다.
콰아앙!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린다. 진월의 주먹이 모래 벌레 한 마리의 목 부위에 깊숙이 박혀 있다. 마치 포탄이 때린 것처럼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그 구멍은 모래 벌레의 머리 윗부분까지 관통해 있었다.
쩌저적! 모래 벌레를 형성하던 마력이 붕괴되자 거대한 몸통이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진다. 바위와 흙들이 흩어지며 떨어져 내린다. 한 마리 남아있던 모래 벌레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진월이 모래 벌레의 몸통을 밟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때 블랙은 언제 날았는지 허공에 떠 있다. 그녀를 노리고 다시 강한 화살들이 날아든다.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하크들은 오합지졸들이 아니었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를 유심히 살피며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블랙은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현재 더 급한 쪽은 진월이다.
진월은 지금 그가 낼 수 있는 힘의 배를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다. IUC에서 제작한 강화복을 착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가된 위력은 주먹 한방에 몇 십 톤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모래 벌레를 한방에 박살을 낸 것 또한 그 위력을 반영한 것이다.
주술사 마고는 모든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의 인상의 험악하게 변한다. 입술이 벌어지며 흉측한 송곳니가 드러난다. 별 것 아닌 인간들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짜증이 나고 분노가 치미는 상황이다. 모래 벌레를 타고 오르며 다가서는 진월을 향해 스태프의 붉은 마나석이 번쩍인다.
“스피어(Spear)!”
주술사 마고의 외침에 모래 벌레의 등판에서 무수한 돌의 창이 솟아오른다. 진월의 바로 발밑이다. 뒤를 쫓는 것 같던 스피어가 진월의 속도를 따라잡는다. 그 순간!
쾅! 진월의 발이 모래 벌레의 몸통을 강하게 밟는다.
쩌적! 모래 벌레의 몸통에 금이 간다. 솟아오르던 스피어도 깨진다. 하지만 스피어는 한두 개가 아니다. 수십 개의 스피어가 진월을 향해 쇄도한다. 그때!
쾌래랙! 블랙이 날려 보낸 풍륜이 진월의 발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스스슥! 솟아오르던 스피어들이 모조리 잘려나간다. 둘의 호흡만 봤을 때는 정말 찰떡궁합이다.
진월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뒤 따르는 스피어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는 모래 벌레의 몸통을 밟고 난 탄력으로 쏘아져 나간다. 마치 검은 탄환이 대기를 가르고 날아가는 것 같다. 목표는 바로 주술사 마고다.
마고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의 스태프가 빛을 발한다.
“마그마(Magma)!”
사람 몸통만한 붉은 돌덩이들 십여 개가 허공에 생겨난다. 정확히는 돌과 용암이 한데 엉킨 것 같은 불덩어리다. 불길이 이글거리는 것으로 봐서 하나만 제대로 맞아도 성치 못할 것 같은 기운이 담겨 있었다.
쇄도하던 진월이 속도를 늦춘다. 마고가 생성한 마그마로 공격을 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 밑에서는 블랙이 방어와 함께 서포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벗어나야 할 상황이었다. 방법은 강경돌파밖에는 없었다.
블랙은 이미 진월의 의도를 알고 있다. 진월이 움직이는 대로 뒤를 따를 것이다.
진월이 다시 속도를 올린다. 그와 동시에 주술사 마고의 스태프가 땅에 박힌다. 붉은 빛이 폭사된다.
드드드득~ 스태프 주변의 지면이 들썩이며 움직인다. 거대한 팔들이 만들어지더니 진월을 향해 날아간다. 진월을 구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동시에 마그마 십여 개가 주변을 휘돈다.
진월의 주변에서도 영력의 변화가 보인다. 그의 몸 주변으로 흑빛과 금빛이 섞인 팔들이 생성된다. 물론 마고가 만들어낸 팔보다는 작지만 위력은 충분하다. 둘이 만들어낸 팔들이 서로 충돌한다.
콰과과광! 힘과 힘의 충돌이 벌어진다. 진월의 영사로 만들어진 팔들이 더 강했는지 흙과 마력으로 만들어진 팔들이 소멸했다. 하지만 방어용으로 생각했던 마그마들이 진월의 주변으로 접근해 있었다. 이 한수를 노리기 위해 일부러 흙과 마력으로 팔들을 만들어 시선을 교란시켰는지도 모른다. 주술사 마고는 상당히 싸움에 능해 보였다.
진월도 뜨거운 열기에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다. 문제는 그가 아니라 그의 뒤를 따르는 블랙에게 큰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술사 마고의 입술 끝이 씨익 올라간다. 마고의 양손이 진월을 향해 합쳐진다.
