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모두 튼튼한 놈.
“결국 놓쳤구먼.”
“…….”
“뭐 자네도 별수 없군.”
“…….”
“팀장 부임 이후 첫 임무부터 이 모양이면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NSCT 국장은 수상한(?) 의사를 놓친 진월을 타박한다. 엄밀히 말해 놓친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자식(?)이랄 수 있는 놈이 만들어져 어딘가로 또 사라졌다. 아직까지 사라진 남자가 자식인지 그 당사자인지도 파악이 불가능하다. 특이한 능력이고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국장은 계속해서 핀잔을 늘어놓으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다. 이유인 즉, 이제까지 블랙 일당의 훼방에 당하기만 했다. 진월이 합류하면서 블랙 일당과 최초로 접촉했다.
이번 사건을 바탕으로 국장은 진월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진월은 제공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취합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더불어 주어진 상황에 대한 직관력이 아주 뛰어났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했다.
국장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진월을 향해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말한다.
“사라진 그놈에 대한 수색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통제실에서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네. 안면인식 프로그램이 24시간 풀로 가동될 것이야.”
“모습을 바꿀 수 있고 용의주도한 놈인데 쉽게 걸리겠습니까?”
“제 놈도 인간인데 실수 한번은 하겠지?”
“인간 같지 않으니 문제 아닙니까?”
“큼! 그런 놈을 놓친 놈이 무슨 말이 많아.”
“바로 하셔야지요?”
“뭘 바로 해?”
“‘말’ 말입니다. 놓친 것이 아니고 사실 죽었지요? 그리고 분명히 그 병실에 있던 여자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민서가 백업 요원들한테 전했지 않습니까?”
“그, 그랬나?”
“그랬답니다. 보고서는 읽어 보시라고 제출하는 것으로 압니다.”
“거참! 살아 있다. 살아 있어?”
“뭐가 살아있습니까?”
“네 주둥이!”
“…….”
두 사람은 한참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입을 다물고 뚱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삐쳤다는 의미다. 그러다 국장이 피식 웃는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노란 파일을 들어 진월에게 내민다.
“이거나 살펴봐라.”
“뭡니까?”
“사건 파일이지. 뭐겠냐?”
“무슨 사건들이……. 저 오길 기다렸답니까?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 겁니까?”
“내 팀이 승인이 나게 된 이유가 바로 그거지. 발생 빈도가 많아지긴 했지.”
사실 과거와 비교해 미결 사건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과 보고가 줄을 이었다.
“자세한 것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보도록 하게나. 그것은 간략한 요약 파일일 뿐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뻔한 것을 읊는 국장에게 진월은 단도리 치듯 말한다. 진월의 반응에 국장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냥 넘어가기 그렇다. 시비를 걸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불만 있냐?”
“담배 안 피웁니다.”
“허~. 그 불(火) 말고 아닐 불(不)이다. 한문으로 풀어주리?”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군요.”
“사건 파일 앞에 두고 농담이나 해대는 능력은 뭐라고 표현해야 되지?”
“열어보기 전에 스트레스 푸는 방법입니다.”
“상관한테 스트레스 푸는 부하 직원도 있나?”
“마음에 안 들면 자르시면 되지 않습니까?”
“오~! 세다. 세! 그래? 너 자르고 내가 현장 뛴다.”
“사람이 그렇게 딱딱하고 깐깐하니 애들이 뒤에서 뒷담화를 즐기는 겁니다.”
“누가 그러던? 내가 깐깐하다고.”
“접니다.”
“이런 오살(五殺:오체분시)할 놈 같으니…….”
“그렇게 해서 제가 죽겠습니까?”
“허긴? 소가 지치던가, 줄이 끊어지겠지. 괜한 소리 했다. 그만하도록 하자. 클클!”
둘은 다시 뚱하니 바라본다. 둘의 얼굴에는 다시 알 수 없는 작은 미소가 흐른다. 이상하게 국장과 진월은 통하는 부분이 있다. 국장은 다시 뭔가 생각난 듯 말한다.
“너 정말 안 배울 테냐?”
“생각 없습니다.”
“이유가 뭐냐?”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허참! 내 팔태신술(八太身術)은 배우고 싶다고 마음대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대단한 절기라는 것과 비밀 전승되는 전통 무예라는 것도 말입니다.”
“그런데 왜?”
“…….”
“이유를 말해봐라. 나도 더 나이 먹기 전에 제대로 된 전승자 하나 남겨야 할 것 아니냐?”