마그마들이 진월을 향해 사방에서 일시에 날아든다.
콰과과광! 공중에서 폭발음과 불길이 터진다.
블랙이 진월을 돕기에도 이미 늦어버렸다. 반응하기에는 너무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미 알아차렸을 때는 마그마가 진월에게 날아드는 순간이었다. 마그마의 파편이 블랙에게까지 날아든다. 아직까지 거리가 있었지만 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잇~!” 블랙이 입술을 꽉 깨문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당장만 하더라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벽을 구현해야 할 정도였다.
콰과과곽~ 쉬이익! 치이익!
공벽에 마그마의 파편이 부딪치며 박힌다. 차가운 바람의 기운에 마그마의 파편이 식는 것도 보인다.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기술이었다. 폭발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시자 상황이 선명하게 보인다.
화르르륵~ 따닥따닥~ 불길에 타오르는 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블랙의 시선은 지금 활활 타오르는 마그마 덩어리들의 집합체를 향해 있다. 십여 개의 마그마가 진월을 가격한 후 그대로 뭉쳐 타오르고 있다. 파편 덩어리 몇 개가 부딪친 것만으로도 그녀의 공벽에 손상을 줬다. 직접 타격당한 진월이 과연 무사할지 정말 걱정이 되었다.
그런 마음을 알아챘을까? 주술사 마고의 안타깝다는 음성이 들린다.
“클클! 생각보다 강해서 힘 조절에 실패를 했어.”
“흥! 쉽게 죽을 사람은 아니랍니다.”
블랙이 코웃음을 치더니 마그마를 향해 손을 뻗는다. 마그마 주변의 대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진다. 아이스 계열의 능력은 없지만 공기 정도는 차갑게 만들 수 있었다. 블랙도 힘에 부치는지 두 손을 모두 쓴다. 거대한 진공파가 진월을 둘러싼 마그마 위를 덮는다.
치지지직~ 뜨겁게 타오르던 마그마가 순식간에 굳어간다. 붉게 타오르던 불길도 잡히고 검은 암석 덩어리만 남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술사 마고의 눈이 꿈틀거린다. 비위가 상한다. 하찮은 인간들이 능력 좀 있다고 그의 기술을 우습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었다.”
“과연 그럴까요?”
블랙의 물음에 대한 응답일까?
쩌저적~ 콰아앙! 마그마 덩어리에 금이 가더니 폭발하듯 터져나간다.
진월의 모습이 드러난다. 금빛의 영력이 그의 몸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폭발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진월이 입고 있는 방호복의 일부가 뜨거운 열에 타들어 간 모습도 보인다. 방호복이 타들어갔을 정도면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영사의 갑옷이 와해되었다는 의미다. 그만큼 주술사 마고의 마그마는 강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진월의 멀쩡한 모습을 본 주술사 마고의 눈이 커진다. 그도 놀란 것이 확실하다.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 통구이가 되어도 부족한 판국에…….”
“내 몸은 익어도 회복되니까. 그런데 네 공격은 익기에도 많이 부족하더군.”
“큭! 주둥이는 확실히 살아있군.”
“자주 듣던 말이지.”
진월이 대꾸를 하며 블랙을 슬쩍 본다. 뭔가를 부탁했다. 블랙의 손이 자연스럽게 진월을 향해 뭔가를 밀어내는 동작을 취한다. 진월도 동시에 몸을 틀며 허공을 박찬다.
콰앙! 허공을 찼는데 굉음이 일어난다. 허공에 블랙이 풍벽을 형성한 것이다. 진월은 바로 풍벽을 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금빛의 영력까지 두른 상태니 빛이 쏘아져 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주술사 마고 또한 당황해서 급하게 마력을 구현한다.
“월(Wall)!”
우드드득~ 지면이 일시에 일어난다.
바위와 흙들이 마치 하늘로 뽑혀 올라가듯 솟구쳐 오르며 장벽을 만든다. 장벽이 단단하게 형성되려 할 때 진월이 장벽과 부딪친다. 그만큼 진월의 속도가 빨랐다.
콰앙!
진월이 장벽을 뚫고 곧바로 마고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거대한 영사의 팔이 마고를 향해 날아간다. 마고의 눈동자가 눈에 띠게 흔들린다. 진월의 파워가 그의 짐작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마지막 방벽까지 뚫렸다. 맨몸으로 격돌한다면 아무래도 강화형인 진월이 유리하다. 주술사 마고에게는 위기나 마찬가지다.
꽈악! 마고가 그의 스태프를 강하게 움켜쥔다.
마치 스태프가 창인 것처럼 영사의 권영을 향해 힘껏 찌른다. 하크 일족의 신체 조건이 워낙 좋기 때문일까? 늙고 노쇠한 육신이지만 울퉁불퉁 솟은 팔 근육들이 보인다. 스태프의 끝에 달린 붉은 마나석에서 마력이 방출된다. 방패처럼 둥근 실드가 펼쳐진다.
쩡! 진월의 권영과 붉은 실드가 부딪친다.
주르르륵~ 주술사 마고가 뒤로 죽 밀려난다. 중심을 잡으며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만 봐도 대단하다. 진월이 밀려난 마고를 바로 따라잡는다. 그의 두 주먹에는 강렬한 금빛의 권영이 자리 잡고 있다. 마고를 끝장내 버리겠다는 듯 대기를 가르며 뻗어나간다.
콰과광! 충돌의 접점에서 금빛과 붉은 빛의 충격파가 날카롭게 날을 세우며 퍼진다. 대지를 찢어발길 만큼 날카로웠다.
콰앙! 쨍~ 실드에 금이 간다.
주술사 마고의 인상이 구겨진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숨겨둔 마지막 한 수가 있지 않는 한은 진월의 쇄도를 막기 힘들다.
진월의 권에 다시 금빛의 권영이 맺힌다. 영사가 권과 팔에서 일어나며 금빛의 권영을 형성한다. 생성된 순간 이미 권영은 사라지고 없다. 진월의 권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허공을 한번 휘저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권영의 파괴력에 의해 실드가 산산조각난다. 주술사 마고는 손을 들어 전면을 막는다. 진월의 쇄도는 끝나지 않았다. 기회를 잡았으면 끝을 봐야 한다. 팽팽해진 전신 근육에서 폭발할 것 같은 파괴력이 쏟아져 나간다.
부악~ 진월의 권이 대기를 가르며 쏘아져 나간다. 부딪치는 모든 것을 부셔버릴 것만 같은 기세다.
그 순간 검고 거대한 물체 하나가 끼어든다.
쾅! 카앙! 캉! 콰아앙!
마고의 몸에 맞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요란한 소리다. 소리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진월의 빠른 공격을 맞을 것 같으면서 간신히 막아내고 있다.
쾅! 방패에 진월의 주먹이 박힌다. 방패가 뒤로 확 밀려난다. 거대한 체격을 지닌 자가 휘청 흔들린다. 하지만 버텨낸다. 진월의 권이 방패가 비어버린 복부를 향해 다시 권영을 날린다.
캉! 대검이 진월의 권영을 쳐낸다. 대단한 반사 신경이다. 거한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후욱~”
그의 호흡 한 번에 주변의 마나가 동요한다. 마치 마나가 그의 신체에 힘을 제공하는 것 같다. 피부로 마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모습이다. 방패를 든 그의 팔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뒤로 젖혀졌던 방패가 진월을 향해 강하게 밀쳐진다. 방패치기다.
진월의 허리도 세차게 휘돈다. 그의 권이 다가서는 방패를 향해 나아간다.
콰아앙~ 방패와 권영이 격돌했다.
쿠두두둑~ 충격파에 의해 바닥이 갈라진다. 절벽 위의 바위가 갈라지며 무너져 내린다. 진월이 서 있던 자리가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눈앞에 서 있던 거한도 뒤로 물러난다. 둘의 격돌은 힘으로 동수를 이뤘다. 진월의 시선이 거한에게 머문다. 처음 본 자다.
바로 하크 일족의 치프인 하프다. 거대한 체격에 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다크 하이 엘프 주비엘 단장은 진월의 힘에 오히려 놀란다. 힘으로 하프와 동수를 이룰 수 있는 자는 이제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대단하군. 탐이 나.”
“…….”
주비엘 단장이 진월을 보며 손가락을 튕긴다. 뭘까? 의문을 느낀 순간이다. 진월은 떨어져 내리는 중이라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블랙이 떨어져 내리는 진월을 바람으로 돕는다.
팅~
악기의 현을 가볍게 튕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물론 거리가 있는 블랙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쐐액~ 대기를 가르지만 그 소리는 바람이 스스로 잠재운다. 암흑정령술을 다루는 자들이 쓰는 암시(暗矢 : 어둠의 화살)다.
블랙의 귓가로 다시 경고성이 들린다.
‘조심!’
블랙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아니 돌리려 했다.
퍼억!
“윽!”
블랙의 입에서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녀의 어깨에는 검은 화살 한발이 박혔다. 허공에 떠 있던 블랙이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린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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