“가장 큰 이유는…….”
“응?”
“…너무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큭!”
국장의 얼굴은 황당함의 극치를 표현한다. 멋대가리 없다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진월의 표정에는 승리의 기쁨이 표현된다.
진월은 웃다가 얼굴에 웃음기를 싹 지운다.
“창피한 말씀이지만 사실 제 능력에 대한 각성도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흠, 결론은 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다른 것을 배울 여력이 없다는 말이구나.”
“그게 가장 정답일 것 같습니다.”
“하나에 얽매이고 집착하면 그것이 오히려 깨달음을 방해할 수도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고 했다. 채우려고 들면 더욱 비게 되고 하나씩 버려갈수록 채워지는 너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시간 날 때 틈틈이 와서 배우도록 해라. 도움이 되었으면 됐지. 실(失)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력해보지요.”
“배워달라고 부탁까지 해야 되는 내 자신이 참 초라하구나.”
“초라한 짓은 하지 않으면 됩니다.”
“허~! 어른이 말을 하면 공손히 들어야지. 말버릇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조차 없구나.”
“원래 ‘선’이란 것은 넘으라고 있는 겁니다.”
“너같이 버릇없는 놈들을 두고 간에 옴이 올라 긁지도 못하고 죽을 놈이라고 한단다.”
“하하, 거참! 신기하네요. 간에 옴이 오르면 그것도 초자연현상인가요?”
“…….”
그렇다. 간에 옴이 오르면 초자연현상일지도 모른다. 결국 국장은 말대꾸를 포기한다.
* * *
진월이 펼쳐든 파일 안에는 피해자들의 사진이 들어있다. 처음 사진에는 사람의 하반신만 보인다. 상반신은 기계 안에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된다 함은 사진 한 장으로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판금 기계에 끼인 하체만이 보일 뿐이니 상반신은 분명 기계 안에 판금이 아닌 판체(板體)(?)가 된 채 들어 있을 것이다.
국장은 유심히 파일을 들여다보는 진월을 향해 말한다.
“첫 번째 피해자다. 피해자인지도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 우리가 밝혀야 할 문제이니까.”
“사고사 처리되었군요.”
“그렇지. 전기 누전으로 인한 기계의 오작동으로 결론 났었지.”
“판금 기계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맞네. 판금 기계가 쇠가 아닌 사람을 찍었지.”
“위험한 것을 뻔히 알 텐데 말입니다. 안을 들여다 본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원래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이상한 점이 보이는군요.”
“뭐가?”
“죽은 사람의 바지가 작업복이 아니군요.”
“예리하군. 그 사람은 관리자야. 굳이 작업복을 입을 필요가 없으니 편한 복장으로 있었겠지.”
“관리자가 굳이 판금 기계 앞에 갈 일이 뭐가 있었을까요?”
“그 기계를 다루는 자에게 볼 일이 있지 않았을까?”
“그 자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만뒀더군.”
“저희만 용의자로 보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지. 경찰도 바보는 아니니까.”
국장의 말에 진월은 간략한 사건 개요 파일을 읽어 내려간다. 역시나 그들이 추정한 내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결론은 그가 생각한 대로 진행되어 있지 않았다. 국장도 파일을 읽어봤기에 한마디 거든다.
“용의점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 목격자들의 진술 상 용의자는 기계에서 떨어져 있었고 오작동 시 기계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으니까 말이야.”
“결국 의문사라서 사고사 처리되었군요.”
“그렇지. 두 번째 사진을 보게나.”
“흐음~ 같은 판금 기계에서 또 사고가 벌어졌군요.”
“어떻게 알았나?”
“기계의 LOT 번호가 같습니다.”
“그 번호가 보이나?”
“창민이만큼은 아니어도 쓸 만합니다.”
“참 대단해. 언제 나랑 제대로 된 대련 한번 해보지 않겠나?”
“글쎄요? 제가 질 것 같습니다.”
“허허! 겸손하기는…….”
진월의 말처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사람이 국장이다. 진월은 발경처럼 기를 다루는 기술을 쓰는 사람을 처음 봤다. 내공을 자유롭게 다루는 사람도 처음 봤다. 내공이란 무협에 나오는 이야기라 치부하기도 했다. 본인도 체술(體術)을 극성으로 익혔다 자부했기에 더했다. 다만 내공이 아닌 합기(合氣)는 전신의 힘을 한 점에 집중시키는 것이기에 가능했고 이해할 수 있다. 엄밀한 의미로 내공은 아니라는 뜻이다. 궁금하면 물어야 한다. 그게 사람의 잘된 모습이다.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많이 물어도 된다.”
“개라도 풀어야겠군요.”
“물기야 하겠지?”
“그렇지요. 생각해보니 개들이 불쌍하군요.”
“물려 준 다음이 문제지?”
“이빨은 안 박힐 테니 세탁비인가요? 수선비인가요?”
“둘 다지. 개한테 청구할 수는 없잖아.”
“돈은 드리지요. 물려만 줘 보십시오.”
“얼마 줄 거냐? 까짓것 금액만 맞는다면야.”
둘은 결코 양보하거나 지지 않는다. 큰 것이 아닌 아주 사소한 것으로 목숨 거는 유형들이다. 한참을 말도 안 되는 유치한 것으로 실랑이 벌이다 다시 본론에 집중한다. 이래서 둘이 만나면 시간이 늘어진다.
“내공은 아무나 쌓을 수 있습니까?”
“아무나? 아무나 쌓을 수는 없지. 체질에 따라 다르다. 더구나 변종들이기도 하지.”
“변종이라니요?”
“뭐라 할까? 일명 배때아지 튼튼한 놈들이라고 할까? 타고나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익힐 수 없는……. 뭐, 그런 거지.”
“그렇다면 저 또한?”
“소질 없으면 말짱 꽝이지.”
“그럼, 체질부터 보시지요. 괜한 헛고생 하지 않게 말입니다.”
“이미 봤어. 아주 좋아.”
“저 또한 배때아지 튼튼한 놈이라는 말이군요.”
“아니지.”
“네?”
“너는 다 튼튼한 놈이잖아. 거시기까지 튼튼한지는 내가 못 봐서 모르겠고 말이다.”
“아주 튼튼합니다. 쓸 일도 별로 없어서요. 넘쳐납니다.”
“거, 젊은 놈이 자주 써야지. 쓸 일도 없다니, 능력이 없구나.”
“이기셨습니다.”
“클클, 이 맛에 내가 자네를 놀리지.”
“사건 설명이나 하시지요.”
“음음! 해당 판금 기계의 담당자는 두 번째 사건 때도 역시나 기계 근처에 없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있다.”
“사진 상으로는 팔이 잘렸군요.”
“그렇지. 더 이상한 점은 전원이 뽑혀 있는 상태에서 기계 안에 손을 넣어 덜 떨어진 조각을 떼어 내려고 했다는 점이지.”
“이상하군요. 문제는 기계의 전원이 나가 있었다는 점이 아닌데요. 본인의 담당 기계가 아닌데 왜 굳이 그 기계를 만진 걸까요?”
“해당 판금 기계의 담당자가 하영철이라고 하더군. 그 친구가 화를 내면서 기계를 꺼버리고 나가버리더라는 거지. 팔이 잘린 친구는 하영철이라는 자의 선임이야. 사고 며칠 전 선임과 하영철이 서로 다퉜다고 하더군. 서운해 했던 것도 있고 해서 손을 봐주려고 기계에 손을 대었다고 한다. 변론은 딱 맞아떨어지지. 하영철이 담당하는 판금 기계는 자주 에러가 났었다는 주변 동료의 진술도 같이 있으니까.”
“결국은 둘 다 사고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말인데…….”
사고에 의해 일어난 사건일 경우 진월의 팀에 인계될 이유가 없다. 뭔가 더 있지 않냐는 듯 진월은 국장을 본다.
“허허! 있다, 있어. 경찰 감시반과 우리 통제조들이 최근 하영철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지. 그놈이 잠자는 시간만 빼고 CCTV에 찍힌 자료는 모조리 분석하도록 했었다.”
“뭔가 나왔습니까?”
진월의 질문에 국장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본다. 말을 해줄까 말까 하는 표정으로 애를 태우다가 답을 한다.
“아니!”
“…….”
참 어이없는 늙은이라고 마음속으로 무지하게 욕을 했을 법하다.
‘스윽.’
진월은 아무 말도 없이 몸을 일으킨다.
“어! 이, 이 팀장?”
“…….”
“그러지 말고 앉아봐.”
“싫습니다. 제가 알아보지요.”
진월은 국장의 만류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 길로 사무실을 나온다. 분명 하영철이란 자에게 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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